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회 강릉국제영화제... 스크린 밖의 문학과 낭만
제1회 강릉국제영화제... 스크린 밖의 문학과 낭만
  • 곽은주 기자
  • 승인 2019.11.14 18: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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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릉국제영화제 다녀왔습니다
20+80 : 21세기  국제영화제의 회고와 전망. 사진= 강릉국제영화제
20+80 : 21세기 국제영화제의 회고와 전망. 사진= 강릉국제영화제

1회 강릉국제영화제(GANGNEUNG International Film Festival : GIFF)118일 개막식을 시작으로 14일 폐막식을 남겨 놓고 있다. 국내 첫 국제영화제가 1996년 부산에서 시작된 이후 이듬해인 1997년 부천에서 국제판타스틱영화제로 이어졌고, 2000년 전주 그리고 제천 등등. 대한민국 도시 이름으로 개최되는 국제영화제가 현재 10여개가 넘는다. 음식, 건축, 다큐, 애니메이션 등등 특화된 주제와 장르의 국제영화제까지 포함하면 20여 개가 매년 개최된다. 그 외도 작은 규모의 영화제까지 포함하면 매년 국내에서 개최되는 영화제의 수는 60여 개에 달한다. 이렇다보니 피치 못하게 영화제 개최 기간이 서로 겹치는 경우도 종종 있다. 실로 봇물 터지듯 국제영화제가 방방곡곡에서 가히 일 년 내내 개최된다고 볼 수 있다. 어떤 매력이 있기에 지역자치단체의 축제로 영화제가 각광을 받는 것일까? 강릉국제영화제는 국고 지원 없이 시 예산 28억 원으로 첫 영화제가 개최된다. 인구 21만 명을 웃도는 소도시에서 개최되는 영화제의 규모가 제법 크다. 그 현장이 궁금하여 8일 대관령 고개를 넘었다.

강릉이란 도시에 집중 한다

김한근 강릉시장은 강릉문화재단을 주축으로 그동안 문학과 영화를 매칭 시키는 문학영화제를 오랜 시간 구상해 온 것으로 전해졌다. 김한근 시장은 영화제를 전적으로 지원하지만 간섭은 하지 않는다.”는 분명한 선을 긋고 삼고초려 끝에 김동호 전 부산영화제 집행위원장을 지난 8월에 강릉국제영화제 조직위원장으로 위촉하는데 성공했다. 김동호 조직위원장은 김홍준 전 충무로뮤지컬영화제 예술감독을 영입하여 본격적인 영화제 프로그래밍에 돌입했다. 실로 3개월도 안 되는 기간이었지만, 이미 강릉문화재단을 주축으로 영화제의 밑그림은 상당히 진행된 상태여서 가능한 일이었다.

김동호 조직위원장은 기존에 준비해 온 문학영화제의 문학이란 타이틀을 빼고 영화제를 좀 더 폭 넓은 영역으로 확장시켰다. 물론 문학을 배제하지 않는 선에서...

김동호 조직위원장은 기자회견에서 강릉국제영화제는 문향(文鄕) 강릉의 특성을 살려 문학 작품을 원작으로 하는 영화를 집중 조명할 예정이라고 문학과 영화의 콜라보가 강릉영화제의 색깔임을 강조했었다. 영화의 근간이 내러티브이므로 문학과 영화는 실과 바늘처럼 따로 분리될 수 없는 관계. 이번 영화제에 초청된 30개국 73편의 영화중에는 시대 구분 없이 기존의 문학 작품을 토대로 한 영화들을 특별히 초청했다. 폐막작이 2016년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미국의 시인이자 작곡가이며 가수인 밥 딜런의 다큐멘터리 영화인 D.A. 페니베이커 감독의 <돌아보지 마라 : Don’t Look Back>(1967). 1967년 작품을 폐막작으로 상영하는 선택이 문학에 기반 한 영화제의 특성을 잘 보여 준다. 이는 월드프리미어나 인터내셔널 프리미어 상영에 큰 의미를 두지 않는다는 뜻도 함축한다. 개막작 허인무 감독의 <감쪽같은 그녀>는 월드프리미어 상영이라서 관객의 큰 환호를 받았다.

객막작 허인무 감독의 '감쪽같은 그녀' GV. 사진= 강릉국제영화제
객막작 허인무 감독의 '감쪽같은 그녀' GV. 사진= 강릉국제영화제

김동호 조직위원장과 김홍준 예술감독의 열정에 기댄 영화제

강릉영화제는 그동안 전 세계 100개 영화제를 다니며 세계 영화인들과 네트워크를 구축한 김동호 조직위원장의 세계영화제 인맥과 김홍준 예술 감독의 영화적 취향과 낭만적인 정서가 곳곳에 묻어난 그야말로 문학적인 영화제였다. 24회를 개최하는 동안 부산영화제에서도 시도하지 못한 세계 유수 영화제의 조직위원장 및 집행위원장들이 패널로 참석한 “21세기 국제영화제의 회고와 전망이란 주제로 진행 된 포럼은 김동호 위원장이라서 가능한 독보적인 프로그램. 포럼 개최 장소로 선택한 명주예술마당은 강릉 시내의 폐교된 초등학교에 세워진 예술 공간이다. 포럼 장소에서 바라보는 물안개 피는 대관령의 저녁 풍경은 한 폭의 산수화였다. 스크린 밖의 영화를 완성하는 기막힌 역사의 순간을 포럼에 참여한 패널과 관객들은 눈치 챘을까. 그 시간과 그 공간을 함께 공유하는 자들만이 누릴 수 있는 영화제의 진정한 멋과 맛은 그 현장에 있어야만 가능하다.

