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최재혁, 제72회 제네바콩쿠르 '작곡부문 역대 최연소' 우승
【인터뷰】 최재혁, 제72회 제네바콩쿠르 '작곡부문 역대 최연소' 우승
  • 김희영 기자
  • 승인 2018.02.07 1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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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식을 뒤집은 새로운 녹턴의 세계
▲제72회 제네바콩쿠르 작곡부문 역대 최연소 우승, 음악계의 세대교체가 이루어지고 있음을 보여주는 시그널이다.

클라리넷과 오케스트라를 위한 야상곡 제3번으로 우승
오케스트라 합주 도중 갑작스런 인스피레이션! 모차르트나 베토벤처럼 아름다운 선율을 써보고 싶은 욕망이 득달같이 몰려왔다. 이유도 모른 채 악보를 찾아 선율을 그렸다.

처음에는 칸 넓은 오선공책으로 시작했지만 속사포처럼 머릿속에서 쏟아지는 음표를 감당하기에는 너무 좁았다. 초등학생이 대학생들이나 사용하는 모세혈관처럼 좁다란 오선지에 음악의 피가 뚫고 들어갔다.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창작의 세계, 웜홀처럼 작곡에 빨려 들어갔다.

친구들이 스타크래프트에 몰입할 때 수업이 끝나면 곧장 집으로 달려와 베토벤 합창 교향곡의 음표 흐름을 포착하고 지휘봉을 휘둘렀던 그 소년이 지난해 11월 작곡가들에게는 선망의 대상인 스위스 제네바국제콩쿠르 작곡부문에서 역대 최연소 우승을 차지했다. 약관을 갓 넘은 한국 출신 작곡가 최재혁이다.

우승자가 한국인이라니 얼마나 반가운 소식인가. ‘클라리넷과 오케스트라를 위한 야상곡 제3번’으로 1위를 수상한 그를 만났다. 꿈꾸는 듯한 묘한 눈매와 호기심 가득한 미소가 돋보였다.

최재혁 작곡가. 그와 대화를 하는 동안 철학자 니체의 사상과 철학이 자꾸 클로즈업 되었다. 음악의 대체적인 흐름을 무작정 따라가지 않고 자신만의 독특한 해석과 다소 도발적인 악상을 악보에 표현하는 폼새가, 부화뇌동하지 않고 철학계의 일반적인 흐름을 거슬러 올라가던 니체의 반시대적 고찰을 떠올리게 했다.

▲멜로디를 듣는 순간 감정을 불러일으키고 최재혁의 음악은 그렇게 또 시작되곤 한다.

기존의 녹턴을 다른 각도로 재해석해 선보인 그의 시선
1939년에 처음으로 개최된 스위스 제네바 국제콩쿠르는 피아노, 작곡, 성악, 바이올린, 플루트 등 8개의 부문이 매년 번갈아 가며 열린다. 한국인 수상자로서는 첼리스트 정명화(1971), 작곡가 조광호(2013), 피아니스트 문지영(2015)이 있는데, 최재혁은 네 번째 바통을 이어받은 주인공이다. 지난해 제네바콩쿠르는 작곡부문만 진행했다. 악기경연과 달리 작곡은 유달리 그 경쟁이 치열한 콩쿠르로 유명하기에 그의 수상 소식이 반갑기 그지없었다.

“국제적으로 권위 있는 콩쿠르에는 첫 도전이었죠. 그동안 미국 내 콩쿠르를 주로 출전했습니다. 그간 조용하고 일종의 환상곡풍이 가득한 음악을 자주 쓰곤 했습니다. 마치 구름 속에 떠 있는 것처럼 추상적인 느낌으로 말이죠. 5~6년 동안 이런 느낌의 작품을 주로 작곡했는데 이번에는 미학을 바꿔서 도전해보고 싶더라고요.”

작곡가는 늘 시대를 이끄는 사람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이 갈망한 세계는 오히려 반(反)시대적일 수 있다. 작곡가 최재혁 역시 일반 음악가와 청중의 생각을 뒤엎는 발상으로 이번 곡을 작곡했다. 그가 선보인 야상곡은 일반적으로 흘러가는 감상적인 분위기의 녹턴과는 전혀 다르다. ‘녹턴은 반드시 아름답고 서정적이어야만 하는가’에 의문을 품고 써 내려간 작품은 마치 ‘자성’과 ‘각성’을 일깨워주는 독특한 메시지처럼 들려온다. 기존과 다른 각도를 품은 그의 시선과 돌아오는 대답에서 독특한 레토릭을 느꼈다.

