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경영 선언으로 삼성 바꾼 재계의 거목 '이건희'
신경영 선언으로 삼성 바꾼 재계의 거목 '이건희'
  • 이주현 기자
  • 승인 2020.10.26 09:4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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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년 78세 일기로 사망, 오늘날 삼성 만들어
“마누라·자식 빼고 모두 바꿔라” 신경영 선언

2014년 심근경색 입원, 주기적 사망설 나돌아
공도 있지만 과도 있어, 역사적 평가는 후대에

삼성전자 이건희 회장이 지난 25일 별세했다. 2014년 심근경색으로 병원에 입원 후 오랜 투병생활을 하다가 향년 78세로 사망을 하게 된 것. 이 회장의 사망 소식에 각계각층에서는 재계의 거목이 별세했다면서 애도의 뜻을 표했다. 오늘날 삼성전자가 있게 만들어준 사람이면서 삼성전자의 모든 것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삼성그룹은 물론 우리나라 경제를 이끌어온 입지전적인 인물이라는 점과 함께 비판적 요소도 있다.<편집자주>

지난 2014년 심근경색으로 병원에 입원 후 6년이 넘는 투병 생활을 해온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 25일 별세했다. 향년 78세. 사진은 2013년 제125차 IOC 총회 참석 당시 이건희 회장 모습.(사진/뉴시스)
지난 2014년 심근경색으로 병원에 입원 후 6년이 넘는 투병 생활을 해온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 25일 별세했다. 향년 78세. 사진은 2013년 제125차 IOC 총회 참석 당시 이건희 회장 모습.(사진/뉴시스)

[한국뉴스투데이]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은 1942년 1월 9일 대구에서 태어났지만 학창 시절에는 큰 두각을 나타내지는 못했다는 것이 공통된 의견이다. 이 회장은 연세대학교 상학과(경영학과와 경제학과)에 입학했다 자퇴하고 와세다대학 상학부에 진학해 졸업했다.

유학생활을 마치고 귀국한 후 1966년 동양방송에 입사했고, 그 뒤로 계속해서 삼성과 관련된 기업체에서 근무를 했다.

이병철 회장의 장남도 아닌 셋째 아들이었다는 점에서 장남이 물려받는 전통적인 재벌 구조에서 의아스럽기는 하지만 1969년 말 이건희 회장의 현들인 이맹희씨와 이창희씨가 아버지를 청와대에 고발하는 이른바 왕자의 난을 터뜨리면서 후계구도에서 쫓겨난 탓도 있다.

왕자의 난으로 회장직에 올라

이로 인해 이건희 회장은 자연스럽게 회장 자리에 오를 수 있는 발판을 마련했다. 무엇보다 동양방송을 전두환 정권에게 빼앗기기 전까지 좋은 성과를 내면서 아버지 이병철 회장의 마음에 들게 됐다.

아울러 삼성그룹 내부 경영진 반대에도 불구하고 한국반도체를 인수하고 지속적인 설득으로 이병철 회장의 삼성그룹 차원의 투자를 이끌어내면서 오늘날 삼성전자 반도체 사업부를 만들었다.

1987년 회장이 되고 이듬해인 1988년은 삼성그룹 창원 50주년이 되던 해였다. 여기서 ‘인간중심·기술중시·자율경영·사회공헌’을 경영의 축으로 삼아 세계 초일류 기업으로의 도약을 21세기 비전으로 정했다.

1993년 이른바 ‘신경영 선언’은 삼성그룹을 획기적으로 전환하는 계기를 마련했다. 1993년 2월 임원들과 해외시장을 순방했는데 미국 로스앤젤레스 베스트바이에서 먼지를 뒤집어쓰고 구석에 쳐박혀 있는 삼성TV를 보고 충격을 받고 순방을 중단했다. 그리고 이른바 ‘후쿠다 보고서’를 접하게 됐다.

후쿠다 다미오가 56쪽 짜리로 보고서를 만들었는데 “기본이 안돼 있는 삼성”이라면서 냉혹한 평가를 내렸다. 이에 이 회장은 도쿄에서 후쿠다를 만나 밤샘 토론을 했다.

