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의 건너편 ‘클래식 블루’
우울의 건너편 ‘클래식 블루’
  • 성지윤 칼럼니스트
  • 승인 2020.09.24 15:2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다시 피아노 건반에 손을 얹은 어머니가 꺼내 든 ‘랩소디 인 블루’
조지 거슈윈의 ‘랩소디 인 블루’…미국의 20세기 작곡가로 자리매김

[한국뉴스투데이] 얼마 전, 지인의 sns 피드에서 망가진 2020 클래식블루라는 글과 사진을 봤다. 그러고 보니 올해는 클래식블루라는 색이 2020년을 대표하는 색으로 선정되어 연초에 많은 곳에서 사용되며 주목을 받았다. 그러나 코로나19로 인해 이 아름다운 색은 자신의 매력을 유감없이 발휘하기도 전에 그 존재감이 희미해져 가고 있다. 개인적으로 파란색을 가장 좋아했기 때문에 클래식블루가 2020년도를 어떤 모습으로 장식할지에 대한 기대감이 컸다. 그랬기에 자신을 제대로 펼쳐보지 못하고 있는 클래식블루에 대해 아쉬움은 마음이 들었다.

이런 마음을 대신할 음악적 위로였을까? 코로나19로 세상이 혼란스러웠던 봄과 여름 시기에 때마침 어머니께서는 조지 거슈윈의 <랩소디 인 블루> 연습이 한창이셨다. 음악을 전공하신 어머니는 몇 년 전부터 피아노를 다시 시작하셨다. 지긋한 나이로 인해 손가락의 기능은 예전만 못하시지만, 세월의 내공과 함께 더해진 음악적 깊이는 음악에 풍미를 더해주었다. 모든 이들이 힘들었던 시기에 오전 내 들려오는 밝고 경쾌한 <랩소디 인 블루>는 답답하고 우울한 마음을 달래주는 치유제가 되었다.

조지 거슈윈은 미국을 대표하는 피아니스트 겸 작곡가로 39살의 나이로 요절한 현대음악의 거장이다. ‘유럽 전통 음악을 미국만의 독자적인 양식으로 만들어낸 위대한 인물로 평가받고 있는 그는 활동 당시 예술성과 대중성을 모두 인정받으며 큰 성공을 거두었다.

▲조지 거슈윈은 미국 음악사상 가장 중요한 한 명으로 평가받고 있다.
▲조지 거슈윈은 미국 음악사상 가장 중요한 한 명으로 평가받고 있다.

클래식 피아노를 공부했지만, 재즈와 대중음악을 더 좋아했던 그는 열여섯 살이라는 어린 나이에 학교를 그만두고 악보 출판사에서 일하기 시작했다. 이후 스물한 살부터는 본격적으로 작곡 활동을 하며 다양한 작업을 통해 명성을 쌓아갔다. 그의 곡 중에서도 <랩소디 인 블루>는 그가 미국의 20세기 작곡가로 자리매김할 수 있게 된 최초의 음악이었다.

재즈의 왕이라 칭송받던 폴 화이트만의 의뢰로 작곡된 이 곡은 거슈윈이 보스턴행 열차의 소음에서 영감을 받아 작곡한 음악으로 1924년 폴 화이트만의 지휘 아래 현대음악의 실험이라는 타이틀로 초연되어 대성공을 거뒀다. 도입부에 나오는 클라리넷 글리산도는 첫 공연의 리허설 때 클라리넷 주자의 우연한 장난으로 시작되었는데, 이는 현재까지도 이어지며 음악 전체에 매력을 더해주는 요소가 되었다.

▲랩소디 인 블루 앨범자켓- 레너드 번스타인과 LA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협연 음반
▲랩소디 인 블루 앨범자켓- 레너드 번스타인과 LA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협연 음반

<랩소디 인 블루>에서 블루는 우울하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지만, 그보다는 재즈의 블루 노트를 뜻한다고 보는 의견이 일반적이다. 우리에게 파랑은 외로움, 우울, 슬픔, 허무를 대변하는 색으로 알려져 있다. 이처럼 블루라 하면 우울감이나 슬픈 감정을 떠올리게 되는 게 통상적인 반응이지만 꼭 그렇지만도 않다, 이런 감정과는 반대로 해방감, 신뢰, 정화, 희망 등을 뜻하기도 하며 특히 유럽과 북미에서는 평온함의 상징으로 이성, 신뢰, 안전 및 권위를 대표하는 색이다.

음악뿐 아니라 미술에서도 파랑의 상징적 의미를 많이 차용해 왔고 피카소와 반고흐는 친구를 잃은 상실감과 우울감에 빠져 있던 시기에 푸른색으로 작품을 많이 그렸다. 이렇듯 미술에서 블루를 대표적 색상으로 작업한 또 한 명의 작가가 있는데 이브 클라인 작품의 예가 그렇다.