“일반적으로 ‘녹턴’을 떠올리면 안온하고 감성적이면서 로맨틱한 쇼팽의 멜로디를 많이 떠올리실 텐데요, 저는 전혀 다른 스타일의 녹턴을 표현하고 싶었어요. 꼭 아름답고 로맨틱한 밤만 있는 건 아니잖아요? 무언가 그로테스크하고, 신비로우면서도 시끄러운 밤도 존재하죠. 이런 아이디어를 통해 반(反)쇼팽적인 녹턴을 써보면 색다르고 재미있을 것 같았어요.”

콩쿠르 경연곡으로 ‘클라리넷 협주곡’이 지정되자 클라리넷이 가진 색다른 이면의 소리를 끄집어내기 위해 끊임없이 고민했다. 원래 클라리넷이라는 악기는 200년 이상 자란 흑단으로 만든 목관악기다. 아프리카 대지의 하늘과 별들의 거룩함, 스치는 바람이 융합되어 성장한 나무다. 악기를 연주하는 사람이 악기의 성격을 알고 연주하면 멋진 소리가 나오지만 본질을 모른 채 연주한다면 진정한 혼이 나올 수 없다. 당시 최재혁의 작품을 연주했던 아티스트 역시 이런 점을 알았을까? 최재혁이 클라리넷으로 형상화하고 싶었던 작품 의도를 웅숭깊게 풀이해 파이널 무대에서 성공적인 연주를 선보였다.

“저의 곡을 연주해주신분은 프랑스 파리의 앙상블 앙탕콩탱포랭(Ensemble Intercontemporain 의 클라리넷 수석연주자인 제롬 콤트(Jerome Comte)입니다. 앙탕콩텡포렝은 세계적으로 가장 훌륭한 현대음악전문연주단체로 21세기 음악을 가장 잘 연주하는 앙상블 단원들이 모여있습니다. 저의 곡은 관악기의 미묘한 특징과 디테일한 테크닉, 곡의 느낌을 미세하게 포착하기가 여간 까다롭지 않은데, 제가 상상한 것 이상으로 완벽하게 제롬 콤트 선생님이 표현하고 연주해주셔서 매우 기뻤습니다.”

작곡가가 그 의도를 해석하고 표현할 줄 아는 연주자를 만나는 건 크나큰 행운이다.

▲작곡이란 “한 인간으로서 살아온 환경과 그릇 안에서 창조된다”고 최재혁은 말하기도 한다.

이상(李想)이 이상(李想) 그 이상(以上)이 되기까지
피카소는 식사 중 영감이 떠오를 때면, 손에 바로 잡혔던 냅킨에 무언가를 끄적였고, 슈베르트 역시 길을 걷다 선율이 떠오를 때면 친구의 등에 음표를 그리며 기록했다. 바로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이 ‘찰나’를 카메라에 담는 것처럼 최재혁은 연필과 악보로 그 찰나를 그려냈다.

정약용의 생각잡기인 묘계질서(妙契疾書)에 다름 아니다. 이렇게 모든 창작자는 끊임없이 아이디어가 떠오를 때면 늘 무언가를 끄적이며 순간의 영감을 기록한다. 어릴 때부터 갑자기 아이디어가 생각나면 무작정 달려와 책상 앞으로 달려갔던 최재혁 역시 이미 창조자의 습속을 보였다.

“어릴 때 취미로 바이올린을 했어요. 과천 집에서 가까운 아르떼유스오케스트라에 들어갔죠. 이후 과천중에 입학해서 학교 안에 속해있는 오케스트라 활동도 병행했습니다. 다함께 합주를 하다가 갑자기 모차르트나 베토벤처럼 아름다운 선율을 써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죠.

떡잎부터 달랐던 그는, 서점에 가면 늘 음악코너로 직행했다.

“카페트 바닥에 앉아 온종일 스코어를 보는 게 너무 행복했습니다. 작은 악보지만 우주를 모두 아우를 만치 거대하고 신비로운 음표의 세계가 가득 들어있었습니다.”

그 수많은 악보 중 특히 베토벤에 심취했다. 베토벤 작품들은 벅참과 경이로움 그 자체였다.

“지금은 기억이 나지 않지만, 어머니와 대화 도중에 재미있는 일화를 알게 되었어요. 늦은밤, 재혁아 잘 자! 라고 이야기하시며 엄마가 불을 끄고 제 방을 나가셨죠, 그런데 갑자기 합창교향곡을 연주하고싶은거에요. 하지만 음악을 틀면 엄마가 깰 것 같고, 어린 마음에 불을 끈 상태에서 머릿속으론 스코어를 상상하며 지휘봉을 휘둘렀던 적도 있었다고 해요. 지금 생각해보면 너무 오글거리지만, 정말 좋아하긴 했었던 것 같아요.”

