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토벤은 괴팍한 사람이다?
베토벤은 괴팍한 사람이다?
  • 김현지 기자
  • 승인 2021.03.02 11:2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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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년시절의 학대가 성격 형성에 영향 미쳐
▲베토벤은 음악적으로는 거대한 사람이었으나 한 인간으로서는 텅 빈 인생을 살았다.
▲베토벤은 음악적으로는 거대한 사람이었으나 한 인간으로서는 텅 빈 인생을 살았다.

불운한 어린 시절

고전 시대와 낭만 시대를 잇는 다리 역할을 했던 악성(樂聖) 베토벤. 누구나 한 번쯤은 그의 이름을 들어보았을 것이다. 베토벤의 이름과 작품, 심지어는 그의 초상까지도, 우리는 그에 대해 매우 잘 알고 있다.

그는 음악사에 있어 없어서는 안될 매우 중요한 인물이며, 그의 업적을 치하하기엔 하루를 꼬박 새워도 부족할지 모른다. 베토벤의 위대한 작품, 그의 작품에 영향을 받은 많은 음악가가 그의 뒤를 이어 일궈낸 빛나는 잔재들. 음악가로서의 베토벤은 완벽하다.

다만, 그 이면은 어떠할까. 인간 베토벤으로서의 삶은 음악가로서의 베토벤만큼이나 완벽했을까? 혹시 베토벤에 대해 알고 있는 사람들 중에는 이런 이야기를 들어본 이가 있을지도 모른다. 베토벤이 괴팍한 성격을 지니고 있었다는 이야기 말이다.

이 말은 어느 정도 사실이다. 조카 칼에 대한 도를 넘는 집착과 거만한 태도, 무뚝뚝하고 퉁명스러운 어투 등은 그를 반사회적인 인간으로 보이게끔 했다. 하지만 그가 본래 타고난 성품이 거칠어서 그런 것은 분명 아니다.

기자는 그에 대한 원인이 그의 유년시절에 있다고 보았다. 베토벤의 유년시절은 아버지의 폭력과 어머니의 방관으로 점철되어 있었다. 베토벤이 음악을 배울 수 있는 나이가 되자마자 그의 아버지는 어린아이를 붙잡고 억지로 피아노 의자에 앉혔다.

그 과정에서 폭력이 동반되기도 했으며, 아버지가 술을 마시고 늦게 들어오는 날이면 잠들어있던 베토벤을 억지로 깨워 동이 틀 때까지 연습을 시키기도 했다. 아동은 태어나서부터 독립할 때까지 가정이라는 작은 사회 속에서 자라며 부모로부터 끊임없이 영향을 받는다.

, 부모는 아동의 사회화 과정에 있어 가장 중요한 부분 중 하나를 담당하게 된다. 하지만 베토벤의 아버지는 어린 베토벤에게 지속해서 정신적·육체적 손상을 입혔고, 베토벤은 무방비 상태에서 고스란히 그 영향을 받았던 것이다. 어머니조차 아버지의 폭력을 막아주지 못해, 베토벤은 기댈 곳 하나 없이 작은 몸으로 모든 폭력을 견뎌야 했다.

아버지의 환상

불운한 어린 시절을 보낸 베토벤은 학교에 들어가서도 아이들과 어울리지 못했다. 불안한 가정환경 속에서 오는 압박을 견뎌낼 수 있었다는 것은 그의 성격이 강인했음을 증명하지만, 누군가로부터의 따듯한 환대나 상호 간의 애정에 대한 희망을 포기함으로써 베토벤은 동료와의 관계에서 움츠러들 수밖에 없었다.

베토벤은 학습능력 또한 좋지 않았다. 그는 평생에 걸쳐 덧셈 이상의 산수는 익히지 못했을 정도로 무능력한 학습능력을 보였다. 그가 유일하게 관심을 보인 것은 음악이었다. 음악은 그의 삶에 있어 굉장히 큰 부분을 차지했다.

음악 외에 그가 관심을 보였던 건 베토벤이 성인이 되었을 때 태어난 조카 카를이었다. 카를은 베토벤의 동생인 카스피어 카를 판 베토벤과 그의 부인인 요한나 라이스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였다. 그러나 베토벤의 동생은 결핵으로 인해 일찍 세상을 떠났고, 아내와 형 베토벤을 공동후견인으로 지정했으나 그가 사망한 후 베토벤이 법정에 찾아가 양육권을 빼앗았다.

베토벤은 요한나에게서 카를을 데려와 키우며 점차 환상과 현실을 구분하는 데 어려움을 겪기 시작했다. 그는 아무런 근거도 없이 요한나가 그녀의 남편을 독살했다고 의심했으며, 자신의 행동의 그녀에 의해 감시받고 있다고 생각하기도 했다.

베토벤은 이런 상황으로부터 카를을 구조하는 것이 영웅적이고 신성하고 정당한 임무라고 믿게 되었다. 이런 일련의 사건들에서 베토벤이 하고 있던 가장 중요한 착각은, 자신이 실제로 아버지가 되었다고 상상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러한 베토벤의 집착은 본에서 함께 지낸 어린 시절에 있었을 것이라 추측된다. 베토벤의 아버지가 바로 여기에 개입되어 있다. 그의 아버지는 훌륭한 아버지의 역할을 해내지 못했기에 베토벤 스스로가 충족되지 못했던 훌륭한 아버지의 역할을 도맡으려 했던 것일지도 모른다.

아버지에 대한 환상은, 끊임없이 베토벤의 뒤를 따라다니며 그를 괴롭혔다. 이렇듯 베토벤은 음악적으로는 거대한 사람이었으나 한 인간으로서는 텅 빈 인생을 살았다. 어린 시절의 상처는 본인 스스로를 사회에서 격리시켜 버렸다.

그 안에 자리하고 있던 불충분함, 그리고 어린 시절에 받았던 상처의 치유를 향한 갈망은 조카에 대한 집착과 정신이상으로 뒤틀려 표출됐다. 숭고한 음악적 정신, 그 누구도 비견할 수 없는 위대한 음악의 거장, 루트비히 판 베토벤. 그도 한편으로는 그저, 한 명의 상처받은 인간이었다.

김현지 기자 suricatta@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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