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홍순도, ‘장수 아리랑’을 빚다
시인 홍순도, ‘장수 아리랑’을 빚다
  • 한국뉴스투데이
  • 승인 2019.08.19 1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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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곡의 빛, 오지의 문화 지형을 바꾸다
▲섬진강을 먹물로 삼아 음악의 붓으로 그려넣은 ‘장수 아리랑’의 주인공 홍순도 시인
▲섬진강을 먹물로 삼아 음악의 붓으로 그려넣은 ‘장수 아리랑’의 주인공 홍순도 시인

장수 아리랑은 역사를 내일에 새긴 선율

'영롱한 별들이 속삭이는 밤하늘
첩첩 산울로 하늘 이슬이 축복으로 내린다.
수려한 금남호남정맥 솟아올라
천상에 운무 펼치니 호남의 지붕이라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이곳이 어디인가? 오지(奧地)라면 까마득한 오지요 청정지역이라면 천혜의 청정지역인, 다람쥐와 발맞추고 사는 전라북도 장수군이다. 한 손에는 지리산 자락을 잡고 다른 한 손은 백두산 등줄기를 거머쥔 산고을, 칼 같은 백두대간이 영남과 호남을 쩍 갈라놓고 오직 한길, 탯줄 같은 육십령 고갯길로 막힌 영남과 호남을 유일하게 이어주는 곳이 장수군이다.

하늘에서 비가 내린다. 산자분수령(山自分水嶺). 산은 물을 나누고 물은 산을 넘지 못하여 북으로는 금강, 남으로는 섬진강이 되었다. 물이 나뉘는 그곳 마을이 수분리(水分里)이니, 장관 중의 장관이 아닐 수 없다.

이토록 아름다운 고향을 혼자만 간직하고 싶지 않았다. 시인 홍순도는 섬진강을 먹물로 삼아 음악의 붓으로 세상에 알리고 싶어 장수 아리랑의 시를 써 내려갔다. 3곡 연작시를 썼다. 첫 시는 장수의 하늘을 노래하고 두 번째 시는 장수의 , 그리고 으로 마무리했다.

장수 아리랑은 작곡을 염두하고 지은 입니다. 하늘 편은 소프라노용이고 은 테너, 은 합창용인데 정덕기 교수(백석대 문화예술학부교수, 한국예술가곡사랑회회장, 한국가곡학회회장)가 작곡하는데 이제 첫 곡이 완성되었습니다.”

▲아름다운 장수의 풍경
▲아름다운 장수의 풍경

홍 시인이 장수 아리랑을 쓰기로 마음먹은 데는 절경과 풍광 때문이 아니다. 나아가 장수가 품고 있는 문화와 역사를 현재와 미래에 노래하고 싶었다. 수분리에는 뜬봉샘이 있다. 고려말 함양의 황산대첩에서 왜구를 물리친 이성계 장군이 수분리를 지나던 길에 뜬봉샘에서 묵었다. 새벽에 일어나 나라를 위해 기도하던 중 봉황이 비상하는 모습을 보고 목을 축이며 큰 뜻을 이루기로 결심한 곳이 바로 수분리 뜬봉샘이다.

논개는 진주 출신인가? 아니다. 홍 시인은 이것 역시 바로잡아주고 싶다고 한다. 논개는 장수 사람으로 남편 최경회 장군이 진주성에서 왜군과 전투하다 순국하자 복수를 위해 진주로 달려가 적장을 껴안고 진주 남강에서 산화했다. 지금도 장수에는 주논개의 생가가 있으며 논개제삿날이 바로 장수군민의 날이 되었다.

뿐만 아니다. 그동안 가야 문명은 고령의 대가야와 김해의 금관가야만이 존재하는 것으로 알고 있었지만 최근 장수군에서도 가야유물이 다량 출토되면서 장수군 역시 가야 문명의 주요 산실이었음이 밝혀져 국가지정 문화재 사적으로 지정 예고했다. 이러니 장수가 소중한 고장이라는 사실을 누가 부인하겠는가.

▲그가 그린 삶의 표현은 깊은 울림을 준다.
▲그가 그린 삶의 표현은 깊은 울림을 준다.

뒤늦게 시인 등단, 고락의 무늬는 더욱 강렬

홍 시인이 장수를 얼마나 사랑하는지는 장수 아리랑을 작시하기 전에 장수를 찬양하는 곡을 이미 발표한 데서 알 수 있다. 그가 그동안 작시한 가곡60여 편에 이른다. 그중 장수의 아름다움을 담은 작품은 장수 산고을’ (김대웅 작곡)정다운 장수’ (최영섭 작곡) 두 곡이다.

