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세종문화회관 김종문 무대감독
【인터뷰】 세종문화회관 김종문 무대감독
  • 김희영 기자
  • 승인 2019.06.10 10:3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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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객과 예술가를 잇는 시선
▲세종문화회관 김종문 무대감독
▲세종문화회관 김종문 무대감독

공연 시작 1분 전, 타종이 울리자 객석을 비추는 조명이 서서히 암전된다. 백스테이지를 은은하게 비추는 노란빛. 곧 시작되는 비어있는 무대를 지켜보는 관객과 예술가의 긴장감이 최고조에 이른다.

무대로 향하는 문이 열리기 전, 깊은 상념에 잠기는 연주자의 시간을 묵묵히 기다려 주고 응원해 주는 사람이 있다. 그는 연주자가 힘찬 발걸음을 내디딜 때 제일 먼저 박수를 쳐준다. 눈빛만으로도 연주자에게 힘을 실어줄 수 있는 사람, 바로 무대감독이다.

무대감독은 2시간 동안 무대 위를 무사히 항해하고 올 수 있도록 키를 잡고 있는 선장입니다. 관객이 입장했을 때 돛을 올리고 무사히 공연이 끝나고 관객이 퇴장하면 그제야 돛을 내리죠. 처음부터 끝까지 관객과 예술가를 잘 이어주고 최고의 공연이 될 수 있도록 운행해야 하는 책임과 권한이 있는 사람입니다.”

김종문 감독은 오랜 시간동안 세종문화회관의 백스테이지를 굳건히 지키고 있다. 그와의 대화를 지면으로 옮겨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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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자기소개 부탁드릴게요.

안녕하세요. 세종문화회관 무대감독 김종문입니다. 지금은 무대책임 안전관리자로서도 일하고 있어요.

무대감독이 되고 싶었던 순간이 있었을 것 같아요.

어렸을 때부터 음악을 좋아했어요. 팝송, 클래식 등 장르 구분 없이 들을 수 있을 때 다 찾아 들었던 것 같아요. 저는 특히 노래하는 걸 너무 좋아했습니다. 정식으로 배우지는 않았지만 사람들 앞에 나서서 노래하는 걸 두려워하지 않았어요. 자연스레 흥얼거리다 보니 노래를 많이 들을 수 있는 곳을 찾았고, 그곳이 공연장이었어요. 그때부터 공연장에 발을 들이게 되었고 직업으로 이어졌던 것 같아요.

무대감독은 어떤 일을 하는 사람인지 감독님의 시선에서 여쭙고 싶습니다.

무대감독은 명확하게 이런 일을 하는 사람이라고 단정 짓기 어려운 직업이에요. 안 좋은 표현으로 이야기하자면 박쥐같은 사람들이죠. 그 이유는 현장에서 연출가가 만들어 놓은 과정을 체크하고, 다 완성되었을 때는 총괄 진행을 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다 보니 무대감독은 테크니컬 지식을 많이 알고 있어야 함은 물론, 연출가 뺨칠 정도로 대본을 분석하는 능력과 모든 동선을 다 외워야 합니다. 그래서 이쪽도 아니고 저쪽도 아닌 박쥐같은 사람이 되어야만 가장 원활하게 공연을 진행할 수 있죠.

▲부드러운 카리스마로 아티스트의 생각을 조율하는 김종문 감독의 듬직한 어깨
▲부드러운 카리스마로 아티스트의 생각을 조율하는 김종문 감독의 듬직한 어깨

무대감독이 되기 위한 필요한 역량이 있다면요?

무대감독을 직역하면 스테이지 매니저(stage manager)잖아요. 테크니컬 디렉터(Technical Director)는 기계를 다루는 사람들인데, 이들도 무대감독을 스테이지 매니저라고 합니다. 배우와 연출부, 그리고 스태프(무대 디자이너, 라이팅 디자이너, 소품 디자이너, 의상 디자이너) 등을 총괄해서 공연이 올라가기 전에 매니징을 계속하면서 그들과의 의견을 조율하는 작업이죠. 그래서 모든 방면을 열린 시각으로 알고 있어야 합니다.

말씀을 들어 보니 굉장히 포괄적인 의미를 담고 있는 것 같아요.

