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와의 만남】시인 강석현, “스쳐 가는 모든 순간이 아름답다”
【작가와의 만남】시인 강석현, “스쳐 가는 모든 순간이 아름답다”
  • 김현지 기자
  • 승인 2020.12.27 15:0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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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시를 쓰려면 중요한 덕목이 애처로움
사람들의 기억 속에 남는 것은 정이 담긴 글
▲강석현 시인은 “작가라면 스스로 고민도 많이 하고, 본인 글에 책임을 질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강석현 시인은 “작가라면 스스로 고민도 많이 하고, 본인 글에 책임을 질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한국뉴스투데이] 덜컹덜컹 흘러가는 기차, 어린아이가 가지고 놀다 깨어진 구슬, 흙 위로 눈물이 방울방울 떨어지며 만든 자국. 그리고 흙이 마르고 아이가 다시 웃으며 뛰어가기까지의 시간. 시인은 이 사소하고도 사소한 모든 순간을 사랑한다. 세상을 향해 던지는 시선의 따스함은 글에서도 오롯이 나타난다. 강석현 시인의 시는 잔잔하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국화차 한 잔을 건네며 물어보는 안부 인사처럼, 한낮의 태양처럼 강렬하진 않지만 온몸 구석구석에 작은 온기로 닿아오는 옅은 빛의 햇살처럼.

시인이 되기까지

강석현 시인은 사실 법학도였다. 대학과 대학원을 다니는 내내 법을 공부했다. 두꺼운 교과서를 넘기며 수많은 판례를 외우고, 옳고 그름을 따지며 이성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법을 배웠다. 갑과 을, 병과 정의 이름이 한때는 피해자가, 한때는 가해자가 되기도 하며 빙글빙글 돌았다. 많고 많은 판례, 결국 이 또한 모두 사람 사는 이야기. 그는 딱딱한 책표지 너머에서 사람 사는 세상을 보았다.

보통 사람들은 법, 하면 일반 사법적인 문제나 소송을 많이 생각하는데, 사실 법이 우리 삶에 있어서 가장 평범한 거예요. 그 원리를 살펴보면 사람들이 살아가는데 가장 필요한 거거든요. 나라의 법도 있겠지만, 아파트 내의 자체 규약 같은 문제처럼 일상에서의 법도 존재하잖아요. 그런 것들을 만들어내기 위해서는 사람들 간에 합의가 있어야 하고요. 결국에는 사람이에요. 그래서 법도 우리가 알게 모르게 일상생활에 다 스며들어 있는 거죠.”

지금이야 이렇게 시를 쓰고 수필을 쓰지만, 어릴 적부터 시인이 되리라고 마음먹은 건 아니었다. 어린 시절 꿈은 기자였다. 작은 아이는 다락으로 향하는 계단을 삐걱삐걱 올라가 잔잔히 타오르는 촛불 아래서 책장을 넘겼다. 참으로 조용하고 작은 공간 속에서도 가장 구석에 앉아서, 앉은키만큼 책이 쌓일 때까지 책을 읽고 또 읽었다. 여러 대의 초가 녹아 없어지고 다락방이 좁아질 때쯤 소년은 어른이 되었고, 작가로의 길을 열어준 책 한 권을 만나게 되었다.

성인이 되어서 김훈 작가님의 <칼의 노래> 시리즈를 읽게 됐어요. 그분의 작품을 읽으면서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이 용솟음쳤습니다. 특히 <칼의 노래>는 이순신 장군에 관한 이야기잖아요. 그걸 읽으면서 제가 가지고 있는 역사의식과도 연결이 되어 정말 큰 감동을 받았어요. 김훈 작가님의 또 다른 특징이 기행문을 잘 쓰신다는 점인데요. 여행을 다니시면서 보고 들은 것을 묘사하거나 어떤 장면에 있어서 자신만의 느낌을 표현하는 능력이 정말 뛰어나세요. 나도 언젠가는 이런 글을 썼으면 좋겠다, 하는 생각이 그때 들었습니다.”

김훈의 작품에서 백석의 시로, 거기서 다시 기형도의 시로. 거장의 자취는 그의 작품 속에 찬찬히 스며들었다. 그는 그렇게 시인이 되었다.

