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든 글랜드 슬램’으로 전설이 된 박인비
‘골든 글랜드 슬램’으로 전설이 된 박인비
  • 유창선 자유기고가
  • 승인 2016.09.17 18: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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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인 최초 여자 ‘커리어 그랜드 슬램’ 챔피언 골프선수로 우뚝 선 박인비(사진:박인비 선수 페이스북)

[한국뉴스투데이] 박인비 선수는 1988년 7월 12일 생으로 1998년 골프에 입문했다. 박인비는 어린 나이부터 골프에 두각을 드러냈다.

1998년 박세리의 US 여자오픈 우승을 지켜보며 골프선수로서의 꿈을 키운 박인비는 초등학생 때부터 각종 주니어 대회 우승을 차지했다.

2001년 미국으로 골프 유학을 떠난 박인비는 미국 라스베거스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하버드대에서 장학생으로 추천 받았으나 프로로 전향하기 위해 네바다 주립대에 들어갔다. 그리고 2007년 18살에 LPGA에 데뷔했다.

박인비의 가족은 골프 애호가들이다. 어머니 김성자씨도 일찌감치 골프를 배운 골프광으로 박인비를 임신하고도 7개월간 골프를 즐겼다고 한다.

박인비의 할아버지 박병준 옹은 1970년부터 골프를 시작했고, 박인비의 아버지 박건규씨는 젊은 시절 언더파를 기록했던 수준급 아마추어 골퍼로 알려졌다. 특히 박인비의 아버지는 10살의 박인비에게 골프를 가르쳤다.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손에 이끌려 억지로 골프채를 잡았던 박인비는 메이저 대회 7회 우승을 포함해 LPGA 대회에서 총 16번 우승을 했다.

이러한 기초를 바탕으로 아시아인 최초로 여자 ‘커리어 그랜드 슬램’ 챔피언 골프선수가 되었다.

4개의 메이저 대회는 US 여자오픈, KPMG 위민스 PGA 챔피언십, RICOH 브리티시 여자오픈, ANA 인스퍼레이션을 말한다. 2013년부터 에비앙 챔피언십이 추가되어 메이저 대회로 승격됐다.

116년 만에 골프가 올림픽 정식 종목으로 채택되었고, 2016년 리우 하계 올림픽에서 16언더파로 금메달을 차지하여 ‘골든 그랜드 슬램’을 달성했다.

올림픽 골프 4라운드 18번 마지막 홀에서 퍼팅 후 ‘만세 포즈’를 한 박인비 선수는 금메달 시상식 때 들은 애국가는 최고의 노래였다고 말했다. 국민 영웅이요 국민 골퍼로 자리매김한 박인비 선수의 우승 원동력에 대해 세 가지로 살펴보았다.

▲메이저대회 등 큰 대회에서 무서운 집중력을 보여주는 박인비 선수(사진:박인비 선수 페이스북)

▲첫째, 뛰어난 집중력
박인비는 메이저대회 등 큰 대회에서 무서운 집중력을 보여 주었다. 박인비는 “한 가지에 집중하면 주변이 잘 안 보인다. 너무 집중해서 가족이나 주변 사람들에게 무관심하다고 느껴지곤 한다”고 설명했다.

왼쪽 엄지손가락 부상으로 통증 없이 경기를 하려면 올림픽 전 3주 정도 깁스를 해야 한다는 말에 그냥 통증 속에서 경기를 치렀다.

박인비는 “한 달 동안 연습에 집중하느라 재활을 제대로 할 수 없었다”며 “경기에 너무 집중하다 보니 통증이 많이 느껴지지는 않았다”고 했다.

박인비는 골프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에 대해서 “정신력은 50%, 샷은 35%, 창의력은 15% 정도”라고 말했다. 정신력이 돼줘야 연습이나 앞으로 어떻게 해나갈지 알 수 있다는 것. 테크닉이 안되면 정신력도 떨어진다“고 했다.

▲둘째, 맞춤형 준비
박인비는 올림픽 출전을 결정하고 난 뒤 국내에서 연습을 했다. 하지만 일상적 연습이 아니었다.

