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관 부딪힌 김종인 리더십 ‘흔들흔들’
난관 부딪힌 김종인 리더십 ‘흔들흔들’
  • 이주현 기자
  • 승인 2020.10.14 09:2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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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5 총선 참패 이후에는 위기감 때문에 일치단결
2011년 비대위 당시 박근혜라는 인물 있어 가능

2016년 비대위 당시는 문재인 대통령이 있어서
차기 대권 주자 없는 비대위, 위기 봉착은 필연

여의도 차르로 불리는 김종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의 리더십이 크게 흔들리고 있다. 이를 두고 정치권 안팎에서는 당연하다는 분위기다. 특유의 독선적이면서 강력한 리더십에 불만이 속출하는 것은 당연하다는 것. 김 위원장이 그동안 비대위원장 자리에 많이 앉았지만 비대위의 쇄신이 성공할 수 있었던 것도 김 위원장이 ‘2인자’였기 때문에 가능했다. 즉, 차기 대권 주자라는 1인자가 뒷배경이었기 때문에 가능했다는 것이다.<편집자주>

김종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위태롭다. 독선적이며 강력한 리더십에 불만이 속출하고 있다. (사진/국민의힘)
김종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위태롭다. 독선적이며 강력한 리더십에 불만이 속출하고 있다. (사진/국민의힘)

[한국뉴스투데이] 김종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의 리더십이 위태롭다. 4.15 총선 참패 이후 김종인 비대위 체제가 출범했다. 초반에는 김 위원장을 중심으로 똘똘 뭉쳐 일사분란하게 움직였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정치적 이해관계가 다른 사람들의 목소리가 하나둘 나오기 시작하면서 김 위원장의 리더십이 약해지기 시작했다.

최근 공정경제3법 처리에 대한 불만, 당무감사에 대한 불만 그리고 내년 4월 서울시장과 부산시장 재보선 준비 과정에서 삐걱 거리는 모습이 나왔고, 급기야 지난 12일 김 위원장이 “이런 식이면 비대위가 필요없다”고 격노했다.

재보선 경선준비위 인선 갈등 등

핵심은 서울·부산시장 재보선 경선준비위원회 인선이다. 김 위원장을 김선동 사무총장 등 실무진에게 재보선 대책위원회 인선을 위임했는데 친박 성향 유일호 전 경제부총리가 위원장으로 내정되면서 갈등이 증폭됐고, 급기야 김 위원장은 인사를 중지시키고 선대위를 경선준비위로 축소시켰다.

또한 중진 일각에서는 이제라도 더불어민주당으로부터 상임위원장 일부를 받아야 한다는 목소리를 내고 있다. 중진의원으로서는 상임위원장 이력은 중요한 정치 이력이다. 따라서 중진으로서는 상임위원장에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김 위원장은 18대 0의 구도를 가져야 한다고 고집을 부리면서 그에 따른 갈등이 불가피하다.

이런 가운데 원외 당협위원장에 대한 당무감사에 대해 일부 인사들이 불만을 토로하고 있다. 총선이 끝난 후 당무감사를 실시하는 경우가 흔하지 않기 때문에 김 위원장이 자신의 사람들을 심기 위해 당무감사를 하는 것 아니냐는 비판의 목소리가 나온다.

무엇보다 지지율 정체가 김 위원장에 대한 불만을 나오게 만들고 있다. 한때 더불어민주당을 제치고 지지율 1위를 차지했지만 2주 천하로 끝나고 다시 2위 자리로 내려앉았고, 더불어민주당과의 지지율 격차가 상당히 벌어졌다.

이런 상황에서 독선적이면서 독단적인 강력한 카리스마 리더십을 발휘하다보니 당내 불만이 쌓이는 것은 당연하다. 정당이라는 것이 민주적 절차에 의해 결정되고 움직여야 하는데 김 위원장의 말 한 마디에 모든 것이 결정되는 독선적인 구조이기에 불만이 많을 수밖에 없다.

그동안 김종인 비대위 성공 이유는

그러나 김종인 비대위는 그동안 계속해서 성공 신화를 써왔다. 지난 2012년 대선을 앞두고 박근혜 전 대통령은 김종인 비대위 체제를 출범시켰다. 김종인 비대위는 ‘경제민주화 카드’를 꺼내들고 새누리당을 상당한 수준으로 쇄신을 시키는데 성공했다.

박 전 대통령이 대통령에 당선될 수 있는 첫 번째 공로자는 김 위원장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김 위원장의 역할은 상당했다.

2016년 총선 당시 김 위원장은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원회 대표를 맡았다. ‘비대위원장’이 아닌 ‘대표’라는 자리를 줬다는 것은 사실상 모든 권한을 줬다고 해도 무방하다.

그리고 김 위원장은 더불어민주당을 쇄신시켰고, 2016년 총선을 승리로 이끌면서 2017년 대선에서 문재인 대통령의 승리 발판을 마련했다.

당시 비대위 대표로서 정청래 현 의원의 공천 학살을 주도하면서 당이 쇄신한다는 이미지를 유권자들에게 각인시켰다.

이처럼 두 차례 비대위원장 자리에 앉았고, 두 차례 모두 성공으로 이끌었다. 이런 이유로 국민의힘에서 김 위원장을 비대위원장 자리에 앉힌 것이다.

하지만 한 가지 간과한 것이 있다. 그것은 김 위원장은 두 차례 비대위에서 ‘2인자’였다는 사실이다.

2번의 비대위원장, 성공 이유는

2번의 비대위원장이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는 뒷배경에 차기 대권 주자라는 인물이 있었기 때문이다. 2012년에는 박 전 대통령, 2016년에는 문재인 대통령이라는 뒷배가 있었기 때문에 김 위원장이 강력한 카리스마로 독단적이면서 독선적인 당 쇄신을 단행할 수 있었다.

하지만 국민의힘 비대위 체제는 과거와 같은 당 쇄신의 성공을 담보할 수 없다. 왜냐하면 차기 대권 주자라는 강력한 리더십이 없기 때문이다. 모두 하나씩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정당은 민주적 절차에 의해 움직여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로서는 김 위원장의 독단적이면서 독선적인 강력한 카리스마 리더십에 대한 거부감을 가질 수밖에 없다.

김종인 비대위 초창기에는 아무런 목소리를 내지 않았던 것은 4.15 총선 참패라는 위기감 때문이다. 이는 2011년 비대위 당시 박 전 대통령을 대통령에 당선시켜야 한다는 숙제를 새누리당이 안고 있었고, 2016년 비대위 당시에는 더불어민주당이 총선에서 승리해야 한다는 숙제가 있었기 때문에 일치단결할 수 있었다.

하지만 현재 국민의힘은 4.15 총선 참패 위기 터널에서 다소 벗어난 듯한 모습을 보이면서 그에 따른 다양한 목소리들이 분출하고 있다. 그런데 김 위원장이 이를 독단적이면서 독선적인 강력한 카리스마 리더십으로 분출을 못하게 막는다면 그에 따른 갈등은 불가피하다.

이주현 기자 leejh@koreanewstoda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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