21세기를 조명하면서 향후 80년간 각자가 추구하는 미래의 영화제 비전에 대한 실행 방안과 새로운 영화제의 패러다임을 논의한 포럼에는 가린 누그로호 욕자카르타국제영화제 조직위원장, 로나 티 마카오국제영화제 집행위원장, 마르틴 떼루안느 브졸국제아시아영화제 조직위원장, 피어스 핸들링 토론토국제영화제 조직위원장, 장마르끄 떼루안느 브졸국제아시아영화제 집행위원장, 윌프레드 웡 홍콩국제영화제 조직위원장, 사무엘 하미에르 뉴욕아시아영화제 집행위원장, 히사마츠 타케오 도쿄국제영화제집행위원장, 조안 고 말레이시아국제영화제 조직위원장, 키릴 라즐로고브 모스코바국제영화제 조직위원장 등등 해외 유수 국제영화제 조직위원장 및 집행위원장들이 참석했다.

1부는 심도 있는 포럼으로, 2부는 질의응답으로 진행됐다. 재정의 독립성과 급변하는 플랫폼 환경 속에서 국제영화제의 공동의 문제들이 솔직하게 논의 됐다. 궁극적으로 영화는 극장이라는 공간에서 함께 체험하는 문화 행위라는 것이 공감됐다. 1,2부 중간 휴식 시간을 통하여 패널과 관객이 함께 차와 다과를 나누는 격의 없는 소통의 장을 마련 한 주최 측의 세심한 배려가 돋보인 행사였다.

피에르 리시앙 추모행사. 사진= 강릉국제영화제
피에르 리시앙 추모행사. 사진= 강릉국제영화제

피에르 리시앙 추모행사

피에르 리시앙(936-2018) 추모 행사도 잊지 못할 추억이었다. 리시앙 추모 행사는 강릉독립예술극장 신영에서 진행됐다 110여 석의 작은 상영관에서 굳이 행사를 진행한 이유를 리시앙이 지독한 시네필이었고, 이처럼 작은 극장에서 영화 보는 것을 즐긴 영화광이었으므로 아마도 리시앙도 이곳에서 추모행사 하는 것을 더 좋아할 것 같아서 기존의 극장이 아닌 예술극장에서 추모식을 하게 됐다고 김홍준 예술감독이 말문을 열었다. 전석 매진이라서 아쉽게 돌아선 관객들에 대한 미안한 마음을 달리 표현 한 것 같다.

영화 제작자이며 감독, 평론가이자 자타공인의 영화 애호가였고 특별히 한국 영화의 든든한 지원군이었던 피에르 리시앙을 추모한 행사는 큰 의미를 줬다. 1984년 이두용 감독의 <여인 잔혹사 물레야 물레야>가 칸영화제에서 소개된 이후 한국 영화를 지속적으로 칸영화제에 소개하며, 전 세계적으로 한국 영화를 알리는데 큰 공헌을 하였던 그를 추모하기 위해, 그가 사랑하고 그를 사랑했던 동료들을 초청하여 국경을 넘어 영화인으로서 그의 의미를 되새겼다. 추모행사에는 거동이 불편한 임권택 감독을 비롯하여 이창동 감독, 양익준 감독, 안성기 배우, 전도연 배우도 참석하여 피에르 리시앙을 추모했다. 임권택 감독은 리시앙을 추모하는 시를 써서 리시앙 부인 송영희씨에게 전달하여 참석자 모두의 눈시울을 적셨다.

2회를 기다리며

야외 공연 행사들은 예측하지 못한 날씨 변화로 후반 공연이 취소되었다. 야외 공연장소가 상영관과 다소 거리가 있는 강릉아트센터에 마련된 야외무대라서 날씨와 상관없이 다소 접근성이 떨어졌다. 아울러 타지에서 영화제를 찾아 온 관객을 위한 저렴한 숙박 시설이 용이 하지 않았던 점이 아쉬움으로 남는다. 강릉 시내 상영관에서 관광용 순환 시내버스를 이용하여 경포와 강문 해변을 걸어 볼 수 있었던 경험은 아주 특별했다. 세월이 흐르면 영화제에서 본 영화들은 까맣게 잊을 수도 있겠지만, 경포 해변의 축축하고 보드라운 모래의 감촉은 영원히 잊지 못 할 것 같다. 강릉국제영화제는 경포 바다로 기억 될 것 같다. 부산 해운대 바다와는 다른 낭만이 있었다.

"세계적인 영화제들은 대부분 바다를 낀 도시에서 열립니다. 휴양을 겸한 중소 도시가 대도시보다 국제영화제에 더 적합하고요. 강릉을 프랑스 칸이나 네덜란드 로테르담처럼 세계적인 문화 관광 도시로 육성하고 싶습니다.”고 영화제의 방향을 제시한 김동호조직위원장의 말이 깊은 울림으로 떠올랐다.

곽은주 기자 cineeun60@nat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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