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초와 음악
난초와 음악
  • 서은영 칼럼니스트
  • 승인 2020.02.25 12: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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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문·종교·예술, 혹은 새로운 것은 늘 환영받지는 않았다
반젤리스…‘So Long Ago, So Clear’ 음악적 취향 정조준
신상의 세계는 흥미롭지만, 골수팬 되는 건 다른 차원의 일
▲사진은 책 덕분에 유명해진 ‘유령 난초’다.
▲사진은 책 덕분에 유명해진 ‘유령 난초’다.

[한국뉴스투데이] ‘난초 도둑이라는 책이 있다. 난초 도둑은 오늘날의 'K'이나 '온라인 게임'의 인기에 비견할 만한 난초 열풍이 있었던 시대에 실제로 존재했던 직업이다. 책 안에서는 유럽의 난초수집가들이 보낸 수많은 난초 도둑들이 동남아를 비롯한 신세계의 개척자 노릇을 했다는 일화가 여럿 소개되고 있다. 아무튼 경쟁이 치열해지자 난초 도둑들은 자신이 먼저 찾은 새로운 품종의 난초를 캐낸 후엔 그 서식지를 불 지르기도 했다. 따라서 전 세계적으로 유명해진 난초의 일부 품종은 정작 원산지에선 찾을 수 없게 되었다.

지금도 난초는 흔히 개업한 가게에 선물로 보내질 만큼 좋은 이미지를 지니고 있지만, 육종학의 발달로 과거와는 비교할 수 없게 흔해졌다. 난초 육종학의 최강국인 싱가포르에서는 귀빈에게 새로운 품종의 난초를 개발하여 선물하는 관행이 있는데, 우리나라의 대통령도 몇 년 전 자신의 이름이 명명된 난초를 선물 받아서 화제가 되기도 했다. 동물유전학은 여전히 위험하지만, 역사가 훨씬 오래된 식물의 품종교배는 우리의 먹거리와 볼거리를 넓히는 데 혁혁한 공로가 있으니 생존력과 적응력은 역시 식물계가 앞선다는 생각이다.

요즘은 어느 분야나 품종교배, 믹스&매치가 유행이다. 우리가 학교에서 배웠던 많은 학문이나 종교, 예술 등을 생각해본다면 혼종, 혹은 새로운 것은 늘 환영받지는 않았다. 많은 경우 대세의 학파나 예술사조가 존재하고 작은, 그렇다고 아예 없지는 않았던 다양성들이 점차 모양을 갖추어 변화를 이루어 왔다. 새로운 것일수록, 섞여 있는 것일수록 관심을 받는 난초의 세계는 그에 비하면 아주 운이 좋았던 케이스라 할 수 있다.

어릴 적부터 또래가 좋아하는 음악과는 항상 다른 걸 듣고 싶어 했던 필자는 좋게 말하면 주관이 강했고, 나쁘게 말하면 취향의 우월감을 가지고 있었던 것 같다. 그러면서 하나에만 깊이 몰입할 집중력이 부족해서 이리저리 색다른 것들에게로 떠돌아다녔던 것일 수도 있다. 사실, 또래가 좋아하는 음악과 다른 것이라고 해 보았자 언어만 다를 뿐이다. 바로 옆 세계에서 유행하는 대중음악이라던가, 소수의 인원이 오랫동안 매니악하게 좋아했던 또 다른 인기 장르였는데도 말이다. 예를 들어, 주변에서 팝을 많이 들으면 전 인더스트리얼 메탈을 듣는다던가, 록이 인기를 끈다 싶으면 필자는 애시드 재즈를 듣기 시작하던가 하는 식이었다.

하지만, 이런 삐딱선 같은 취향 덕분에 해낼 수 있는 게 하나 생겼다. 바로 나이가 들수록 하기 어렵다는 그것, 바로 낯선 음악을 꺼리지 않고 들을 수 있는 참을성이 늘었다는 점이다. 그리고 오래 보아야 예쁘다는 말처럼 음악도 자주 들으면 정이 든다. 낯설었던 많은 음악이 들을수록 익숙해져 확고한 취향이 되기도 했다. 최근 몇 년간 귀에 가장 낯설게 느껴진 음악은 바르톡과 야나체크였지만, 그보다도 좀 더 이전에 귀를 간지럽힌 음악은 데이브 브루벡, 반젤리스 등이었다. 아직 바르톡과 야나체크는 여전히 정들기 전의 상태니까 오늘은 데이브 브루벡부터 이야기해볼까 한다.

"왜 이렇게 들을 때마다 신나지?". Take Five는 퇴근하고 잠자리에 누워서 이제 한번 음악이나 들어볼까 하고 유튜브 앱을 열었다면 첫 곡으로 들을 만하다. 밴드 멤버 모두가 기쁘게 하려고 다 일어서서 연주하는 것 같은 느낌이랄까. 춤이라도 추면서 들어야 할 것 같은데, 어깨춤조차 박자 맞추기 힘들다. 아마 이 곡이 실험적인 5/4박자라서 그런 것 같다. 그래서 숙련된 연주인이 아니면 이 곡의 느낌을 제대로 살릴 수 없다는 이야기가 나오는 이유다.

https://youtu.be/vmDDOFXSgAs

반젤리스라는 이름은 1990년대에 라디오에서 처음 들었다. 하필 가장 먼저 들었던 곡이 Heaven and Hell 음반에 수록된 ‘So Long Ago, So Clear’이었으니 음악적 취향을 정조준 당한 느낌이었다. 나무위키에 따르자면 일렉트로닉 악기를 이용해 뮤지컬과 뉴에이지를 결합한 첫 앨범이다. 혼종과 신종을 좋아하는 필자에겐 종합선물세트나 마찬가지였다.

https://youtu.be/qjj3Y1tuLO4

▲반젤리스 앨범, Heaven and Hell
▲반젤리스 앨범, Heaven and Hell

난초나 음악이나 그저 애호가의 입장으로는 가만히 눈과 귀만 열고 있어도 아름다운 신상을 계속 만날 수 있으니 행운이 아닐 수 없다. 어린 시절에는 이런 음악을 찾겠노라고 음반 가게도 뒤지고, 라디오에서 나오는 설명도 하나하나 메모해가며 수집했었는데 이제 유튜브가 개인 취향을 가늠하는 비서 노릇을 하니 얼마나 편한 세상인가!

참고로 난초 도둑은 소재는 신선한데, 소설로 쓰인 이야기는 매우 흥미롭지는 않았다. 심지어 책에 영감을 받은 어댑테이션이라는 영화도 있다던데, 안타깝게도 아직 보지 못했다. 신상의 세계는 흥미롭지만, 골수팬이 되는 건 다른 차원의 일이니까 말이다.

서은영 칼럼니스트 olivesup@hotmail.com

서은영의 애호가의 신상찾기

영문학을 전공했다.
하지만 재즈 음악과 식물 공부에 더 심취해 있기도 하다.
아직 프로가 되지 못한 아마추어들에게 깊은 애정으로 공감하며 살아간다.
책에서 음악으로 무용에서 식물로 평생 이것저것의 애호가로 살아온 이야기를 담아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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