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의 딜릴리( Dilili à Paris ) .... 아름다운 시절의 빛과 그리고 그림자
파리의 딜릴리( Dilili à Paris ) .... 아름다운 시절의 빛과 그리고 그림자
  • 곽은주 기자
  • 승인 2019.06.05 11:0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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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의 경지는 깊고 넓다
사진 제공= 오드
사진 제공= 오드

영화의 모태는 사진이다. 최초의 영화는 다큐멘터리에서 시작됐다. 뤼미에르 형제의 <공장을 나서는 노동자들>(1895). 형제는 사진 공장에서 퇴근하는 직원들의 움직임을 시네마토그라프라는 촬영기로 찍었다. 현실 상황을 있는 그대로 찍어낸 것이 영화의 첫 출발이다. 뤼미에르 형제로부터 시작된 영화는 조르주 멜리에스에 이르러 비로소 이야기체 영화가 된다. 다큐를 넘어선 허구적 세계를 보여준 최초의 영화는 조르주 멜리에스의 < 달나라 여행>(1902). 영화를 예술의 경지로 끌어 올렸다는 평가를 받는 스웨덴의 잉그마르 베르히만은 영화란 다큐멘터리가 아니다라고, 영화의 초현실적인 부분을 역설하지만 여하튼 영화의 출발은 움직이는 사진이었다. 활동사진 같은 영상을 만든 초기 영화들처럼, 한 장 한 장의 사진에 새 옷을 입혀서 탄생한 영화가 <파리의 딜릴리>.

사진 제공= 오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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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세기 애니메이션의 명장으로 불리는 미셸 오슬로’(1943). 그는 새 작품을 준비하면서 4년간 파리 곳곳의 건물과 풍경을 카메라에 담았다. 이유인 즉은 벨 에포크’(Belle Époque)시대를 배경으로 한 <파리의 딜릴리 : Dilili à Paris>(2018)의 맞춤한 밑그림으로 쓰기 위함이다. 사진에서 현대의 흔적을 다 지우고 감독은 그 위에 19세기를 새롭게 덧입힌다. 어떤 부분은 손으로 직접 그리고, 또 어떤 부분은 그래픽 작업을 통하여 파리가 새롭게 탄생한다. 화면에 채색된 파리의 풍경은 그 자체가 한 권의 아름다운 화첩. 예술의 경지를 무한 확장하는 감독의 예술적 통찰력에 헉!! 탄성이 절로 나온다.

<파리의 딜릴리>벨 에포크시대라고 불리는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를 배경으로 한 애니메이션. '좋은 시대', ‘아름다운 시절이란 뜻의 '벨 에포크'는 보통 1871년부터 제1차 세계대전 직전인 1914년까지를 지칭 하는데, 이 당시 유럽은 식민지 정책으로 제국주의가 극에 달하던 시대다. 아이러니하게도 유럽 열강의 풍요는 식민지의 자원과 원주민들의 피와 눈물을 토대로 한 것일 터. 그 터 위에 파리는 예술의 르네상스를 누린다.

사진 제공= 오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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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속의 숨은 그림 찾기

영화의 주인공인 딜릴리는 카나키에서 온 소녀. 카나키가 도대체 어디에 있나? 궁금하여 세계지도를 펼쳐 놓고 찾아 봤다. 처음엔 아프리카 어디쯤에 사는 소수 민족인줄 알았다. !! 아프리카대륙이 아니었다. 맨붕. 그러면 어디? 피부색에 각인된 고정관념이 무참히 무너지는 순간이다. 무지함이 극에 달했다.  ‘카나키란 태평양 남서부에 있는 프랑스령의 뉴칼레도니아(프랑스어로는 누벨칼레도니로 1853년 프랑스 자치령)’섬의 원주민을 말한다. 카나키인들은 1985년부터 카나키민족해방전선을 결성하여 뉴칼레도니아의 독립을 요구했다. 1998년 누메아 협약 이후 프랑스로부터 자치권을 얻었지만, 아직도 프랑스 의존도가 높은 프랑스의 해외 영토이자 특별집합체다. ‘뉴칼레도니아섬은 천국에서 가장 가까운 섬으로 불리는 오세아니아 주의 아름다운 섬이라는 설명이 백과사전에 적혀 있다. 그곳에서 온 어린 소녀를 주인공으로 한 오슬로 감독의 속 깊은 의도가 어림짐작 된다. 자주독립을 갈망하는 카나키원주민들의 목마른 갈증이 태평양 바람에 실려서 파리까지 도착했구나. 딜릴리!! 윙윙 전율이 일었다. 

