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탈당요구, 한나라당 책임 없나
대통령 탈당요구, 한나라당 책임 없나
  • 김재석
  • 승인 2012.01.25 07:4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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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997년 10월 22일, 한나라당의 전신인 신한국당은 자당 총재였던 김영삼 대통령에게 탈당을 요구했다.

당시 신한국당 이회창 후보는 "부패한 3김 정치와의 성전"을 외치며 소위 '끈 떨어진' 김 전 대통령에게 당을 떠나달라고 요구했다.

결국 그해 11월, 김 전 대통령은 문민정부 출범 후 자기 손으로 세웠던 신한국당의 당적을 스스로 정리했다.

신한국당은 대통령을 밀어내고 민주당과 합당해 당명까지 한나라당으로 바꿨지만 15대 대선에서 패배했다.

야당이라고는 해본 적 없던 소속 의원 대부분은 그 후 10년 간 풍찬노숙을 해야 했다. 우리나라 정당사에는 첫 평화적 정권교체로서 의미가 컸지만 한나라당 입장에선 다시없는 악몽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요즘 바로 그 당에서 똑같은 일이 다시 벌어지고 있다.

요즘 한나라당 1997년 대선 때와 판박이

요즘 한나라당은 대통령 탈당 문제로 벌집 쑤셔놓은 형국이다. 대놓고 탈당하라는 요구부터 자연스럽게 당적을 정리하도록 해줘야 한다는 말까지 발언 수위에는 차이가 있지만 모두 '나가달라'는 의미라는 점에서는 별반 차이가 없다.

정권 실패의 상징인 대통령과 함께 해서는 도저히 4월 총선에서 이길 수 없다는 논리다. 특히 이런 요구는 대통령을 도와 현 정권을 창출했던 이른바 '친 이계' 내에서 더 강하게 나오고 있다. 오히려 정권 내내 비주류로 숨죽였던 친 박계가 외형적으로나마 대통령을 감싸는 모양새다.

대통령 탈당만이 아니다. 당 간판 바꿔 다는 것까지 닮은꼴이다. 최근 한나라당에서 일었던 이른바 '재창당'과 같은 논리다. 이런 저런 갑론을박 속에 재창당까지는 아니지만 당명 변경은 굳어지는 분위기다.

불난 집에서 내가 살아야겠으니 나가달라는 싸움

지난 4년 간 핍박을 받아왔다고 말해왔던 친 박계가 진심으로 대통령을 챙기는지는 따져볼 문제이나 친 이계 내에서, 그것도 핵심 측근으로 불렸던 사람들까지 나서서 대통령에게 탈당을 요구하고 있다는 사실은 냉정한 정치권의 생리를 그대로 보여준다. 내가 살아야겠으니 나가달라는 말이다.

압박이 거세지자 그에 따른 반작용도 커졌다. 친 이계 좌장으로 불렸던 이재오 의원은 대통령 탈당으로 이득을 보려는 그 사람들이 당을 떠나면 될 문제라며 반박했다.

일부 비대위원이 대통령의 결단을 요구한 데 대해서도 "비대위원들이 박근혜 비대위원장을 모시고 나가서 우리는 대통령과 절연했으니 이명박 정부의 실정에 책임이 없다고 말하는 게 국민들에게 더 선명하지 않겠냐."고 원색적으로 되받았다.

이렇게 대통령 탈당을 놓고 연일 설전을 벌이는 사이 쇄신은 한편으로 밀려났다. 본인들은 아니라고 말할지 모르지만, 또 실제 쇄신작업은 열심히 진행되고 있을지 모르지만 국민들이 접하는 뉴스 속에서 한나라당의 쇄신 관련 소식은 잠시나마 TV와 신문지상에서 사라진 것이 현실이다.

대통령 혼자서할 수 있는 건 별로 없다

현직 대통령의 공과를 어떻게 볼 것인가는 논외로 하자. 다만 분명한 것은 그 공과가 결코 대통령 혼자만의 몫은 아니라는 점이다. 그저 대통령 책임이라고 주장할지 모른다. 하지만 3권 분립이 엄격한 우리나라에서 행정부의 힘만으로 할 수 있는 건 별로 없다.

현 정부 들어 시행한 굵직한 정책 대부분은 국회 논의 과정을 거친 것들이다. 말 많았던 4대강 사업도 따지고 보면 한나라당의 예산안 단독처리 없이는 추진하기 어려운 사안이었다.

대통령과 여당이 궤를 같이했다면, 대통령이 강압적으로 여당을 움직였거나 여당이 자발적으로 뜻을 함께 했거나 둘 중 하나다. 하지만 공안통치가 사라진 지금, 대통령이 여당을 찍어 누를 만한 힘은 없어 보인다.

오히려 청와대에 뭔가 바라는 게 있는 여당 의원들이 청와대와 보조를 맞췄다고 보는 게 타당할 듯하다. 청와대의 정책에 정말 공감해서, 아니면 장관 자리나 지역 민원이 아쉬워서 따라 움직였다는 말이다. 어느 쪽이 됐건 그 결과에서 자유로워 보이지는 않는다.

'주류가 아니어서', '계파가 달라서' 책임이 없다고 말하지 말았으면 한다. 국민 눈에는 그저 똑같은 여당, 한나라당 의원일 뿐이다.

정권의 사전적 의미는 통치기구를 움직이는 실질적 정치권력이다. 백과사전의 도움을 빌어 좀 더 단순화해서 말하자면 행정부, 즉 대통령이다. 따라서 현 정권의 책임이라면 대통령의 책임이 된다.

하지만 전제가 빠져 있다. 정당 정치다. '한나라당 정권', '민주당 정권'하는 식으로 부르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정당은 정권을 담당·획득·교체한다. 따라서 정권이 실패는 이를 담당하고 획득한 정당과 떼려고 해야 뗄 수 없는 관계다.

정치의 본질은 '책임' 중요한 건 외형이 아니라 진정성

정치의 본질은 책임이다. 민심을 잃었다면 그에 따라 평가를 받고 가는 게 순리다. 참패가 뻔히 보이니 자포자기 하란 말이 아니다. 잘못한 것이 있다면 바로잡고 민심에 거스른 것이 있다면 그 시대정신에 맞게 고쳐나가야 한다.

다만 '누구 탓이네' 하며 발을 빼려 하거나 당 간판 바꿔 급한 불만 끄려 해선 안 된다는 말이다. 중요한 건 외형이 아니라 진정성이다.

사실 대통령 탈당은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다. 민주화 이후 모든 대통령들이 같은 길을 걸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게 정답은 아니다. 대통령 개인의 비리 때문이라면 몰라도 국정 운영의 결과 때문이라면 다시 생각해볼 대목이 있다는 말이다.

책임은 회피하면 할수록 더 군색해진다. 아니 비참해진다. 잘못이 있었다면 솔직히 반성하고 민의에 맞게 변화하려는 의지를 보여주는 것이 그나마 선거에서 국민의 질책을 덜 받는 길이다.

김재석 khs4096@koreanews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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