핀테크에서 일류 국가가 되기에는...
핀테크에서 일류 국가가 되기에는...
  • 김형중 교수
  • 승인 2016.03.01 14:5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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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알파고(AlphaGo)와 이세돌 9단의 대결을 앞두고 있다. 과연 컴퓨터가 인간을 상대로 바둑시합에서 이길지 의견이 분분하다. 이미 체스에서는 1997년 IBM의 수퍼컴 디퍼 블루가 챔피언 카스파로프에게 2승 3무 1패를 거둔 바 있다.

체스는 64개의 칸 위에서 6종류의 말을 움직이는 경기다. 바둑은 가로 19줄, 세로 19줄이 만드는 361개의 점 위에 흰 돌과 검은 돌을 번갈아 가며 놓는 경기다. 그래서 경우의 수가 훨씬 많기에 이제야 겨우 인간 챔피언과 승부를 벌이는 것이다.

2011년에는 IBM 수퍼컴 왓슨(Watson)이 퀴즈 챔피언에게 도전해서 승리했다. 토마스 와슨은 IBM의 초대 CEO로 이 회사의 기틀을 다진 인물이다. 퀴즈대회에 참가해야 하는 왓슨은 인간의 질문을 알아들을 수 있어야 했다.

왓슨이 말은 못해도 말귀는 알아들었다. 사실을 정확히 말하면 말귀를 알아듣지 못한다. 받아쓰기할 수준은 되지만 그럭저럭 쓸만한 수준일 뿐이다. 왓슨은 받아 적은 문장에서 핵심 키워드를 찾아내고 그것으로 15 페타 바이트에 달하는 방대한 데이터베이스에서 해당 키워드가 포함된 문서들을 찾아낸다. 그 문서들에서 다시 역으로 핵심 키워드와의 연관성을 찾아 들어간다. 그리고 답을 찍는다. 왓슨이 66문제의 답을 맞혔지만 9문제는 틀렸다.

왓슨이 유명해진 것은 미국 최고 인기 쇼 프로그램인 ‘제퍼디’에서 74회 연속 우승한 전설적인 켄 제닝스를 연거푸 꺾었기 때문이다. 그는 2004년 74연승을 달리며 그때까지 252만 달러를 버는 등 제퍼디 퀴즈대회에서만 모두 319만 달러를 벌었다.

또 하나의 퀴즈 강자인 브래드 러터가 있었는데 그도 제퍼디에서만 445만 달러를 벌었다. IBM의 창사 100주년이던 2011년 켄 제닝스와 브래드 러터는 왓슨과 제퍼디에서 한 판 붙었다. 결과는 왓슨의 압승이었다. 그렇다고 왓슨이 사람처럼 사고한다고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문제: 이것은 미국 육상선수 조지 아이서의 해부학적 특이성… (It was this anatomical oddity of US gymnast George Eyser …)
제닝스: 한 손을 잃음 (Missing a hand) (땡)
왓슨: 다리 (leg) (땡)
정답: 한쪽 다리를 잃음 (Missing a leg)

당연히 왓슨은 재빠르게 검색해서 조지 아이서를 찾았고 그가 왼쪽 다리를 절단한 후 의족에 의지한 채 1904년 올림픽에서 하루 한 날 금메달 3개, 은메달 2개, 동메달 하나를 딴 사실을 검색했다. 그래서 왓슨은 다리가 답이라고 여겼다. 다리는 해부학적으로 신체의 일부이지만 이 질문에서 중요한 것은 해부학적 “특이성’이었고 그것을 이해하지 못한 왓슨이 틀렸다. 놀라운 것은 왓슨이 적어도 다리가 답의 일부라는 것은 짐작했다는 점이다.

이제 켄쇼(Kensho)의 워렌(Warren) 이야기를 해보자. 워렌은 IBM의 왓슨에 해당한다. 워렌은 금융 관련 빅데이터를 분석해 사용자들이 제시하는 질문에 답해준다. 워렌은 투자의 귀재 워렌 버핏을 연상시킨다. 차라리 버핏이라 명명했더라면 더 가슴에 다가왔을 텐데...

아무튼 워렌에게 영문으로 질문을 던지면 답을 제시해준다. 예를 들어 “북한의 미사일 발사로 인해 주가가 올라갈 것으로 예상되는 회사는?” 하고 물으면 싸드(THAAD)를 만드는 록히드 마틴이나 보잉, 하니웰 등을 추천해 준다. 워렌이 심사숙고해서 내린 결론은 아니다.

이미 앞서 말했듯이 컴퓨터는 사고하지 못한다. 수많은 리포트, 뉴스, 정책보고서 등을 검색해서 키워드를 찾은 후 미리 만들어 놓은 공식에 대입해서 결론을 내릴 뿐이다. 컴퓨터에게 지능을 기대하는 것은 무리다.

며칠 전 뉴욕 타임스는 골드만 삭스가 이용하는 워렌을 한 면에 걸쳐 대대적으로 소개하며 “로봇이 월 스트리트를 침공했다”고 썼다. 금융기업들이 이런 소프트웨어를 신뢰하기 시작했다. 수십 명의 전문가들이 몇 시간에 걸쳐 하던 일을 이 소프트웨어가 순식간에 처리해주기 때문에 고급 분석가들의 일자리가 위태로워지고 있다.

디퍼 블루나 왓슨이나 워렌도 모두 약점이 있다. 그 약점은 결국 인간이 메워야 한다. 컴퓨터는 검색이나 분류 등 특정분야에서 인간보다 능력이 뛰어난 게 사실이다. 분명한 것은 워렌 같은 핀테크 기술이 한국에서도 시급히 개발되어야 한다.

그러자면 한국어를 잘 분석할 수 있는 툴이 필요하고, 더 나아가 금융 관련 문서가 많아야 한다. 그런데 한국은 정보 소비국가이지 많은 정보를 생산해 내는 국가가 아니다. 그러니 한국형 워렌을 만든다 해도 검색할 자료들이 많지 않아 제 기능을 발휘하기 어렵다.

이게 한국이 처한 현실이다. 정보생산국가로 탈바꿈하지 않으면 첨단인공지능 소프트웨어도 쓸모가 없어진다. 핀테크의 저변을 확충하려면 국가의 기본이 고루 충실해져야 한다.

김형중 교수 khj-@korea.ac.kr

김형중 교수

서울대 전기공학과를 나와, 동 대학 제어계측공학과에서 석·박사를 했다.
이후 USC 방문교수, 강원대 교수를 역임하고 현재는 고려대 사이버국방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사이버정보 보호 전문가로 활동 중이며 한국핀테크학회 회장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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