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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버닝> ...혼돈과 공허와 흑암의 정체해 아래 새 것은 없다
사진= 파인하우스 제공

이창동 감독의 <버닝>을 봤다. 역시 미스터리한 영화다. 극장을 나서는데 감독의 전작들 장면이 스쳐갔다. “나 다시 돌아갈래!!”라고 두 팔 벌려 외쳤던 <박하사탕>의 영호(설경구)가 떠올랐고, 널브러진 마당 한 곳에 스치듯 머무는 햇빛을 응시하던 <밀양>의 마지막 장면의 신애(전도연)가 떠올랐다. 그들과 동시 존재하듯 <버닝>의 주인공들이 오버랩 됐다. 한결같이 공허한 그들의 눈빛은 지금 어디를 향하고 있을까? 영화를 통하여 인생의 수수께끼 같은 질문들을 툭툭 던진 이창동 감독은 과연 답을 찾았을까? 아직도 새벽안개가 짙게 깔린 파주의 어디쯤에서 길을 찾아 달리고 있는 것은 아닐까.

사진= 파인하우스 제공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의 메타포(은유)

감독은 영상으로 소설을 쓰듯이 화면에 이미지들의 행간을 만들어 나간다. 도시와 시골, 가진 자와 못 가진 자, 찾는 자와 즐기는 자의 삶의 형태를 종수(유아인)와 벤(스티브 연) 그리고 해미(전종서)라는 인물을 설정하여 이 시대의 주류 인생과 비주류 인생들의 드러난 문제와 숨겨진 문제들을 보이는 이미지와 보이지 않는 이미지로 한 편의 영상 소설을 쓴다. 아울러 남북의 분단 상황과 30명의 사상자를 낸 2009년 용산참사 그리고 종교 예배까지. 개인과 개인이 종속된 국가와 사회, 문화까지 이 시대의 풀지 못한 숙제들을 끊임없이 질문하며 메타포로 변주한다. 남북이 대치된 경계 마을에는 대남방송이 TV뉴스처럼 일상으로 파고든다. 그 마을의 저녁 풍경을 배경으로 마일스 데이비스의 트럼펫 연주가 흐르고 해미는 재즈처럼 춤을 춘다.

사진= 파인하우스 제공

감독은 보이는 것들의 뒷모습에 집요하리만큼 집착한다. 트럭의 뒷모습을 클로즈업한 영화의 첫 장면과 영화 마지막 장면에 전라로 뛰어 가는 종수의 벗은 뒷모습의 이미지는 이 영화의 주제를 관통하는 메타포. 마찬가지로 상의를 벗어 던지고 두 손을 하늘을 향해 느릿하게 춤을 추는 해미의 뒷모습의 실루엣은 깊은 우물처럼 눈물로 가득 차오른다. 이 영화에서 가장 슬프고 가장 아름다운 장면.

사진= 파인하우스 제공

종수가 벤을 미행하는 장면들, 깊은 저수지의 수면을 바라보는 벤이나 우물에 갇혀있었다는 해미, 속이 다 보이는 비닐하우스와 종수 집의 커다란 거실 유리창, 남산 타워의 유리창, 팬터마임 학원의 전면거울의 이미지. 그 이미지들은 정물처럼 세 사람의 일상에 박혀 있다. 종수와 벤 그리고 해미, 주인 없는 고양이, 그들은 파주에도 있고 반포에도 있고, 서울에도 있고 아프리카에도 있고, 현실에도 있고 소설에도 있는 동시 존재자들.

데뷔하지 않아도 “쓰는 사람은 다 작가다”라는 벤의 말은 맞는 말 같지만 맞지 않는 말처럼, 감독은 산다는 것에 대한 물음을 이미지라는 허구의 풍경에 담아서 관객에게 끝없이 답을 묻는다. 인생이 무엇인지 아냐고. 진리가 무엇인지 당신은 아냐고.

곽은주 기자  cineeun60@nat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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