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머와 해학이 공존한 한국리릭오페라단의 ‘사랑의 묘약’
유머와 해학이 공존한 한국리릭오페라단의 ‘사랑의 묘약’
  • 김희영 기자
  • 승인 2017.11.21 1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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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주인공의 슬프지만 바보스러운 순정을 그린 도니제티의 작품이다.

지금으로부터 약 100여 년 전, 당시 사회 분위기는 굉장히 우울하고 침체되어 있었다. 그때 등장한 사람이 바로 찰리 채플린이다. 그는 암울한 분위기를 바꾸고 다시 꿈을 품고 일어설 수 있는 방법으로 ‘유머’와 ‘해학’을 선택했다. 영화와 연기로 전 세계 사람들에게 웃음과 희망을 선물했던 찰리 채플린. 1960년대의 한국의 분위기는 전쟁 후 가난하고 힘겨운 삶으로 사람들의 얼굴엔 근심이 가득했다. 당시, 진정으로 행복하고 즐거운 웃음을 유발했던 공연은 사실상 부족했고, 어쩌면 고의적인 웃음이 필요했을지도 모른다. 그때 당시에 우리를 웃게 만든 건 삶의 철학 속에 ‘유머’를 녹아냈기에 가능했다. 이런 유머가 지금 시대에도 통한다는 것을 이번 리릭오페라단의 ‘사랑의 묘약’을 통해 확인할 수 있었다. 유머와 해학이 오페라 속에 스며들고 그 오페라를 감상함으로써 정신적인 치유를 얻을 수 있다는 사실. 대한민국의 소극장 오페라 시장은 규모와 여러 가지 제약 때문에 제대로 성장하지 못했다. 하지만 이번 공연을 통해 바라본 소극장오페라는 제대로 알리기만 한다면 굉장한 예술장르로서 우뚝 설 수 있다는 자신감을 심어준 공연이었다.

‘마트’라는 친숙한 공간으로 재해석해 다가와
이 작품은 남자주인공의 슬프지만 바보스러운 순정을 그린 도니제티의 작품이다. 누군가 ‘오페라에 한 번 관심을 가져볼까?’라고 이야기한다면 망설임 없이 '사랑의 묘약'을 보라고 추천하겠다. 생기 넘치는 발랄함, 유쾌한 매력이 포인트인 이 오페라는 도니제티가 작곡한지 160여 년이 지난 아직도 전 세계 오페라하우스의 선택을 받는 인기 레퍼토리로 전해진다. 2017 뉴오페라페스티벌의 일환으로 진행된 리릭오페라단의 ‘사랑의 묘약’은 21세기에 걸맞게 어느 여름날 마트에서 일어나는 사랑이야기로 줄거리를 각색해 청중에게 다가왔다.

▲리릭오페라단의 ‘사랑의 묘약’은 21세기에 걸맞게 어느 여름날 마트에서 일어나는 사랑이야기로 줄거리를 각색해 청중에게 다가왔다.

야채코너 아르바이트생 청년 네모리노는 화장품 코너 주인인 아디나의 사랑을 얻기 위해 마트보조식품 판매원인 둘카마라에게 누구와도 사랑에 빠지게 해준다는 사랑의 묘약을 속아서 산다. 15일 공연의 주인공 아디나는 소프라노 김순영이 맡았다. 아디나는 사랑할 수밖에 없는 아름다운 외모와 상냥한 마음씨, 그리고 맑고 청아한 목소리로 관객을 사로잡았다.

테너 이인학은 순수하지만, 주인공을 향한 섬세한 감정표현을 통해 청중을 몰입시켰다. 장교 벨코레역을 맡은 테너 문영우는 거만하고 뽐내는 듯한 몸짓을 선보였지만 미워할 수 없는 인물로 본인의 캐릭터를 만들어 가는 것이 인상적이다. 특히 굵직하게 캐릭터를 잘 잡고 연기하는 내내 웃음보따리를 안겨주었던 둘카마라역의 김재찬은 ​과장되고 우스꽝스러운 몸짓과 제스처를 통해 본인의 역할을 완벽히 소화했다.

특히 사랑의 묘약의 아리아 중에서도 대중들에게 잘 알려진 노래는 '남몰래 흐르는 눈물' 일 터. 남자주인공 네모리노가 짝사랑하고 있는 여인인 아디나가 몰래 흘리는 눈물을 보고 감격하여 부르는 작품이다.