따듯한 위로 한 마디

▲시집, '내 언어는 너에게 있다'
▲시집, '내 언어는 너에게 있다'

좋은 시란 무엇일까요. 미학적이고 포괄적인 질문을 던지자 시인은 생각하다 대답했다. 아직은 어떤 게 좋은 시고 나쁜 시인지 모르겠어요. 모호한 질문에는 돌아오는 대답도 모호하다. 하지만 그 뒤에 따라오는 문장은 정확하다. 강석현 시인만의 소신 있는 철학이 담긴 한 마디였다.

자신이 본 것을 사람들이 이해할 수 있게 효과적으로 전달하고 본인이 쓴 그대로를 독자들이 느낄 수 있다면, 그게 좋은 시가 아닐까요. 그런 시를 쓰려면 가장 중요한 덕목이 바로 애처로움이라고 생각합니다. 시인의 눈은 따뜻해야 합니다. 시인마저 어려운 사람, 아픈 사람을 외면하고 이야기를 전하지 않으면 누가 그 사람들을 알아봐줄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 계속해서 공부해야 합니다. 끊임없이 독서하고 습작하며 정진해야 해요.”

가장 낮은 곳에서 따듯한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것. 그 시선 끝에는 너무나 작고 사소해서 쉬이 놓치곤 하는 장면들이 있다. 노동자의 땀방울, 하늘 끝에 걸린 조각 구름, 지하철 의자에 등을 기댄 채 흔들리는 박자에 맞춰 고개를 끄덕이는 사람들의 모습을 모두 기억해둔다. 시인의 애정 어린 눈길이 닿는 모든 것은 의미가 된다. 거의 무의미한 무언가를 전혀 아무 조건 없이 사랑할 수 있는 기회는 과연 몇 번이나 될까. 그의 시는 따듯한 언어로 위로를 건넨다. 힘들고 아픈 이들을 감싸 안고 등을 토닥여주는 따스함. 가만히 등을 도닥여주면 눈물이 난다.

내 언어는 너에게 있다

강석현 시인의 첫 단독 시집인 <내 언어는 너에게 있다>는 지면에 쓰인 모든 언어가 읽는 이의 마음속에 차분히 내려앉는다. 감정의 격발이나 과한 언어에 휘둘리는 모습도 찾아볼 수 없다. 그저 담담하게 한 마디 한 마디를 제자리에 꺼내놓을 뿐이다. 유난스럽지 않은, 그저 그렇게 조용히, 읽다 보면 어느새 끝 지점에 다다라있는, 그런 시다.

계절의 흐름대로 그때의 기억들과 사연, 하고 싶었던 말, 새기고 싶은 장면들을 오랜 친구, 또는 기억 속에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과 차를 마시거나 쓴 소주를 한잔하면서 소란스럽지 않게 대화하듯이 썼습니다. 따듯한 차 한 잔 주고 담담하게 그때 그랬었잖아. 그때 기억나? 이렇게 얘기하듯이, 아니면 저 혼자 그래, 그때 그랬지. 그렇게 사색하듯이 풀어 봤지요.”

그리움에 대한 시는 궁상맞죠. 궁상맞다는 이야기를 하며 그는 웃었다. 퍽 담백한 웃음이 짧게 울리는 사이, 무슨 뜻인지 언뜻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누구나 그리운 무언가를 그릴 때면 처량해지기 마련이니까. 사랑에 관한 시도 결코 요란하지 않다. 어떻게 지내요. 나는 이렇게 지내요. 당신이 그립습니다. 하고 말하는, 작고 조용한 속삭임이다.

이런 그의 마음이 독자에게 그대로 전달될 때, 또 어느 독자로부터 시를 읽고 위안을 받았다는 말이 전해져 올 때 그는 가장 행복하다. 옛날의 자신이 한 책을 읽고 시인으로의 꿈을 키웠듯, 다른 누군가는 그의 작품을 읽고 작가의 꿈을 키운다. 그에 대한 책임감으로 오늘도 계속해서 공부한다. 글을 쓰고, 다른 이들의 작품을 읽는다. 미래의 또 다른 시인에게 부끄럽지 않은 작가가 되기 위해서.

