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회숙의 “바흐 이전의 침묵”에 관련 글에 대한 반론①
진회숙의 “바흐 이전의 침묵”에 관련 글에 대한 반론①
  • 주종빈
  • 승인 2014.07.08 0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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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뉴스투데이 주종빈 음악칼럼니스트] 진회숙님, http://navercast.naver.com/contents.nhn?rid=176&contents_id=17097 링크된 “바흐 이전의 침묵”에 관련 글 잘 읽었습니다. 해명하신 “바흐음악이 기쁨도 없고 슬픔도 없는, 비개성적이고, 중립적이고, 객관적이다”라는 수사에는 어떤 역사적 입장이라기보다는 순전히 개인적인 입장을 개진하신 것이라고 생각되는데, 일단 그 입장이 저와는 다르며 가치판단의 과잉에서 올 수 있는 단정적인 판단은 전적으로 사실에 기반을 두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 부분은 반론...을 하면서 조금씩 보완이 될 것입니다.)

쓰신 글 중에 적확하게 지적하고 넘어 갈 사실과 다른 인식의 오류에서 발생할 수 있는 위험성을 크게 네 가지로 나누어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피아노로 하프시코드의 음색을 낼 수 있을까요?

‘하프시코드라는 악기는 피아노에게 자리를 내줄 수밖에 없었다“라고 하셨는데 바흐만큼 하프시코드에 대해 잘 아는 사람이 또 있었을까요? 어느 시대에도 그 시대의 음악에 가장 어울리는 악기를 가지고 있습니다.

바흐가 건반음악에 대한 악상을 상상할 때 하프시코드의 소리가 울려 퍼지고 있었고, 친밀할 수밖에 없는 연주자와 악기제작자를 염두해 두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하프시코드와 피아노는 근본적으로 다른 것이지 좋고 나쁨의 관계가 아닙니다. 그 것은 ‘살아있는’ 당대음악이 존재하는 상황에서는 그렇게 판단할 수 있지만 20세기 이후부터, 즉 과거음악 특히 옛 음악을 조망해서 듣는 시대에는 맞지 않습니다.

피아노로 하프시코드의 음색을 낼 수 있을까요? 연주의 형식성과 조형감의 가장 지각 가능한 차이가 바로 소리실상입니다.

그 것이 악기의 음색, 성격, 강도 등이죠. 님의 ‘상향발전식’ 논리대로라면 류트는 기타에게, 내츄럴코넷은 금관악기에게, 감바는 첼로에게 자리를 내주어야 하며 조스켕은 바흐에게, 바흐는 모차르트에게 자리를 내주어야 하는데 그렇지가 않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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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종빈 news@koreanews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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