그리고 그해 6월 7일 프랑크푸르트 켐핀스키 호텔에서 본사와 각국 법인장을 불러 모은 후 “결국 내가 변해야 한다. 바꾸려면 철저히 바꿔야 한다. 극단적으로 말하면 마누라와 자식 빼고 다 바꿔봐라. 농담이 아니다. 그래야 비서실이 변하고 계열사 사장과 임원이 바뀐다. 과장급 이상 3000명이 바뀌어야 그룹이 바뀐다. 나는 앞으로 5년간 이런 식으로 개혁 드라이브를 걸겠다. 그래도 바뀌지 않으면 그만두겠다. 10년을 해도 안 된다면 영원히 안되는 것이다”는 발언을 했다.

이건희 회장은 변화를 강조한 신경영 선언으로 지금의 삼성을 만든 인물로 평가받고 있다. 사진은 1987년 회장 취임식 모습.(사진/뉴시스)
이건희 회장은 변화를 강조한 신경영 선언으로 지금의 삼성을 만든 인물로 평가받고 있다. 사진은 1987년 회장 취임식 모습.(사진/뉴시스)

마누라 자식 빼고 다 바꿔라

이 발언이 결국 오늘날 삼성그룹을 만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신경영 선언은 삼성이 변화하게 됐다. 이 회장의 신경영 선언은 삼성의 변화로 이어졌다. “품질을 위해서라면 생산·서비스 라인을 멈추라”는 지시로 시작된 ‘라인 스톱제’, “문제가 생기면 5번 정도는 이유를 따져보라”는 이건희식 ‘5WHY’ 사고론, ‘디자인과 경영은 별개가 아니다’는 디자인 경영론, 학력·성별제한을 없앤 ‘열린 채용’ 제도 같은 혁신이 계속됐다.

이같은 경영 혁신이 오늘날 삼성그룹을 초일류 그룹으로 만들게 했다. 이 회장의 또 다른 명언은 1995년 4월 중국 베이징에서 특파원들과의 간담회에서 “정치는 4류, 행정은 3류, 기업은 2류”라는 발어이었다. 정부와 정치권이 규제 폭탄만 쏟아낸다는 비판의 발언이었다.

이후 2014년 5월 급성 심근경색으로 인해 자택에서 가까운 순천향대학교 서울병원응급실에 입원했는데 심장이 멎는 급박한 사태에 이르기도 했다. 심폐소생술로 심장기능이 돌아온 후 삼성그룹 산하인 삼성서울병원에 이송됐다. 그리고 몇 년을 계속 입원하면서 주기적으로 사망설이 돌기도 했다.

결국 올해 10월 25일 지속된 건강 악화로 인해 6년간 투병 생활 끝에 향년 78세의 일기로 사망했다.

공도 있지만 과도 있어

이 회장의 사망 이후 그에 대한 평가가 있다. 오늘날 삼성그룹은 물론 우리나라 경제를 이끌어온 입지전적인 인물이라는 점과 함께 비판적 요소도 있다.

우선 무노조 경영이다. 선대인 이병철 회장 때부터 내려온 무노조 경영을 그대로 이어받으면서 노조 활동을 방해하는 여러 가지 일화가 발생했다. 결국 이재용 부회장이 노조 활동을 인정하면서 무노조 시대는 종식됐다.

또한 삼성반도체 노동자 황유미씨의 백혈병 사망 사건에 대해 산재로 인정 안하고 버티다가 결국 이재용 부회장에 의해 산재를 인정하게 됐다. 이 사건은 영화 ‘또 하나의 약속’으로 개봉하게 됐다.

이와 더불어 삼성 전 법무팀장인 김용철 변호사가 삼성비리 관련해서 양심고백을 하면서 2008년 이 회장의 차명계좌가 적발되고 천억원대 세금 포탈 혐의가 적발되면서 이 회장은 전격 퇴진하기에 이르렀다. 이듬해 이명박 정부에서 특별사면을 받았다. 그리고 회장 퇴임 23개월만에 삼성전자 회장으로 복귀했다.

2018년 초, 다스 실소유주 논란과 엮어서 이 사면이 뇌물에 대한 대가로 얻어낸 것이 아니냐는 혐의가 있다. 다스가 미국에서 벌인 소송에서 삼성이 소송 비용을 내주고, 그 대가로 원포인트 사면을 받아낸 것이라고 검찰은 추정하고 있다.

이주현 기자 leejh@koreanewstoda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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