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가리계곡】 흐르는 강물처럼
【아침가리계곡】 흐르는 강물처럼
  • 박경진 자유기고가
  • 승인 2018.08.18 1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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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과 자연이 어우러져 함께 공존하는 태고의 모습

[한국뉴스투데이] 1992년 제작된 로버트 레드포드 감독의 영화 ‘흐르는 강물처럼’(A RIVER RUNS THROUGH IT)은 한 가족을 중심으로 두 소년의 성장기 등이 자연과 함께 잘 표현된 작품이다.

장로교파 목사인 아버지와 교수로 성장하는 학구파 형 노먼, 그리고 자유분방하고 열정적인 삶을 즐긴 신문기자인 동생 폴. 가족은 바쁜 삶 속에서도 식탁에 앉아 일상의 소소한 대화들과 며칠간의 일들을 나눈다. 특히 두 아들의 변화와 일상들을 아내와 공유하는 식탁을 아버지는 매우 중요하게 대했다.

▲영화 ‘흐르는 강물처럼’(A RIVER RUNS THROUGH IT)은 한 가족을 중심으로 두 소년의 성장기 등이 자연과 함께 잘 표현된 작품이다.
▲영화 ‘흐르는 강물처럼’(A RIVER RUNS THROUGH IT)은 한 가족을 중심으로 두 소년의 성장기 등이 자연과 함께 잘 표현된 작품이다.

하지만 이 영화의 백미는 삼부자가 함께 하는 낚시다. 그것도 계곡을 끼고 흐르다 큰 강을 이룬 곳에서 하는 소위 플라잉 낚시로 영화는 이를 통해 인생을 들여다봤다. 낚시로 큰 연어를 낚은 폴(브레드피트)이 계곡에 떠내려가며 씨름하고, 이를 흥미롭게 지켜보는 아버지와 큰 형의 모습.

아버지는 두 아들과 식탁을 엄격하게 지킴으로써 아내를 배려했다. 그리고는 두 아들과 계곡을 찾아 낚시를 하며 자연을 대하는 방식 등으로 삶을 조언하기도 했다.

큰 형 노먼이 노년에 홀로 계곡을 찾아 낚시를 하며 지난날을 회상하는 것이 영화의 시작점과 끝이다. 아버지의 인생과 어머니. 그리고 동생 폴이 연어를 낚기 위해 계곡물에 떠밀려가며 결국에는 잡아 올림으로써 자연과 완벽하게 조화를 이룬 것으로 형은 장면을 표현하기도 했다.

영화는 형 노먼이 홀로 던지는 힘없는 낚시에 한 가족의 인생을 쓸쓸하게 담아냈다.

▲계곡 깊은 곳에 다다라 급격하게 몰아치는 물소리는 묵직했으며 힘이 넘쳤다.

사람과 자연이 공존하는 태고의 숨결
강원도 인제군 방태산, 그 곳에서도 인간과 자연이 어우러져 함께 공존한다는 ‘아침가리계곡’.

정감록에서 십승지지(十勝之地)라 하여 전쟁이나 전염병은 물론 흉년 등에서도 견뎌낼 수 있는 명당으로 이곳이 추천된다. 그래서 각종 난(亂)이 난무할 때 이곳에 사람들이 숨어들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그만큼 강원도 깊은 산 속에 자리하고 있고 험산(險山)들이 병풍처럼 둘러싸여 있어 바깥세상으로부터 노출이 않되 있다. 그래서일까 이곳을 찾은 지난 6월 6일. 계곡을 따라 깊은 산속에서 휴대폰 수신불능을 경험하기도 했다.

▲강원도 인제군 방태산, ‘아침가리계곡’ 안내 표지
▲강원도 인제군 방태산, ‘아침가리계곡’ 안내 표지

트래킹이 가능한 지점에는 잔잔한 물들이 흘러내려 가고 있다. 어느 산 깊은 골에서 시작되었을 물은 아래로 흐르며 다른 물들을 만나 바위에 부딪히고 바닥을 쓸었다. 가파른 계곡에서는 급격하게 휘몰아쳤고 완만한 경사에서는 유유자적했다. 그러다 깊은 골이 패인 큰 웅덩이에서는 잠시 쉬어가며 그렇게 여행을 시작했을 것이다.

