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반으로 갈라선 낙태죄 논란
찬·반으로 갈라선 낙태죄 논란
  • 박성규 기자
  • 승인 2020.10.20 15:4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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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낙태죄 개정안 입법 예고에 찬·반 모두 강하게 반발
일제강점기부터 시작. 사문화됐다가 대법원 판결 후 부활
여야, 한목소리로 정부 개정안 비판, 국민의힘은 ‘침묵’

최근 정부가 임신 14주까지 제한적으로 낙태를 허용하는 내용의 형법·모자보건법 개정안을 입법 예고하면서 논란이 불거지고 있다. 특히 이번 입법 개정안을 두고 낙태 찬성 측과 낙태 반대 측 모두 반발하고 있다. 이에 일각에서는 낙태죄에 대해 헌법재판소에서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린 이후 국회에서 열린 토론회가 3번에 불과해 의견수렴의 과정이 없었다는 비판이 나왔다. 낙태죄에 대해 짚어봤다. <편집자 주>

▲ 최근 정부의 낙태법 개정안이 입법 예고되면서 논란이 과열되고 있다. 이번 정부 개정안을 두고 낙태 찬성 측과 반대 측 모두 반발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 최근 정부의 낙태법 개정안이 입법 예고되면서 논란이 과열되고 있다. 이번 정부 개정안을 두고 낙태 찬성 측과 반대 측 모두 반발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한국뉴스투데이] 낙태죄는 일제강점기 때부터 시행됐다. 그러나 정부의 인구정책에 따라 사문화되기도 하는 등 집행 여부가 달라지기를 반복해 일관된 집행이 아니라는 비판이 계속 제기돼 왔다.

◇ 낙태죄가 뭐길래? 낙태죄의 역사

최근 정부의 낙태법 개정안이 입법 예고되면서 논란이 과열되는 가운데 낙태죄에 대해 관심이 쏠리고 있다.

낙태행위에 대해 법적 처벌을 시작한 시기는 일제강점기로 당시 일본은 1912년 조선형사령을 시행하면서 낙태한 여성에게 징역 1년 이하의 징역, 낙태를 시술한 사람들에게는 징역 3개월 이상 5년 이하의 징역을 선고하도록 했다.

해방 이후 낙태죄의 존폐를 두고 논란이 벌어졌지만 1953년 법전편찬위원회에서 낙태죄 조항을 형법에 포함시키면서 낙태죄는 존치됐다. 당시 낙태한 여성에게는 1년 이하의 징역형 혹은 2만 원 이하에 벌금형에 처했으며 의료진에게는 2년 이하의 징역형에 처했다.

낙태죄는 인구 조절을 위한 수단 중 하나로 쓰였으며 한국전쟁 이후 인구 증가를 위해 낙태를 사회적 범죄로 취급하는 분위기였지만 정부가 낙태죄 특별법을 만들기로 합의하면서 계속 시행됐다.

낙태죄 특별법은 박정희 정권인 1973년 모자보건법 8조로 제정됐다. 해당 조항에는 정신장애나 신체질환, 강간에 의한 임신 등 산모의 건강을 해할 우려가 있는 경우에만 낙태를 제한적으로 허용키로 했다.

1970년대 이후 정부에서 산아제한 정책을 펴며 낙태죄는 사실상 사문화됐다. 그러나 1985년 대법원이 낙태 시술을 사회 상규에 포함하지 않는다는 판결을 내리면서 낙태죄가 부활하게 됐고, 현재까지 이어졌다.

낙태죄 부활 이후인 2017년 2월 69차례 임신중절 수술을 진행했다는 이유로 기소된 산부인과 의사가 헌법재판소에 헌법소원을 제기했고, 지난해 헌법재판소에서 낙태죄에 대해 임신 초기의 낙태까지 처벌하도록 한 현행 낙태죄가 여성의 자기 결정권을 과도하게 침해한다는 이유로 헌법불합치 판정을 내리면서 낙태죄는 사실상 폐지 순서를 밟게 됐다.

◇ 정부 개정안에 여성계 “정부가 낙태죄 되살려”

이렇듯 낙태죄에 대해 헌법재판소가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린 가운데 헌법재판소는 2020년까지 모자보건법을 개정하고, 개정안이 나오지 않으면 전면 폐지하기로 했다. 그러나 국회에 정부는 관련법 논의를 제대로 진행하지 않았고, 20대 국회에서는 이정미 당시 정의당 의원이 개정안을 발의했지만 임기 만료로 자동폐기됐다.

이런 가운데 정부가 개정안을 입법예고하면서 논란이 불거졌다. 낙태죄 헌법불합치 이후 국회 토론회가 열린 것은 3번에 그친 상황에서 의견수렴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는 지적도 함께 나왔다.

