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9대 대통령 문재인이 걸어온 길
제 19대 대통령 문재인이 걸어온 길
  • 이주현 기자
  • 승인 2017.05.10 1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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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뉴스투데이] 2017년 5월 9일 치러진 제 19대 대통령선거에서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후보가 41.1%의 지지를 얻어 대통령에 당선됐다. 대한민국 헌정사상 최초로 대통령이 파면된 탄핵국면에서 개혁과 통합을 강조하며 당선된 문재인이 걸어온 길을 되돌아봤다.

문재인 당선자는 6·25전쟁 중이던 1953년 1월 24일 경남 거제에서 아버지 문용형과 어머니 강한옥 사이 2남 3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그가 초등학교 입학할 무렵 부산 영도로 이사를 온 뒤 아버지는 장사를 시작했지만 실패했고 가난은 그의 유년시절동안 함께 했다. 어머니가 연탄배달일을 시작하자 그 일을 도우며 생계를 꾸렸고 성당에서 나눠준 강냉이 가루와 전지분유로 끼니를 때우는 일이 허다했다.

문재인 당선자의 중학교 재학시절 모습(사진:문재인 블로그)

1975년 경희대 법대 재학당시 유신반대 운동에 뛰어들어 시위를 주도했다. 당시 학생회 총무무장이던 그는 인혁당 관계자들이 사형을 당하며 반 유신 열기가 최고조에 다다른 그 해 4월 대규모 시위를 이끌다가 서대문 구치소에 구속·수감됐고 학교에서 제적당하는 동시 군대에 강제징집됐다.

제대 이후 시위를 했다는 이유로 복학과 취직이 힘들어졌고 그 와중에 아버지가 돌아가시는 아픔을 겪었다. 그는 “뒤늦게나마 한 번이라도 잘 되는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다”는 마음으로 사법고시를 준비했고 1979년 1차 합격에 이어 2차, 3차까지 차례로 합격했다.

문재인 당선자는 사법연수원 시절 김정숙 여사와 7년 열애 끝에 결혼했다.(사진:문재인 블로그)

문 당선인은 사법연수원 시절, 7년 연애한 김정숙 여사와 결혼을 하고 아이도 낳았다. 대학 시절 법대 축제에서 파트너로 처음 만나 75년 4월 시위에서 최루 가스에 실신한 그를 간호해 주었던 일을 계기로 본격 연애를 시작하면서 구치소에 수감되었을 때, 강제징집으로 군대에 입대했을 때도 김정숙 여사는 든든한 내조자 역할을 했다. 문 당선인은 자신이 경희대에 간 것은 “오로지 아내를 만나기 위해서였나 보다”라며 감사를 표한 적이 있다고 말했다.

사법연수원을 차석으로 졸업했지만 시위 전력으로 판사 임용이 무산되자 그는 부산으로 내려와 변호사로 활동했다. 여기서 그는 사시 동기의 소개로 노무현 변호사를 만나고 ‘깨끗한 변호사’를 해보자고 의견을 모아 합동법률사무소를 차리고 인권 변호사의 길을 걸었다. 노무현과의 만남은 그의 인생의 많은 것을 바꿔놓았다.

변호사 시절 만난 노무현 전 대툥령과의 인연은 많은 것을 바꿔놓았다.(사진:문재인 블로그)

그는 2001년 15대 총선에 출마한 노 전 대통령의 부산 선대본부장을 맡아 선거를 승리로 이끌었다. 이 후 참여정부 시절 민정수석, 시민사회 수석, 다시 민정수석을 거쳐 비서실장까지 오르며 대표적인 친노 인사로 자리잡았다. 노 전 대통령 서거 후에는 장례 절차와 관련한 모든 일을 도맡으며 재단법인 ‘사람사는 세상 노무현재단’이사장직을 지낸 뒤 2012년 제 19대 총선에서 부산 사상구 국회의원 당선으로 정치 인생을 시작했다.

문 당선자는 지난 2012년 “보통 사람이 중심이 되는 정의로운 나라를 만들겠다”며 18대 대선 출마를 선언했다. 이 후 경선에서 손학규, 김두관, 정세균을 제치고 민주통합당 대선 후보로 선출됐다. 2012년 12월 19일 선거에서 탈락 후보 사상 최다이자 역대 대통령 선거 후보 중 두 번째로 많은 14,692,632표(48.0%)를 득표했지만 새누리당 박근혜 당선자에게 불과 100만표 차이로 패배했다.

역대 대선 패배 후보들이 패배후 칩거하는 행보를 보이는 것과 달리 그는 대선 다음 날 패배를 승복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바로 정계에 복귀해 민주통합당 상임고문으로 각종 현안에 대한 입장을 발표하며 대선 재도전 가능성을 보였다.

하지만 2015년 새정치민주연합(현 더불어민주당) 당 대표로 선출되어 10개월간 당 대표직을 수행하는 동안 재·보선 패배로 텃밭인 광주를 내주고 안철수 공동 대표가 탈당해 국민의당을 창당하고 친노·친문 패권주의로 당내 내홍을 겪으며 사퇴 압박과 함께 정치적 위기를 맞기도 했다.

이러한 위기 속에서 2016년 4월 13일 총선 직전 호남을 찾은 그는 “저에 대한 지지를 거두시겠다면, 저는 미련 없이 정치일선에서 물러나겠다”며 “대선에도 도전하지 않겠다”는 강력한 승부수를 던졌다. 당초 100석 확보도 힘들 것이라는 총선에서 민주당은 총 123석을 얻어 여소야대 정국을 만들며 위기론을 대세론으로 바꿨다.

문재인 당선자는 민주당 경선에서 안철수, 이재명, 최성 후보를 제치고 19대 대통령 후보가 됐다.(사진:문재인 캠프)

이 후 차기 대선 주자를 묻는 각종 여론조사에서 1위를 차지하며 대세론을 이어갔다. 탄핵국면에서는 광화문을 찾아 촛불집회에 참석하며 "국민과 함께"를 강조하기도 했다.

또한 어떤 경선보다 관심을 모았던 19대 대선 민주당 경선에서 안희정 충남지사, 이재명 성남시장, 최성 고양시장을 압도적인 표차로 제치고 민주당 경선후보로 오른 뒤 대세론은 굳혀졌다.

대한민국 헌정사상 최초로 대통령 탄핵국면에서 새로운 대통령이 된 문재인 당선자. 인수위 없이 바로 국정운영에 들어가야 하는 긴박한 상황에서 그가 보여줄 개혁과 통합이 어떤 것일지 국민들은 지켜보고 있다.

이주현 기자 leejh@koreanewstoda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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