테너 이인학은 본인의 감정을 몰입하며 살짝 템포가 늦은 오케스트라의 박자를 맞춰 본인만의 스타일로 끌어당겼다. 이에 양진모 지휘자 특유의 섬세함으로 편안한 아리아가 흘러나올 수 있도록 적절한 사운드와 오케스트라 균형을 맞춰준 점이 돋보였다.

뮤지컬로 따지자면 가장 큰 넘버였던 ‘남몰래 흐르는 눈물’은 익숙한 아리아에 반가워하는 관객의 공감을 끌어내었다.

▲지난 9월 15일(금) 광림아트센터 장천홀에서 열린 한국 리릭오페라단 ‘사랑의 묘약’

주연과 조연을 모두 주인공으로 만드는 정기옥 단장의 안목
‘사랑의 묘약’에서 가장 돋보였던 점은 바로 정기옥 단장의 섬세함과 작품을 바라보는 탁월한 ‘안목’이다. 이에 연출자 김지영과 지휘자 양진모의 균형이 한데 어우러진 데 있었다. 이번 오페라의 출발점은 정기옥 단장을 중심으로 시작되었다. 그는 오페라가 많은 대중들에게 어필하는 방법을 잘 알고 있는 노련하고 현명한 사람이다.

성악을 전공했기에 가수들의 고충과 원하는 것을 정확히 파악하고 진단했다. 공연은 어떻게 하면 동시대인들에게 웃음을 이끌어 내어 몰입시키고 공감할 수 있는지, 고민한 흔적이 역력했다. 특히 ‘롯데마트’라는 친숙한 배경, 그곳에서 판매하는 화장품가게 주인과 야채가게 총각의 사랑이야기로 다루어진 점이 흥미로웠다. 관객들은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의 결말과 함께, 과연 저 남자가 아름다운 여자로부터 사랑을 얻을 수 있을까?의 전개에 더욱 집중했다.

캐스팅은 소프라노 김순영, 한경성, 오현미, 홍선진, 김세나, 김혜원, 테너 이인학, 전병호, 강신모, 바리톤 문영우, 권용만, 김영주, 베이스 김재찬, 조기훈, 박상욱 등 실력파 성악가들을 대폭 출연시켰기에 성공적인 공연을 펼칠 수 있었다. 한사람 한사람 모두가 오페라의 경력이 풍부하고 어떤 음도 소화할 수 있는 재능을 갖고있는 사람이기 때문에 가능했다.

이번 소극장 오페라에서는 관객과 무대가 가깝기에 연기에 대한 부담이 컸을 테지만, 능청스럽고 정감 있게 소화해내 높은 점수를 주고 싶다. 정기옥 단장이 지난 인터뷰 때 이야기했던 것처럼 주연과 조연이 모두 주인공으로 만드는 전체적인 조율에 박수를 보내고 싶다.

아쉬운 점이 있다면, 원작품과 개작한 작품의 스토리를 비교할 수 있는 내용을 리플렛이나 프로그램 북을 통해 설명했다면, 공연을 보러온 사람들이 원작을 이해하며 더욱 몰입했을 거란 생각이 든다. 이는 오페라 제작자의 성의 있고 관객을 배려한 태도가 될 수 있다. 사실상 원작보다 속편, 속편보다 개작편이 성공하기란 매우 어렵다.

▲정기옥 단장이 만들어낸 리릭오페라단의 ‘사랑의 묘약’ 소극장 오페라는 성공적인 무대로 평가받고 있다.

첫 작품보다 개작된 작품을 아무리 잘 만들었다고 해도 처음 맛보았던 그 감동을 그대로 압도할 수는 없는 법이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리릭오페라단의 ‘사랑의 묘약’은 시대를 뛰어넘는 해석과 우리의 스타일대로 개작한 덕분에 더욱 긍정적인 효과로 다가올 수 있었다.

코레아나클래시카 오케스트라의 선율과 양진모 지휘자의 지휘는 마치 가을에 만나는 정겨운 바람처럼 포근했고, 오페라 가수들의 경쾌하고 리드미컬한 노래와 스토리가 버무려진 향연이었다.

정기옥 단장이 최소한의 재료로 최고의 요리를 만들어낸 리릭오페라단의 ‘사랑의 묘약’ 소극장 오페라는 재미없다는 틀을 깬 성공적인 무대였다.

김희영 기자 dud056@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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