식민지로부터 풍부한 자원이 공급되고 원주민의 무한 노동력이 유럽을 먹여 살린 시대. ‘카나키원주민들의 생활을 동물원의 원숭이를 구경하듯 구경거리로 소비하는 시대. 남편 이름으로 책을 출판하던 시대, 여성의 투표권이 없던 시대(프랑스는 1944년에 여성의 투표권이 인정), 부조리하고 부당한 현실을 감독은 힘없는 어린 여아들의 유괴 사건으로 변주하여 시대의 메시지를 전달한다.

사진 제공= 오드
사진 제공= 오드

아름다운 시절 배후의 진실

유괴 사건이 연이어 신문에 대서특필 되어도 무랭루즈에서는 캉캉 춤이 어른들을 매혹시키고, 캉캉을 추는 라 글뤼의 춤사위를 툴루즈 로트레크‘(1864-1901)는 포스터로 그린다. 이 포스터는 지금까지도 사랑받는 그림.광대 쇼콜라도 무대를 장악하고, 연극배우 사라 베르나르’(1844-1923)는 시대의 아이콘으로 우아함을 압도한다. 허름한 카페 한 귀퉁이에서 에릭 사티’(1867-1938)의 피아노 연주가 흐르고 그 연주에 맞춰서 주인공 오렐은 유유히 춤을 춘다. 입신양명 성공을 위하여 피카소는 고국 스페인을 떠나 파리의 허름한 아파트인 일명 세탁선(바토라부아르. 영화에 등장)’이라 불리는 작업실에서 야수파의 창시자인 알리 마티스(1896-1954)와 조우한다. 세탁선은 젊은 화가들의 작업실. 그곳에서 입체파라는 새로운 미술시대를 연다. ‘로댕’(1840-1917)의 조수로 로댕의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한 까미유 글로델’(1864-1943)은 끝끝내 정신병원에서 생을 마감한다. 무정부주의자이자 여성 인권 운동가인 루이즈 미셸’(1858-1942)은 국외로 추방당하기도 한다. 반면 남편의 그늘에 가려있던 콜레트’(1873~1954)는 당당이 자신의 이름으로 여성주의 소설들을 발표한다. ‘마리 퀴리’(1869-1934)와 그녀의 딸 이브 퀴리는 'X선 사진' 실용화에 성공하여 1차 대전 상시 실용화 한다. 벨 에포크 시대를 주도한 여성 선구자들. 영화의 장면마다 당시 문화를 주도한 인물들이 파릇하게 살아 숨 쉰다.

영화는 딜릴리와 배달부 소년 오델그리고 당시 카르멘 역으로 유명했던 엠마 칼베’( 1858-1942)이 극을 이끌어 간다. ‘칼베의 노래와 목소리는 콜로라투라의 최고 가수인 프랑스의 나탈리 드세이’(1965)가 맡았다. 드세이는 영화 O.S.T까지 참여하여 가브리엘 야레 음악 감독의 결 고은 음악을 더 없이 청아하게 빛내 준다. 드세아는 2014년 내한 공연으로 국내 팬들을 열광시켰던 세계적인 디바.

사진 제공= 오드
사진 제공= 오드

벨 에포크시대. 그러나 아름다운시대 속의 그늘이 깊고 깊다. 감독은 아름다운시대 속에 숨겨진 부패와 부도덕을 감춰진 파리 지하의 하수구처럼 보여 준다. 화면이 너무 황홀하고 아름다워서 처음엔 감독의 깊은 뜻을 쉽게 간파하지 못 했다. 두 번째 보고 나서야 감독의 의중이 어렴풋이 짐작될 뿐, 영화는 무한한 상상을 준다. 그만큼 메시지의 울림이 깊고 넓다. 영화를 준비하면서 수도 없이 자료들을 뒤적였을 감독의 조심스런 손이 생각할수록 아름답다. 세밀한 손끝에서 무한 확장된 사유의 시간들이 빚어 놓은 빛의 향연과 칠흙 같은 어둠의 세계라니. 빛과 어둠으로 창조된 장르가 바로 영화 아니던가. !! 보면서 눈물이 났다.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으로 극장이 신드롬에 빠져 있지만, <파리의 딜릴리>는 그 보다 한 수 위라는 감탄은 쉽게 떨쳐지지 않는다. 작열하는 여름 태양 아래 농익은 복숭아 맛 같다. 오래오래 친구처럼 곁에 두고, 두고두고 보고 싶은 영화다.

지난 2월 제44회 프랑스 세자르영화제에서 최우수 애니메이션상 수상. 2018년 앙시국제애니메이션 페스티벌 개막작 등 다수의 국제 영화제에 초청된 명작.

곽은주 기자 cineeun60@nat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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