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력에 짓밟힌 스포츠스타들
폭력에 짓밟힌 스포츠스타들
  • 박성규 기자
  • 승인 2019.11.29 14:0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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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위, 운동선수 인권실태 조사 발표해
사생활 침해까지... 선수 말 안 듣는 지도자
“인권교육, 규정 제정 필요하다” 지적도

지난해 12월, 쇼트트랙 국가대표 심석희 선수가 코치에게 당한 성폭력과 폭행을 폭로해 세간의 이목이 집중됐다. 그 후 국가인권위원회에서 스포츠인권특별조사단을 꾸려 감사에 착수했다. 지난 21일 발표된 인권위의 감사 결과는 충격적이었다. 감사의 결과와 피해사례, 그리고 해결방향이 무엇인지 들여다봤다. <편집자 주>

▲ 심석희 선수의 폭로로 빙상계가 충격에 빠진 가운데 빙상선수들이 열심히 시합하는 모습 (사진/뉴시스)
▲ 심석희 선수의 폭로로 빙상계가 충격에 빠진 가운데 빙상선수들이 열심히 시합하는 모습 (사진/뉴시스)

[한국뉴스투데이] 지난해 12월과 올해 1월, 심석희 선수와 신유용 씨가 스포츠계에 만연한 성폭력과 폭행, 폭언 등을 당했다며 용기 있는 고백을 해 화제가 됐다.

이후 인권위에서 전수조사를 실시한다고 밝혔다.

그 후 10개월이 흘렀고, 체육계에는 여전히 제 2의 심석희, 신유용은 존재하고 있었다.

◇ 심석희와 신유용의 용기 있는 고백.... 부랴부랴 전수조사 들어간 인권위

지난 1월 14일, 전직 유도선수 신유용 씨가 자신의 SNS를 통해 고1때부터 코치에게 20여 차례 성폭행을 당해왔으며 아내가 의심한다는 이유로 입막음을 시도한 정황을 폭로하면서 체육계 폭력과 성폭행이 수면위로 드러났다.

신유용 씨의 폭로에는 심석희 선수의 폭로가 계기가 됐다.

지난해 12월 17일, 심석희 선수가 수원지방법원에서 열린 조재범 前코치의 상습상해 및 재물손괴 항소심 2차 공판에 증인으로 출석했다.

심 선수는 초등학교 재학 시절부터 조 前코치에게 상습적인 구타와 폭언을 당했으며 17세 때부터 4년간 성추행 및 성폭행을 당했다고 폭로했다.

폭로 다음 날 청와대 국민청원에 조 前코치를 엄벌에 처해야한다는 청원 글이 올라왔고, 한 달 만에 22만6천여 명의 동의를 얻을 정도로 파급력이 컸다.

국가차원의 대책마련이 시급하다는 여론이 높아지자 인권위는 심 선수의 폭로 한 달 만인 지난 1월 22일, 최영애 인권위원장 주재로 기자회견을 열고, 체육계 실태 특별조사 계획을 발표했다.

인권위는 “스포츠인권특별조사단을 꾸려 조사할 예정이며 교육부는 물론 여성부, 문체부 소속 공무원들을 조사위에 참여시켜 근본적이고 종합적인 대책을 마련할 것”이라고 밝혔다.

◇ 여전히 인권은 존재하지 않았다

지난 21일, 인권위가 광화문 S타워에서 지난 7월 22일부터 8월 5일까지 운동부를 운영 중인 전국 17개 광역자치단체 및 40여개 공공기관 소속 실업선수 56개 종목 4069명을 상대로 조사한 인권실태 결과보고를 발표했다.

응답자 1251명 중 15.3%가 신체폭력을, 33.9%가 언어폭력, 11.4%가 성폭력을 당한 것으로 조사됐다.

신체폭력의 경우 거의 매일 맞는다고 답한 비중은 8.2%에 달했고, 신체폭력 피해 선수 중 적극적으로 대처한 경우는 6.6%에 불과했으며 남성선수는 선배에게, 여성선수는 코치에게 많이 신체폭력을 당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언어폭력의 경우 남성선수(30.5%)보다 여성선수(37.3%)의 피해가 더 많았고, 주요 발생장소로는 경기장 또는 훈련장이 88.7%로 숙소(47.6%), 회식자리(17.2%)에 비해 압도적으로 높은 것으로 조사됐다.

성폭력의 경우 불쾌할 정도로 불필요한 신체접촉은 1251명 중 5.3%로 남성선수(2.2%)보다 여성선수(8.4%)가 더 많이 당하고, 세부적으로는 ‘신체 일부를 강제로 만지게 하거나 팔베개, 주무르기 등을 시키는 행위’가 4.1%, ‘신체의 크기나 모양 등을 이용한 성적 농담’이 6.8%, ‘강제 키스, 포옹, 애무’는 여성 11명, 남성 2명의 피해가 확인됐고, ‘신체부위 촬영’ 역시 여성 11명, 남성 2명이 응답했으며 성폭행 피해자는 여성 2명, 남성 1명으로 나타났다.