피카소의 파랑이 우울을 표현했다면 이브 클라인의 블루는 회화의 순수성을 향한 그의 감성의 표현이자 삶을 투사한 빛깔의 결정체였다. 프랑스 니스 출생의 누보 레알리즘 화가이자 20세기 후반기를 대표하는 프랑스 작가인 이브 클라인은 정식 미술교육을 받지 못했다. 하지만 8년간의 작업을 통해 행위예술, 팝아트, 미니멀리즘, 개념미술에 큰 영향을 준 화가로 자리매김하며 기인과도 같은 작품활동을 하였다. 그의 작업은 미술계는 물론 패션계, 연극계, 음악계까지 영향을 미치며 현재까지도 수많은 예술가에게 영감을 주고 있다.

▲인터내셔널 클랭 블루’(IKB·International Kein Blue)
▲인터내셔널 클랭 블루’(IKB·International Kein Blue)

이렇게 다양한 영역에 영향력을 끼치며 활동한 그이지만, 이브 클라인의 초기 작업은 주목받지 못했다. 열아홉 살부터 푸른색 단색화를 구상하며 안료와 회화제작 기술을 익혀 단색화로 전시했지만, 아이디어를 거부당하는 등 빛을 발하지 못했다. 그러던 중 평론가 피에르 레스타니를 만나게 되면서 그의 작품은 세간의 주목을 받게 되었다. 피에르의 안목으로 초기에 인정받지 못했던 푸른색 단색화는 그를 미술계의 세계적인 스타로 만들어준 대표작이 됐다. 그는 합성 레진을 이용하여 만든 자신만의 특별한 색을 인터내셔널 클랭 블루’(IKB·International Klein Blue)라는 이름으로 특허를 내고 고유명사화했다.

이브클라인은 청색을 통해 모든 비물질성, 형이상학 그리고 초자연 등을 표현하려 했다. 이러한 생각은 누드를 찍은 작품에서 절정을 이룬다. 1960, 그는 실내악단의 연주에 맞춰 자신의 청색 물감을 모델의 온몸에 칠하고 벌거벗은 여성들을 붓 삼아 벽과 화면에 그림을 그리는 인체측정학시리즈를 선보였다. 이는 클라인에게 국제적 명성을 얻게 해주는 계기가 되었고 두고두고 회자 되며 논쟁거리가 되었다. 그러나 많은 예술가들에게는 큰 자극과 영감을 주었다.

예전에 모 갤러리에서 그의 작품 중 투명한 긴 테이블 안에 IKB 색상의 가루가 흩어져 있는 작품을 본 적이 있다. 깊고 진한 IKB색 가루는 신비로웠고 무한한 다양성을 담아내고 있었다. 강력한 카리스마로 보는 이를 끌어들인 이브클라인 블루의 세계는 너무나 아득해서 감상자와 그림 사이의 공간을 모조리 지워버리는 듯했고 격렬한 아름다움은 불꽃처럼 번쩍였다.

▲좌.Yves Klein, Unutitle Anthropometry 공연. 1960우 Yves Klein 인체측정 Anthropometry ANT 85 1960. 155.5x 352.5cm
▲좌.Yves Klein, Unutitle Anthropometry 공연. 1960우 Yves Klein 인체측정 Anthropometry ANT 85 1960. 155.5x 352.5cm

이브 클라인은 파랑은 볼 수 없는 것을 보이게 하는 색이라고 했다. 그래서일까? 우리는 하늘과 바다를 보며 그 너머의 것들을 상상하며 감정과 조우한다. 괴테는 1810년 그의 저서 <색채론>에서 사람들은 푸른색을 무척 좋아한다. 푸른색이 우리를 나아지게 해서가 아니라 그것이 우리를 이끌어주기 때문이다라고 했다. 올해의 색 클래식 블루는 과연 우리를 어디로 이끌게 될까? 나는 이 우아한 색이 결코 우리를 우울한 곳이 아닌 새로운 세계로 가는 길목으로 이끌고 있다고 믿고 싶다. 조지 거슈윈이 <랩소디 인 블루>를 통해 클래식과 재즈를 융합한 새로운 세계를 열었던 것처럼 말이다.

성지윤 칼럼니스트 claramusic89@naver.com

성지윤 칼럼리스트

음악을 전공하고 현재 아이들을 대상으로 하는 음악교육에 대한 관심을 바탕으로 클라라뮤직을 운영중에 있다.
또한 미술,사진,연극, 문학 등 다양한 얘술분야에 대한 탐구와 이해를 토대로 음악이 타장르 예술들과 만났을때의 흥미로운 점들을 발견하면서 예술융합에 남다른 관심을 가지고 연구 및 교육중에 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