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르니의 이름을 들어보셨나요?
체르니의 이름을 들어보셨나요?
  • 김현지 기자
  • 승인 2021.03.30 15: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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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르니의 이름에 관한 진실
▲카를 체르니(Carl Czerny, 1791~1857)
▲카를 체르니(Carl Czerny, 1791~1857)

체르니가 사람이었다고요?

어릴 적 피아노 학원을 한 번이라도 다녀본 이들이라면 듣자마자 익숙하다고 느낄만한 이름이 있다. 바로 체르니다. 체르니는 학원에 처음 들어와 바이엘을 모두 끝마친 후 시작하게 되는 교재이다.

체르니 100부터 시작되는 교재는 3040을 거쳐 50으로 마무리가 된다. ‘너 체르니 몇 번까지 쳐봤어로 시작되는 실력에 대한 평가는 친구들 사이에서 종종 오가던 대화였다. 아마 체르니 10030을 쳐 본 친구들은 많지만 40을 끝까지 완주한 친구, 더 나아가 50을 쳐 본 친구는 거의 없을 것이라 감히 예상해 본다.

그도 그럴 것이, 체르니는 숫자가 바뀔수록 점차 어려워진다. 체르니 100은 바이엘을 갓 뗀 친구들이 칠 수 있을 정도의 난이도를 가지고 있지만, 3040을 거치며 여러 복잡한 리듬과 조표를 마주하다 보면 있던 의욕도 저절로 상실되는 마법을 겪게 된다.

이렇게 피아노를 배운 친구들이면 모두 한 번쯤은 거쳐 갔을 대중적인 교재, 체르니. 그저 교재의 이름으로 알고 있던 체르니가, 사실은 작곡가의 이름이라는 걸 알고 계셨는지 모르겠다. 체르니 시리즈 4권은 오스트리아 빈에서 활동했던 카를 체르니가 연습 교본으로 직접 작곡한 음악들이다.

각 권의 앞에 붙은 숫자는 해당 책 안에 수록된 곡의 수를 의미한다. 예를 들어 체르니 100이라 하면 그 안에 수록된 곡의 개수는 100개이며, 체르니 30번은 30개의 곡으로 이루어져 있는 셈이다.

가장 처음으로 접하게 되는 체르니 100번은 본격적인 연습곡으로 들어가기에 앞서 열 손가락을 준비시켜주는 훈련 단계의 곡이라 볼 수 있다. 그렇기에 레가토, 스타카토, 펼침화음 등 앞으로 공부를 할 때 음악적으로나 기술적인 면에서 기본이 되는 요소들이 주를 이룬다.

바로 다음 단계인 30번은 100번에서 배운 기술을 조금 더 심화시켜 응용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그래서 이전 단계에서 배운 기술을 포함해 양손 간의 조화를 이룰 수 있게 하는 연습과 다양한 아티큘레이션 등 실제 연주에서 쓰이는 기법들이 들어가 있다.

40번은 손가락을 유연하게 놀리며 빠르고 정확한 연주를 할 수 있게 하는 데 의의를 둔다. 마지막 50번은 가장 마지막 단계인 만큼 가장 최고의 기술을 가르치는 것이 목표이다. 이전의 체르니 세 권에서 배웠던 기술의 집합체인 것이다.

체르니는 따듯한 사람이었다

현재의 우리가 사용하는 교본만 보아도 알 수 있듯, 체르니는 연주자보다는 교육자로의 면모가 더욱 돋보이는 인물이었다. 무대 위에서의 삶보다 무대 아래에서 자신이 길러낸 제자들이 빛나는 모습을 바라보는 것을 낙으로 삼았던 그였지만, 사실 체르니는 뛰어난 연주실력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이미 10살 때 베토벤에게 실력을 인정받아 그의 제자가 되어 피아노를 배운 적이 있으며 모차르트의 앞에서도 연주를 한 적이 있을 정도였다. 심지어 베토벤의 앞에서는 베토벤의 대표적인 피아노 소나타인 비창 소나타를 연주하고도 그의 칭찬을 받아내었으니, 체르니의 연주실력은 어느 정도 검증된 것이나 다름없지 않은가.

그런 그가 무대에 서지 않게 된 주된 원인은 체르니 자신이 너무나 부끄러움을 많이 탄다는 데에 있었다. 체르니는 내성적인 성격 탓에 많은 청중 앞에서 연주하기를 꺼려했다. 대신 그는 자신의 재능을 다른 음악가들에게 아낌없이 나누어주는 데 사용했다.

우리가 너무나 잘 아는 낭만주의 음악가, 프란츠 리스트가 바로 체르니의 제자이다. 곡을 쓰는 속도가 아주 빨랐던 체르니는 아주 많은 교육 목적의 곡을 남겼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체르니 시리즈 이외에도 그가 쓴 곡들은 굉장히 많으며, 채 출판되지 못하고 필사본으로 남아있는 곡도 상당수이다.

자신의 재능을 많은 이들에게 나누어주고 떠난 체르니. 교본에서 마주하는 것이 아닌 인간 그대로의 체르니는 조용하고 따듯한 사람이었다. 프레드릭 쇼팽은 그와 함께 연주를 한 후 이렇게 말했다. '

인간 체르니는 그의 작품보다 더욱 따듯했다. 기계적인 연습곡 이면에 감추어진 체르니의 모습이었다. 체르니는 모아둔 재산을 빈의 음악학교와 자선단체에 기부하고 세상을 떠났다. 삶의 매 순간을 음악을 배우는 이들에게 바치며 살아간 체르니. 그는 언제까지나 위대한 교육자로 기억될 것이다.

김현지 기자 suricatta@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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