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새.... 보석 같은 새
벌새.... 보석 같은 새
  • 곽은주 기자
  • 승인 2019.10.03 11:1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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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로운 사람들에게 힘이 되고 싶어요

인생은 그 날이 풀과 같으며 그 영화가 들의 꽃과 같도다 그것은 바람이 지나가면 없어지나니 그 있던 자리도 다시 알지 못하거니와...”(다윗의 시 중)

사진 제공= 콘텐츠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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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봉 30일 동안 10만 관객이 <벌새>를 봤다. 거대한 상업 영화들 틈바구니에 끼어 일반 관객들에겐 제목조차 낯선 영화일 터인데, <벌새>는 아랑곳하지 않고 쉬지 않고 붕붕 난다. 도대체 그 힘은 뭐지? 1994년 한여름. 그 어떤 비밀이 숨겨져 있었기에 턱없이 부족한 상영관을 찾아 관객들은 <벌새>에 빠져드는 것일까? 감정이입. 그저 멀리 두고 잊고 살았던 지난 기억들을 복기하듯 그 시절을 불러 모으며 차곡차곡 퍼즐을 맞추는 10만 은희들. 어려서 미숙했고 연약해서 눈물 많았던 그 날들. 가족과 세상에 대하여 억울하고 속상한 감정을 속 시원하게 저항조차 하지 못 했던 그 때의 분노와 좌절과 상실감이 2019<벌새>의 은희로 살아난 것일까? 그때 우리는 무엇을 꿈꾸며 무엇에 허기졌을까? 깨어지기 쉬운 유리 같은 사랑이었을까. "아픔은 잊을 수 있지만 상처는 지울 수 없는" 어두운 그림자였을까.

사진 제공= 콘텐츠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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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보석으로 불리는 새

주로 혼자 생활하며 용감하고 겁이 없는 새. 나는 힘이 강하여 벌처럼 공중에 날면서 꿀을 빨며 벌레나 거미 따위를 잡아먹는 새. 작고 연약해 보이지만 당찬 새. 모습이 아름다워 나는 보석으로 불리는 벌새’. 좌충우돌. 어디로 튈지 모르는 공처럼 종잡을 수 없는 마음이지만, ‘트램펄린의 탄력을 이용하여 힘차게 통통 뛰어오르고 싶은 중학교 2학년 소녀의 모습을 김보라 감독은 "벌새로 비유했다. 높이 높이 날고 싶지만 현실은 신통치 않다. 공부도 못하고 연애나 하는 반에서 날라리로 찍힌 은희지만, 장차 외로운 사람들에게 힘이 되는 만화를 그리고 싶은 꿈을 가진 아이. "빛나는 사람"이 되고 싶었던 소녀는 영화감독이 되어 속마음을 아는 친구처럼 외로운 관객들에게 말을 건다. 성장통을 통과한 그 시절을 결코 잊지 않고 잃지 않으려는 듯, 감독은 꼭꼭 간직했던 중학교 2학년 소녀의 마음으로 영화를 만들었다.

사진 제공= 콘텐츠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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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4년과 2019년 사이. 놀랄만한 사건들이 얼마나 많았던가. 사는 것이 사건사고의 연속이듯, 자고나면 어처구니없는 뉴스로 늘 어수선한 일상이다. 마구잡이로 가격하는 오빠의 구타를 대책 없이 맞을 수밖에 없었던 은희. 무지막지한 폭력에 대항 할 수 없어서 차라리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방법으로 복수하고 싶었던 은희는 어느덧 어엿한 삼십대. 부당한 폭력에 맞설 수 있는 어른이다. 어른이라서 이젠 행복한가. 해거름의 저녁에도 결코 외롭지 않을 만큼 단단해졌을까. 잘못 찾아 간 집 앞에서 엄마를 부르며 악을 쓰지는 않겠지. 속마음을 주고받는 친구는 몇이나 될까? 그 때나 지금이나 중학교 2학년 소녀들은 연약한 벌새처럼 붕붕거리며 세상을 마주 한다.

김보라(1981) 감독은 영혼 깊숙이 제멋대로 저장되어 있던 청소년기의 크고 작은 기억들을 마치 지난 여름방학에 우리가 함께 겪었던 일처럼 들려준다. 어리고 미숙해서 쉽게 상처받고 상처 주던 그 때의 친구들은 모두 안녕한가. 아름다운 시절도 들의 꽃처럼 시들기 마련. 한 세대는 가고 한 세대는 오며 영원 속으로 시간이 흘러가듯, 설령 언젠가는 우리를 기억하는 사람들이 이 세상에서 모두 사라져 우리의 이름조차 흔적없이 지워질지라도 오늘은 벌새처럼 빛나는 보석으로 붕붕!! 날자.

곽은주 기자 cineeun60@nat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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