그렇게 어린 소년은 천천히 아주 느리게, 하지만 무서운 속도로 본인의 음악을 만들며 성장했다.

스스로 해답을 찾는 교육법 통해 성장
최재혁의 훈련과, 깊이 있는 작곡을 할 수 있도록 이 세계에 입문시켜준 스승의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다. 과천중학교 2학년 때였다. 작곡에 심취한 최재혁은 우여곡절 끝에 단국대 박정선 교수를 만났다.

“어린 나이지만 교수님은 제게 작곡재능이 있다는 것을 금세 파악하셨습니다. 당시까지는 작곡이론은 물론 음악이론조차 제대로 배우지 못했었죠. 교수님은 당장 공부를 시작하자며 화성학, 대위법, 작곡법을 강도 높게 가르치셨습니다.”

박정선 교수는 최재혁의 어리지만 예사롭지 않은 형형한 눈빛을 보았다. 박 교수 덕분에 체계적으로 음악이론을 배운 그는 일주일에 두 번씩 레슨을 받으며 대학입시생들이 공부하는 수준까지 모두 마스터했다. 11개월 동안 박 교수가 가르쳐준 이론을 스펀지처럼 무섭게 빨아들인 최재혁은 이 시간을 토대로 탄탄한 이론공부를 할 수 있었다.

“교수님이 저의 작곡 스타일을 보시더니 한국에서는 맞지 않을 것 같다고 하시면서 미국행을 추천해 주셨죠.”

최재혁은 국내 예고를 선택하지 않고 중학교 3학년 여름방학 때 곧바로 미국 유학길에 올라 더욱 큰 세계를 만났다.

“그런데 조금 이상한 가르침이 이어졌습니다. 작곡을 하고 싶어서 유학을 온 건데, 당시 윗만 브라운(Whitman Brown)교수는 기본적인 것만 반복해서 가르쳐주었습니다. 그러나 곡은 제가 원하는 대로 쓰라고 하셨어요. 레슨시간이 되면 제가 어떤 걸 써왔는지 훑어보고 몇 마디 나눈 후 집에 가도 된다고 하시는 거예요. 이렇게 4년 동안 공부했는데, 처음에는 무척 답답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니 알겠더라고요. 제가 스스로 질문하고 준비를 해야만 답을 알려주신다는 사실을...”

독수리가 날개를 펴서 활공하는 것까지는 알려주겠지만 어디를 가고 싶은지는 스스로 결정하라는 지도법이었다.

“결국 무엇을 배우고 싶은지 스스로 찾아서 오라는 게 교수님의 방법이었습니다. 재료를 다 준비해주고 이제 마음대로 요리하라는 식이죠. 지금 생각해보면 그런 과정들이 정말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스스로 고민하고 생각할 수 있는 힘을 일깨워 주셨으니까요.”

▲최재혁은 지난해 작곡가들의 선망의 대상으로 불리는 스위스 제네바국제콩쿠르 작곡부문에서 역대 최연소 우승을 차지했다.

큰 날개를 활짝 펴게 된 줄리어드 생활
겉으로 보면 창문에 얼룩진 서리는 다 틀리지만 결정체를 확인하면 모두 똑같다. 만델 브로트의 프랙탈이론이다. 작곡의 기본을 탄탄하게 한 후 그 기본을 무기로 나만의 세계를 창조해낸다면 그것이야말로 작곡의 프렉탈 아닌가. 최재혁이 그토록 반복해서 체득한 기본 스타일은 하나의 결정체가 되었고 이후 마음껏 작곡의 날개를 확장해서 펼칠 수 있었다. 그 확장의 꽃이 더욱 만개한 곳은 줄리어드에 입학하면서 부터다.

“입학 후 1년은 사무엘 애들러(Samuel Adler) 선생님께 배웠어요. 곧 퇴임을 앞두신 분이었는데 힌데미트의 제자분이셨어요. 애들러 선생님은 음악에 대한 정의가 확고한 분입니다. 작곡할 때면 음악 3요소인 ‘리듬’, ‘화성’, ‘멜로디’를 필수적으로 녹여내야 한다고 강조하셨어요.”

하지만 날개를 펼치고 있던 최재혁의 생각은 달랐다.

