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피아니스트 김현아, ‘한송이 장미꽃 피어나’ 음반 발매
【인터뷰】 피아니스트 김현아, ‘한송이 장미꽃 피어나’ 음반 발매
  • 김희영 기자
  • 승인 2018.01.12 1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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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아니스트 김현아를 만나기 위해 이른 아침부터 제주로 향했다. 공항에서 취재진을 반겼던 그는 곧장 그의 어머니가 직접 운영하고 있는 칼국수 가게로 안내했다. 칼국수 한 그릇을 먹으며 나눈 대화는 마치 오랫동안 알고 지낸 것처럼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줄곧 배려하는 그의 모습은 추운 날씨에 얼었던 취재진의 마음을 녹여주었다. 막 나온 칼국수처럼 따뜻한 마음을 지닌 피아니스트 김현아. 그가 더욱 궁금해졌다.

▲피아니스트 김현아는 세상에 휩쓸리는 것을 경계하고 자신만의 음악세계를 추구하고 있다.

음악적 스펙트럼을 넓히고 있는 현재
제주의 삶에 대해 물어보는 필자의 질문에 피아니스트 김현아는 아직 사람들이 모르는 좋은 장소가 많다며 본인의 어린 시절의 이야기를 꺼내놓는다. 제주에서 개척교회를 시작한 고모 덕분에 그는 반주자의 길을 걸으며 피아노를 사랑하게 되었다고.

“그땐 너무 어려서 왜 피아노를 쳐야 하는지 모를 정도로 자연스럽게 시작했어요. 엄마, 아빠를 매일 보는 것처럼 눈을 뜨고 감을 때까지 늘 피아노와 함께했죠.”

자녀들의 교육에 헌신적인 부모님의 사랑은 그가 피아니스트의 길을 걷는 데 큰 영향을 미쳤다. 그 당시 제주는 클래식 공연의 불모지라 오직 턴테이블로 듣는 엘피와 테이프가 음악을 접하는 전부였다. 고등학교 시절 부모님을 졸라 그 당시 내한한 쇼팽 콩쿠르 우승자 스타니슬라프 부닌 내한 공연을 보러 서울까지 갔던 게 클래식 공연에 대한 유일한 기억이다.

학창시절 일주일에 한 번씩 제주와 서울을 오가며 피아노 연습에 매진한 그는 제주중앙여자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제주대학교 음악과와 성신여대 합창반주를 전공했다.

집안 사정이 어려워져 유학을 포기해야 하는 상황으로 슬럼프의 시간은 있었지만, 사그러들지 않는 음악에 대한 열정으로 치열한 시간을 보내던 어느 날 음악 인생의 터닝 포인트를 맞이하게 된 특별한 만남에 대한 얘기를 꺼냈다.

“몇 년 전에 바이올리니스트 선생님을 만났어요. 우연히 제주에서 같이 연주할 기회가 있었는데, 그분에게서 옛 고전 음악가들의 정신을 엿볼 수 있었어요. 진짜 살아있는 음악이란 무엇일까 생각하게 되었죠. 지금은 옛 거장들의 시대가 끝나가고 정신 계승이 되기 힘든 시대에 살고 있잖아요. 하지만 만남을 통해 말로만 듣던 옛 거장들의 정신세계와 숨결을 조금이나마 느낄 수 있었고 음악에 대한 온전한 사랑과 헌신, 몸에 밴 철저한 겸손 등 음악을 대하는 자세에 많은 깨달음을 얻는 시간이었습니다.”

이상과 현실 속에서 적절한 해답을 찾고자 시도하는 김현아는 평소 방대한 레퍼토리를 찾는 것과 악보를 모으는 것, 남들이 잘 연주하지 않는 작품을 찾으며 본인만의 음악적 스펙트럼을 넓혀왔다.

“쉬는 날이면 몇 시간 동안 컴퓨터 앞에 앉아 자판만 두드립니다. 아직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숨은 보석 같은 작품이 많더라고요. 지난 2012년엔 재즈피아니스트가 운영하는 제주 선흘리 카페 세바라는 특별한 공간에서 클라라슈만의 가곡과 기악곡을 중심으로 연주를 했었는데, 비록 초연이었지만 청중들의 반응도 뜨거워서 더욱 기억에 남았던 것 같아요. 연주자는 끊임없이 새로운 레퍼토리를 발굴해야 합니다. 새로운 시도를 통해 청중과 한 발짝 가까워짐을 느낄 수 있을 테니까요.”