정부의 개정안에 따르면 임신한 여성의 임신유지·출산 여부를 결정할 수 있는 기간을 임신 24주 이내로 설정해놓고 이를 다시 임신 14주와 24주로 구분해 14주는 여성 본인의 의사에 따라 낙태를 결정할 수 있게 했으며 15주부터 24주까지는 사회·경제적 사유가 있을 때만 낙태를 허용하는 것을 골자로 하고 있다.

이를 두고 낙태를 찬성하는 쪽에서는 낙태죄를 유지했다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는 지난 7일 보도자료를 내고 “임신 중지는 처벌될 범죄가 아닌 안전하고 합법적인 의료서비스로서 보호돼야 할 인권”이라며 비범죄화를 촉구하기도 했으며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도 같은 날 성명을 내고 정부 개정안의 전면 철회를 주장했다.

반면 낙태를 반대하는 시민단체인 ‘행동하는 프로라이프’는 정부의 낙태법 개정안을 두고 낙태는 명백한 살인이며 대한민국 여성들은 무분별한 낙태를 원하지 않는다고 주장하면서 지난 19일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기자회견을 진행했다.

일각에서는 정부 개정안에서 본인 의사에 따라 낙태를 결정할 수 있는 기준을 14주로 정한 것에 대해 비판을 제기하기도 했다.

정부가 지난해 헌재가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리며 나온 일부 의견을 반영해 임신 14주로 설정했지만 지난 8월 법무부 양성평등위원회가 이에 대해 사람별 신체조건과 상황이 다르므로 명확성의 원칙에 어긋난다는 권고를 내린 바 있어 정면으로 배치된다는 것이다.

이를 두고 정부가 내놓은 개정안이 사실상 낙태죄 존치로 해석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 정부의 개정안은 임신 14주를 기준으로 14주 이내에는 여성의 의사대로 낙태를 허용하고 15주부터 24주까지는 사회·경제적 사유가 있을 때만 낙태를 허용하는 것을 골자로 하고 있다.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지난 8월 법무부 양성평등위원회의 권고와 배치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사진/뉴시스)
▲ 정부의 개정안은 임신 14주를 기준으로 14주 이내에는 여성의 의사대로 낙태를 허용하고 15주부터 24주까지는 사회·경제적 사유가 있을 때만 낙태를 허용하는 것을 골자로 하고 있다.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지난 8월 법무부 양성평등위원회의 권고와 배치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사진/뉴시스)

◇ 여당서도 반발 움직임…. 낙태죄 폐지 가능할까?

정부의 낙태죄 개정안에 대한 논란은 정치권에서도 이어졌다. 진보성향의 야당인 정의당과 기본소득당 뿐 아니라 여당인 더불어민주당 내에서도 정부의 전향적 태도 변화를 촉구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박주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 8일 오전 자신의 SNS를 통해 낙태 비범죄화 및 여성 자기 결정권 보장을 골자로 하는 형법·모자보건법 개정안을 발의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박 의원은 정부의 낙태죄 개정안을 두고 “낙태죄를 오히려 공고화할 수 있다”라고 지적했다.

박 의원에 앞서 국회 여성가족위원회 소속인 더불어민주당 권인숙 의원은 지난 7일 정부 개정안에 반대하며 형법·모자보건법 개정안 발의 의사를 밝혔다. 권 의원은 “사문화되고 위헌 판정을 받은 낙태 처벌규정을 되살린 명백한 역사적 퇴행”이라며 정부의 개정안을 비판했다.

진보성향의 야당인 정의당과 기본소득당에서도 비판의 목소리가 나왔다. 정의당은 8일 오전 논평을 내고 “한 언론사 보도에 의하면 이번 개정안 도출 과정에서 청와대의 입김이 크게 작용했다며 복수의 정부 관계자가 말했다는 보도가 나왔다”라며 “시민의 건강권 보장조차 제대로 하지 않고 처벌과 낙인에 앞장서는 청와대가 참담할 뿐”이라며 강도 높게 비판했다.

용혜인 기본소득당 의원도 기자회견을 열고 낙태 진료거부를 허용한 이탈리아 여성들이 낙태 여행을 떠난다는 점을 언급하며 정부의 개정안을 비판했다. 하지만 보수 야당인 국민의힘은 정부의 이번 개정안에 대한 공식 논평을 내지 않았다.

이렇듯 여야를 불문하고 비판의 목소리가 나오면서 낙태죄 폐지에 대한 국회 논의도 본격화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그러나 낙태죄 폐지에 비판적인 일부 보수단체와 종교계 등의 반대가 예상되는 만큼 폐지까지 이어질지는 미지수다.

이에 대해 일각에서는 지금부터라도 국회 논의를 통해 여성의 권리를 보장하면서 태아의 생명도 보호할 수 있도록 법안 개정에 나서야 한다는 지적도 설득력을 얻고 있다.

정부의 개정안을 두고 정치권은 물론 찬성 측과 반대 측 모두 비판의 목소리를 내는 만큼 정부가 어떤 식으로 의사소통을 통해 개정해나갈지 국민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박성규 기자 dkvmf11@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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