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진家, 갑질로 재조명 받는 조중훈 초대회장
한진家, 갑질로 재조명 받는 조중훈 초대회장
  • 이근탁 기자
  • 승인 2019.04.03 16: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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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대표 수송 기업에서 ‘갑질‘의 아이콘으로
육해공 수송기업의 꿈, 한진해운 파산
조양호 회장 대한항공 연임 실패

[한국뉴스투데이] 지난 27일 대한항공 본사에서 열린 정기주주총회에서 한진그룹 조양호 회장의 대한항공 사내이사 연임 안건이 부결됐다. 지난 1999년 조회장이 대표이사로 선임된 이후 20년 만에 대한항공 경영권을 잃게 되면서 추후 대한항공을 비롯한 한진그룹의 인사 단행과 조회장의 행보에 관심이 집중됐다. 그러면서 조양호 회장의 아버지이자 1969년 대한항공의 창립자인 조중훈 전 회장과 현재 재계 순위 14(2018년 공정위 집계)에 등극한 한진그룹의 연이 재조명되고 있다.

▲ 故조중훈 한진그룹 초대 회장 (사진/대한항공)
▲ 故조중훈 한진그룹 초대 회장 (사진/대한항공)

한진의 역사, 창립자 조중훈

대한항공과 한진그룹의 창립자 조중훈정주영(현대), 이병철(삼성) ,구인회(LG) 등과 함께 광복 이후 우리나라의 경제를 이끈 1세대 기업가로 평가된다.

삼성이 반도체 산업을 이끌고 현대가 자동차산업을 대표한다면 한진은 택배, 항공, 해운 등 육해공 전반에서 우리나라 물류, 운송산업에 기틀을 마련했다.

일제의 문화통치가 시작된 1920년생으로 휘문고등보통학교 재학 중 아버지의 직물 도매사업 부도로 인해 자퇴했다. 이후 국비 지원을 받을 수 있는 경남 해원양성소(현재 한국해양대)에 진학, 졸업하고 일본으로 건너가 고베 조선소에서 수습생 신분으로 일하며 2등 기관사 자격증을 취득했다. 어린 시절부터 산전수전 다 겪은 경험이 훗날 한진그룹 발전의 밑거름이 됐다는 평가다.

조중훈 회장이 우리나라로 귀국한 것은 1942, 그의 나이 23살 때였다. 당시 자동차 정비업체 이연공업사를 설립하고 사업을 확장했지만, 이듬해 조선 총동부가 발표한 기업 정비령(조선 내 모든 물자를 군수용으로 전환)으로 인해 회사를 통째로 일제에 뺏겼다.

광복 이후 194511월 인천에서 부두 하역을 하는 한진상사를 설립, 당시 전재산을 털어 산 트럭 한 대로 사업을 시작했지만 오늘날 재계 순위 14위에 이르는 한진그룹의 시초가 됐다.

한진상사는 창업 2년 만에 화물자동차 10대를 보유하게 됐고 교통부(현재 도로교통부)로부터 화물자동차 운송사업 면허를 받았다. 이후 조 전 회장 부부는 1949년 조양호 현 한진그룹 회장을 출산하고 1960년 민간항공사 한국항공을 설립한다.

▲1971년 대한항공 태평양 횡단 노선 취항 기념식 (사진/대한항공)
▲1971년 대한항공 태평양 횡단 노선 취항 기념식 (사진/대한항공)

대한항공 설립

조중훈 회장이 설립한 한국항공1961년 집권한 박정희 정부가 대한국민항공사’(KNA)에 대한 전폭적인 지지를 표명하면서 사업을 접게 된다. 한편 1936년 조선비행학교 교장이었던 신용욱이 학교를 조선항공사업사로 전환하면서 정기운항을 시작했다. 1946년 미국 군정의 허가를 받아 대한항공의 모태라고 할 수 있는 대한국민항공사로 이름을 바꿨다.

추후 정부의 전폭적인 지지에도 불구하고 승객 부족 등 적자에 시달리면서 비행기 부품까지 세무당국에 압류당하게 됐다. 결국 창립자 신용욱이 경영난을 이기지 못해 자살하고 회사가 도산 직전까지 몰렸다. 하지만 1962년 정부의 출자로 기사회생하는데 이때 생겨난 것이 국영기업 대한항공공사. 물론 민영기업 시절 겪던 경영난을 국영기업이라고 피할 수는 없었다.