홍순도 시인의 작품에는 삶의 애환과 동시에 나의 본향살아가야 할 이유를 발견하게 하는 밝은 내면이 빛을 발한다. 슬픔을 슬픔으로만 그리는 게 아니라 끝내는 그 슬픔을 딛고 일어서는 소망을 담고 있다. 장수 아리랑 역시 아리랑이라는 단어가 주는 정한과 애잔한 기운대신 소망의 기운이 느껴진다. 이쯤 되면 시인의 삶이 궁금하다. 홍 시인의 시가 음악으로 탄생한 것은 12년 전쯤 된다. 2004년에 수필가에 이어서 시인으로 등단했으니 시인이 된 이후 10여 년이 흐른 뒤다. 오랜 직장생활 끝에 등단했기에 시인으로 출발한 것도 늦은 편이다. 그럼에도 그가 그린 삶의 표현은 깊은 울림을 준다.

“50년대 초등학교에 다녔습니다. 당시 너무 가난해서 장수중학교에 입학 하고도 등록금을 내지 못해 포기했죠. 이듬해에 둘째 매부의 도움으로 어려운 과정을 거쳐 전주에서 중고등학교를 다녔습니다. 큰 누님 집에서 기거하였는데 열 명이 단칸방에서 함께 살아야 할 정도로 가난했습니다. 대학 갈 생각은 애시당초 접고 상고를 다녔어요. 그래도 중학교와 고등학교 때 늘 전교 1등을 놓치지 않고 학생회장까지 했습니다. 어린 조카를 업고 누나가 근무하는 공장에 데려가 젖을 먹이려 오가기도 했는데 그때는 창피한 줄도 몰랐습니다. 제 작품에는 그런 시대적 아픔을 오히려 수채화처럼 바라보는 마음의 프리즘이 담겨있다고 봅니다.”

그 힘든 나날을 자부심으로 견뎌냈다. 무엇보다 중고교 학창시절에 스승 신석정 시인의 국어 수업과 매주말 전주임업시험장에서의 자연학습은 오늘의 홍시인을 낳은 자양분이 되었음은 두말할 것 없다. 졸업과 동시에 농협중앙회에 입사했다. 홍 시인에게는 농협 근무가 행운이었다. 안정적인 직장이라거나 돈을 많이 벌어서가 아니었다.

직장문화가 나에게 딱 맞았습니다. 좋은 기업이지만 사람 잡는 직장이 얼마나 많습니까? 그런데 농협은 인격과 관계 형성에 최적의 직장이었죠. 직급이 한 단계씩 승진할 때마다 지방 근무로 농민과 교감하도록 돼 있거든요. 굉장히 인간적인 직장의 진급 방법입니다. 저 역시 전국의 여러 지방을 순회하면서 농민들과 순박하고 도타운 인간관계를 쌓았습니다. 인성과 감성이 쑥쑥 성장하는 건 당연하였죠.”

홍 시인은 불혹의 나이에 신앙의 길로 방향을 바꾸고 신학교를 다녔다. 감사의 심령이 그로 하여금 찬양과 피아노를 독학하게 하였고 문학의 길로 달려가도록 이끌었다.

작곡가 정덕기와의 인연으로 가곡작시 시작

1997년도에 근무했던 농협은 서울 구로지점이었다. 우연찮게 한국문인협회 구로지부와 인연을 맺으면서 홍 시인의 삶은 문학 쪽으로 바뀌었다. 어릴 때부터 겪었던 풍성한 서정과 켜켜이 쌓인 경험의 나이테가 한줄 두줄 문학도의 글로 옮겨지기 시작했다.

그렇게 열심히 수필과 시를 썼어요. 등단하지 않은 상태에서도 문학지에 7년 동안이나 기고했습니다. 주변에서는 등단하라고 종용했지만 저는 그깟 형식이 무에 중요하냐며 고사하다 결국 등 떠밀려 2004년에 등단했습니다.”

농협을 퇴직한 그는 문화예술인들의 모임인 한국예술가곡 사랑회의 초청을 받아 충주시 대소원면에서 개최한 봉숭아꽃축제에 참여했는데 그 참여가 홍 시인의 인생을 또 한번 바꿨다. 시인 외에 작곡가들을 만나면서 시를 달라는 주문을 받게 된 것.

그의 시 중 작곡가 정덕기 교수의 선율을 탄 작품은 무엇일까? 소프라노 유소영이 연주한 배롱이 그늘에 앉아소프라노 강혜정이 연주한 가을, 창가에서이어서 소프라노 김순영과 임청화 등이 연주한 그리움 한 잎이다. 이 곡은 작고한 선친과 미국에 있는 딸을 동시에 그리워하는 노래이다.

아버지의 사랑이 얼마나 위대한지 어린 시절에는 몰랐죠. 그러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동리 사람들이 아버지의 기도를 전해주더군요. 아들을 위해 밤잠을 설치며 일하시다가 새벽녘 산봉우리 조부모 산소를 찾아 아들 잘되게 해달라 기도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다 폭우를 만나 고난을 당하기도 했다는 말을 전해 들었습니다.”

