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제24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 박정범 감독을 만나다
【인터뷰】 제24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 박정범 감독을 만나다
  • 곽은주 기자
  • 승인 2019.10.09 12:2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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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이 세상에 없는’…“내 영화는 자학의 詩"
​'이 세상에 없는' 박정범 감독 / 롯데시네마 센템시티 / 사진=구경남 객원기자​
​'이 세상에 없는' 박정범 감독 / 롯데시네마 센템시티 / 사진=구경남 객원기자​

박정범(1976) 감독을 부산에서 만났다. <무산일기>(2010)이후 이번 부산영화제에서 월드프리미어로 상영되는 <이 세상에 없는>까지 총 5편을 연출한 감독은 쉬지 않고 달린다. 영화 한 두 편 완성하기가 녹록하지 않은 한국영화 제작 환경에서 감독은 10년 동안 평균 2년에 한 편씩 착실하게 영화를 만든 셈이다. 어쨌든 앞으로도 2년에 한 편씩 만들 생각이라니 향후 박 감독의 필모그래피가 예사롭지 않을 듯싶다. 그러나 영화를 어렵사리 완성해도 정작 극장 상영까지는 또 산 넘어 산. 박 감독이 연출한 5편중 극장에서 개봉한 영화는 <무산일기><산다> 등 단 2편뿐. TV단막극으로 제작된 <파고>는 감독판 버전으로 재편집하여 지난 4월 전주국제영화제에서 특별 상영했고, 872회 로카르노국제영화제 국제경쟁부분에서 심사위원 특별상을 수상한 역작이지만, 판권이 TvN방송국에 있으니 극장 개봉은 요원하다. 전주국제영화제 단편영화 제작프로젝트 !!!’지원으로 제작된<일주일>(2012) 또한 개봉이 묶여있다. 이번 부산영화제에서 상영되는 <이 세상에 없는>(2019)2017년 부산영화제 장편영화제작지원을 받아서 완성된 영화다. 상영 시간이 2시간45분으로 극장 상영이 만만찮다. 배타적인 배급 환경을 잘 알면서도 굴하지 않고 영화를 줄곧 찍는 감독의 뚝심은 어디서 오는 걸까? 척박한 여건 속에서 지칠 법도 한데 감독의 멈출 줄 모르는 열정과 추진력이 궁금했다. 지난 5<이 세상에 없는> 상영 전에 롯데시네마 센텀시티 라운지에서 감독을 만났다. 자신이 만들고 싶은 영화는 죽을 때까지못 만들 것 같다는 감독의 진심이 귓가에 오래 맴돌았다. 녹음한 인터뷰 내용을 녹취하면서 여러 번 멈출 수밖에 없었다. 순간순간 욱! 눈물이 핑! 돌았다. 간직했던 속내를 들려주는 감독의 말들이 사무쳤다. 이렇게 멋진 감독이 대한민국에 있다니 관객은 복도 많아!!

체육교사가 꿈이었다

운동을 무척 좋아한다. 운동 가르치는 체육교사를 하고 싶었다.” 군복무 시절 우연히 접한 기타노 다케시의 <하나비>(1997)는 인생의 방향을 체육교사에서 감독으로 바꿔 놓았다. 영화에 대한 새로운 이 열린 그 즈음, 감독이 된 결정적인 계기는 복학하면서 영화제작 실습교양수업을 수강하면서부터. 한 학기 수업을 마치고 만든 단편영화가 당시 부산아시아단편영화제에서 대상과 관객상을 받았다. 시쳇말로 감독으로 동기부여가 됐다. 감독을 꿈꾸는 것이 그 때는 얼마나 무모한지 몰랐다(말하면서 쑥스럽게 웃는다). 그 후 7년간 연달아 23편의 단편을 찍었다. 23편 모두 영화제에 출품했지만 단 한편도 수상하지 못했다. 영화를 포기해야하나.... 좌절을 맛 봤다. 이유가 뭘까 나중에 알았다. “내가 좋은 영화들을 흉내를 냈더라. 어차피 안 될 거면 내 멋대로 막 찍자고 마음을 고쳐먹었다. 영화를 배운 일이 없으니 내키는 대로 혼자서 영화를 만들었다. 연출과 프로듀서의 구분도 몰랐다. 영화를 만들기 위하여 시나리오를 썼고 연출과 편집도 했다. 물론 배우까지. 기타노 다케시(1947) 감독이 롤 모델이 됐다. 그 습관이 지금까지 왔다. 굳이 배우를 고집하는 이유는 매를 맞는 신이 많은 배역을 다른 배우에게 맡기는 것이 미안해서다. 허나 더 큰 이유는 기록성이다.필름 안에서 내가 살아 있다는 사실은 설령 영화를 단 한 사람이 본다 해도 나에겐 유의미한 일이다.

