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통영국제음악제, 압두라이모프 리사이틀
2019 통영국제음악제, 압두라이모프 리사이틀
  • 김희영 기자
  • 승인 2019.05.14 09:5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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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메랄드빛 바다와 선율에 기댄 하루
4월 1일 오후 통영국제음악당 콘서트홀
▲지난 4월 1일(월) 오후 7시 30분에 진행된 2019 통영국제음악제에서 피아니스트 압두라이모프 리사이틀이 진행되었다.
▲지난 4월 1일(월) 오후 7시 30분에 진행된 2019 통영국제음악제에서 피아니스트 압두라이모프 리사이틀이 진행되었다.

[한국뉴스투데이] 음악인들에게 통영은 윤이상의 도시이다. 윤이상은 세계적으로 유명하지만, 좀 더 살펴보면 통영에는 시인 김춘수, 소설가 박경리, 화가 전혁림, 시인 김상옥 등 숱한 예술가를 만날 수 있다. 왜 통영에는 이토록 아름다운 예술가들이 많이 탄생했을까? 지난봄에 바라본 통영의 앞바다를 보고 느낄 수 있었다. 이 도시가 가진 매력이 음악과 함께 어우러진다면 얼마나 아름다울까? 한껏 들뜬 마음으로 통영국제음악당을 찾았다. 피아니스트 베조드 압두라이모프는 리스트와 프로코피예프의 작품으로 레퍼토리를 꾸몄다.

좀더 자유로웠던 리스트 피아노 소나타
압두라이모프는 그동안 내한했던 많은 서양 연주자들의 무대와 다른 느낌을 주었다. 일반적으로 기교를 과시하는 경향이나 힘으로 떨어뜨리는 연주보다는 음악을 아름답게 꾸미는 서정적인 노력이 두드러지는 연주를 했다.

첫 곡 바그너 트리스탄과 이졸데사랑과 죽음은 연결페달의 자유로움을 통해 프레이징 처리를 분명히 이어갔다. 음악극에서 주로 다루는 격정적인 사랑에 대한 복잡한 감정을 강한 타건으로 표현하며 첫곡을 화려하게 열었다.

리스트의 피아노 소나타 b단조 S.178은 마치 미지의 문을 열고 들어가는 세계로 안내하듯 긴장감 넘치게 출발했다. G음의 4분음표 스타카토가 타건되는 순간 리스트의 세계로 입문해야할 것 같은 느낌을 조심스레 드러냈다. 도약에서 굉장한 자신감을 선보인 압두라이모프는 후반부로 갈수록 쇼팽의 루바토를 떠올리게 했지만, 그와는 다른 느낌을 주어 신선했다. 명확한 스타카토, 강약의 대비, 힘찬 베이스 조절이 돋보였는데 곡의 구성이 다른 리스트의 소나타보다 좀 더 자유로운 이 작품 자체에 초점을 두고 연주한 점이 인상 깊었다.

▲다양한 색채감으로 무장한 무대를 선보인 피아니스트 압두라이모프
▲다양한 색채감으로 무장한 무대를 선보인 피아니스트 압두라이모프

다양한 색채감이 녹아있는 로미오와 줄리엣
사실 이날의 가장 큰 감동은 프로코피예프의 로미오와 줄리엣 중 10개의 소품이었다. 첫 번째 민속춤은 알레그로 지오코소답게 생기 있게 뛰놀며 8분의 6박자의 선율을 통통 튀듯 끌고 가며 경쾌한 리듬을 표현했다. 두 번째 거리의 싸움은 리듬을 쪼개어 다시 돌아올 때의 탄성이 자연스러웠다. ‘줄리엣 아가씨는 화음의 균형과 물결치듯 거대하지만, 조심스러운 아르페지오로 끌고 간 후 무도회로 연결하며 엄청난 파워를 쏟아 부었다.

몬테규가와 카풀렛가는 일본 드라마 노다메 칸타빌레의 테마 음악으로 잘 알려진 작품이다. 어쩌면 프로코피예프의 로미오와 줄리엣중 가장 유명한 작품에 속하는데, 크고 둔탁한 코끼리가 한발한발 내딛는 것처럼 풍부한 저음영역의 포인트가 인상적인 작품이다. 하지만 이곡은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압두라이모프는 에너지를 아낀 듯했다. 압두라이모프의 저음은 무겁고 둔탁한 것보다는 좀 더 라이트한 음색을 표현하고 사운드보다 붓점 리듬에 집중했다. 아마도 다음 작품의 에너지를 위해 철저히 밸런스 조절을 염두에 뒀겠지? 다행히도(?) 2주제가 이어지는 서정적인 부분에서는 압두라이모프가 내고 싶은 음량을 보았다.

로렌스 신부님은 신앙고백이 수줍게 이어지는 것처럼 느낌을 주었고, ‘백합꽃을 든 소녀들의 춤에서는 첫 음을 무심한 듯 툭툭 내뱉으며 마치 수줍은 소녀의 장난스런 발걸음처럼 들렸다.

이번 연주에서 가장 중요했던 건 그의 왼손이었다. 전반적으로 작품을 연주하는 동안 가장 안정감을 주었던 압두라이모프의 왼손테크닉은 정말 놀라웠다. 30여분 동안 다양한 색채감으로 무장한 무대를 선보인 압두라이모프에게 다시 한번 박수를 보내고 싶다.

3월 내내 마감하느라 힘들었던 내게 단비 같았던 12일의 통영.
대한민국의 도시 중 예술에 대해 가장 관대하고 깨어있는 도시를 꼽자면 통영을 1순위에 올려두고 싶다. 아름다운 바다와 함께 음악이 영글었던 이번 무대는 힐링 그 자체였다. 내년 통영국제음악제는 과연 어떤 라인업과 연주로 청중을 찾아갈까? 내년에도 통영의 바다는 지금과 같은 얼굴로 나를 맞아주겠지?

(사진/ 통영국제음악제)

김희영 기자 dud056@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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