그렇죠. 지금도 그럴지 모르지만 간혹 무대감독은 검은 옷을 입고 무대 전환할 때 악기를 옮긴다거나 스테이지의 문을 열어주는 표면적인 일을 한다고 알고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래서 몇몇 학생들은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쉽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데, 단순히 그렇게 해석하면 안 됩니다. 늘 어떤 변수가 생길지 모르는 무대에서 항상 긴장을 늦춰서는 안 되는 직업이에요.

다년간 무대감독으로 활동하면서 제일 인상적인 일화는 무엇인가요?

인터미션 후 연주자가 무대로 나가야 하는데, 못 올라가더라고요. 조명은 이미 다 켜진 상태였죠. 저는 그분께 어떠한 상황인지, 안위도 묻지 않았어요. 굳이 물어보지 않아도 그분의 심정을 느낄 수 있었으니까요. 저는 가만히 바라보며 기다려주었죠. 그분은 신인 연주자가 아닌 중견 아티스트 교수였습니다. 아무래도 일시적인 긴장감 때문에 호흡이 불안정하셨던 것 같았어요. 보통 흐름이 30초 정도 끊기면 객석에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립니다. 그리고 1분 정도가 끊기면 스태프가 달려오죠. 당시 저는 스태프에게 올 스탑(ALL STOP)을 시켰어요. 그리고 무조건 기다렸습니다. 그렇게 몇 분 정도 지나자 그분이 준비가 되었다며 고개를 끄덕거리셨어요. 다행히 그 공연은 성공적으로 마쳤습니다. 그러고 나서 세 달 후에 그분이 한 손에 선물을 들고서 저를 찾아오셨어요. 저는 한사코 거절했지만, 감사한 마음을 꼭 받아달라고 하시면서 건네주시더라고요. 그분은 국내외에서 공연을 많이 해봤지만 무대감독이 그렇게 말없이 기다려준 건 처음이었다면서 덕분에 편안하게 노래를 부를 수 있었다고 고마워하셨습니다.

묵묵히 기다려주셨던 이유가 분명히 있었을 것 같아요.

최상의 공연을 보여줘야 하는 무대에서 단지 시간 관계상 연주자를 무대에 밀다시피 들여보내면, 결국은 컨디션이 안 된 그분은 노래를 잘 못 할 것이고 관객들이 받아 갈 감동도 그만큼 적어질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분이 컨디션을 회복할 때까지 기다리는 게 저의 할 일이라고 말씀드렸죠. 예전에 발행되던 세종문화회관 월간지에 기고했던 내용이 바로 이거였어요. 제목도 생생히 기억납니다. ‘아직도 마시지 못한 양주였죠.(하하)

이 이야기를 꺼낸 이유는 단순히 음악회를 진행하는 건 누구나 할 수 있지만, 결국은 어떤 공연이든 아티스트와의 커뮤니케이션이 제일 중요하다는 겁니다. 또한 연주자만 관객과 호흡하는 게 아니라 저희 스태프도 함께 현장의 분위기를 읽고 최상의 감동을 주고자 노력하며 호흡해야 하죠. 그런 의미로 무대감독의 자세는 굉장히 중요합니다.

▲관객과 호흡할 수 있는 무대를 만들어 간다는 것은 혼자만의 고독한 순간이기도 하다.
▲관객과 호흡할 수 있는 무대를 만들어 간다는 것은 혼자만의 고독한 순간이기도 하다.

무대감독으로 활동하면서 터득한 연주자와 관객의 신뢰를 쌓는 방법이 있나요?

일반 클래식 음악회로 예를 들면, 음악회로 그들을 만나는 시간은 굉장히 짧습니다. 반면 뮤지컬이나 연극, 무용은 연습 기간 내내 보니 서로 신뢰가 쌓이는 시간이 충분하죠. 하지만 단발성 음악회의 경우 하루 이틀 만나더라도 그들이 어떤 걸 원하는지 사전 스태프 미팅을 통해 미리 파악하고 있습니다. 단지 대화만 통한다면 아주 두텁기는 무리겠지만 어느 정도 신뢰가 쌓이는 거죠. 때로는 무리한 요구를 하는 아티스트에게는 약간의 아집을 부려서라도 절충안을 찾아야 합니다. 중요한 건 아티스트가 무대감독을 믿고 편안하게 공연을 준비할 수 있도록 하는 것. 이거 하나면 됩니다. 연출이 원하는 것과 플레이어들이 원하는 것을 연결하되 조정하면서 매니징해 주는 거죠. 그래서 무대감독은 처음부터 끝까지 매니징이라고 말하고 싶네요.

