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샐러리맨 신화’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 별세
‘샐러리맨 신화’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 별세
  • 손성은 기자
  • 승인 2019.12.10 1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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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 1년간 투병생활… 12월 9일 오후 11시 50분 영면
1963년 한성실업 입사…4년 만에 대우그룹 재계 2위
외환위기에 유동성 위기…창립 30여년 만에 그룹해체
해외도피 생활부터 수감까지…곳곳에 남은 ‘대우’ 흔적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 “샐러리맨 신화”.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이 별세했다. 만 30세 대우실업을 설립한 이후 재계 2위 대우그룹을 일궈낸 신화적 인물이다. ‘세계 경영’을 강조하며 거칠 것 없는 행보를 보였던 김우중 전 회장이지만 1990년대 외환위기를 맞이하며 대우그룹은 해체 수순을 밟아야 했다. 고인은 생전 대우그룹이 방만 경영으로 해체됐다는 세간의 평가는 옳지 않다며 정당한 평가를 원한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우리나라 경제 역사에 뚜렷한 발자취를 남긴 고인과 대우그룹을 돌이켜 본다. <편집자 주>

숙환으로 별세한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의 빈소가 10일 오전 경기도 수원시 아주대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됐다. (사진/뉴시스)
숙환으로 별세한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의 빈소가 10일 오전 경기도 수원시 아주대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됐다. (사진/뉴시스)

[한국뉴스투데이]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며 ‘세계 경영’을 주창한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이 별세했다.

고인은 숙환으로 약 1년여간 투병생활 중 평소 소신대로 연명치를 하지 않고 지난 9일 오후 11시 50분 수원 아주대병원에서 영면했다.

◇ 샐러리맨에서 대우그룹 설립자로

김우중 전 회장은 1936년 대구 출생이다. 경기고와 연세대 경제학과를 졸업한 뒤 1963년 한성실업에 입사하며 국내 최초의 섬유제품 직수출을 성사시키며 가능성을 드러냈다. 이후 1967년 김 전 회장은 만 30세의 나이로 자본금 500만원을 들고 대우실업을 설립했다. 대우그룹의 시작이었다.

‘대우’는 설립 이후 급속도로 성장하기 시작했다. 설립 2년 만에 한국 기업 중 최초로 호주 시드니에 해외지사를 설립했다. 이뿐만 아니라 당시 정부의 수출 확대 정책에 발맞춰 싱가포르, 인도네시아, 미국 등에 의류 및 원단을 수출하며 성장을 거듭했다.

그리고 1975년 한국의 종합상사 시대를 열었고 1976년과 1978년 한국기계(대우중공업), 새한자동차(대우자동차), 대한조선공사(대우조선해양) 등의 부실기업을 인수한 뒤 경영정상화를 통해 중화학산업에도 뛰어들었다.

1982년 대우실업 설립 15년에는 (주)대우를 설립하며 그룹화를 시작했다. 무역‧건설부문을 통합했고 조선, 중공업에 전자, 통신, 정보시스템, 금융, 호텔, 서비스 등 사업 분야를 확대해나갔다. 그룹화 이전부터 해외 시장에 진출해 온 대우의 세계 진출 전략은 이때 본격화했다.

◇ 재계 2위 성장… 외환위기에 스러진 신화

대우그룹은 재계 2위 규모로 성장했다. 지난 1998년 기준 41개 계열사, 자산총액 76조원, 해외법인 396개에 달했다. 고속성장을 거듭한 대우그룹이었지만 외환위기의 파고는 넘을 수 없었다. 적극적인 사업영업 확장은 부메랑으로 돌아왔다.

재계 2위 규모로 성장한 대우그룹이었지만 당시 부채 규모가 89조원에 달했다. 대우그룹은 1999년 말까지 41개 계열사를 4개 업종, 10개 회사로 줄인다는 내용의 구조조정 방안을 내놨지만, 1999년 8월 해체됐다. 당시 대우그룹 구조조정 과정에서 세금 30조원이 투입됐다.

그리고 1999년 10월 김 전 회장은 출국 후 해외도피 생활을 시작했다. 당시 김 전 회장은 대우그룹의 분식회계를 주도했다는 혐의를 받고 있었다. 해외 도피에 나섰던 김 전 회장이 귀국한 것은 지난 2005년 6윌이었다.

귀국한 김 전 회장은 지난 2006년 11월 법원으로부터 징역 8년 6개월, 벌금 1000만원, 추징금 17조9253억원은 선고받고 수감됐으나 2008년 1월 특별사면으로 석방됐다. 이후 2009년 전 대우인들과 대우세계경영연구회를 결성하고 제2의 고향이라고 할 수 있는 베트남에서 글로벌 청년 사업가 양성 사업(GYBM)을 진행했다.

대우그룹 김우중 전 회장이 지난 2017년 대우그룹 창업 50주년 기념식에 참석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대우그룹 김우중 전 회장이 지난 2017년 대우그룹 창업 50주년 기념식에 참석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 김우중 전 회장과 대우가 남긴 것

고인은 생전 대우그룹 해체에 관해 정부의 정책 실패가 원인이라며 억울함을 토로해온 바 있다.

김 전 회장은 지난 2014년 전직 대우그룹 임직원 500여 명이 참석한 ‘대우특별포럼’에서 “방만 경영을 하고도 구조조정을 제대로 하지 않아 쓰러진 것으로 알려진 대우그룹 해체가 사실과 달리 알려져 있다”면서 “이제는 시간이 충분히 지났기 때문에 잘못된 사실을 바로 잡고 역사가 자신들을 정당하게 평가해 주길 바란다”고 말한 바 있다.

김 전 회장과 전직 대우 임직원들은 당시 정부의 정책 실패와 외환위기 극복 방안에 대한 이견이 그룹 해체로 이어졌다 주장하고 있다.

외환위기 자체가 우리 금융당국의 오판으로 국제금융시장의 신뢰를 잃었기 때문이었으며 이 같은 상황에서 대우그룹과 김 전 회장 등 기업가에게 모든 잘못이 전가됐다는 주장이다.

김 전 회장이 우리 경제에 미친 영향이 적지 않은 만큼 그룹이 해체된 현재 대우의 흔적을 곳곳에서 찾을 수 있다. 모기업 (주)대우는 대우건설과 대우인터내셜로 나누어졌다. 현재 대우건설은 산업은행을 대주주로 새로운 주인을 찾고 대우인터내셔널은 포스코그룹에 인수됐다.

그룹의 주력 기업이었던 대우자동차는 미국 GM으로 대우종합기계는 두산그룹으로, 대우조선해양은 현대중공업, 대우전자는 대유위니아그룹이, 대우증권은 미래에셋이 인수했다.

과거 대우그룹 소속 중 현재까지 ‘대우’ 사명에 포함하고 있는 곳은 대우건설, 대우조선해양, 미래에셋대우, 위니아대우 등이 있다.

손성은 기자 katpa84@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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