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금 체불 시달리던 노동자의 죽음 누구의 책임인가
임금 체불 시달리던 노동자의 죽음 누구의 책임인가
  • 조수진 기자
  • 승인 2020.02.18 13:2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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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개월 임금 못받은 노동자 극단적 선택
다단계 하청 구조, 서로 책임 회피 바빠
대형 건설사의 하청업체에 일하던 노동자가 3개월간 일한 임금을 받지 못하고 극단적 선택을 했다. 해당 사진은 기사 내용과 무관. (사진/뉴시스)
대형 건설사의 하청업체에 일하던 노동자가 3개월간 일한 임금을 받지 못하고 극단적 선택을 했다. 해당 사진은 기사 내용과 무관. (사진/뉴시스)

[한국뉴스투데이] 대형 건설사의 하청업체에 일하던 노동자가 극단적 선택으로 죽음을 맞았다. 이 노동자는 사망 직전 3개월간 일한 임금을 받지 못했다. 임금을 받기 위해 업체에 여러차례 요청을 했지만 업체들은 서로 떠넘기기에 바빴고 어디에서도 도움을 받지 못했다. 무엇이 이 노동자를 죽음으로 내몰았을까.

◇ 그는 왜 극단적 선택을 했을까?

노동자 조모씨는 지난 4일 군산에 위치한 자신의 아파트에서 투신했다.

앞서 조씨는 한 대형 건설사 하청업체에서 지난해 11월부터 올 1월말까지 설비를 떠받치는 구조물의 제작 작업을 맡았다.

구조물 작업은 앞공정인 취부파트(절단)과 뒷공정인 사상파트(그라인더)로 나눠진다. 조씨는 사상작업을 맡은 노동자로 작업에 최소 4~5명이 필요하지만 조씨는 혼자 작업을 진행했다.

당시 같이 작업을 했던 동료 박모씨는 “조씨 혼자 작업을 하다보니 일이 많이 밀려 취부 파트 작업자들이 일을 도와줘야 간신히 업무가 진행됐다”며 “인력 충원을 계속 요청했지만 회사는 응답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혼자 작업을 도맡다보니 일이 밀려 근로계약서 상 근무시간인 오전 8시부터 오후 6시를 훌쩍 넘긴 밤 10시 퇴근이 다반사였다.

열악한 작업 환경보다 문제가 된 것은 임금이다. 조씨는 8살, 4살, 3살의 어린 자녀를 양육하는데 필요한 양육비 등이 포함된 임금을 단 한푼도 받지 못했다.

구정 직전인 지난 1월 말 임금이 나왔다는 얘기가 나돌자 조씨는 임금을 받을 수 있을거란 기대를 가졌지만 업체들은 서로 임금 지급을 떠넘기기에 급급했다.

죽기 전날 노동청을 찾아 해결 방법을 찾기 위해 이리저리 뛰던 조씨는 여든이 넘은 어머니에게 “임금이 안나와서 문제가 생기면 우리 아이들을 잘 부탁한다”고 유언을 남기고 생을 마감했다.

◇ 다단계 하청 구조...서로 떠넘기기 급급

앞서 한국중부발전 보령화력발전소는 설비 구조물 제작 작업을 대형 건설사에 발주했다.

원청은 자재와 인건비 등을 하청이 지출하고 납품이 완료됐을 때 공사금액을 산정하는 방식으로 1차 업체에 하청을 줬다.

이어 1차 업체는 2차 업체에 하청을 줬고 2차 업체는 3차 업체에, 3차 업체는 4차 업체로 일을 맡겼다. 이는 전형적인 다단계 하청 구조다.

조씨는 이 중 2차 하청업체에 소속된 직원이다. 현재 임금을 받지 못한 노동자는 조씨 외에도 동료 박씨 등 4차 업체 소속 30여명의 임금 1억3000여만원이 미지급된 상태다.

민주노총 유기만 조직국장은 “원청에서 2차 업체로 공사대금의 일부인 5억9000만원이 지급됐다”며 “하지만 3차 업체에는 7000만원이 지급됐고 3차 업체는 2200만원을 받았다”고 말했다.

이어 “실제적으로 대부분의 작업을 진행한 4차 업체에는 1500만원만이 지급됐다”면서 “다단계 하청 구조로 인해 말도 안되는 상황이 발생한 것”이라 설명했다.

그러면서 ”1차 하청업체는 전문건설업체지만 2, 3, 4차 업체는 전문건설업체가 아니다“라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도급을 준 1차 업체의 문제가 크고 원청의 관리도 미흡했다“고 지적했다.

◇ 조씨의 죽음, 누구의 책임인가

이같은 문제에 대해 민주노총 뿐만 아니라 공공운수노조도 고질적 문제인 다단계 하청을 지적하고 나섰다.

공공운수노조는 지난 12일 성명서를 통해 ”대체 발주처인 발전사가 지불한 돈은 어디로 갔냐“면서 ”노동자의 임금은 물론 부실 시공의 원인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발전사가 발주하는 모든 업무에 대해 다단계 하청을 금지할 것“을 촉구했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지난해 건설업 임금체불은 3000억원 수준으로 전년보다 18% 정도 늘어 업계 임금체불이 심각한 수준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공정거래위원회의 불공정행위 신고센터에도 건설업계의 임금체불 신고액수는 해마다 300억원 안팎 수준으로 문제가 되고 있다.

최근 이같은 임금 체불이 계속 문제가 되며 대형 건설사들은 하청업체 근로자에게 임금을 직접 주는 제도 마련에 나섰다.

하지만 업계에서는 임금체불의 근본적 원인인 다단계하청이 금지되고 원청과 하청업체 등의 연대 책임 의무가 더 강화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특히 고 김용균씨의 사망사고와 관련해 특별노동안전조사위원회는 위험의 외주화와 원‧하청간의 책임 회피가 김씨의 사망원인이라는 조사 결과를 발표한 바도 있어 문제 해결에 정부가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는 지적에 힘이 실리고 있다.

조수진 기자 hbssj@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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