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욕의 경영 인생 50년 박연차 태광실업그룹 회장
영욕의 경영 인생 50년 박연차 태광실업그룹 회장
  • 손성은 기자
  • 승인 2020.02.03 14:2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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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연차 태광실업그룹 회장 2020년 1월 31일 향년 75세 별세
경남 밀양 출신 가난했던 소년…부산·경남 기반 거물 기업가로
순탄하지 않은 인생…비극으로 끝난 노 전 대통령과의 인연도

박연차 태광실업그룹 회장이 별세했다. 경남 밀양 산골 출신으로 부산·경남 지역 산업에 획을 그은 인물이다. 성공한 사업가로 회자되는 고인이지만 그의 삶을 절대 평탄하지 않았다. 故 노무현 전 대통령과의 인연과 대한민국을 뒤흔든 ‘박연차 게이트’ 등. 고인의 굴곡진 삶을 다시 한 번 살펴본다. <편집자 주>

박연차 태광실업그룹 회장이 별세했다. 경남 밀양 산골 출신으로 부산·경남 지역 산업에 획을 그은 인물이다. 성공한 사업가로 회자되는 고인이지만 그의 삶을 절대 평탄하지 않았다. (사진/뉴시스)
박연차 태광실업그룹 회장이 별세했다. 경남 밀양 산골 출신으로 부산·경남 지역 산업에 획을 그은 인물이다. 성공한 사업가로 회자되는 고인이지만 그의 삶을 절대 평탄하지 않았다. (사진/뉴시스)

[한국뉴스투데이] 지난 2월 3일 오전 7시 30분 박연차 태광실업그룹 회장의 발인이 엄수됐다. 고인은 그간 지병인 폐암으로 병원에서 치료를 받아왔으나, 병세가 악화해 지난달 31일 오후 향년 75세로 별세했다. 부산·경남 지역의 거인인 고인은 전형적인 자수성가형 인물로 평가된다.

◇ 가난한 밀양 소년에서 부산·경남 거물 기업가로

박연차 회장은 1945년 11월 밀양 산내면에서 5남 1녀 중 넷째로 태어났다. 어린 시절에 가난에 시달리던 고인은 월남전 파병으로 인생의 전환기를 맞이한 것으로 알려졌다.

박 회장은 1966년 파병군으로 자원입대한 이후 1968년까지 44개월간 복무하는 과정에서 사업에 흥미를 느꼈다. 1971년 당시 26살이었던 박 회장은 태광실업 전신 ‘정일산업’을 창업하며 사업에 뛰어들었다. 이후 박 회장은 1980년 법인명을 ‘태광실업’으로 전환했다.

박 회장은 사업 초기 경영난을 겪는 등 위기를 겪었으나 이내 신발 사업을 바탕으로 다졌다. 대표적인 것이 지난 1987년 세계적 스포츠 브랜드 ‘나이키’와 전략적 파트너십을 체결한 것이다.

신발산업에서의 입지를 다지고 있던 고인은 1994년 국내 신발업계 최초로 베트남에 진출하기도 했다. 월남전 파병 당시 베트남 사람들의 근면 성실함을 저렴한 인건비를 눈여겨봤기 때문이다.

베트남에 진출한 박 회장은 단순히 사업가로서의 역할에만 그치지 않았다. 2000년 베트남 명예영사 취임하는 등 한국과 베트남 양국 교류 가교 역할을 했다.

박 회장은 단순히 신발산업에만 머물지 않고 2006년 정밀화학회사 휴켐스 인수, 2008년 태광파워홀딩스 설립, 2010년 베트남 목바이 오픈, 2013년 정산인터내셔널 설립 등 사업 다각화를 추진했다.

박 회장은 사업을 시작한 이후 별세 이전까지 약 50여 년간 ‘태광실업그룹’을 이끌었다. 2019년 기준 ‘태광실업그룹’은 신발, 화학, 소재, 전력, 레저 등 총 15개 법인을 운영하고 있으며 임직원 10만여 명의 기업으로 성장했다.

◇ 비극으로 끝난 故 노무현 전 대통령과의 인연

부산·경남 지역의 거물 기업가이자 재력가로 성장한 박 회장이지만 그의 인생은 순탄하지만은 않았다. 사업 초기 부도 등 경영 위기를 겪었을 뿐만 아니라 대한민국을 뒤흔든 대형 스캔들 이른바 ‘박연차 게이트’의 당사자로 고난과 비극을 겪었다.

‘박연차 게이트’는 대한민국을 뒤흔들었다. 고인이 정관계에 대규모 로비를 벌여왔고 그중에서 故 노무현 전 대통령과 그 일가는 물론 참여정부 핵심 인사들이 연루돼 있다는 것이 의혹의 핵심이었다.

고인은 사업 시작 초기 노 전 대통령 일가와 인연을 맺은 것으로 알려졌다. 박 회장은 정일산업 설립 당시 세무 공무원이던 노 전 대통령의 형 노건평씨와 친분을 맺었고, 1980년대 후반 노 전 대통령을 후원하며 본격적인 인연을 시작했다.

박 회장은 1988년 노 전 대통령이 부산 동구 국회의원에 출마하자 선거자금 지원을 위해 노건평씨의 임야를 매입했다, 또한 지난 2002년 대선 당시에는 노 전 대통령의 대선자금 마련을 위해 노건평씨가 내놓은 거제시 소재 별장을 10억원에 사들여 주목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박연차 게이트’ 의혹으로 노 전 대통령이 검찰 수사를 받게 되고, 비극적 결말을 맞이함에 따라 인연은 끝났다.

박 회장은 2011년 징역 2년 6개월과 벌금 291억원이 확정됐고, 2014년 2월 만기 출소했다. 박 회장은 노 전 대통령과 관련해 “노 전 대통령과 가족들에게 진심으로 죄송하게 생각한다”라며 “여생은 속죄하는 마음으로 본업인 사업에 열중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1일 경남 김해시 삼계동 조은금강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고(故)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 빈소에 조화가 놓여 있다. 이날 빈소에는 오후부터 기업인들이 줄지어 찾아 조의를 표했다. (사진/뉴시스)
1일 경남 김해시 삼계동 조은금강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고(故)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 빈소에 조화가 놓여 있다. 이날 빈소에는 오후부터 기업인들이 줄지어 찾아 조의를 표했다. (사진/뉴시스)

◇ 영욕의 50년 경영 인생… 신뢰의 경영철학 강조

고인은 전형적인 자수성가형 기업가로 평가된다. 1971년 정일산업 설립 이후 50여 년을 경영에 매진했다. 고인은 ‘돈을 좇기보다는 사람’을 강조하면서 신뢰를 기반으로 하는 경영철학을 강조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국내 신발산업의 부흥기를 이끌었다는 높은 평가와 함께 장학, 지원사업에도 열을 올렸다. 태광은 국내와 베트남 등 국외의 지역사회 발전을 위한 장학사업, 재난기금, 사회복지, 의료, 문화, 스포츠사업 등을 600억원 이상 규모로 지원하고 있다.

고인의 유족으로는 부인 신정화 씨와 아들 박주환 태광실업 기획조정실장, 딸 선영 씨, 주영(정산애강 대표), 소현(태광파워홀딩스) 전무 등이 있으며, 장지 등 유족들의 뜻에 따라 비공개로 하고 장례를 진행키로 했다.

손성은 기자 katpa84@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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