피아니스트 김현아 첫 솔로 피아노음반 발매

▲천혜의 자연 제주도의 영감이 건반을 통해 펼쳐지기도 한다.

지난 2017년 7월, 그는 첫 솔로 음반을 발매했지만 바로 미국행을 택했기에 이제야 소식을 들을 수 있었다. 마치 정성스레 차려놓은 잔칫상처럼 음식 모두에 정성이 깃든 그의 음악은 소박하고 정겹게 다가온다.

‘한 송이 장미꽃 피어나’ 는 모두 종교적인 소재의 클래식 음악을 피아노로 편곡한 매우 이색적인 음반이다. 우연 속에서 필연을 만들어내는 그는 이번 음반 역시 ‘우연’을 가장한 필연으로 세상에 나오게 되었다.

“제주극동방송 ‘성곡을 찾아서’ 클래식 프로그램을 하고 계신 김준곤 지휘자님께 연락이 왔었어요. 평소 종교 클래식에 대해 관심이 많았지만 갑자기 의뢰하신 거라 처음에는 당황했죠. 이 음반은 저에겐 정말 의미 있는 작업임과 동시에 한해 중 가장 큰 시도였어요.”

지난 1월 24일에 공개 방송으로 수록된 작품이 처음 연주되었고, 후에 라디오를 통해 라이브 실황 연주가 전국으로 방송되었다. 본래 오르간이나 하프시코드, 오케스트라, 독창과 합창단 등 편성을 염두에 두고 작곡된 것을 오랜 시간에 걸쳐 프로그램을 만들고 솔로버전을 찾아 녹음했기에 작업 시간이 길어졌다고 한다.

“악보가 없는 작품이 많아서 시간이 필요했어요. 다행히 김준곤 지휘자님의 해설과 연주, 당시의 상황이나 음악적 느낌이 이미지화되면서 청중들에게도 쉽게 다가갔던 것 같고요.”

종교 음악은 고요하고 경건하다고 생각하는 대중의 시각을 변화시키기 위해 그는 좀 더 다채로운 느낌의 작품을 트랙 속에 담았다.

“종교 음악은 왜 항상 같은 느낌으로 비칠까요? 그래서 저는 이번 앨범에 색다름을 추구하고 싶었어요. 레퍼토리 선정이 가장 고심했던 부분이기도 합니다.”

김현아의 ‘한 송이 장미꽃 피어나’는 바흐 이전의 작곡한 요한 쿠나우의 ‘성서 소나타’나 리스트의 ‘십자가의 길’, 브람스가 말년에 남긴 ‘11개 코랄 전주곡’ 등이 수록되어있으며 대중에게 많이 알려지지 않았지만 의미 있는 종교 클래식 작품들을 해설과 함께 감상할 수 있다는 점이 큰 특징이다.

청중을 위해서라면 본인의 희생을 망설이지 않는 연주자

▲악기는 어쩌면 자연을 이야기하기 위한 것이 아닐까, 그래서 자연과의 어우러짐 속에 화음을 찾아가고는 한다.

인터뷰 도중 필자의 두 눈을 깜짝 놀라게 한 사진 한 장을 볼 수 있었다. 사진 속 그는 드레스가 젖어있었고, 보기만 해도 아찔한 장면을 연출했다. 여느 클래식 연주자의 사진과는 많이 달랐다. 그때만 생각하면 아찔하다고 말하는 김현아의 얼굴에는 수줍은 웃음꽃이 피었다.

“김소월 탄생 110주년 기념 공연으로 우도 동굴 안에서 성악가들과 함께 가곡을 연주하는 무대였어요. 동굴 안에서 자연 공명된 피아노 소리를 표현하고 싶어 함께한 공연이었죠.”

그날은 파도가 너무 심해서 테우(뗏목)에 실어온 그랜드 피아노를 동굴로 진입시킬 수 없어 당장 공연을 취소해야 하는 실정이었다.

“육지에서 일부러 오신 분들도 계셨는데, 취소 이야기를 들으니 너무 고민되더라고요. 혹시나 하는 마음에 관계자분께 물었어요. 혹시 테우 위에서 피아노 치면 공연이 가능하냐고 말이죠. 그랬더니 가능하다고 하시더라고요.”