조금은 느리게

시는 느리다. 요즘 세상은 빠르다. 모든 것이 태어나기가 무섭게 사라져버려 미처 정을 줄 새도 없다. 흔히들 모든 건 잊혀지기 마련이라고들 말하지만, 기억할 틈도 주지 않고 가버리는데 어떻게 기억을 한단 말인가. 애초에 잊어버릴 것이 없다. 가슴에 새길 무언가가 필요하다. 잠시 멈춰 숨 돌릴 틈이 절실하다. 그래서 우리가 시를 읽는 건지도 모른다.

이번에 참 좋은 경험을 하나 했어요. 대구지역 코로나가 극심할 때, 용인 수지에 있는 작은 책방 주인께서 대구에 책 보내기 운동을 하셨는데 그때 제 시집 10권을 기증한 적이 있습니다. 저뿐 아니라 많은 아마추어 작가들이 참여했는데 시를 읽고 위로가 많이 되었다는 후기에 감동을 받았어요. 코로나로 인해서 사람들이 외로이 보내는 시간이 증가했는데, 그런 데 있어 위로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거든요.”

재난으로 슬퍼하는 사람 곁에서, 시인은 시로써 그들의 아픔을 나눈다. 그것이 시인의 사명이다. 마스크를 쓰고 활짝 웃는 캠페인을 벌이고 이름 시를 지어주는 등 강석현 시인은 계속해서 위로의 메시지를 전했다.

너무 빠르게 지나가는 시대이긴 하지만, 결국 사람들의 기억 속에 남는 것은 이런 정이 담긴 글인 것 같습니다. 제가 지금은 인스타그램을 쉬고 있지만 언젠가 시를 한 편 다시 내면은 누군가는 와서 기다렸다고 말씀해주실 거예요. 그러니 아무리 시대가 빨리 지나가고 일상이 바쁘더라도 진정성이 있는 글을 써야만 한다고 생각합니다. 머릿속에 생각만 하는 건 그저 망상이지만 내가 글로 옮기는 순간 역사가 되는 거예요.”

▲강석현 시인의 첫 단독 시집인 '내 언어는 너에게 있다'는 지면에 쓰인 모든 언어가 읽는 이의 마음속에 차분히 내려앉는다.
▲강석현 시인의 첫 단독 시집인 '내 언어는 너에게 있다'는 지면에 쓰인 모든 언어가 읽는 이의 마음속에 차분히 내려앉는다.

강석현 시인은 계속해서 글을 쓸 예정이다. 시뿐만 아니라 수필이나 소설 등, 호흡이 긴 글에도 도전할 계획이다. 더 많은 이들에게 온기를 전하기 위해, 바쁜 삶 속에 작은 휴식을 선물하고자 끊임없이 펜을 놀린다. 앞서 말해주었던 그의 신념처럼, 계속해서 연습하고 또 연습할 것이다. 부끄럽지 않은 글을 역사에 남기기 위해서. 어두운 새벽을 꼬박 새워 시를 쓰고 밝아온 아침에 문장을 다듬는다. 수많은 새벽과 아침이 지나며 천천히 글은 완성될 테다. 시간과 함께 정성이 깃들고 애정도, 고뇌도, 부끄러움도 모두 담겨서 잉크로 새겨져 사람들의 마음에 기억될 것이다.

무릇 작가라면 스스로 고민도 많이 하고, 본인 글에 책임을 질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는 내 책을 읽은 독자에 대한 책임으로도 이어지죠. 그러려면 글쓴이로서 최소한의 자기 사상적 배경과 철학을 가지고 있어야 해요. 저 먼 시대의 고전이 아니라도 책을 늘 가까이하고 많이 읽었으면 좋겠습니다. 세 줄로 역사에 남을 글이 탄생하기도 하지만 대부분 사람의 기억 속에 남는 글은 역시 정성과 땀이 깃든 책일 겁니다. 저도 함께 노력하겠습니다.”

김현지 기자 suricatta@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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