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알 마드리드 VS FC바르셀로나 100년 이어진 앙숙
레알 마드리드 VS FC바르셀로나 100년 이어진 앙숙
  • 이근탁 기자
  • 승인 2019.02.07 18: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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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고 보면 더 재밌어 ‘엘 클라시코’

[한국뉴스투데이] 오늘 7일 오전 5시 스페인 국왕컵 ‘코파 델 레이’(Copa del Rey) 4강 1차전이 1대 1 무승부로 끝났다.

레알마드리드(좌측), FC바르셀로나(우측) 엠블럼

세계 최고의 명문 구단으로 꼽히는 ‘레알 마드리드‘와 ’FC 바르셀로나‘의 대결은 4강 경기임에도 결승전보다 뜨거운 관심이 모였다.

’엘 클라시코‘(전통의 경기-스페인어)라는 양 팀의 매치 경기를 지칭하는 단어가 따로 있을 정도로 양 팀의 라이벌 관계는 세계 축구팬들 사이에서 월드컵 결승전에 버금가는 빅매치로 통한다.

스페인 지도 - 사진 외교부

엘 클라시코의 역사

‘축구‘ 그 이상의 전쟁으로 불리는 ‘엘 클라시코’의 역사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양 팀의 연고지인 ‘마드리드‘와 ’ 바르셀로나‘의 지역 관계를 먼저 살펴봐야 한다.

1469년 스페인 왕국의 건국이래 수도 마드리드를 중심으로 ’ 카스티야‘ 왕국이 정권을 장악했다.

하지만 카탈루냐(수도 바르셀로나), 아라곤을 비롯한 10여 개의 왕국이 연방국가에 가까운 지방 자치권을 가졌으며 다양한 언어와 민족이 공존했다. 

이에 각 지방에서 끊임없는 독립 움직임을 보여왔다. 대표적인 지역이 바르셀로나가 위치한 ‘카탈루냐’ 지방이다. 지중해 무역으로 수도 마드리드보다 많은 부를 축적하고 민족성마저 강해 최근 까지도 독립시위 참가자와 정부군 사이에 유혈사태가 벌어지고 있다. 

현재 바르셀로나는 우리나라 외교부가 자국민 보호를 위해 발령하는 여행경보 가운데 ‘여행자제’ 경보가 내려졌다.

이런 배경 속에서 1899년 FC바르셀로나 창설, 1902년 레알 마드리드(당시 FC마드리드)가 창설됐다. 

독립 문제를 두고 갈등을 겪던 카스티야와 카탈루냐의 지역감정이 양 팀의 축구경기를 통해 표출된 것이 ‘엘 클라시코’의 시초다.

1902년 현재 경기가 진행 중인 ‘코파 델 레이’ 국왕컵의 전신인 ‘코파 데 라 코로나시온’에서 바르셀로나가 3대 1로 이긴 것을 시작으로 2019년 1월 기준 바르셀로나가 110승 58 무 96패 (공식+친선 경기)로 근소하게 앞서고 있다.

FC바르셀로나의 고초

‘레알 마드리드‘는 창단 초기 중앙정부의 적극적인 후원을 받았다. 기존 ’FC마드리드’라는 구단이름에 알폰소 13세 국왕이 귀족이라는 뜻의 ’ 레알‘ 칭호를 수여한 것이 대표적이다. 

반면 ’FC바르셀로나’는 카탈루냐 지방의 독립열망을 대표하는 탄압의 대상이었고 실제 바르셀로나 창설자인 ’ 한스 감페르‘ (Hans Gamper)가 중앙정부로부터 추방당했다. 

또한 FC바르셀로나의 최초 홈구장인 카르레르 인두스트리아 경기장은 수용 가능 인원 8,000명 규모로 현재 약 10만 명을 수용할 수 있는 ’ 캄프 누 스타디움‘의 10분의 1에도 미치지 못할 정도로 경영난을 겪었다.

앙숙의 시작

1936년 카탈루냐와 카스티야 지역의 갈등이 극에 달한 시점 스페인에서 내전이 발발했다. 프란시스코 프랑코 장군 카탈루냐 함락하고 독재 체제를 이어가면서 카탈루냐 지역의 정치적 자치권을 박탈하고 카탈루냐 국기와 언어 사용을 전면 금지하는 등 대대적인 탄압을 이어갔다.

이로 인해 카탈루냐 시민들은 FC바르셀로나 홈구장에 모여들었고 자신들의 정치적 불만을 축구경기 응원을 통해 표출했다. 

이후 1943년 스페인 국왕컵 레알 마드리드와의 경기에서 11-1로 대 패한 바르셀로나의 선수들이 경기 직전 중앙 정부 보안부장으로부터 협박을 당했다고 주장했다. 

도를 넘은 탄압에 카탈루냐 시민들이 거리로 뛰쳐나와 폭동 직전 상황까지 이르자 레알 마드리드 구단주가 사퇴하는 해프닝도 이어졌다. 이 사건을 계기로 두 구단은 앙숙으로 남았다.

두 구단의 경쟁구도는 파트너십을 맺은 기업에서도 나타난다. 현재 레알 마드리드의 공식 후원사는 나이키, EA 스포츠(게임), 한국타이어 등으로 FC바르셀로나의 공식 후원사인 아디다스 코나미(게임), 라사 타이어의 경쟁기업이다. 경영전략에 있어서도 라이벌 구도가 펼쳐졌다.

리오넬 메시(FC바르셀로나 유스 출신, 좌측), 크리스티아누 호날두(레알마드리드 갈락티코 출신, 우측) / 사진 FC바르셀로나, 유벤투스

갈락티코 VS 유스

다른 탄생 배경에 걸맞게 레알 마드리드와 FC 바르셀로나는 선수 영입 과정에서도 다른 행보를 보였다. 

레알 마드리드의 선수 영입 정책인 ‘갈락티코‘는 우리말로 ’ 은하계‘(Galaxy)를 뜻하며 말 그대로 세계의 축구 스타들을 구단에 모으는 것이다. “카카, 크리스티아누 호날두, 사비 알론소, 카림 벤제마” 등 레알 마드리드가 영입했던 선수 한 명 한 명의 이적료가 국내 중견기업의 시가총액과 맞먹는다.

반면 FC바르셀로나는 전통적으로 최고의 유소년 육성 시스템을 자랑하는 유스 정책을 펼치고 있다. 우리 구단 선수는 우리가 키운다는 선수 육성 철학으로 ‘레알 마드리드‘와 달리 당초 중앙정부의 지원 없이 구단을 운영해야 하는 ’FC바르셀로나‘의 형편이 반영된 정책이다. 하지만 현재 “리오넬 메시, ‘이아고 팔케‘, ‘페드로 로드리게스‘ 등의 스포츠 스타를 배출하는 등 성공적인 선수 육성 모델로 자리 잡았다.

스페인 역사 속에 얽힌 앙숙으로 시작된 ‘레알 마드리드’와 ‘FC바르셀로나‘는 IFFHS(국제축구역사통계재단)가 선정한 축구클럽 순위에서 각각 2위와 4위를 차지해 (1위=아틀레티코 마드리드) 세계적인 명문 구단으로 성장했다. 앙숙이자 라이벌 관계로 발전한 두 팀은 한국시간 28일 5시 스페인 국왕컵 ’ 코파 델 레이’의 결승전 티켓을 두고 다시 한번 세기의 대결을 앞두고 있다. (네이버 스포츠, SBS SPORTS 중계)

이근탁 기자 maximt2@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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