그리고 제일 중요한 건 공연 들어가기 전에 절대 플레이어를 기분 나쁘게 하면 안 됩니다. 이것 때문에 손해 보는 사람은 곧 관객이니까요. 플레이어의 최상의 컨디션에서 능력을 끌어낼 수 있는 것, 이건 어느 장르든 다 마찬가지예요.

무대는 워낙 변수가 많은 현장입니다. 긴급한 상황이나 사고는 어떻게 대처하나요?

예상치 못한 변수가 발생하면 무대감독은 3초 안에 결정해야 합니다. 공연을 중단할 건지 계속 이어갈 건지는 3분 안에 결정해야 하고요. 그 안에 결정을 못 하면 관객에게 신뢰를 잃을 수 있습니다. 만약 배우가 무대 위에 올라가서 이제 난 자유로워질 거야!”라는 대사를 해야 한다고 가정해 봅시다. 그런데 실제 무대에 오른 배우는 실수로 몇 컷을 넘긴 다다음 신을 이야기하는 경우가 있어요. 이는 몇 개의 컷과 몇 개의 음향 큐가 전부 어그러지는 순간입니다. 이때 누가 상황을 지시하고 결정을 내릴까요? 바로 무대감독입니다. 절대 당황하지 말고 플레이어가 최대한 자연스럽게 끌고 갈 수 있도록 모든 세트와 스태프가 자연스럽게 넘어가야 합니다. 객석에서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 말이죠. 공연이 시작하고 끝날 때까지의 총괄 지휘자는 오로지 무대감독입니다.

가장 아찔했던 기억도 여쭤보고 싶어요.

88잔디마당에서 진행했던 야외무대였어요. 트러스 구조물을 세워 두었는데, 돌풍이 너무 부는 바람에 박아 놓은 안전장치들이 흔들리기 시작하는 거예요. 공연 시작 30분 앞두고 바람이 잦았는데 그때 정말 무너질 뻔했어요. 정말 아찔했습니다. 이렇게 공연장은 많은 위험에 노출되어 있습니다. 이에 대한 대처능력은 무대감독과 스태프들의 자질에 달려 있어요. 그래서 매 순간 안전점검을 게을리하지 않고 진행해야 하고, 자질 함양을 위해서 공부를 많이 해야 합니다.

▲현재 그는 세종문화회관 무대감독과 함께 무대책임 안전관리자로서도 의무와 역할을 다하고 있다.
▲현재 그는 세종문화회관 무대감독과 함께 무대책임 안전관리자로서도 의무와 역할을 다하고 있다.

일하면서 보람을 느낄 때는 언제인가요?

아무런 사고 없이 공연을 끝났을 때가 가장 기뻐요. 거기에 관객이 많으면 더 좋은 거죠.(하하) 그뿐입니다. 무대감독이 공연을 한 달을 하면 한 달 내내 같은 공연을 하잖아요. 사람들은 똑같은 공연을 반복해서 보면 지겹거나 질리지 않는지 많이 물어보세요. 그러나 저희에겐 똑같은 뮤지컬을 한 달 내내 한다고 해도 매일매일 다른 공연입니다. 그날의 현장 분위기가 다르고 배우 컨디션도 다 다르기 때문에 매일 새로운 공연이고 항상 긴장하는 공연입니다. 무엇보다 객석을 찾는 청중들이 다 다르잖아요. 저희에겐 절대 같은 공연이 아닙니다. 그래서 지루할 틈이 없죠.(하하) 이렇게 매번 다른 공연을 플레이어들과 함께 만드는 것 자체로도 크나큰 보람입니다.

무대감독이 되어야 하는 절차나 조건이 있다면요?

