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회숙의 “바흐 이전의 침묵”에 관련 글에 대한 반론
진회숙의 “바흐 이전의 침묵”에 관련 글에 대한 반론
  • 주종빈
  • 승인 2014.09.28 15: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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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뉴스투데이 주종빈 음악칼럼니스트] 진회숙님, http://navercast.naver.com/contents.nhn?rid=176&contents_id=17097 링크된 “바흐 이전의 침묵”에 관련 글 잘 읽었습니다. 해명하신 “바흐음악이 기쁨도 없고 슬픔도 없는, 비개성적이고, 중립적이고, 객관적이다”라는 수사에는 어떤 역사적 입장이라기보다는 순전히 개인적인 입장을 개진하신 것이라고 생각되는데, 일단 그 입장이 저와는 다르며 가치판단의 과잉에서 올 수 있는 단정적인 판단은 전적으로 사실에 기반을 두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 부분은 반론...을 하면서 조금씩 보완이 될 것입니다.)

쓰신 글 중에 적확하게 지적하고 넘어 갈 사실과 다른 인식의 오류에서 발생할 수 있는 위험성을 크게 네 가지로 나누어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피아노로 하프시코드의 음색을 낼 수 있을까요?

‘하프시코드라는 악기는 피아노에게 자리를 내줄 수밖에 없었다“라고 하셨는데 바흐만큼 하프시코드에 대해 잘 아는 사람이 또 있었을까요? 어느 시대에도 그 시대의 음악에 가장 어울리는 악기를 가지고 있습니다.

바흐가 건반음악에 대한 악상을 상상할 때 하프시코드의 소리가 울려 퍼지고 있었고, 친밀할 수밖에 없는 연주자와 악기제작자를 염두해 두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하프시코드와 피아노는 근본적으로 다른 것이지 좋고 나쁨의 관계가 아닙니다. 그 것은 ‘살아있는’ 당대음악이 존재하는 상황에서는 그렇게 판단할 수 있지만 20세기 이후부터, 즉 과거음악 특히 옛 음악을 조망해서 듣는 시대에는 맞지 않습니다.

피아노로 하프시코드의 음색을 낼 수 있을까요? 연주의 형식성과 조형감의 가장 지각 가능한 차이가 바로 소리실상입니다.

그 것이 악기의 음색, 성격, 강도 등이죠. 님의 ‘상향발전식’ 논리대로라면 류트는 기타에게, 내츄럴코넷은 금관악기에게, 감바는 첼로에게 자리를 내주어야 하며 조스켕은 바흐에게, 바흐는 모차르트에게 자리를 내주어야 하는데 그렇지가 않죠.

연주하면서 감정을 넣으라는 얘기는 아니다.

“감정개입의 여지가 없다”라고 말씀하셨는데 바흐가 가장 사랑했던 아들 칼 필립 엠마누엘 바흐의 <올바른 연주법 시론>에 보면 “손가락이 건반위에 떨어지거나 내던져져서는 안되며 내적인 힘과 동작을 지배하는 확고한 '통제력'의 감각으로 건반에 도달해야 된다”고 나와 있습니다.

감정개입이 불가능한가요? 물론, 이 감정개입은 훈련을 통한 무의식적 체화를 거쳐야 하는 것이지 연주하면서 감정을 넣으라는 얘기는 아니죠. 바흐를 얘기하면서 감정개입이 운위되는 것은 전적으로 후기낭만주의의 입장에서 바흐를 조망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옛 음악을 대하는 입장에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뒤에 설명하겠지만 말씀하신 과거음악을 ‘이 시대화(contemporizing)’하는 입장과 과거로 돌아가 그 시대의 정신으로 바라보는 입장이 있죠.

전자의 입장은 위에서 설명한 바와 같이 살아있고 생생한 당대음악이 존재하는 시대에는 자연스러우며 일반적인 입장입니다.

하지만, 현 시대에서는 ‘이 시대의 생생한 음악’의 결여로 인해 과거음악을 부활해서 듣고 있기에 전자의 입장은 부자연스러운 것입니다.

연주관행은 시대별로 완전히 다르다.

“바흐의 음악은 악상기호가 없기에 심심하다”라고 하셨는데 그 시대에는 작곡가와 연주자가 밀접한 관계를 이루던 시기입니다. 그들 사이와 그 시대의 ‘연주관행’이라는 게 있죠. 그 속에서 암묵적으로 합의되고 당연했던 것들은 악보에 표시를 하지 않았습니다.

악상기호가 없어서 심심한게 아닙니다. 연주관행은 시대별로 완전히 다릅니다. 18세기 중반의 곡을 18세기 후반에는 연주를 못하는 경우가 생깁니다.