정말 그랬다. 계곡 깊은 곳에 다다라 급격하게 몰아치는 물소리는 묵직했으며 힘이 넘쳤다. 거친 계곡에서 정면으로 맞은 물들의 흐름은 빠르고 거칠었으며 울부짖음 또한 날카로웠다.

그러다 큰 웅덩이에서 물들은 적당한 강을 이뤘고 물고기들의 안식처다. 사람도 그 작은 강 웅덩이에서 쉼을 얻어 자연과 조화를 이룬다.

계곡 물은 다시 아래로 흘러 넓고 평평한 곳에서 여울목을 막 지났다. 이곳에서 물들은 조약돌들 사이로 갈라져 제각각으로 소리했다. 경쾌했으며 청량했다. 작은 낙폭에서는 재잘대듯 했고 물살의 속도는 날렵했다. 마치 세상을 향해 나가는 양 모양은 밝았다.

먼발치에서 듣는 소리는 각기 다른 화음이 하나 되는 오케스트라의 연주처럼 들리기도 한다.

▲정감록에서 십승지지(十勝之地)라 하여 전쟁이나 전염병은 물론 흉년 등에서도 견뎌낼 수 있는 명당으로 각종 난(亂)이 난무할 때 이곳에 사람들이 숨어들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세상을 행해 소리하며 흐르는 물들의 향연
트래킹 코스로 알려진 아침가리계곡은 산 중앙으로 계곡이 흐른다. 굳이 물을 피할 요량이면 주변 산책로를 택하면 된다. 산책로에서 바라보는 계곡은 바닥까지 훤히 들여다보이는 맑은 물로 인해 안정감과 평화를 허락하기도 한다.

하지만 여행자들이 물을 피하지 않는 것은 투명하게 맑고 청량하게 흐르는 소리다. 이 계곡에 발을 푹푹 담가 내가 이미 자연과 하나 되었음이다. 특히 계곡 물가를 가로질러 오르며 양 쪽으로 병풍처럼 둘러싸인 산세 절경은 또 다른 백미다.

군데군데 여행자들이 쉬어가기 적합한 장소들은 이내 이곳에 텐트를 치고 하룻밤 야영하고 싶은 치명적인 모험을 꿈꾼다. 먼 옛날, 20살의 젊은 가슴은 뜨거웠고 매서운 한 겨울에도 오토바이를 거칠게 몰아 강가로 내달리고는 했다. 아무도 없는 밤, 어두운 강가에서 미친 듯이 ‘훠이 훠이’ 허공에 쏟아내고는 했다.

▲계곡 주변 길에서 생명수처럼 흐르는 두어 군데 샘물의 정체는 신비롭기까지 하다.
▲계곡 주변 길에서 생명수처럼 흐르는 두어 군데 샘물의 정체는 신비롭기까지 하다.

추운 겨울에 홀로 눈이 뒤덮인 산과 계곡을 찾아 야영하며 몸을 혹사하고 싶었다. 20살의 젊은 가슴은 그 이상일지라도 능히 정신은 번잡했고 갈피를 잡지 못했다. 거미줄처럼 얽힌 정신은 가야할 길을 몰랐고 이는 오랜 세월 가슴속에 묻은 허망한 꿈이다. 어쩌면 오래지 않아 이곳 계곡에서 그 작은 꿈이 실현될지도 모르겠다.

삶의 무게는 버겁다. Kansas 그룹의 노래 Dust In The Wind처럼 우리네 인생은 바람에 떠다니는 한 올의 먼지인지도 모를 일이다. 지치고 무거운 어깨를 하고 들어서는 막다른 계곡. 갈 길 잃은 나그네의 지친 걸음에는 어쩌면 희망이라고는 찾아 볼 수 없는 절망과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두려움이 가득하다.