리우올림픽 코스와 가장 비슷한 환경을 찾아 비지땀을 쏟았다. 리우올림픽 골프코스는 대서양 해안에 위치한 링크스 코스다. 링크스 코스는 바람이 많이 불고, 날씨도 자주 변하는 특징이 있다.

국내에서는 인천 송도 잭 니클라우스 골프장이 가장 비슷한 조건이었다. 골프장 측의 전폭적 지원 하에 거의 매일 코스에서 살았다.

40도에 육박하는 폭염에도 개의치 않았다. 박인비는 대회를 마친 뒤 가진 인터뷰에서 “바람이 많이 불진 않았으나 링크스 코스 느낌은 나서 잭 니클라우스에서 편하게 연습했다”고 말했다.

아침 6시부터 저녁까지 종일 연습에 매달렸다. 부상 속에서 샷의 크기를 조정해 나갔고 퍼팅은 전성기 때의 감을 되찾았다. 두 달 가까운 맞춤식 훈련에서 리우 현지의 감각을 비슷한 환경 속에서 연습하며 키워나갔다.

▲셋째, 가족의 힘
박인비는 2008년 US 여자 오픈에서 최연소 우승을 차지한 후 극심한 슬럼프에 빠졌다. 2009년에는 3연속 컷 탈락을 비롯해 23개 대회에서 7번의 컷 탈락을 했다.

박인비는 “당시 공을 치면 오른쪽으로 날아가거나 OB가 났다. 힘들고 괴로웠다. 비행기를 타는 것도 매주 짐을 싸는 것도 골프도 다 싫었다”고 했다.

당시 위기에 빠진 박인비를 구한 것은 지금의 스윙 코치이자 남편인 남기협씨다. 남기협씨는 KPGA 프로골퍼 출신으로 2010년부터 박인비의 골프를 지도했다.

박인비는 “남편을 만난 뒤 공을 치는 능력이 300%이상 향상됐다”고 했다. 남편 남기협씨는 “다른 건 몰라도 클럽이 공을 맞히고 지나가는 ‘임팩트’ 만큼은 명확하게 이해하고 있었다”고 말했다.

그래서 클럽 헤드가 지나가는 길에 대한 설명을 했고, 박인비는 그 길을 따라가기 시작했다. 남기협씨의 지도를 받은 지 2년 만이었다.

리우 올림픽에서도 묵묵하게 ‘외조’를 한 남편에 대해 박인비는 “나에게 새로운 인생을 선물해 준 사람”이라며 “남편을 만난 뒤 세상에는 골프 외에도 할 일이 많고 다른 삶을 살 수도 있다는 자신감을 얻었다”고 말했다.

이번 올림픽을 앞두고 “차라리 다른 선수에게 출전권을 양보하라”는 비판에 시달리기도 했다.

이런 상황 속에서 박인비의 참가 결정에 가장 큰 힘이 된 것은 가족이었다. 당시 정상 컨디션도 아니고 나가서 못 치면 진짜 돌아올 게 비난밖에 없었다.

안나가면 어쨌든 욕은 안 먹을 것인데…. 하지만 그런 것 때문에 포기하면 비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부딪혀보자고 결정했다.

▲결혼이후 남편은 큰 힘이 됐다.(사진:박인비 선수 페이스북)

남편은 이번에도 다시 용기를 낼 수 있게 했다. 이에 대해 박인비 선수는 “가장 중요한 스윙 코치이자 가장 소중한 사람이다”며 “더 멀리 나아갈 수 있고 계속 성장할 수 있는 버팀목인 것 같다”고 말했다.

박인비의 향후 목표에 대해 “앞으로 대회 수를 조정하며 메이저대회 위주로 집중력을 발휘해 더 많은 우승을 하고 싶다”고 했다. 물론 메이저 대회 안에는 ‘에비앙 챔피언십’에서 우승해서 ‘슈퍼 골든 커리어 그랜드 슬램’이라는 대업을 달성하는 것이다.

자신의 궁극적 목표에 대해서는 “좋은 골퍼, 귀감이 되는 사람이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유창선 자유기고가 mark201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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