첫 장편인 <무산일기>는 대학 동기인 탈북자 친구를 주인공으로 한 작품. 북한에서 아이스하키 선수였던 친구가 위암으로 30세의 젊은 나이에 요절했다. 무척 슬펐다. 친구는 제작부를 나는 연출을 맡았었다. 친구는 유언처럼, 영화를 계속 만들라고 당부했고 그러겠다고 약속했다. 그 약속이 영화를 포기 할 수 없는 바탕이 되었을까. 어길 수 없는 약속처럼 감독은 영화를 멈추지 않았다.

​'이 세상에 없는' 박정범 감독 / 롯데시네마 센템시티/ 사진=구경남 객원기자​
​'이 세상에 없는' 박정범 감독 / 롯데시네마 센템시티/ 사진=구경남 객원기자​

모네의 수련 그림을 바라본다

감독에게 혹, 영화 외에 위안을 받는 예술가나 예술 작품이 있는지 물어봤다. ‘모네의 수련이라고 망설이지 않고 대답했다. “시나리오가 막히고, 인간관계가 막힐 때, 모네의 수련을 오래 바라본다. 2010<무산일기>가 미국에 초청됐을 때 뉴욕 현대미술관에서 모네의 수련을 봤다. 한 벽면을 덮을 만한 크기에 압도됐고, 작품의 아름다움에 매료되어 2시간 동안 앉아서 수련만 봤다. 예술이란 이런 것인가? 너무 감동됐다. 모네는 계절의 변화에 따라 연작으로 많은 수련 작품을 남겼다. 썩은 물속에서 꽃이 피는 것이 영화적 메타포를 줬다. 수련 같은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 썩은 물을 정화 시키며 피는 꽃 같은 영화. 실제로 수련이란 제목으로 시나리오를 쓰기도 했다. 그러나 생각만큼 잘 안됐다.

 "어려서부터 쓰러져 가는 사람들에게 관심이 갔다. 반 친구들 중에서도 장애를 가진 아이나 외톨이처럼 혼자 겉도는 친구를 보면 왜 저 아이는 어울리지 못 할까? 마음이 쓰였고 눈에 밟혔다.” 성격상 먼저 다가가서 선뜻 말을 건 내지는 못했지만, 고통스러운 사람들을 보면 안타까웠다. 그런 마음이 영화를 만드는 힘이 된 것일까? 감독의 주인공들은 대부분 소외되고 힘없는 노동자들이다. 어눌하고 못나 보이지만 순한 심성을 가지 주변 사람들이 늘 마음에 담겼다.

​'이 세상에 없는' 박정범 감독 / 롯데시네마 센템시티/ 사진=구경남 객원기자​
​'이 세상에 없는' 박정범 감독 / 롯데시네마 센템시티/ 사진=구경남 객원기자​

내 영화는 자학의

일본 주간지에 연재됐던 자학의 라는 4컷 짜리 코미디 만화가 있다. 그 만화를 좋아한다. 내 영화는 자학의 .” 나를 투사하고 반성하며 성찰하는 자학의 시. 나는 왜 이렇게 살았을까? 왜 이런 고민을 안했지? 왜 싸우지 못했을까? 왜 이렇게 힘들지? 등등 뒤돌아보면 늘 반성뿐이다. 자학처럼. 이런 감정들이 쌓여서 시나리오가 됐고 영화가 됐다. 세상에 빚지고 사는 것 같은 비겁함과 미안함을 영화를 통하여 보여 주고 싶었다. 부끄럽고 미안한 마음을 담은 것이 내 영화다. 비록 현실은 우울하고 비루하지만, 우울하고 비루한 현실을 꾸미고 싶진 않았다. 몸과 마음이 너덜너덜해 질 때까지 달린다. 자학의 시란 의미가 지금까지의 내 영화에 가장 적절한 표현인 것 같다. 그러나 준비하고 있는 차기작은 로맨틱 코미디다. 과연 자학에서 어느만큼 거리를 뒀을까.  

'이 세상에 없는' 스틸 / 사진 제공= 세컨드윈드 필름
'이 세상에 없는' 스틸 / 사진 제공= 세컨드윈드 필름

대한민국에서 독립영화 감독으로 산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 수년간 영화 한 두 편 만들고 감독을 접거나 생계를 위하여 세컨 작업을 해야만 하는 현실 앞에서 독립영화 감독이 직업이 될 수 있을까? 2018년 완성 됐어야 할 <이 세상에 없는>은 박 감독의 교통사고로 촬영을 중단했었다. 배우가 다리를 절뚝이며 촬영할 수는 없었다. 맞물려가던 스텝은 해체되었고 시나리오 작업부터 다시 시작했다. 그만큼 경비 손실도 만만치 않았다. “이 번 영화도 고통스런 영화다. 관객들이 어떤 기분으로 영화를 보게 될지 잘 안다. 그렇다고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바꿀 수는 없지 않은가. 아직은 내 이야기를 고집하고 싶다.”

곽은주 기자 cineeun60@nat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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