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의 독립운동가, ‘이동휘’ 임시정부 국무총리
7월의 독립운동가, ‘이동휘’ 임시정부 국무총리
  • 이근탁 기자
  • 승인 2019.07.01 16: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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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뉴스투데이] 국가보훈처는 7월의 독립운동가로 이동휘 선생을 선정했다.

이동휘 선생은 한말 구국운동의 선봉에 선 인물이자 통일임시정부의 초대 국무총리를 지낸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독립운동가다.

선생은 1873년 함남 단천에서 빈농의 아들로 태어나 서울 사관양성소에 입학해 육군 참위에 임관했다.

청렴강직과 충성심을 높이 산 광무황제에 의해 삼남검사관으로 임명됐고 지방진위대의 부패 장교와 지방관리들을 엄격하게 처벌함으로써 전국적인 명성을 얻었다.

그는 1904년 러일전쟁 발발 이후 일본의 침략이 가속화되자 1905년 군직을 사임하고 보창학교를 설립해 민족교육운동에 헌신했다.

일제는 1907년 헤이그밀사사건을 빌미로 정미7조약을 강제로 체결한 뒤 조선의 군대를 해산시켰고, 이에 대항한 강화도 군민들이 봉기하자 선생을 배후 조종자로 체포하고 그 해 석방했다.

선생은 19132월경 압록강을 건너 북간도로 건너가 각지를 순회하며 신교육 보급과 기독교 전도활동을 계속해 동포사회의 단결과 민족의식을 고취시켰다.

같은 해 일제의 위협이 도처에 도사리고 있어 신변이 안전하지 못한 북간도를 떠나 러시아 연해주로 거처를 옮겼다.

이곳에서 대한광복군 정부를 조직했고 북간도 왕청현 나자구에 사관학교를 설립했다.

선생은 이상설에 이어 2대 정도령에 취임해 광복 전쟁계획을 총지휘했다.

하지만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러시아가 일본과 동맹을 맺어 선생의 계획은 수포로 돌아갔으며 북간도로 다시 추방됐다.

이후 1919113일 대한민국임시정부의 국무총리직에 취임했고 1935131일 중국 스찬지방을 방문했다가 블라디보스톡으로 이동하던 중 강한 눈보라를 만나 심한 독감에 걸려 눈을 감았다.

정부는 선생의 공훈을 기려 1995년 건국훈장 대통령장을 추서했다.

이근탁 기자 maximt2@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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