”광해, 왕이 된 남자” 폭군이었나?, 성군이었나?
”광해, 왕이 된 남자” 폭군이었나?, 성군이었나?
  • 김지윤
  • 승인 2012.09.26 13: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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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창민 감독의 '광해, 왕이 된 남자'는 16년간의 비교적 짧은 재위기간에도 불구하고 누구보다 드라마틱한 삶을 살았던 광해를 재조명해 현재 한국 영화계를 휩쓸고 있다.

조선 제15대 왕 광해군(1575~1641)에 대해서는 학계는 물론 일반인의 평가에서도 극도로 상반된다. 19세기까지 '광기의 군주'로 손가락질하고, 20세기 들어서는 '개혁의 임금'으로 띄우는 등 시대에 따라 평가된다.

영화는 조선왕조실록 '광해군일기' 중 "숨겨야 할 일들은 조보에 내지 말라 이르다"란 글귀로 그의 재임 8년 차에 사라진 15일간의 기록을 작가의 상상력으로 재구성했다. 이를 근거로 독살위기에 놓인 광해를 대신해 왕 노릇을 하게 된 천민 하선이 왕의 대역을 맡게 되며 벌어지는 픽션이다.

폭군 중 폭군으로 다음엔 개혁군주이자 천재적인 외교가로, 광해군은 변해갔다. 이에 불만을 품었던 양반들이 반정 후 광해군을 악의적으로 역사에 기록했다"고 반발하기도 한다.

그가 명군이었는지 아니면 폭군이었는지는 정확하지 않다. 하지만 광해군이 보여준 외교역량이나, 대규모 토목공사 부작용에 대한 강한 반감 속에서 '광해'는 과거에나 현재나 여전히 논란인 인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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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윤 cnsgid90@nat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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