“멜로디는 듣는 순간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겁니다. 어느 날 제가 멜로디를 안 쓰니까 제 음악은 음악이 아니라고 이야기하시는 거예요. 저는 이것도 음악이 될 수 있다는 주장을 굽히지 않아 의견충돌을 빚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이런 의견충돌이 최재혁을 껑충 성장시켰다. 우리나라 교육에서는 불가능한 도전이다. 1년 동안 레슨할 때마다 냉전 상태가 이어졌다. 그럴수록 본인의 음악과 생각이 타당하다는 걸 증명하기 위해 칸트의 정신으로 합목적인 이유를 형성해가며 애들러 교수를 설득했다. 최재혁 자신의 음악에 더욱 확신을 가지며 스펙트럼을 일신 우일신 확장해나갔다.

“선생님은 20세기의 음악의 3요소를 추구했습니다. 하지만 제가 본 21세기는 달랐거든요. 멜로디는 이제 더 이상 음악의 필수 재료가 아니라고 생각해요. 오히려 색채나 뉘앙스가 그것을 대체할 수도 있으니까요.”

광고와 소설로 치자면 고전적인 색채가 아니라 시대에 맞는 ‘톤앤 매너’가 중요하다는 말 아닌가. 그렇게 생각을 논리정연하게 이야기하는 그의 눈빛은 확신에 차있는 듯했다.

“그 다음 만난 분은 현재까지 저를 줄리어드석사과정에서 지도해주시는 독일출신의 마티아스 핀처(Matthias Pintscher)와 서울시향의 작곡 마스터클래스에서 7년간 지도해주신 진은숙 선생님이십니다. 마티아스핀처 선생님은 다행히 저의 스타일을 많이 존중해주고, 진은숙 선생님께서는 제가 작곡을 할 수 있도록 더욱 큰 안목과 시야를 키워주신 분입니다.”

작곡을 위한 재료, 그림과 문학이 주는 영감 포착해
작곡이란 작곡가가 한 인간으로서 그동안 살아온 환경과 그릇 안에서 창조된다. 그는 평소 작곡 재료를 탐색하기 위해 문학작품과 미술전시회 등의 다양한 예술과 문학을 접하며 소재와 주제 제재를 포획한다.

“제게 영감을 가장 많이 주는 요소는 바로 페인팅, 즉 그림입니다. 평소에도 미술관에 가서 그림을 정말 많이 보거든요. 그림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 그림이 가진 고유의 분위기와 소리가 있잖아요. 예를들면 시끄러운 페인팅이 있고, 선이 굵은 페인팅, 섬세하면서도 따뜻한 느낌 등 무궁무진하죠. 그럼 저는 작품을 보며 느낀 이미지를 소리로 상상해 표현하려고 노력합니다.”

작품이 주는 분위기와 뉘앙스를 축적하며 재료를 모으는 그는, 순간의 감정에 몰입하며 당시 떠올린 느낌을 오선지에 옮긴다. 그러나 영감이 즉물적으로 표출되는 것은 아니다. 느낌 그대로 쓰지 않으면 쉽게 잊혀지기도 하지만 순간의 느낌과 분위기는 꼭 기억해둔다.

느낌이 숙성하면 다음에 그 작품을 재차 감상했을 때 그동안 미처 발견하지 못했던 또 다른 소리를 찾아낼 수 있다. 최재혁은 그 대표적인 작품으로 김창열 화백의 ‘물방울 시리즈’를 언급한다. 이외에 클림트의 제자 에곤 쉴레의 작품들도 즐겨 감상한다.

작곡가는 대개 직관적으로 곡을 쓰는 사람과, 시스템적으로 쓰는 사람 등 두 종류로 나뉜다. 최재혁은 틀을 만들어놓고 시스템 안에서 쓰는 것이 아닌, 본인의 느낌과 감각으로 먼저 스타일을 확립하고 시작하는 유형이다.

“이번에 제출한 녹턴 역시 예전에 구겐하임에서 그로테스크한 작품을 보고 영감을 받은 작품입니다. 작가의 이름은 생각나지 않지만 굉장히 강렬했습니다. 지금도 생생해요. 넓고 굵은 브러시를 약간 색을 혼합해서 거칠게 표현한 작품이었고, 화려하지만 모든 색에 흑색 계열의 색상이 섞여 있었어요. 화가가 하고 싶은, 말하고 싶은 메시지가 가득 담겨있었습니다. 제 작품 중간에는 다소 고요하고 조용한 부분이 걸쳐있습니다. 그건 이우환 화가의 ‘correspondence’에서 영향을 받은 겁니다. 마치 갈등이 느껴지는 그림이라고 할까요?”

그는 작품을 보며 물체들의 배열 사이에 놓여있는 관계성을 깊이 생각하고 묵묵히 관찰했다. 이내 같은 방향을 향하고 있는 두 물체간의 거리가 반드시 가깝지는 않다는 것과 같은 방향을 향하고 있다고 해서 두 물체의 색이 반드시 같지는 않다는 것을 느꼈다. 그런 미묘한 갈등을 음악에 녹여낸 작곡가 최재혁.

