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나리자의 인기는 결국 도난이었다?
모나리자의 인기는 결국 도난이었다?
  • 성지윤 칼럼니스트
  • 승인 2021.02.07 1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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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부러 소란을 일으켜 관심을 끌어내는 노이즈마케팅
예술가도 자신을 홍보하기 위해 영리한 홍보전략 필요
고상한 예술 소란스러운 방법으로 알려진 봄의 제전, 모나리자
▲노이즈마케팅을 통해 성공한? 모나리자, 출처:wikipedia
▲노이즈마케팅을 통해 성공한? 모나리자, 출처:wikipedia

[한국뉴스투데이] 지금은 많은 종류의 sns가 있지만 약 20년 전에만 해도 우리에게 익숙한 sns는 싸이월드 정도였다. 지금은 인플루언서라는 명칭으로 불리는 소위 sns내 인기인들이 싸이월드에서는 싸이월드 스타라는 이름으로 불렸다. 본인도 이 당시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던 싸이월드 스타 몇 명이 있었는데, 이들 간의 개인적인 다툼이 외부적으로 노출된 사건이 있었다. 대중들이 그 사건을 접하게 되면서 그들은 더욱 유명해졌다. 그들을 통해 처음으로 노이즈마케팅에 대해 알게 되었다.

위 사례에서 알 수 있듯 노이즈마케팅은 기존의 마케팅 방법처럼 상품의 장점을 부각해 소비자를 유혹 또는 현혹하는 것이 아니다. 고의로 부정적인 이슈를 조성해 구설에 오르도록 하여 소비자들의 관심을 끄는 마케팅 기법이다. 즉 일부러 소란을 일으켜 관심을 끌어냄으로써 상품의 인기 및 판매, 그리고 흥행에까지 영향을 미치는 것이다. 이러한 노이즈마케팅은 제품과 콘텐츠를 생산하거나 유통하는 측에서 일부러 의도를 가지고 실행하기도 한다. 하지만 위의 싸이월드 경우처럼 본인들도 의식하지 못한 채 상황이 안 좋게 흘러간 것이 대중에게 회자 되면서 궁극적으로 마케팅 성과를 내는 경우도 발생한다.

예술도 관객이나 관람자 또는 작품구매자라는 형태로 소비자가 존재한다. 그러므로 작품이 많은 이들의 관심을 받고 팔리기 위해서는 홍보가 필요하다. 마케팅채널이 거의 없던 예전에는 예술가들이 왕과 귀족의 후원을 받으며 활동을 해나갔다. 모차르트는 어릴 적부터 유럽 각지를 돌며 귀족들에게 연주를 들려주면서 자신을 알렸다. 프란츠 리스트도 귀족 부인들과의 사교를 통해 자신을 홍보해 나갔다. 하지만 이러한 전통적인 방식으로 자신과 작품을 알리던 것과는 다른 방법으로 유명해진 작곡가와 곡이 있다.

20세기 음악의 주류 반세기 동안 가장 강력한 추진력으로 영향을 준 러시아 작곡가 이고르스트라빈스키의 작품 중 봄의 제전이 그것이다. 이 작품은 의도한 것은 아니지만 결과적으로 노이즈마케팅의 효과로 유명해졌다. ‘봄의 제전은 스트라빈스키가 1913년에 발표한 세 번째 발레곡으로 러시아의 원시적인 종교 제전을 배경으로 한다. 원시주의 선율과 복잡하면서도 치밀하게 구성된 리듬이 특징인 이 곡은 그것을 담아내는 방식이 너무나 미래 지향적이라 당시는 물론 현재에도 상당히 전위적인 면모를 보이는 곡이다. 너무나 앞서간 나머지 음악은 물론 의상, 안무 모든 면에서 파격적이라 사람들의 기존 상식을 전복시켰다.

▲스트리빈스키 봄의제전 중 일부 사진제공 : 국립발레단
▲스트리빈스키 봄의제전 중 일부 사진제공 : 국립발레단

1913529일 파리 샹젤리제 극장에서 초연된 봄의 제전은 러시아적인 과격함과 직선적이고 명쾌한 극한의 리듬 사용으로 기존의 음악적 감성으로는 도저히 납득하기 힘든 음악이었다. 상상을 초월하는 야만적인 춤과 파괴적인 음악을 보고 관객들은 욕을 하고 소리를 지르고 난동을 부렸지만, 공연은 계속되었다. 급기야 경찰까지 왔는데 이날의 소동이 파리의 신문과 방송에 대서특필되면서 큰 관심을 받게 된다. 한동안 엇갈린 비난과 찬사가 있었지만 이런 논란이 오히려 더욱 흥행을 부추기는 원인이 되었으며, 현재는 스트라빈스키 음악 중 최고의 작품이자 가장 영향력 있는 작품 중 하나로 평가받고 있다.

