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로마>.... 아버지의 부재가 준 선물
영화 <로마>.... 아버지의 부재가 준 선물
  • 곽은주 기자
  • 승인 2019.01.14 01:1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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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픔도 때론 힘이 된다

[한국뉴스투데이] 아버지의 부재. 성장기에 아버지가 없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 특히 남자아이에게 아버지의 존재란 무엇일까? 영화 <로마>를 보고 든 생각이다. 아버지의 부재 속에서 자란 알폰소 쿠아론 감독(61년생. 멕시코). 감독은 50여 년이 지난 아득한 옛일들을 왜 꺼내보고 싶었을까? 그때는 몰랐던 어떤 비밀이 그 안에 숨어 있기에 영화로 만들고 싶었을까? <로마>를 극장에서 본지가 한 달이 지났건만 잠시 물끄러미 멈춰 있을 때면, 문득문득 영화의 잔상들이 나를 놓아 주지 않는다. 책상서랍 깊숙이 묻어둔 지난 일기장을 꺼내어 찬찬히 읽듯이 나도 감독처럼 영화 속의 한 아이로 돌아간다.

사진 제공= 판씨네마

가정부 리보 로드리게즈에게 헌정

영화에서는 비행기가 날아가는 모습이 각기 높낮이를 달리하여 화면에 세 번 잡힌다. 처음에는 바닥 청소 하는 물에 비치고, 두 번 째는 주인공 클레오(얄리차 아파리시오)가 곤경에 처해 있을 때다. 그리고 마지막 장면에서비행기가 한 번,두 번, 세 번... 지나갈 동안 화면은 비행기를 오랫동안 응시한다. 마치 그 지역 창공에 비행기 항로가 있는 것처럼 높고 먼 하늘에 작은 비행기가 또렷하게 잡힌다. 오페라에서 막과 막 사이에 주제를 암시하는 간주곡이 흐르듯이, 영화가 시작되고 전환되고 꼭지점을 찍을 때 비행기는 이미지로 함축된다. 그 이유를 나중에 알았다. 한 인터뷰에서 감독의 어린 시절 꿈이 조종사와 우주 비행사였다고 한다.

가정부가 일하는 빨래터에 누워 하늘을 날아가는 비행기를 보며 조종사를 꿈꿨던 아이. 그 아이는 가정부의 손을 잡고 종종 극장을 갔다. 극장은 아이에게 꿈의 궁전처럼 놀랍고 환상적이었다. 당시 아이가 본 2차 대전 특공대 이야기인 <독수리 요새>(1968)와 SF스릴러<우주탈출>(1969)은 실제로 <로마>에 살짝 등장한다. 영화에 매료된 아이는 이제 세계적인 감독의 반열에 이름을 오려놓았다. 미지의 우주세계를 동경하던 아이는 영화라는 판타지로 무한한 상상의 세계를 보여 준다.

사진 제공= 판씨네마

감독은 2014년 <그래비티>가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연출상과 편집상을 수상한 후, 실로 15년 만에 바라던 대로 모국 멕시코에서 모국어로 모국의 스텝들과 함께 자신의 이야기를 드라마로 촬영했다.

‘1970년 여름에서 1971년 여름까지’감독은 멕시코시티의 로마라는 지역을 배경으로 어린 시절의 공간이었던 집과 당시의 시대 상황을 꼼꼼하고 면밀하게 추적하여 사건사고들을 실제 상황처럼 재현한다. 당시 유행했던 의상은 물론, 주거 스타일과 자질구레한 일상 소품들, 팝송까지. 집안에서의 아이들의 부산한 움직임과 부딪침과 웅성거림, 집밖에서 들려오는 잡상인들의 호객소리의 소음조차 멜로디로 리듬으로 영화에 생기를 덧입힌다. 가정부 클레오가 설거지하며 틀어 놓은 수돗물 흐르는 소리, 그릇이 부딪치는 소리, 블록이 깔린 마당을 청소하는 물소리, 빗소리 그리고 아이들의 목숨을 위협하는 거센 파도소리...

지난 시간들을 소리로 기억하는 감독. 그러나 그의 예민한 청각도 천상의 소리는 담을 수가 없었나 보다. 하늘을 나는 비행기는 너무 멀리 떨어져 있기에 소리를 들을 수가 없다. 땅의 일은 예측할 수 있어도 하늘의 일은 인간이 가늠할 수 없듯이.

사진 제공= 판씨네마

아버지의 부재. 아버지의 배신. 암담한 그 시절을 함께 울고 보듬으며 아버지의 빈자리를 채웠던 감독의 어린 시절 가정부 ‘리보 로드리게즈’. <로마>는 그녀에게 헌정됐다. 오래 묻어 두었던 자신의 상처를 진솔하게 작품으로 승화시킨 감독의 끈덕진 내공이 미덥다. 곁에 두고 오래오래 꺼내 보고 싶은 영화.

곽은주 기자 cineeun60@nat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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