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층진단] 다시 불붙은 '양심적 병역거부' 논란
[심층진단] 다시 불붙은 '양심적 병역거부' 논란
  • 박성규 기자
  • 승인 2020.09.22 17:4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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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양심적 병역거부, 일제시대 '등대사 사건' 최초
입법과정서 '징벌조항vs더 늘려야' 입장차 속 부정적 시각
대만에서는 사회치안 분야, 봉사활동 등 다양한 활동 투입

군입대를 앞두고 9년 만에 종교 활동을 재개해 양심적 병역거부를 주장한 남성이 대법원에서 유죄를 받아 양심적 병역거부에 대한 논란이 불거졌다. 양심적 병역거부는 이전부터 오랜 논쟁의 대상이었다. 헌재의 헌법불합치 판정 이후 대체법안이 완성돼 오는 10월 소집을 앞둔 상황에도 여전히 형평성의 문제가 제기되고 있다. 이에 본지는 양심적 병역거부에 대한 논란 및 외국의 사례 등을 통해 양심적 병역거부에 대해 들여다보고자 한다. <편집자 주>

▲ 최근 군 입대를 앞두고 9년만에 종교활동을 재개하며 양심적 병역거부를 노린 남성이 대법원에서 징역형을 선고받으며 양심적 병역거부에 대한 논란이 불거졌다. (사진/뉴시스)
▲ 최근 군 입대를 앞두고 9년만에 종교활동을 재개하며 양심적 병역거부를 노린 남성이 대법원에서 징역형을 선고받으며 양심적 병역거부에 대한 논란이 불거졌다. (사진/뉴시스)

[한국뉴스투데이] 양심적 병역거부는 개인의 종교적 신념이나 양심상의 이유로 병역과 집총을 거부하는 행위로 대한민국 헌법 제19조에 보장된 양심의 자유를 근거로 하고 있다. 그러나 이들을 바라보는 국민의 시선은 여전히 부정적이다.

◇ 양심적 병역거부의 과거와 현재

병역 의무가 국민의 4대 의무 중 하나인 우리나라에서 양심적 병역거부는 오래전부터 논란이다. 병역거부에 대한 최초의 기록은 지난 1939년 일제 강점기에 일어난 ‘등대사 사건’이다. 당시 여호와의 증인 신도 30여 명이 병역 및 신사참배를 거부했다는 이유로 서울 서대문형무소에 수감되면서 종교와 병역 의무를 놓고 문제가 시작됐다.

이후 광복과 6.25 전쟁을 거치면서 1950년대 후반부터 징병제가 도입됐고, 당시 병역거부자나 집총거부자에게는 1년 정도의 징역형이 내려졌지만, 일부 지휘관들은 이들을 비전투병과로 배치해 군 복무를 마칠 수 있게 도와주기도 했다.

그러나 유신헌법을 발효한 1972년, 박정희 前 대통령은 ‘입영률 100%’를 지시하면서 병무청이 병역거부자를 영장 없이 체포해 강제 입영시키기도 했다. 당시 박정희 정권은 병역거부자에게 징역 10년을 선고할 수 있도록 특별법을 만드는 등 강력히 대응하며 병역 의무화의 기초를 마련했다.

이 과정에서 병역 의무를 거부한 사람은 형기가 끝나 출소하기 전에 병무청 직원들에 의해 재입영되거나 다시 재판에 부쳐지기도 했으며, 집총을 거부하다 구타와 가혹 행위를 당해 숨지는 일까지 발생했다.

우리나라에서 양심적 병역거부 문제가 본격적으로 부각된 것은 2001년 집총 거부로 인해 수감 중인 여호와의 증인 신도들의 인터뷰 기사가 보도된 후 오태양 씨가 양심적 병역거부를 선언하면서부터다.

이에 천주교, 기독교, 불교 등 여러 종교뿐 아니라 성 정체성, 평화주의 등을 사유로 병역거부를 선언하는 사람들도 나타나면서 논란이 불거졌고, 2002년 1월 박시환 당시 서울남부지검 판사는 병역법 제88조 1항은 위헌이라며 헌법소원을 제기했다.

그 후 3년이 지나고 사법 역사상 최초로 양심적 병역거부에 대한 무죄판결이 나오기도 했다. 이후 2018년까지 법원은 양심적 병역거부에 대한 무죄판결이 잇따라 내놓기도 했지만 헌법재판소는 지난 2004년 8월 병역법 조항에 대한 합헌을 결정한 이후 연이어 양심적 병역거부에 대해 유죄를 확정하는 등 최고 사법기관에서는 이를 허용하지 않아 입장 차이를 보였다.

그러던 와중에 2018년 6월 28일 헌법재판소가 양심적 병역거부자의 대체복무제를 규정하지 않은 병역법 조항에 대해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리면서 병역거부는 곧 위법이 됐다. 이는 이들에 대한 대체복무 법을 만드는 계기가 됐고 오는 10월 대전교도소 내 대체복무 교육센터에 병역 거부자 64명이 소집될 예정이다.

◇ 입법 과정서 불거진 형평성 논란

헌재의 헌법불합치 판정 이후 당시 국방부는 대체복무 기간을 육군 기준 1.5배 늘린 27개월과 2배 늘린 36개월 중 하나로 정하되 교도소 등 교정시설에서 합숙근무를 하는 안을 논의 중임을 밝혔다.