박정희는 결국 다시 한번 민영화를 결정하게 되는데 이때 눈에 띈 사람이 조 전 회장이다. 그는 한진상사를 통해 물류사업을 벌였고 민간항공사(한국한공)를 설립한 경험이 있어 가장 유력한 적임자였다. 결국 1969대한항공공사를 인수해 달라는 박정희의 부탁을 받아들여 대한항공이 탄생했다.

오늘날 글로벌 항공사이자 한진그룹의 대표 기업으로 성장했지만 당시만 해도 항공 인프라 및 수요가 정착하지 않았고 부채만 27억 원에 달하는 등 그야말로 애물단지 기업이었다. 그럼에도 조 전 회장이 인수를 결정한 이유는 군사정권 최고지도자의 부탁이 협박으로 받아들여졌을 거란 후문이다.

조중훈 초대회장 논란

조 전 회장이 1999상하이 KAL 추락사고의 책임을 물어 대한항공 대표이사직에서 물러날 때까지 금호아시아나그룹과 함께 우리나라 물류산업 발전에 이바지한 것은 분명하지만 그만큼 논란도 많다.

대표적인 것이 변칙 증여(상속)’사건이다. 지난 1999년 조 전 회장은 회삿돈 1,500억 원을 빼돌려 주식 투자를 한 뒤 자녀들에게 변칙 증여해 증여세 967억 원을 탈루한 혐의가 검찰 조사 결과 드러났다.

하지만 고령의 나이와 경영을 통해 국익에 기여한 점 등을 감안해 기소조차 하지 않고 사건이 묻혀버려 유전무죄 무전유죄논란까지 일으켰다. 그밖에 항공기 부품 계약을 통한 리베이트 수수 혐의까지, 한진 일가의 비위행위는 조중훈 1대 회장부터 논란이 됐다.

왕자의 난

다른 재벌가 2세들의 상속문제가 집안싸움으로 번진 것처럼 한진가 역시 형제간의 다툼이 있었다.

조중훈 전 회장은 슬하에 5자녀를 두었다. 장남이자 현재 한진그룹 회장인 조양호를 기준으로 누나 조현숙, 동생 조남호, 조수호, 조정호가 있다.

지난 2002년 조 전 회장이 타계하고 유언에 따라 조양호는 한진그룹 회장, 조남호는 한진중공업 회장, 조수호는 한진해운 회장, 조정호는 메리츠증권(현 메리츠금융지주) 회장 자리에 올라 그룹사는 계열분리됐다. 장녀 조현숙은 그룹 계열사인 정석기업의 사내이사를 맡았을 뿐 경영권보다는 재산만 상속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문제는 2006년 조남호, 조정호 회장이 맏형인 조양호 회장을 상대로 유언장 조작의혹을 제기하며 소송을 건 것이다. 이들은 선친이 재산 분배에 대해 유언을 남기지 않았는데도 조작된 유언장이 공개됐다라고 주장했고 조양호 회장은 그런 적 없다.”며 반박했다.

소송은 원고 패소 판결로 조양호 회장이 승리했지만 형제간의 상속 다툼은 이른바 왕자의 난으로 불리며 세간의 화제가 됐으며 한진가 이미지에 타격을 줬다. 특히 소송이 제기된 2006년은 조수호전 한진해운 회장이 지병으로 타계한 해였다.

왕자의 난 이후 대한항공은 메리츠화재와의 보험 계약을 해지했고 한진중공업과 메리츠 금융은 대한항공 항공편을 이용하지 않는 등 그룹사의 계열분리를 넘어 형제들이 완전히 등을 돌렸으며 현재 집안 제사까지 따로 지내는 것으로 알려졌다.

▲구조조정 발표 전 주식을 매도한 혐의로 재판에 회부된 '최은영'전 한진해은 회장 (사진/뉴시스)
▲구조조정 발표 전 주식을 매도한 혐의로 재판에 회부된 '최은영'전 한진해은 회장 (사진/뉴시스)

한진의 몰락

조중훈 초대회장이 한진을 육해공 수송 그룹으로 만들겠다는 목표를 일궈놓은 한진그룹이 계열 분리된 이후 가장 먼저 위기를 맞은 곳은 한진해운이다.

지난 2006년 조수호 전 회장이 타계한 이후 그의 아내인 최은영이 한진해운의 회장 자리에 올랐다. 한진해운은 최 회장 취임 뒤 지속적인 적자를 보였으며 2013년 대한항공이 한진해운에 1500억 원 규모의 긴급자금을 투입하는 상황까지 이렀다.

