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 당신은 얼마나 퇴폐적이신가요?
그래서 당신은 얼마나 퇴폐적이신가요?
  • 성지윤 칼럼니스트
  • 승인 2020.12.16 1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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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비드 보위
▲데이비드 보위는 대중음악 역사상 광범위하게 여러 업적을 가진 인물로 평가받는다.

 

[한국뉴스투데이] 우리 사회에는 '()'에 대한 다양한 기준이 존재하며 아름다움을 지칭하는 단어도 지성미, 관능미, 백치미, 섹시미, 교양미, 청순미, 야성미 그리고 퇴폐미에 이르기까지 많은 종류가 있다. 이중 퇴폐미는 일반적인 미와는 다르게 아름다움이라는 차원에서 보면 자칫 모순되는 조합이라 생각될 수 있다. 그럼에도 묘하게 사람을 매혹 시킨다. 퇴폐는 '풍속이나 도덕, 문화 따위가 쇠하다'라는 뜻의 단어에 아름답다는 말을 붙여 '퇴폐미'가 됐다. 이는 도덕적으로나 윤리적으로 손상된 상태에서도 기묘한 매력을 뿜어내는 사람들에게서 나오는 기류이며 이로 인해 아름답다고 느껴지는 것이다.

아티스트는 자신의 성향이나 추구하는 작품의 방향성에 따라 퇴폐미를 표현하거나 풍기게 되는 경우가 있다. 그중에서도 압도적으로 그 미에 적합한 사람이 있는데 바로 데이비드 보위라는 영국 아티스트이다. 음악 외에도 의상, 예술, 영화까지 다방면으로 두각을 나타낸 대단히 독창적인 아티스트였던 데이비드 보위는 뮤지션의 뮤지션이자 혁신의 아이콘이다. 그는 글램 록의 대부이며 변신의 귀재로 많은 페르소나를 가지고 있으면서 마치 옷을 갈아입듯 다양한 캐릭터로의 변화를 거듭하였고 모든 경계를 넘나들며 자기를 표현해냈다. 심지어 섹슈얼리티에 관해서조차 한정된 이미지 안에 머물러 있기를 거부했던 그는 다양한 페르소나를 가지고 기이한 에너지를 뿜으며 세상을 홀렸다.

또한, 데이비드 보위는 록 음악계의 카멜레온으로 수많은 스타일의 변화를 시도하고 실험에 도전했다. 글램 록, 포크송, 소울, , 익스페리멘탈 록, 재즈, 디스코, 일렉트로니카, 아트 록 등 장르를 가리지 않고 마이너한 장르에서부터 대중적인 장르까지 두루 섭렵하였다. 특히 1970년대 영국을 강타한 글램 록의 선구자라고 불린 그는 가냘픈 몸과 여성스러운 외모 그리고 특이한 눈동자 등으로 신비한 분위기를 풍기며 스스로가 창조의 테마가 되기를 자처했다. 보위의 업적 중 가장 큰 것은 다양한 장르들을 끊임없이 발굴해내고 이들을 융화시키며 장르를 종잡을 수 없는 다양한 음악을 만든 것이다.

▲뮤지션들의 뮤지션이며 가장 독창적인 아티스트였던 데이빗 보위는 혁신의 아이콘이다.
▲뮤지션들의 뮤지션이며 가장 독창적인 아티스트였던 데이빗 보위는 혁신의 아이콘이다.

보위는 언제나 패션계의 중심에 있었는데 자신의 다양한 페르소나를 앞세워 파격적이면서도 매력적인 패션스타일을 선보였다. 대중음악의 역사상 이렇게 광범위하게 여러 업적을 가진 인물로는 보위를 능가할 뮤지션이 없다. 그는 한 번 성공한 방식에 안주하려는 유혹에 결코 굴복하지 않았고 끊임없이 새로운 것을 찾아 세상에 보여주면서 많은 이들에게 영감을 주었다.

상당히 많은 양의 곡들을 남긴 보위는 1975년에 발표한 9번째 스튜디오 앨범 ‘young ameica’내에 수록된 존 레논과의 합작 싱글 ‘Fame’을 통해 처음으로 미국에서 차트 정상을 차지하게 되었다. 이 곡이 나오게 된 경위는 이러했다. 1974년 크리스마스 무렵, 존 레논이 데이비드 보위의 집에 방문했다. 그는 곡을 쓰고 있던 보위의 뒤에 앉아 ‘aim’이라는 단어로 리듬을 맞추며 흥얼거렸는데, 그 리듬에 영감을 받은 보위는 그 부분을 ‘fame’으로 바꾼 후 작사를 마쳐 곡을 완성했다.