평소 김영하 작가의 책을 좋아하는 그는 문학작품에 대한 이야기도 빼놓지 않는다.

“‘살인자의 기억’, ‘퀴즈쇼’ 등 너무너무 인상적인 작품을 많이 읽었습니다. 분위기 자체가 약간 잿빛이며, 회색빛이 감도는 시니컬한 분위기의 글을 좋아합니다. 너무나 인간적이면서도 의도를 잘 숨겨놓고 그것을 해석하고 찾아가는 재미를 주는 작품 말이죠.”

이렇게 그는 ‘음악’이라는 테두리 안에서만 머물지 않고 그림과 문학, 다양한 장르까지 아우르며 더 넓은 음악적 영역을 구축하고 있다.

▲음악을 위해서는 의견충돌도 마다하지 않았고 그것이 최재혁을 성장시키기도 했다. 그리고 세계를 향해 지금도 뚜벅뚜벅 걸어 나가고 있는 것이다.

자유롭고 넓은, 얽매이지 않은 스타일 계속 추구
인터뷰를 마치고 일주일 후 독일 두이스부르그로 출국하는 그는 두이스부르그교향악단이 위촉한 앙상블곡을 세계초연한다. 또 5월에는 스위스에서 제네바 콩쿠르 우승자 세미나 기념 콘서트가 열린다.

무엇보다 가장 주목할만한 점은 2018년 73회 제네바콩쿠르에서 또 한번 최재혁의 녹턴을 들을 수 있다는 점이다. 올해의 종목은 피아노와 클라리넷이기에 전년도 우승자인 최재혁의 Nocturne III, Concerto for Clarinet and Orchestra이 클라리넷 파이널리스트들의 결승 무대에서 연주된다. 반드시 그 현장에도 참석해 그 작품의 원작자로서 치열한 경쟁을 펼칠 출연자들과 호흡을 맞춰야 하기 때문이다.

“제네바 콩쿠르는 작년도 우승 작품을 이듬해 펼쳐지는 기악 공연의 파이널곡으로 지정합니다. 세계 제일의 실력을 가진 파이널 연주자들이 치열하게 경연할텐데, 그 경연곡으로 저의 곡이 연주되기에 정말 영광으로 생각합니다. 우승곡이 단지, 당해 일회성 무대로 끝나는 게 아니라 지속적으로 연주될 수 있도록 하는 게 주최 측의 정책이죠. 벌써부터 올해의 연주자들과 함께 작업할 생각에 정말 설레고 기대됩니다.”

이 외에도 제네바 콩쿠르 우승자들과 아시아 투어도 펼쳐지는 등 최재혁의 올 한해 스케줄은 벌써 빼곡하다.

인터뷰가 끝나고 돌아오는 길, 다시 한 번 최재혁의 녹턴을 들었다. 그와 이야기를 나누고 들어보니 새롭게, 하지만 전혀 낯설지 않았다. 최재혁의 녹턴에는 서두르지 않는 자유분방함이 있다. 템포나 아티큘레이션을 비교해볼 때에도 난잡한 듯 보이지만, 굉장히 질서정연하다. 느긋함도 느껴지는 묘한 작품이다. 불안하고 겁에 질린 느낌을 주는데도 그 안에 치밀하고 정치한 질서를 만들어 놓은 그의 녹턴. 인터뷰를 통해서 다시 한번 그의 세계관을 만질 수 있었다.

“저는 항상 친구들에게도 인터내셔널리즘을 하고 싶다고 이야기합니다. 내셔널리즘 말고요. 어느 민족, 나라, 지역에 국한하는 것보단 정말로 개개인이 추구하고 싶은 느낌과 각자의 개성을 존중하고 표현하는 자유로운 스타일을 추구하고 싶어요.”

작곡가 진은숙은 “작곡가란 펜과 오선지로 음악의 본질을 연주하는 예술가”라고 이야기했다. 본인이 생각한 음악을 펜과 오선지를 통해 세계로 표출하고, 담을 수 없는 것들은 어딘가에서 어떤 방법으로든 세상에 표현하고 싶은 젊은 청년 최재혁. 그 천재성과 진정성이 균형 잡힌 양쪽의 무게를 천칭처럼 짊어지고 나아가서 한국의 대표 작곡가로 다시 만나길 기대해본다.

(사진제공Ⓒ Anne-Laure Lechat 2017 Geneva) 

김희영 기자 dud056@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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