하지만 5,000억 원에 이르는 선박금융(부채) 원금을 상환하지 못하는 등 경영이 개선되지 않아 2016년 법정관리 신세가 됐다. 한진해운은 20172월 서울지방법원이 최종 파산 선고를 내리면서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당시 최 회장은 파산의 책임을 지기는커녕 한진해운의 자율협약신청을 발표하기 직전 내부정보를 이용해 보유주식을 전량 매도, 11억 원의 손실을 회피했다. 지난해 10월 대법원은 최 회장에 대해 징역 16개월, 벌금 12억 원, 추징금 49천만 원형을 확정했다.

조양호 가족 논란

한진가에 대한 여러 논란들이 있었지만 단연 화제가 된 것은 현 한진그룹 조양호 회장 부부와 자녀들의 행실 논란이다.

2014년 조현아 한진관광 대표이사의 땅콩 회항사건, 2018년 조현민 대한항공 전무의 물컵 폭행사건’, 같은 해 이명희 여사의 수행기사 폭언, 폭행사건까지 터졌다.

경쟁사인 금호아시아나그룹의 박삼구 회장 역시 과잉 의전, 경영악화 등의 논란으로 회장직을 내려놓게 됐지만, 최근 한진 일가의 잇따른 비위사건은 여타 재벌가 논란 가운데서도 역대급이라는 평가다.

이들은 상대적으로 우위에 있는 자신의 직급, 신분 등을 이용해 오만하게 행동하는 등 갑질로 국민적 공분을 샀다.

특히 2014년 땅콩 회항 사건 당시 대한항공의 사명과 우리나라의 국기나 다름없는 태극문양의 로고를 사용하지 못하게 해야 한다는 청와대 국민청원이 잇따르고 뉴욕 한인단체가 대한항공 불매운동을 선언하는 등 파장이 이어졌다.

▲3월 27일 조양호 회장의 대한항공 사내이사 연임의 부결을 선언하는 우기홍 대표이사 (사진/뉴시스)
▲3월 27일 조양호 회장의 대한항공 사내이사 연임의 부결을 선언하는 우기홍 대표이사 (사진/뉴시스)

스튜어드십 코드, 조양호 회장 견제

지난 27일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이 그룹 핵심 계열사인 대한항공의 사내이사 연임에 실패했다.

조회장의 연임안 표결이 진행된 주주총회에서 대한항공 지분 11.56%를 가진 국민연금이 이례적으로 주주권을 행사하고 연임 반대입장을 밝힌 것이 결정적이었다.

당시 조 회장의 대한항공 사내이사 선임은 주주총회 참석 주주의 지분 가운데 3분의 2 이상의 동의를 받아야 했다. 하지만 표결 결과 연임 승인을 위한 찬성표 66.6%2.5%가 모자란 64.1%가 나왔다. 이에 따라 조회장은 지난 1999년 대한항공 대표이사 자리에 오른 지 20년 만에 이사직을 박탈당했다.

물론 대한항공의 사장이자 조 회장의 아들인 조원태 사장을 통해 경영에 간접 개입할 수 있고 한진그룹 회장 자리는 유지하는 등 실효성에 의문이 남아있는 실정이다. 대한항공 측 역시 조회장의 이사 연임 실패를 경영권 박탈로 해석하는 것을 경계하고 있다.

하지만 대한항공이 이른바 스튜어드십 코드의 첫 번째 타깃이 되면서 사실상 정부도 한진가 사태에 개입하는 등 상징적 의미 역시 적지 않다는 평가다.

한편 조회장의 사내 연임이 불발된 주주총회 당일 대한항공 및 한진그룹 계열사의 주가는 급등했다. 27일 대한항공의 종가는 전일대비 800(2.47%) 상승한 32,000원에 거래를 마쳤다. 어제 2일 종가 역시 32,050으로 조회장의 대한항공 이사 퇴임 이후 소폭 상승했다. 이에 이번 주총 결과는 악재가 아닌 호재로 평가되고 있다. 한진해운이 파산에 이어 조양호 회장까지 대한항공 이사 자리에서 쫓겨나면서 '조중훈 초대 회장'이 한진을 육해공 전반의 수송 그룹으로 만들겠다는 사업 목표는 이뤘지만 자식농사는 소홀했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이근탁 기자 maximt2@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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