최근 우리나라 몇 개의 학교에 무대감독학과가 생겼어요. 이전에는 무대조명, 무대음향 관련 학과가 있었지 무대감독학과로 생긴 건 최근이에요. 조명과 음향 쪽은 자격증 과정이 있는데, 아직 무대감독 관련해서는 그러한 과정이 없습니다.

아무래도 무대감독이 되기 위해서는 관련 학과를 나오면 더 좋겠죠? 드라마를 이해할 수 있어야 하니 연극영화과나 공연과 관련된 학과가 해당되겠네요. 하지만 관련 학과에만 들어간다고 답은 아닙니다. 끊임없이 공부를 해야 합니다. 공연 역사뿐만 아니라 지식도 계속 학습해야 합니다.

기본적으로 꼭 공부해야 할 상식이 있다면요?

무조건 전기를 알아야 해요, 음향부터 조명 등 무대는 모든 게 전기로 이루어집니다. 그래서 전기에 대한 상식은 필수이고요. 그다음에 파트별 장비의 특성에 대해 지식이 있어야 합니다. 예를 들어서 컴프레셔(compressor) 무빙라이트(moving light)과 무빙워시(moving wash)는 각각 어떤 특성이 있는지, 그리고 그 특징에 따라 어떻게 만지고 관리해야 하는지 등에 대해서 말이죠. 그렇기 때문에 공부는 본인이 스스로 해야 하고, 전반적인 지식이 있어야 커뮤니케이션을 할 수 있습니다.

학생들에게 조언해 주고 싶은 이야기가 궁금합니다.

무대감독이 되길 원하는 학생들에게는 기본적인 절차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싶어요. 대부분 연극영화과나 뮤지컬과가 있는 학교에 가면 무조건 작품을 올리게 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한 작품을 만드는 과정에서 플레이어와 스태프는 절대적으로 필요하죠. 저는 저마다 특성이 다른 학교를 파악해서 본인이 하고자 하는 방향과 잘 맞는 학교를 찾아 공부하길 추천하고 싶어요. 기본적으로 학교에서 워크숍이나 졸업작품전을 하기 때문에 거기서 조금씩 배울 수 있어요. 그래서 기본 틀은 이해하고 시작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학교 공부보다 중요한 건 단연 현장 경험이라고 말씀드리고 싶네요.

▲우리의 시선이 닿지 않는 곳에서 완전한 무대를 위해 묵묵히 달리는 김종문 감독
▲우리의 시선이 닿지 않는 곳에서 완전한 무대를 위해 묵묵히 달리는 김종문 감독

마지막으로 무대감독을 꿈꾸는 사람들에게 한 말씀 부탁드려요.

이 일이 힘드니까 하지 말라고 말하고 싶어요.(웃음) 하지만 공부를 게을리하지 않을 자신이 있으면 도전해 보라고 말하고 싶어요. 너무 복잡하고 배울 게 많은 직업입니다. 장비부터 용어까지. 그리고 지속적으로 업그레이드되고 있으니 그 흐름에도 따라가야 합니다. 하지만 진심으로 즐길 준비가 되어 있다면 힘들어도 충분히 버틸 수 있습니다. 즐기는 자는 도전해 볼 만합니다.

무대는 늘 화려하다. 거대한 세트, 은은한 조명과 관객들의 시선을 사로잡는 의상하지만 이것들은 모두 관객의 시선에서 본 무대일 뿐이다. 실제로 한편의 공연이 무대에 오르기 위해서는 많은 스태프의 노고가 수반된다. 우리의 시선이 닿지 않는 곳에서 그들은 완전한 무대를 위해 묵묵히 달리고 있다. 그리고 그 중심에 무대감독이 있다.

예술가와 관객이 함께 호흡하며 그 순간들을 기억에 담는 동안 뒤에서 조용히 조력해 주는 사람. 그들이 묵묵히 그 자리를 지키고 있기에 대한민국 모든 공연장은 움직인다. 설렘으로 가득한 관객들이 가슴 벅찬 감동을 안고 나오는 곳. 오늘도 세종문화회관에서는 공연의 시작을 알리는 돛이 올라간다.

자료제공/ 월간리뷰

김희영 기자 dud056@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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