하지만 모든 것이 희미해진 두려운 순간에 나그네 주변에 살며시 내려와 동행하는 ‘팅커벨’. 그렇게 수호천사는 우리 주변에서 존재를 드러내곤 한다.

그랬다. 아침가리계곡은 마지막 안식처 같은 곳이다. 실제로 한때는 이곳에서 수백 명의 화전민이 살았다고 기록하고 있다. 그 중 두어 가구는 아직도 이곳을 지키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특히 계곡 주변 길에서 생명수처럼 흐르는 두어 군데 샘물의 정체는 신비롭다. 산 깊은 곳에서 터져 나왔을 물들이 공기와 부딪히며 공간을 시원하게 창조해냈다. 마치 오로라의 신비처럼 공간에서는 샘물과 공기가 나그네에게 생기(生氣)를 불어 넣는 듯하다. 바위를 뚫고 나와서인지 그 무엇도 가공되지 않은 물맛은 깔깔했다.

▲한때는 이곳에서 수백 명의 화전민이 살았다고 기록하고 있기도 하다.

일급수에 산다는 쉬리, 꺽지 등 생태계 보존
특히 계곡 얕은 곳에서 깊은 곳까지 떼 지어 움직이는 물고기들이 정체다. 급격한 곳을 지날 때마다 물고기들을 쉽사리 볼 수 있다는 것이 이채롭다. 물고기 종류를 놓고 잠깐 의견이 갈렸지만 파악하기가 쉽지 않다. 다만 일급수에서만 산다는 쉬리와 꺽지를 비롯해 메기, 피라미, 열목어 등이 서식하는 것으로 알려져 이곳이 청정지역임을 증명했다.

초등학교 들어가기 전 아주 어린 날의 기억 한 조각.
아버지는 어른들과 깊은 계곡으로 소위 ‘천렵’에 나섰다. 따라나선 계곡에서 어른들은 어항에 된장을 발라 물속에 담갔고 청정지역에서 낚아 올린 그것들로 매운탕을 만들었다. 감자와 각종 재료들로 만들어진 그 맛을 어찌 잊으랴. 맛은 기억이고 추억이다.

그리고 방황하던 사춘기 시절 무작정 자전거에 태워 낚시가게로 갔다. 대나무로 만들어진 낚시대를 사 주시고는 강으로 가 같이 낚시를 했다. 아버지와의 낚시는 그때 딱 한번이다.

기다림과 인내, 수많은 생각들을 정리하는 시간의 정적. 그랬다. 그리고서야 자연(自然)이 눈에 들어왔고 그 안에 동화됐다.

영화에서 아버지는 가정을 지키며 아들 노먼과 폴에게 낚시를 통해 자연을 대하는 방식과 인생을 살아가는 방법을 공유했다. 그리고 먼 훗날 노먼은 동생 폴이 이미 그때 자연에 순응하며 완전히 하나 되었음을 기억한다.

▲정감록에서 십승지지(十勝之地)라 하여 전쟁이나 전염병은 물론 흉년 등에서도 견뎌낼 수 있는 명당으로 각종 난(亂)이 난무할 때 이곳에 사람들이 숨어들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정감록에서 십승지지(十勝之地)라 하여 전쟁이나 전염병은 물론 흉년 등에서도 견뎌낼 수 있는 명당으로 각종 난(亂)이 난무할 때 이곳에 사람들이 숨어들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부모들은 이미 어떠한 방식으로든 우리와 인생을 공유했을 것이다. 깊은 계곡의 청정지역에서이든, 낚시를 통해서든 말이다. 다만 망각했던 기억들이 되살아나는 것은 여울목에서부터 깊은 계곡으로 치닫는 동안 우리가 닫아버린 자연(自然)의 속삭임에 의해서다.

다시, 깊은 계곡 한 곳에 잠시 똬리를 틀어 세상을 행해 소리하며 흐르는 물들의 향연을 볼 것이다. 그리고 지나온 ‘나’와 맞이할 ‘나’를 바라보고 조율해야 한다.

그러면 잃어버린 동심 사이로 지친 나와 동행하는 팅커벨을 만날지도 모르니 말이다.

박경진 자유기고가 calnews@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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