노이즈마케팅을 통한 성공은 음악보다 미술에서 두드러지는데 우리에게 너무나도 잘 알려진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모나리자가 그중 하나이다. 1911822일 화요일. 루브르 박물관에서 모나리자가 사라진 것이 박물관에 온 화가 루이 베루드에 의해 발견되었다. 당시에는 그림이 사라진 지 27시간 만에 이 사실이 밝혀졌음에도 도난 사실에 대해 아는 이가 없었을 만큼 큰 주목을 받지 못했던 그림이었다. 이 사건으로 루브르 박물관은 폐관되었고 프랑스 국경은 봉쇄되었다. 모나리자가 사라졌다는 사실이 르피가로’,‘뉴욕 타임스등 주요 언론에 보도되고 경찰 수사가 착수되었다. 이 소식으로 인해 모나리자가 걸려있던 빈 벽을 보겠다고 루브르박물관에 온 사람들이 연일 북새통을 이뤘다. 프랑스의 정부는 모나리자 반환에 포상금을 내걸었고 경찰에 수많은 제보가 쏟아지는 등 전 세계를 넘나드는 모나리자 대 추적이 벌어졌지만 아무 곳에서도 찾을 수 없었다.

▲ 모나리자 도난 관련 기사(좌)와 되찾은 모나리자(우)
▲ 모나리자 도난 관련 기사(좌)와 되찾은 모나리자(우)

그러던 중 모나리자가 2년여 만에 세상에 다시 모습을 드러내게 된다. 루브르박물관 액자 유리공이었던 빈센초 페루자가 아르헨티나 사기꾼 발피에르노의 사주를 받아 그림을 훔쳤는데 돈이 궁해진 페루자가 골동품상에 작품을 팔려고 내놓으면서 덜미가 잡힌 것이다. 이렇게 모나리자는 다시 자신의 고향인 루브르로 향할 수 있었다. 이런 과정으로 명성을 얻게 된 이 작품은 보험료 산정을 위해 측정된 몸값만 1조에 이르게 된다. 또 허술했던 관리를 보완하고자 삼중 접합 방탄유리 안에 갇혀 다시는 프랑스를 떠날 수 없는 신세가 됐다.

범인은 이 작품이 작가가 그림을 그렸던 장소인 이탈리아에 있지 않고 프랑스에 있던 사실이 마음에 들지 않아 범행을 저질렀다고 했지만, 애국심에 호소한 자백을 뒤로하고 죄를 인정받아 7개월 9일의 형을 살았다. 이로써 수많은 작품 중 하나뿐이었던 모나리자는 루브르의 대표 소장품이 됐다. 모나리자에 있던 위의 사건은 모나리자를 전 세계적으로 유명하게 만든 계기가 되어 매년 이 그림을 보러 수만 명이 다녀갈 정도의 최고의 인기를 누리게 해주고 있다.

▲루브르박물관 현장 모습, 출처:PIXABAY
▲루브르박물관 현장 모습, 출처:PIXABAY

우리 일상에도 고의든 우연히든 노이즈마케팅은 심심치 않게 찾아볼 수 있다. 허경영은 극단적인 노이즈마케팅으로 성공을 거둔 정치인 중 하나이다. 그는 일반인의 상식으로는 도저히 이해가 불가한 기행을 일삼는다. 하지만 이로 인해 우리의 인식 속에 그가 완벽히 각인된 것도 사실이다. 특히 많은 이들의 관심을 받아야 하는 정치라는 필드 내에서 계획적이든 아니든 그의 전략은 그를 알리고 각인시키는 데 있어서만큼은 확실한 성공을 거두게 하였다. 예술도 이제는 대중을 상대로 시장에서 생존하고 자신의 영역을 넓히기 위해서는 홍보의 필요성이 더욱 많이 요구되고 있다. 해마다 수많은 예술 전공자들이 작업하며 예술가의 길을 걸어가지만 정작 살아남는 아티스트는 많지 않다. 마케팅의 본질은 더 많은 이들의 입에 오르내리고 기억되기 위해 하는 것이며 이를 위해서는 많은 전략이 요구된다. 이제는 예술가들도 어떻게 하면 보다 적극적으로 작가와 작품을 홍보할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을 여러 방면에서 심도 있게 고민하며, 수많은 마케팅 방법론을 상황에 맞게 적절하고 영리하게 사용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성지윤 칼럼니스트 claramusic89@naver.com

성지윤 칼럼리스트

음악을 전공하고 현재 아이들을 대상으로 하는 음악교육에 대한 관심을 바탕으로 클라라뮤직을 운영중에 있다.
또한 미술,사진,연극, 문학 등 다양한 얘술분야에 대한 탐구와 이해를 토대로 음악이 타장르 예술들과 만났을때의 흥미로운 점들을 발견하면서 예술융합에 남다른 관심을 가지고 연구 및 교육중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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