대답을 들음과 동시에 그는 두말 않고 구두를 벗어던졌다. 그리고 바위에 묶여 요람처럼 바닷물에 둥둥 떠 있는 그랜드 피아노에 맨발로 기어 올라갔다. 하지만 최악의 상황에 맞닥뜨렸다. 페달은 이미 바닥에 박혀 고장 났고, 제주의 매서운 바람은 그의 악보마저 바닷속으로 치닫고 있었다.

“막상 자리를 잡고 보니 테우와 바위가 거리가 너무 멀었던 거예요. 성악가의 노래가 하나도 안 들렸죠. 어떻게든 성악가의 입모양을 보며 부지런히 쳤던 기억이 납니다.”

10초마다 한 번씩 밀려오는 파도가 피아노와 연주자를 덮쳤지만, 최선을 다하고 싶었다는 피아니스트 김현아. 청중들을 위해 죽을힘을 다해 공연을 성료시킨 그는 천생 연주자임이 분명하다.

“이 정도로 사진에 많이 찍힌 건 처음이지 싶어요. 파도와 사투를 벌이고 있는 제 모습을 보고 청중들은 웃지도 울지도 못하는 상황이었지만, 진심으로 연주자를 걱정하고, 또 잊지 못할 음악회였다고 하시니 정말 보람을 느꼈어요.”

2부는 끝내 취소되었지만 최선을 다했던 피아니스트의 판단력은 그날 공연을 찾은 관객에게 특별한 추억을 만들어주었다.

“이 사진은 그날 우연히 오신 사진작가 분이 찍어주신 거예요. 물에 젖은 치맛자락을 들어 올리고, 바보같이 웃는 내 모습이 선물처럼 남겨졌죠. ‘나 해냈어! 아직 나 살아있어!’라고 말하는 것 같아요."(웃음)

▲우도 동굴음악회는 자연에서 느낄 수 있는 태초의 모습을 만나곤 한다.

내가 빠져야만 완성되는 음악
예술가의 사명을 강조하는 피아니스트 김현아는 연주자가 청중의 설득을 얻어내는 건 오로지 ‘진심’뿐이라고 말한다.

“요즘 기돈크레머가 쓴 ‘젊은 연주자에게’라는 책을 읽고 있어요. 그가 말하길, 연주자는 명성을 좇으면 안 된다고 이야기합니다. 돈과 명성을 좇으면 생각은 계속 한쪽으로 쏠리기 때문에 결국 연주자의 본심이 흔들린다고 말이죠. 이런 맥락에서 음악은 내가 빠져야만 되는 거 같아요. 연주자는 하나의 매개체잖아요. 순도 짙은 음악에 연주자가 너무 감정을 많이 넣으면 온전히 전달되지 못할 때도 있으니까요.”

연주자 본연의 모습을 잃지 않고 세상에 휩쓸리지 않은 채, 자신만의 음악을 추구하고 싶다는 피아니스트 김현아. 그는 연습하다 슬럼프가 찾아올 때면 김연아 선수의 경기 동영상을 찾아보며 다시금 에너지를 얻는다. 발레, 피겨 등 음악이 들어가는 타 장르의 예술을 좋아하기에 강수진의 공연을 보러 서울도 가고, 피겨스케이팅은 직접 타 본 경험이 있기에 더욱 특별하다.

“어떤 한계를 넘어선 것 같은 다른 장르의 공연 영상을 보다 보면 배우는 것이 많고 순간이라도 에너지를 받아요. 철저한 연습과 스스로에 대한 믿음이 모든 상황을 이겨내는 힘이 됩니다. 모든 예술은 인내와 고통이 따르잖아요. 예술가는 그것을 작품 속에 녹여내야 하고요. 그렇게 탄생한 작품이 진정으로 사람을 움직인다고 생각합니다.”

피아니스트 김현아는 현재를 즐기며 삶과 음악에 대한 감각을 깨우고 기억하는 것. 순간을 사로잡음과 동시에 상상을 통해 피아노가 가진 넓고 다양한 스펙트럼을 표현하고 싶다고 말한다.

영원히 시들지 않을 아름다운 향기를 가진 피아니스트 김현아. 그를 만난 건 크나큰 행운이다. 봉우리를 터뜨리며 핀 그의 아름다움은 또 다른 꽃봉오리를 터뜨릴 준비를 하고 있다.

김희영 기자 dud056@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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