특히, 여성선수들의 경우 생리 등 여성의 신체적 특성으로 인한 어려움을 배려 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고, 부당한 일을 당해도 감독에 대한 두려움이나 불이익을 받을까 말을 못 꺼내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여성 선수들의 경우 결혼, 임신, 출산에도 팀의 이해관계에 따라 계획을 세우는 것으로 알려졌는데, 은퇴를 종용받거나 선발명단에서 제외하는 경우도 있기 때문인 것으로 알려졌다.

◇ 합숙하면서 사생활 간섭에 혹사까지.... 만신창이 돼가는 선수들

인권위 조사결과 실업팀에서의 합숙생활 경험이 있다는 응답자는 전체의 86.4%인 것으로 나타났다.

사실상 대다수의 선수들이 상시 합숙을 하는 꼴인데, 합숙이유를 묻는 질문에는 ‘훈련에 집중할 수 있어서’가 42.8%, ‘경기력 향상에 도움이 된다’가 34.1%, ‘팀워크 강화’가 31.5%로 조사됐다.

하지만, ‘내부지침 상 강제합숙’과 ‘지도자의 요구’가 각각 29.3%와 19.4%로 원치 않은 합숙을 하는 경우도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합숙소는 실업선수들에게 주거비 절감 등 복지혜택으로 볼 수 있다.

하지만, 선수들의 선택권이 보장되지 않을 뿐 아니라 외출 같은 휴식권도 보장받지 못하는 것이 가장 큰 문제로 지적된다.

또한 합숙소의 규칙을 어겼다는 이유로 과도한 벌금을 매긴다거나 숙소 공유에 따른 프라이버시도 보장되지 않는 문제로 어려움을 호소하는 선수들도 있었다.

더구나 실업선수들은 잦은 시합으로 인해 컨디션 난조나 부상을 지도자에게 말해도 무시당하고 시합 출전을 강요당하는 것으로 나타났으며, 부상 및 재활치료비를 자비로 해결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20대 중반의 한 실업선수는 “감독님께 아프다고 말씀드리면 오히려 화를 내며 무시한다”면서 “아파도 그냥 뛰어야 된다며 부상 중임에도 경기를 뛰게 하니 아파도 말을 못 하고 그냥 출전 한다”라고 밝혔다.

이러다 보니 우울증을 이기지 못해 자살기도까지 하는 선수들도 나오는 실정이다.

20대 후반의 한 실업선수는 “대부분 선수들이 자신이 우울증인 것을 모른다. 자신의 정신력이 약한 것으로 생각해 극복해야 된다고 생각한다”며 “전 소속팀에서 자살기도를 해서 나오게 된 뒤 최근 감독과의 갈등 이후 두 번째 자살기도를 시도한 적이 있다”고 인권위에 호소했다.

▲ 지난 1월 22일, 최영애 국가인권위원장이 체육계 실태 특별조사 계획을 발표하고 있다(사진/뉴시스)
▲ 지난 1월 22일, 최영애 국가인권위원장이 체육계 실태 특별조사 계획을 발표하고 있다(사진/뉴시스)

◇ 인권위 대책, 실효성을 가지려면?

인권위는 조사 결과를 발표하면서 “운동을 직업으로 하는 성인선수임에도 일상적인 폭력과 통제가 매우 심각함을 확인했다”라고 밝혔다.

특히 “실업팀 직장운동부는 여성 선수들의 인권침해에 취약한 환경으로, 원치 않은 회식강요와 직장 내 성희롱 및 성차별, 결혼·임신·출산으로 인한 은퇴 종용문제를 경험하고 있었다”고 지적하며 “이를 위해 여성 지도자의 임용을 늘려 스포츠 조직의 성별 위계질서와 남성중심 문화의 변화를 통한 인권개선이 보인다”라고 말했다.

또한 “실업선수들은 피해를 당해 문제제기를 할 경우 팀 해체나 보복, 불이익을 당할까봐 소극적 대처밖에 할 수 없는 환경에 처해있을 뿐 아니라 계약을 통해 임금을 받는 근로자지만 자신의 연봉 액수조차 모를 정도로 노동인권의 사각지대임이 확인되었다”면서 “스포츠 인권교육은 물론 노동인권교육도 필요하다”고 밝혔다.

이날 토론회의 정책개선 방안에 대한 발제를 맡은 허정훈 중앙대 스포츠과학부 교수는 ▲직장운동선수 인권 교육과 정기적 인권실태조사 실시, ▲가해자 징계 강화와 징계정보시스템 구축, ▲직장운동부 인권 가이드라인 제정, ▲합숙소 선택권 보장, ▲표준근로계약서 마련, ▲공공기관 내부 규정(지침) 및 지자체 직장운동부 관련 조례 제·개정 등을 개선책으로 제시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인권위의 가이드라인에 대한 실효성 여부에 의문을 제기했다.

인권위의 권고는 법적 강제성이 없기 때문이다.

한 전문가는 “실태조사를 통한 가이드라인을 만드는 것보다는 얼마나 법적 강제성을 부여하는지가 핵심이다”면서 “단순히 권고만으로는 해결되지 않으니 주무부처인 문체부나 대한체육회도 같이 의지를 갖고 대책을 마련해야한다”라고 지적했다.

박성규 기자 dkvmf11@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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