존 레논은 보위의 작업물에 대해 "훌륭하지만, 이건 그냥 로큰롤에 립스틱을 바른 게 아닌가"라는 평을 남겼다. ‘Fame’은 그가 약물중독이 극에 달했던 시기에 만들어진 곡으로, 펑키한 리듬이 바탕이 되어 야릇하면서 퇴폐적인 분위기를 풍긴다.

음악 쪽에는 퇴폐미를 물씬 풍기는 데이비드 보위가 있다면 미술에서는 작품을 통해 이러한 미를 드러내는 이가 있다.

바로 노골적이고도 개성 있는 화법으로 당대 화단의 주목을 받은 화가인 에곤쉴레이다. 쉴레는 관능적 욕망과 공포와 불안에 휩싸인 인간의 육체를 뒤틀리고 거칠게 묘사한 그림을 그린 오스트리아의 표현주의 화가이다. 일찍이 예술에 재능을 보였던 그는 열여섯 살부터 빈 미술학교에 다녔지만, 보수적인 학풍에 대한 부적응과 교수들과의 갈등으로 학교를 얼마 다니지 못한 채 그만두었다. 하지만 그는 학교 교육 이상의 영향을 준 클림트와의 만남을 통해 빈 분리파의 주요 구성원이 되고 몇몇 친구들과 신예술가그룹을 결성했다.

에곤쉴레는 성과 죽음에 대해 과도하면서도 자극적인 표현을 서슴지 않았는데, 불행했던 유년시절의 기억이 그의 화풍에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 성병과 정신병을 앓았던 아버지의 모습을 보며 고통 속에서 자란 그는 내성적이고 우울한 성향을 지니게 되었다. 아버지의 정신병이 성병에서 기인한 것을 알게 된 후 충격 속에서 자란 쉴레는 가족과 자신의 운명에 대한 불만을 성적인 것에 대한 외면과 혐오로 나타내기보다 오히려 드러내려 했다.

▲존 레논과의 합작 싱글 ‘Fame’을 통해 미국에서 처음으로 차트 정상을 차지한 데이비드 보위.
▲존 레논과의 합작 싱글 ‘Fame’을 통해 미국에서 처음으로 차트 정상을 차지한 데이비드 보위.

에곤쉴레는 회화가 진실을 보여줘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는 성()과 죽음으로 그것을 표현하고자 했으며 그의 성과 죽음에 대한 묘사는 불편할 정도로 적나라했다. 남녀 간의 성에 대한 문제 제기는 도덕적 논란의 대상이었지만 쉴레는 아랑곳하지 않고 에로티시즘과 성의 자유를 주장하며 에로스와 타나토스를 탐구하였다. 그리고 이 충동으로부터 터져나오는 성 에너지를 과감하게 표현하였다.

쉴레가 살았던 19세기 말 오스트리아는 합스부르크의 몰락과 함께 야기된 정치적 혼란과 계속되는 전쟁의 패배감 속에서 빈의 이중적 모습이 그대로 드러나 있던 시기였다. 세기말의 불안은 사람들을 성애에 대한 탐닉으로 이끌었는데 여기에 더한 급속한 자본주의의 발전은 부르주아의 풍기 문란한 향락생활과 빈민층의 처참한 현실의 대조를 이루는 위선 가득한 상황에 처하도록 했다. 또한, 이 시기는 매춘업이 극도로 성행한 시기이기도 했는데 도덕적 타락으로 야기된 퇴폐적인 분위기가 도시 위를 덮으며 빈은 점차 암울한 환락의 도시로 변해갔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많은 지식인과 예술가들이 새로운 이상을 찾고 내면을 파헤치는 연구를 시작하고자 하기도 했다.

에곤쉴레의 그림들은 인체를 아름답고 비례에 맞는 풍만한 인체 대신 마르고 생기 없으며 뒤틀리고 기이한 모습으로 표현해 에로티시즘의 또 다른 성격을 보여주고 있다. 그는 추함의 미학을 통해 인체의 단순한 미적 차원을 벗어난 선정적인 포즈까지 노골적으로 그려내면서 인간의 위선적인 행위를 드러내 기존의 사회체제를 비판하고자 했다. 또한 성에 대한 전통적 사고방식에 반한 도전적인 표현으로 보는 이의 자극을 유발했다.