그러나 이를 두고 인권단체와 대법원의 판결을 부정하는 측의 논쟁이 치열하게 맞섰는데 일부 네티즌들은 악용의 소지를 문제 삼으며 현역 복무자와의 형평성 문제를 이유로 복무기간을 더 늘려야 한다는 취지의 주장을 내놓기도 했다.

또한, 단순 병역기피자와 진짜 양심적 병역거부자를 가려낼 수 있도록 징벌적 성격을 띠게 해 대체복무제가 병역 기피수단으로 악용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논리를 내세웠다. 그러나 군인권센터를 비롯한 50여 개의 시민단체는 대체복무제가 굉장히 징벌적인 대체복무로 인권침해의 소지가 있다는 취지로 반대하고 나섰다.

이는 현재 대체복무제도가 법제화된 이후에도 계속해서 진행되고 있으며 포털사이트 기사에는 여전히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시각이 우세하다. 더 큰 문제는 종교가 아닌 일반 신념에 의한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에 대한 문제다.

지난 2018년 대법원 전원합의체에서는 종교에 대한 양심적 병역거부에 대해 무죄 취지로 파기 환송한 바 있다. 이 당시 불거진 문제가 앞으로 일반 신념에 의한 병역거부자에 대해 무죄판결을 내릴 수 있느냐는 것이었다.

대법원은 당시 양심의 증명방식으로 가정생활과 성장환경, 사회경험 등을 통한 사실을 입증해야 한다고 판시했지만, 매우 주관적인 판결로 이어질 가능성이 농후하다는 점을 우려하고 있다.

이에 법조계와 시민사회 일각에서는 ‘종교적’ 병역거부가 무죄라면 ‘일반 신념’에 의한 병역거부 역시 무죄로 이어지게 된다면 결론적으로 징병제가 무너지게 될 것이라는 지적 역시 끊임없이 나오고 있다.

▲ 헌법재판소의 불합치 판정 이후 국방부가 대책을 마련하는 과정에서 대체복무가 과연 징벌적 조항인지에 대한 논란이 불거졌다. 또한 종교적이 아닌 일반 신념에 의한 양심적 병역거부자의 처리를 두고 더욱 논란이 가열되고 있다. (사진/뉴시스)
▲ 헌법재판소의 불합치 판정 이후 국방부가 대책을 마련하는 과정에서 대체복무가 과연 징벌적 조항인지에 대한 논란이 불거졌다. 또한 종교적이 아닌 일반 신념에 의한 양심적 병역거부자의 처리를 두고 더욱 논란이 가열되고 있다. (사진/뉴시스)

◇ 해외의 대체복무 상황은?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의 대체복무에 대해 찬반양론이 팽팽한 가운데 외국의 대체복무 사례를 보면 징병제 시행국 59개국 중 20개국이 양심적 병역거부자에 대한 대체복무제를 운영하고 있다.

이들 국가는 병원이나 요양기관 등 공공기관이나 사회복지 분야 등에 이들을 투입하고 있는데 지난 1998년 UN 인권위원회가 “양심적 병역거부의 취지에 맞는 대체복무를 도입하되 징벌적 성격이 아닌 비전투적이며 공익적인 대체복무를 도입해야 한다”고 결의한 데 따른 것이다.

이탈리아는 문화유산 보호나 재난 발생 시 긴급대처가 필요한 분야 등에 대체복무자들을 활용하고 있다. 그러나 전쟁이 발발할 경우 대체복무자도 민간인 보호 및 적십자 활동에는 투입이 가능할 수 있도록 운영하고 있다.

대만의 경우에는 경찰이나 소방 등 사회치안 분야나 병원과 양로원 등 봉사활동을 하는 등 비교적 다양한 분야에서 대체복무제를 활용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교정시설 활동과 과학 연구 등에도 투입이 가능하도록 하고 있다.

상대적으로 대체복무기간이 긴 그리스의 경우, 우체국이나 법원 등 행정기관에서도 근무하기도 하는 등 대만보다 더 다양한 방식으로 운영하고 있고 출퇴근을 원칙으로 운영된다. 대만은 합숙 생활을 하고 있다.

특히 대체복무를 도입한 국가들의 경우 대체복무가 병역기피의 수단으로 악용되는 것을 막고 현역 군인과의 형평성을 맞추기 위해 대체복무 기간을 현역보다 더 길게 잡고 있다. 스위스의 대체복무기간은 현역 병사의 복무일인 390일에 1.5배 근무하는 것으로 나타났으며 현역으로 복무하는 도중에도 대체복무로 전환이 가능한 나라도 존재한다.

아울러 대체복무 신청 사유가 종교적 문제 외에도 다른 사안으로도 확대되는 추세인 것으로 나타났다. 그리스나 스위스, 핀란드 등은 종교적 문제가 아닌 일반 신념에 의한 양심적 병역거부도 허용하는 분위기다.

그러나 양심적 병역거부자의 대체복무 심사는 상당히 까다로운 것으로 나타났다. 그리스의 경우 이들을 심사하는 기관인 병무국 특별심사위원회를 따로 설치해 사유에 대한 진위를 다루는 방식이며 이곳에서 1차 서면심사, 2차 면접심사를 거친다.

이렇듯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에 대한 대체복무가 각국에 다양한 방식으로 존재하는 가운데 우리나라도 오는 10월 대전교도소 내 대체복무 교육센터에 병역거부자들이 소집되면서 대체복무에 첫발을 뗐지만 그럼에도 현재 양심적 병역거부를 선언한 64명에 대한 논쟁은 여전히 뜨거운 감자다.

박성규 기자 dkvmf11@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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