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을권리vs생명윤리, 다시 떠오른 안락사 논쟁
죽을권리vs생명윤리, 다시 떠오른 안락사 논쟁
  • 이근탁 기자
  • 승인 2019.04.10 13:1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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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 2명 안락사 위해 스위스행
중립적인 제도 '연명의료 결정제도'

[한국뉴스투데이] 최근 안락사를 받기 위해 스위스로 떠난 한국인 2명의 안타까운 소식이 국내에 알려지면 원정 안락사 실태가 논란이 된 가운데 지난해 2월 국내에 도입된 연명의료 결정법에 대한 관심이 모이고 있다.

▲'조력자살'을 돕는 스위스 비영리단체 '디그니타스' 사옥 (사진/디그니타스)
▲'조력자살'을 돕는 스위스 비영리단체 '디그니타스' 사옥 (사진/디그니타스)

원정 안락사, 목적지는 스위스

스위스는 지난 1946년부터 안락사가 공공연하게 이뤄졌지만 그만큼 논란도 많다. 2006년 스위스 연방대법원이 안락사를 공식 허용하면서 내국인은 물론 해외에서도 안락사를 위해 입국하는 사례가 증가하는 추세다.

네덜란드 벨기에 등 일부 유럽 국가는 물론 미국 7개 주에서도 안락사를 허용하고 있지만 스위스가 원정 안락사의 대표 국가로 떠오른 이유는 외국인에게도 안락사를 허용하며 비영리단체를 통한 안락사 인프라가 잘 갖춰진 곳으로 꼽히기 때문이다.

안락사라는 개념은 크게 적극적 안락사‘, ’소극적 안락사그리고 조력자살로 나뉜다. 적극적 안락사는 의사가 환자에게 독극물을 주입하는 등 사망을 앞당기는 방식으로 사실상 타살에 가깝다. ‘소극적 안락사는 식물인간 등 자력으로 생존할 수 없는 환자에게 영양공급, 약물 투여를 중단하는 것이다. ‘조력자살은 의사가 환자에게 독극물을 처방해 환자가 이를 직접 주입하는 것으로 자살로 볼 수 있다.

현재 스위스에서 허용하고 있는 안락사 방식은 조력자살로 현장에 경찰관이 입회해야 하며 누군가에게 대신 (독극물) 약을 먹이거나 주사기를 대신 누르는 행위가 금지되는 등 엄격한 과정을 거쳐야 한다. 참고로 우리나라 법률은 조력자살을 불법으로 규정한다. 국내에서 조력자살을 시도할 경우 이에 관여한 가족이나 의료진이 자살방조죄에 해당돼 ‘1년 이상 10년 이하의 징역형에 처할 수 있다.

2016년과 20182명의 한국인에 대한 안락사를 도운 비영리 단체 디그니타스는 지난 1998년 설립 이후 2018년까지 약 2100명에 대한 안락사를 도운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디그니타스에 회원으로 등록한 한국인은 47명이며 다른 안락사 비영리 단체 엑시트 인터내셔널에도 한국인 회원 60명이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100여 명의 한국인들이 안락사를 위해 스위스 출국을 대기하고 있는 상황이다.

보라매 병원 사건

우리나라에서 안락사, 연명치료 등 죽음에 관한 논쟁이 본격적으로 공론화되기 시작한 것은 지난 1997년 보라매 병원에서 벌어진 한 사건이 계기가 됐다.

당시 병원에는 머리를 다쳐 자발 호흡을 하지 못하는 김 모 씨가 입원해 있었다. 인공호흡기 없이는 생존이 불가능한 상황이었지만 그의 아내는 병원 측에 퇴원을 요구했다. 이미 270만 원에 이르는 병원비가 발생했고 추가적으로 드는 병원비를 감당할 수 없다는 입장이었다.

특히 김 모 씨는 사업에 실패한 이후 별다른 소득활동을 하지 않았으며 가족들에게 폭행을 하는 등 김 씨의 아내와 가족 입장에서는 비싼 병원비를 감당하며 치료를 이어갈 이유가 없었다.

결국 의료진의 만류에도 126일 김 씨의 아내는 병원 측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겠다는 서약서를 제출한 끝에 퇴원수속을 진행했다. 의료진은 김 씨를 자택까지 이송하고 김 씨 아내에게 환자의 상태 등을 설명한 후 인공호흡기를 제거했다. 5분 뒤 김 씨는 그 자리에서 사망했다.

