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 조지프 브로드스키의 ‘베네치아의 겨울빛’
【Book】 조지프 브로드스키의 ‘베네치아의 겨울빛’
  • 김현지 기자
  • 승인 2021.02.23 18:4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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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년대 베네치아로의 시간 여행

[한국뉴스투데이] “코로나 때문에”, “코로나라서”. 요즘 가장 많이 들리고, 또 하는 말이다. 약 일 년 전, 갑자기 온 세계를 뒤덮어버린 전염병은 사람들의 삶을 송두리째 바꿔놓았다.

집에 있는 시간이 늘어나고 잠시 외출을 할 때조차도 마스크 없이는 나갈 수 없다. 해외여행은커녕 국내 지역조차도 오가기 힘들어졌고, 여권은 진작에 서랍 안쪽에 처박혀 어둠 속에 잠들었다.

베네치아로 떠나는 겨울 여행

그저 우울하게 집 안에 들어앉아 코로나가 끝나길 기다리는 우리를, 조지프 브로드스키는 저서 <베네치아의 겨울빛>을 통해 추운 겨울날의 베네치아로 데려간다. 그것도 무려 1980년대 후반의 베네치아로. 그의 시선으로 보는 베네치아는 어지러울 정도의 아름다움을 내비친다.

너무나 아름다워서 두 눈이 제 기능을 하고 있는 것인지 의심될 정도로, 마치 노래하는 세이렌처럼 여행객들을 매혹 시킨다. 베네치아의 아름다운 미궁에서 헤매는 동안 우리의 눈은 끊임없이 굴러가고 진동하고 헤엄치며 온갖 화려한 직물을 몸에 걸친 사람들과 대리석 레이스와 케루빔, 고딕 혹은 무어 양식의 창문 등, 베네치아의 모든 것을 뇌리에 새긴다.

겨울의 베네치아, 특히 일요일 아침이면 들려오는 종소리는 듣는 이로 하여금 다시 새로운 하루를 시작할 수 있는 용기를 낼 수 있게 만든다. 아무리 고되고 억울한 일을 당했다 할지라도 공기 중에 조용한 기도 소리와 종소리가 울려 퍼지고 둥근 돔 모양의 지붕이 굳건히 자리를 지키고 있는 한, 여전히 희망이나 적어도 미래가 있다고 여기게 되는 것이다.

오랜 시간을 집 안에서 보내는 동안 우리는 무엇이 즐거움인지 잊어버렸고 따스한 봄의 햇살도 즐기지 못함에 대한 아쉬움으로 희미하게만 느끼게 되었다. 조지프 시인은 질병도, 우울도 없는 80년대의 베네치아에서 온갖 색의 아름다움으로 우리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녹여준다.

물의 미학

베네치아는 물의 도시다. 수로 위에는 곤돌라가 떠다니고 배의 주인은 유려한 몸짓으로 노를 저어 물 위를 유영한다. 곤돌라가 베네치아의 명물 중 하나로 손꼽히기는 하지만, 정작 이곳의 젊은이들은 곤돌라를 잘 타지 않는다.

곤돌라 위에 앉아 시간을 보내는 건 관광객과 부유한 사람들. 부유한 이들은 주로 중장년층이다. 그러나 조지프 시인은 기꺼이 곤돌라 위에 올라탄다. 곤돌라는 물 위를 떠다니고 물은 모든 것을 비춰 마치 거울과도 같다.

일상에 허덕이고 주위를 둘러싼 베네치아의 예술적인 아름다움을 볼 짬이 없는 이들에게, 물은 그들이 놓친 것을 재조망해준다. 곤돌라 위에서 조용히 출렁거리며 물과 함께 움직이며 물이 보는 것을 본다.

거울은 이 책에 꾸준히 등장하는 소재이다. 시인은 곤돌라 위에 앉아 물을 내려다보며 도시를 관람하기도 하고, 언젠가 초대받은 대저택 안의 무수한 거울 속에서 자신의 모습을 들여다보기도 한다.

거울은 자신이 놓친 것을 일깨워주기도, 본인 스스로를 반추하게 하는 도구로도 사용된다. 온 사방이 물로 둘러싸여 물과 함께 흘러가는 도시. 작가는 말한다. ‘물은 시간과 같고 시간보다 두 배나 많은 아름다움을 선사한다. 러시아의 시인이 소개하는 80년대 겨울의 베네치아.

그의 책에서는 쌉싸레한 겨울의 흐린 안개와 비릿한 물의 냄새가 난다. 이 책과 함께라면 영원한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있는 이 도시에서 곤돌라에 올라타 물과 함께 쓸려가며 황홀경에 젖어드는 진귀한 경험을 할 수 있을 것이다.

낭만적인 겨울의 베네치아를 여행하며 현재의 무력감과 우울한 마음을 조금이나마 씻어낼 수 있기를 바란다.

김현지 기자 suricatta@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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