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 학교 무선망 구축, 높은 진입장벽 논란
전국 학교 무선망 구축, 높은 진입장벽 논란
  • 박소영 기자
  • 승인 2020.10.28 12: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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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소기업 위주, 부품 국산화…까다로운 입찰 조건
인프라 구축 늦어질수록 거세지는 ‘학습격차’ 논란

[한국뉴스투데이] 코로나19 사태를 계기로 원격수업 도입과 이를 뒷받침할 미래형 교육환경 기반 조성이 주요 과제로 떠올랐다. 이에 따라 교육부는 내년 6월까지 전국 초‧중‧고교 교실에 초고속 와이파이 무선망(Wi-Fi)을 설치하겠다고 나섰다. 하지만 지역경제 활성화와 부품 국산화를 위해 다소 엄격한 입찰 조건을 내걸며 미래형 교육환경 기반 조성이라는 우선 정책 취지가 반감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코로나19 상황으로 시행된 원격수업에서 콘텐츠 부족과 저작권 문제, 제하적인 플랫폼 등 다양한 문제가 발생한 바 있다. 학교 전반에 디지털 교육을 안착시키려면 인프라 구축이 빠른 속도로 선행되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사진출처/뉴시스)
코로나19 상황으로 시행된 원격수업에서 콘텐츠 부족과 저작권 문제, 제하적인 플랫폼 등 다양한 문제가 발생한 바 있다. 학교 전반에 디지털 교육을 안착시키려면 인프라 구축이 빠른 속도로 선행되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사진출처/뉴시스)

◇중소기업 위주, 부품 국산화…현실 외면한 입찰 조건 논란
지난 9월 28일 교육부와 한국정보화진흥원은 ‘학교 무선환경 구축사업’을 본격 추진한다고 밝혔다. 2021년 상반기까지 전국 초·중·고교와 특수학교의 20만9,000여 개 일반 교실에 기가급 무선 공유기(AP)를 설치하는 사업이다. 

무선 공유기는 학내망과 모바일 단말 등을 무선 신호로 연결하는 핵심 장비다. 20만대를 넘는 물량은 정부, 지자체의 네트워크 장비 도입사업 중 역대 최대 규모다. 정부가 지난 3차 추가경정예산에 ‘한국판 뉴딜’의 일환으로 확보한 국비 1,481억 원과 지방비 2,226억 원 등 총 3,707억 원의 예산을 투입한다.

무선망 구축은 스마트기기와 다양한 콘텐츠를 활용하는 미래형 교육환경 기반을 조성하기 위해 필요한 사업이다. 코로나19가 장기화하면서 안정적인 원격수업 기반 마련이라는 현실적 필요성도 크게 작용했다.

교육부는 무선망 구축 사업을 진행하며 대기업 참여와 국산화율에 대해 엄격한 제한 조건을 다는 방향으로 조달 입찰을 추진하고 있다. 복수의 기업이 컨소시엄을 구성해 입찰에 참여하도록 유도하되 컨소시엄 내 대기업 지분을 30% 이내로 제한하고 컨소시엄의 대표사는 가급적 대기업이 아닌 중소기업이 맡도록 했다. 또 인터넷 무선접속장치(AP)는 50% 이상의 국산 부품을 사용한 제품으로 국한하는 방침이다.

무선망 구축 사업의 주축이 될 ICT 업계의 반응은 다소 부정적이다. 대기업보다는 지역 중소기업에 응찰 기회를 주고 국가 재정사업의 낙수효과를 볼 수 있도록 하는 정책 취지는 좋지만, 대기업 지분 제한이나 국산화율 조건이 지나치게 엄격하다고 지적한다. 중소기업은 통신망이나 장비의 품질관리를 할 인력과 충분한 기술을 갖추지 못해 대기업이 품질관리를 떠안을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이런 업계의 우려는 올해 상반기 발생한 EBS(한국교육방송공사)의 전례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코로나19 여파로 시작된 원격교육 서비스의 첫 시도나 다름없던 EBS의 ‘온라인클래스’는 동시 접속 인원을 감당치 못하고 접속 대란을 일으킨 바 있다. 관리 주체였던 중소기업이 감당할 수 없어 EBS는 결국 대기업인 LG CNS에 손을 뻗을 수밖에 없었다.

또한, 국산 부품 사용율 50% 이상 조건도 대다수 중소기업에는 어려운 문제라는 의견도 있다. 인터넷 무선접속장치를 제조하는 기업 중 상당수가 인건비 문제로 해외에서 생산하고 있기 때문이다.

◇인프라 구축 늦어질수록 거세지는 ‘학습격차’ 논란
이런 상황 속에 미래형 교육환경의 당사자인 학생‧학부모‧교사들의 우려도 크다. 이른바 ‘코딩 교육’이 정규 과정으로 도입된 2018년 전부터도 전체 학교 교실의 부실한 디지털화는 늘 문제였다며, 뒤늦은 인프라 구축마저 엄격한 진입장벽에 막혀 시기가 늦춰진다면 교육환경 개선이라는 우선 과제를 등한시한 처사라는 것이다.

지난 7일 국감에 참고인으로 출석한 중2‧고1 자녀를 둔 학부모는 학교별 원격수업 인프라 구축 차이로 인한 학습격차에 대한 불만을 나타내기도 했다.

학부모 원모 씨는 “원격수업이 쌍방향으로 이뤄지지 못하다 보니 학생들이 수업 중에 질문할 수 없고, 일부 수업은 15분만 하는 경우도 있었다”며 “교사들이 원격수업에서 출결 체크만 할 뿐, 시험도 보지 않으니 아이들이 공부에 관심을 두지 않는다”고 우려했다.

이날 곽상도 국민의힘 의원은 “허울뿐인 원격수업이 길어질수록 학습격차 역시 커질 수밖에 없다”며 “교육부 자체 조사에서도 학습격차가 커졌다고 응답한 교사가 79%였다”고 지적했다.

최근 교육부와 한국교육학술정보원(KERIS)의 1학기 원격교육 인식 조사 결과(전국 초‧중‧고 교사 5만1,021명 대상) 79%가 원격수업으로 학습격차가 커졌다고 응답했다. 실제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이 지난 7월 발표한 고3 6월 모의평가 채점 결과에서 영어 1등급 비율은 상승했지만, 2~3등급은 하락했다. 시험이 쉬웠다면 상위권과 중상위권 비율이 동반 상승해야 하는데 1등급 비율은 늘어난 반면 2·3등급 비율은 감소한 것이다. 입시전문가들은 1학기 원격수업으로 상위권과 중상위권 간 격차가 더 벌어진 것으로 분석했다.

유은혜 부총리는 이에 대해 “원격수업 기간이 길어지다 보니 학습격차가 있는 것이 사실이다”며 “코로나19 상황에 직면한 전 세계 국가에서 같은 문제를 겪고 있다”고 양해를 구했다. 그러면서 “관련 예산을 확보해 정보통신기술 기반으로 원격수업이 좀 더 안정적으로 운영될 수 있도록 확충해 나가겠다”고 답했다.

박소영 기자 lonlord@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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