홍 시인은 아버지의 사랑이 새록새록 밤잠을 못 이루게 해 펜을 들었다. 그렇게 탄생한 시가 그리움 한 잎이다. 1절은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을, 2절은 딸에 대한 그리움을 실었다. 자식이 아빠 마음을 온전히 알 리 없지만 외국에 살고 있는 딸이 너무 그리워 노래했다.

▲홍순도 시인의 서정가곡 ‘1004의 섬에는’ 앨범 자켓
▲홍순도 시인의 서정가곡 ‘1004의 섬에는’ 앨범 자켓

리조이스 콰이어, 지금은 가곡시대

그렇게 시작한 작시자의 길은 1004의 섬에는(최영섭 곡), 나의 본향(김진우 곡), 배롱이 그늘에 앉아(정덕기 곡), 신실한 사랑의 추억(한성훈 곡), 살아있어야 하는 이유(권기현 곡), 바람의 혼(임긍수 곡), 지리산(심진섭 곡), 끊을 수 없는 사랑(박이제 곡), 사랑하고 싶으나이다(서혜선 곡) 등 다양한 음악의 열매로 맺었다.

정덕기 교수님이 장수 아리랑첫 곡을 음원으로 보내왔을 때 눈물이 왈칵 솟구쳐 나왔습니다. 제가 표현하고 싶은 장수의 심상이 그대로 반영되었으니까요. 그동안 많은 분이 이왕 장수를 알리려면 안동역에서와 같이 트로트나 대중가요 장르로 작곡하는 게 좋다고 했거든요. 그러나 장수가 지닌 가치와 품격을 기어이 높여줘야 하기에 먼 훗날을 기약하며 한국적 가곡으로 고집했습니다. 우리 가곡으로 작곡하니 들으면 들을수록 감동적인 곡이랍니다.”

홍 시인은 조금만 마음의 눈을 뜨고 세상 돌아가는 모습을 관찰하면 이제 가곡의 시대가 도래했음을 깨닫는다고 말한다. 장수군에는 2년 전 이 고장에 움을 튼 지휘자 김두황이 있다. 그가 장수에 온 이후 기적이 일어났다. 처음에는 20~30명이 모여 가곡을 배우더니 지금은 102명이 부르기에 동참해 매주 한차례씩 연습하고 있다. 102명의 젊은 남녀들이 도대체 어디에서 몰려오는지 여전히 미스테리다. 그러나 실제 그들은 장수군 7개 읍면에서 산발적으로 모여든 직장인이요 교회 찬양대원들이다. 기적의 콰이어다.

골짜기이기 때문에 농사짓는 노인들만 살 것 같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너무 희한한 일이라서 제가 직접 연습 장소에 가보았죠. K팝이니 뭐니 해도 가곡은 비전이 있습니다. 장수군의 리조이스 콰이어를 보면 생각이 바뀔 겁니다. 이런 장관을 보고 동리사람들도 트로트로 만들어달라는 이야기를 더이상 하지 않습니다.”

가곡교실을 운영하는 지방이 없는 것은 아니다. 서울시 각 구청마다 가곡교실이 활성화되었고 특히 동작문화원은 120명이 매주 월요일과 목요일마다 가곡을 배우고 있고 대구에서는 김은애 가곡교실이 유명하다. 부산, 울산, 마산, 광주 등지에서도 가곡교실이 활발하게 운영되고 있지만 대한민국에서 가장 오지인 장수군 산고을에서 100명 이상이 모인다는 것은 실로 기적에 가까운 일이다.

▲가야 문명과 논개의 고장, 육십령과 이성계의 결기가 서린 뜬봉샘의 고장 장수
▲가야 문명과 논개의 고장, 육십령과 이성계의 결기가 서린 뜬봉샘의 고장 장수

장수 군민과 음악인, 장수의 아름다움과 역사에 대한 책임 가져야

홍 시인은 장수군의 엄청난 음악적 변화를 두 눈으로 읽고 난 후 장수 아리랑을 쓰기로 결심했다. 이제는 장수의 힘을 믿고 마음에 품었던 곡을 쓸 때가 되었다고 판단했다. 가야 문명과 논개의 고장, 육십령과 이성계의 결기가 서린 뜬봉샘의 고장 장수. 그 정기를 <장수 아리랑>에 담았다.

이제는 어느 곳이든 지역 특성을 살리기 위해 문화예술이 부흥해야 합니다. K팝이 모두에게 적용되는 것은 아닙니다. 가곡이 그 지역을 살리는 생명수가 될 수 있습니다. 장수가 그 대표적인 지역입니다. 장수에 사는 군민과 음악인들은 장수의 청정 환경과 역사를 지키고 물려줘야 할 무거운 책무가 있습니다. 섬진강과 금강의 분수령이 문화와 역사를 잉태하고 장수 아리랑을 출산한 것처럼 대한민국 곳곳에 가곡이 흘러 흘러넘치는 장수(長水)가 되기를 기대합니다.”

자료제공 월간리뷰
글 김종섭(월간리뷰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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