오로지 지식으로만 연주하는 과오를 경계하면서 당대의 정서를 비롯한 학술적 연구가 필요한 것이지요. 게다가 꾸밈음과 장식음 그리고 즉흥연주라는 거대한 복합체가 존재합니다.

그러므로 바흐음악은 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수학문제처럼 치밀한 계산에서 나온 것이 아닙니다. 수학처럼 정밀하게 악보만능주의로 연주하는 것은 다성음악의 탄생이후 프랑스혁명이전까지는 존재하지 않던 관행입니다.

프랑스혁명이후 정치적 평등이라는 명분하래 유래 없는 콘소바토리식 교육의 획일화가 진행됩니다. 청중들에게 음악은 더 이상 삶의 일부분으로서의 일반교양이 아니라 듣고서 아름답다고 느끼면 그만이며 누구나 그 가치와 판단과 평가를 할 수 있다고 내세웠죠.

역사적으로 아름답기만 한 음악이 존재한 적은 없다.

이 부분이 사실 제일 중요하다고 봅니다. 님께서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흐 음악이 ‘아름답고’ ‘지나간’ 음악이 아니라 ‘이시대(contemporizing)'의 음악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서 님의 바흐음악 접근이 단지 ’심미적 향유‘와 ’현대화‘에 궁극적인 목적이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역사적으로 아름답기만 한 음악이 존재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습니다. 그 것은 단지 여러 음악적 요소 중에 하나일 뿐이죠. 아름다움만을 내세우는 사고의 기저에는 앞에서 말한 것과 같이 삶의 생생한 일부분이 아니라 일상의 장식과 위로에 지나지 않으므로 더 이상 전체로서 이해하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이 기반에 깔려있습니다.

우리가 에른스트의 그림을 보거나 스톡하우젠의 음악을 들으면서 아름답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왜 일까요? 실제로 아름답지가 않거든요. 현실을 반영하고 그 것이 뭔가 껄끄러운 것인데 만약 삶과 밀착되고 음악교육이 살아있는 생생한 것이었다면 우리시대의 진정한 현대음악을 찾을 수 있을 것이며 굳이 과거음악을 부활해서 듣지는 않을 것입니다.

모차르트 시대에는 모차르트가 현대음악이었다.

음악적으로 생기 넘치고 창조적이었던 마지막 시대는 후기낭만주의 시대였는데 거기서부터 진공상태에 이르러 과거음악을 부활해서 듣는 것이죠. 모차르트 시대에는 모차르트가 현대음악이었습니다.

과거음악, 가령, 바흐와 같은 바로크음악은 연주되어지지도 않았지만 낡은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멘델스존이 바흐를 부활하는데는 오랜 시간이 걸렸죠. 그렇게 예전에는 과거의 음악을 당대 음악의 전단계로서만 간주했으며, 최상의 음악이라고 할지라도 학술적으로만 참고하고 연주하는 일은 극히 드물었습니다.

만약 지금의 연주홀에 현대음악만을 연주한다면 연주홀은 그야말로 '사막의 모래바람'으로 초토화 될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모차르트시대에 바흐를 연주했다면 비슷한 상황이 연출 되었을 것이구요. 과거음악이 연주가 되더라도 당대화가 불가피했죠. 하지만 오늘날에는 옛음악이 님께서 말씀하신 이 시대화(contemporizing)를 하지 않아도 청중들은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입니다.

시대화는 음악적 획일화의 연장선일 뿐이다.

푸르트뱅글러나 스토코프스키 같이 당대화 한답시고 바흐의 오르간 곡을 바그너적인 오케스트라를 위한 초대편성으로 편곡하기도 하고, 수난곡도 거대한 편성의 초낭만적 방식으로 연주가 되기도 했죠. 이것이 음악적 획일화의 연장선입니다.

바로크 시대에는 고딕양식의 아름다운 교회 건축물을 허물고 바로크양식으로 재건축 하더라도 하등의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현재는 문화유산으로 지정할 만큼 과거를 보다 잘 조망할 수 있는 시대가 된 것입니다.

그 것은 음악에도 해당되어 우리의 삶속에서 진정하게 ’살아있지‘ 않고 아름다우면 그만이라는 프랑스혁명이후의 콘소바토리식의 정신적 상황에서 비롯되어진 것입니다.

하지만 옛음악(가령, 바흐 등)을 보다 웅숭깊고 광범위하게 이해하려고 노력하면 이러한 음악이 어떠한 것이며 아름다움을 아득히 초월하여 음악적 언어의 다양성으로 우리의 가슴은 찬연히 빛날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그리고 그 단계를 넘어서면 우리들의 문화이자 앞으로 전진하는 우리시대의 진정하고 생생하게 ’살아있는‘ 현대음악도 다시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 밖에도 여러 가지 쟁점이 있지만 본문보다 댓글이 더 길어질 것 같아서 이만 줄입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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