▲앉아 있는 남성 누드 [출처: wikimedia commons]
▲앉아 있는 남성 누드 [출처: wikimedia commons]

그의 그림은 사회적 병폐 속에 비뚤어진 욕망과 부르주아들의 위선적 허위를 인간 본능의 원초적 단면으로 조명했다. 또한, 죽음에 대한 공포와 내밀한 관능적 욕망, 그리고 인간 실존을 둘러싼 고통스러운 투쟁에 관심을 가지며 의심과 불안에 싸인 인간의 육체를 왜곡되고 뒤틀린 형태로 거칠게 묘사했는데 때때로 작품의 배경은 비워둠으로써 고독과 단절감을 강화시켰다. 쉴레의 그림은 불편할 정도로 적나라 함에도 불구하고 많은 이들의 공감을 얻고 있다. 그 이유는 성에 있어 쾌락만을 추구하는 사람들의 공허한 감정에 인간의 고독과 정신적 요소를 부각시켜 그만의 문법과 철학으로 독창성 있게 표현했기 때문이다.

2018년도에 다녀온 홍콩아트바젤에서 어느 부스에 유난히 많은 인파가 몰려있었다. 궁금증이 생겨 다가가니 에곤쉴레의 작품이 있는 부스였다. 그의 그림들을 눈앞에서 감상할 수 있다는 사실에 너무도 기뻐 한참을 보고 또 봤는데 역시나 그의 작품들은 기괴하지만 무척 스타일리쉬했다. 그의 작품은 에로티시즘을 넘어 퇴폐에 다가서고 있는 듯 보일 정도로 매우 기이하고 노골적이었다. 수척하고 뒤틀려 추하게 표현된 그의 작품 속 인물은 특히 여백으로 처리된 배경과의 대비로 더욱 대담하고 히스테릭하게 보였다. 하지만 관람자를 향한 눈동자는 텅 비어있으면서 뻔뻔하면서 기묘하게도 초연함을 담고 있었다.

데이비드 보위는 퇴폐미를 통해 자신의 매력을 보여주었지만 실제로 그는 약물에 중독된 몇 년의 시기 외에는 대체로 반듯한 사람이었다고 전해진다. 한편 쉴레는 퇴폐적이기까지 한 그의 작품들을 통해 부르주아의 성에 대한 소비형태와 그들의 성적 위선에 대한 비판의식을 폭로했다. 또한, 사회 권력의 핵심이 남근 중심주의적인 것에 대해 맹렬한 공격을 가함으로써 그들의 기존 사회에 위협을 가했다.

▲꽈리열매가 있는 자화상 출처 : wikimedia commons
▲꽈리열매가 있는 자화상 출처 : wikimedia commons

퇴폐적이라는 것은 성(sex)적인 분위기를 담고 있는 것이기 때문에 이 부분을 논하지 않을 수 없다. 몇 년 전 미투로 세상이 한참 시끄러웠다. 또 얼마 전에는 n번방 사건이라는 충격적인 사회적 이슈가 있었다. 성은 우리와 긴밀하게 밀착된 주제이다.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우리는 어디서 무엇을 접하든 실생활에서 언제나 성에 대한 담론을 접하고 있다. 하지만 왜곡된 성 관념을 지니게 된다면 성을 상품화하거나 원초적이고 극단적 놀이형식으로 성적 쾌락만을 추구하는 경향을 보이게 되고 잘못된 성 인식은 관계 당사자들에게 큰 상흔을 남긴다. 쉴레는 터부시되어 오던 성을 가감 없이 드러내며 인간의 쾌락 추구의 종말은 결국 고통과 파멸을 가져온다는 것을 작품을 통해 잘 보여주었다. 이렇듯 성은 어떤 에너지가 되어 '()'로 발현되어 많은 이들을 매혹 시키기도 하고 잘못된 사회를 반박하고 초월하려는 저항의 의지로 이용되기도 했다. 이렇듯 성, 그리고 그 성적 분위기를 담고 있는 퇴폐는 예술가에게는 자신을 표현하기에 좋은 주제가 될 수 있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아픔과 고통, 궁극에는 파국을 맞게 하는 원인이 될 것이다.

성지윤 칼럼니스트 claramusic89@naver.com

성지윤 칼럼리스트

음악을 전공하고 현재 아이들을 대상으로 하는 음악교육에 대한 관심을 바탕으로 클라라뮤직을 운영중에 있다.
또한 미술,사진,연극, 문학 등 다양한 얘술분야에 대한 탐구와 이해를 토대로 음악이 타장르 예술들과 만났을때의 흥미로운 점들을 발견하면서 예술융합에 남다른 관심을 가지고 연구 및 교육중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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