추후 김 씨의 친척들이 김 씨의 아내와 의료진을 고소했다. 법원은 김 씨 아내에게 부작위에 의한 살인죄로 징역 3년 집행유예 4년을 선고했고, 김 씨의 주치의와 퇴원에 관여한 레지던트에게 작위에 의한 살인 방조죄를 적용해 징역 16개월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법원 역시 정상을 참작해 실형을 선고하지는 않았지만 보호자의 요구에 따라 치료를 중단해도 처벌받을 수 있다는 판례가 생겼다. 이에 의학계는 물론 종교, 인권단체 등에서 안락사와 법원 판례에 대한 입장표명에 나서는 등 보라매병원 사건은 세간의 화제였다.

호스피스 완화의료 병동을 선택한 환자들 (사진/포항의료원)
호스피스 완화의료 병동을 선택한 환자들 (사진/포항의료원)

연명의료 결정제도

현재 우리나라는 안락사를 허용하지 않고 있다. 다만 지난해 2호스피스·완화의료 및 임종과정에 있는 환자의 연명의료 결정에 관한 법률통칭 연명의료결정법이 통과됨에 따라 환자와 가족이 연명치료의 4가지 대표 수단인 심폐소생술, 인공호흡기, 혈액투석, 항암제 투여를 거부할 수 있게 됐다.

스위스처럼 안락사를 인정하지는 않지만 환자의 의미 없는 연명치료를 할지, 말지 결정할 권리는 인정한 것이다.

지난 2월 보건복지부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연명치료를 거부하는 내용이 담긴 사전 연명의료 의향서를 제출한 국민은 115천여 명이며 이중 36천여 명이 연명의료 결정을 이행했다.

특히 현재 임종과정에 있는 환자 중 59.1%는 암 (말기) 환자로 하루하루 진통제 없이는 생활이 불가능할 정도로 고통을 호소하고 있다. 이밖에 연명의료 중단을 통해 치료 고통에서 벗어나 존엄사를 맞은 사례가 속속 알려지면서 우리나라도 안락사를 도입해야 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쟁점은 품위 있는 죽음 vs 생명윤리

지난 2016년 서울대병원 가정의학과 윤영호 교수팀은 7월부터 10월까지 국내 12개 병원에서 일반 국민 1241명 을 대상으로 무의미한 연명치료 중단, 소극적 안락사, 적극적 안락사등 삶의 마지막 중재 방식에 대한 태도를 조사했다. 조사 결과 각각 89.5%, 66.5%, 41.4%, 의 찬성 의견을 보였다.

특히 이번 설문조사는 우리나라 국민 10명 가운데 6명 이상이 소극적 안락사에 찬성한다는 점을 시사했다. 다수의 국민이 찬성 의견을 보임에도 우리나라 입법부가 섣불리 안락사 제도를 도입하지 못하는 이유는 윤리, 종교, , 의학 등의 문제가 복합적으로 얽혀있기 때문이다.

현재 안락사에 대한 찬반 주장에 여러 가지 근거가 있지만 품위있는 죽음생명윤리가 대표적이다.

먼저 안락사를 찬성하는 측은 환자의 품위있는 죽음을 보장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뇌사상태 등으로 일상생활을 할 수 없거나 극심한 고통을 호소하는 환자들이 무의미하게 병실에 누워 생존하는 것을 인간다운 삶이라고 할 수 없다. 때문에 환자나 가족의 뜻에 따라 죽음을 선택하게 하는 것이 오히려 인도적인 조치라고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여기에 환자의 가족들이 감당해야 하는 병원비 등 경제적 부담까지 고려한다면 안락사 도입의 명분이 충분하다는 설명이다.

반면 안락사를 반대하는 대표적 근거는 생명윤리로 인위적으로 치료를 중단하거나 죽음에 이르게 하는 행위는 살인과 다름이 없다는 입장이다. 또한 환자가 노동과 같은 사회적 기능을 하지 못하거나 의식이 없다고 해서 삶의 가치가 없는 것은 아니며 안락사를 허용할 경우 생명을 경시하는 풍조가 만연 할 거란 주장이다. 여기에 안락사 제도가 악용될 수 있는 소지가 있고 추후 환자의 병세가 회복될 가능성 등을 고려하면 안락사 도입을 반대하는 명분 또한 충분하다.

한편 국회는 지난 1997년 보라매병원 사건을 계기로 21년 만에 연명의료 결정제도를 도입했지만 어디까지나 중립적 제도로 평가받고 있다. 안락사에 대한 찬성 측과 반대 측의 요구를 모두 수용하지 못하는 실정이다. 내일 11일 헌법재판소가 낙태죄 폐지에 관한 선고를 앞 둔상 황에서 안락사제도 역시 다시 논의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이어지고 있다.

이근탁 기자 maximt2@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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