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전은 계속된다, '원더풀 미나리' 배우 윤여정
도전은 계속된다, '원더풀 미나리' 배우 윤여정
  • 김현지 기자
  • 승인 2021.04.28 14: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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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배우 최초 오스카 시상식 여우조연상 수상
영화 '미나리'...박스오피스 2위로 역주행 주목
배우 윤여정이 한국 배우 최초로 오스카 시상식에서 영화 '미나리'로 여우조연상을 수상했다. (사진/후크엔터테인먼트 제공)
배우 윤여정이 한국 배우 최초로 오스카 시상식에서 영화 '미나리'로 여우조연상을 수상했다. (사진/후크엔터테인먼트 제공)

[한국뉴스투데이] "미나리는 어디서든 잘 자라영화 속에서 커다란 꿈을 안고 미국 땅으로 건너온 한국의 가족. 이제 막 새로운 도전을 시작하려는 가족에게, '모니카'(한예리 분)의 엄마 '순자'(윤여정 분)는 미나리 씨앗을 내민다. 한국의 땅에서도 미국의 땅에서도 어디서나 뿌리를 내리고 살아가는 미나리처럼 배우 윤여정도 낯선 땅에서 다시 한번 새로운 성공신화를 썼다.

배우 윤여정

"여정, .” 붉은빛 홀, 오스카 상의 황금빛 몸체를 거머쥘 주인공의 이름이 불리기 직전에 클로즈업된 후보 배우들의 얼굴에는 긴장감이 감돌고 있었다. 그들은 입가에 긴장 어린 웃음을 걸고 한 곳을 바라봤고 드디어, 이름이 불렸다. 자랑스러운 한국의 배우 윤여정의 이름이, 한 치의 어긋남도 없이 정확한 발음으로 전 세계가 보는 앞에서 울렸다자신의 이름을 듣고 자리에서 일어서 무대로 나아가는 순간은 참으로 흥분될 법한 시간이지만, 윤여정은 결코 동동거리거나 흥분된 기색 없이 차분하게 단상에 올랐다. 까만 드레스가 우아하게 어울렸다.

유럽인들은 제 이름을 여영이나 유정으로 불렀어요. 하지만 오늘 밤에는 모두 용서해 드리겠습니다그의 말을 들은 청중이 파도처럼 우르르 웃음을 터뜨렸다. 윤여정의 이름을 제대로 발음하지 못한 것을 바로잡을 수 있게 되었다는 점에서, 그들의 무례를 너그럽게 받아주는 포용력과 그들을 용서해 주겠다는 유머를 근사하게 던질 수 있는 자리에 그가 서게 되었다는 점에서 벅찬 감정을 느꼈다. 지구상에 존재하는 수많은 커다란 나라를 생각하면, 한국은 얼마나 작은 나라인지. 하지만 배우 윤여정과 영화 <미나리>를 함께한 가족이 있어 대한민국은 그 날 크게 빛났다.

연기는 절실하게

한평생을 배우로 살아오며 현재는 누구나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연차가 많이 쌓인 대배우가 되었지만, 누구나 그렇듯 윤여정에게도 신인 배우였던 시절이 있었다. 연극영화과를 나온 것도 아니요, 일찍부터 연기에 뜻이 있어 차곡차곡 연기의 길을 밟아온 것도 아닌, 갑작스레 시험에 합격하여 걷게 된 배우의 길이었다. 어쩌면 조금 다르게 시작된 배우 인생이었지만, 윤여정은 너무나 절실했다. 그저 좋아서 연기한다는 말은 사치였다. 남들과는 다르게 시작했으니까, 남들에게 피해를 주면 안 되니까, 열등감에서 시작된 절실함은 자기 자신을 끊임없이 채찍질하도록 몰아갔다.

정말 먹고 살려고 연기를 했던 저한테는 대본이 성령 같았기에 많이 노력했어요. 브로드웨이 명언도 있잖아요. 누가 길을 물었대요. How to get to the Broadway?(브로드웨이엔 어떻게 갑니까?)” 했는데, Practice(연습하세요)” 라고 대답했대요. 연습이란 건 무시할 수 없어요

그토록 치열하게 살아가던 신인배우 윤여정의 첫 주연 영화는 1971년에 제작된 김기영 감독의 <화녀>였다. <화녀>는 한 부잣집에 취직해 서울로 올라오게 된 가정부 명자(윤여정 분)가 집주인 남자에게 겁탈당해 임신하게 된다. 그 사실을 알게 된 그의 아내가 강제로 명자의 아이를 유산시키자 분노한 명자가 쥐약으로 가족을 몰살시킬 계획을 세운다는 광기 어린 스토리 라인을 가진 영화다. 첫 주연으로는 파격적인 선택이 아니었을까 싶다. 당시 김 감독은 윤여정에게 매일 자신과 두세 시간을 함께 있을 것을 요구했다. 그는 이해할 수 없는 요구를 하는 김 감독에게 거부감을 느끼기도 했다. 그러나 결과는 놀라웠다. 김 감독은 매일 함께 한 시간 속에서 그의 사소한 행동 하나하나를 잡아내어 연기 속에 녹여냈고, 결국 윤여정이 세월이 흘러서도 그리움과 고마움을 나타낼 때 가장 먼저 떠올리는 인물이 됐다. 영화 <화녀>로 청룡영화상 여우주연상과 대종상 신인 여우상 등 많은 상을 휩쓸며 이름을 알리게 된 그는 이후 <충녀>, <하녀>, <여배우들>, <돈의 맛>, <계춘할망> 등 여러 영화에 출연하며 활발한 활동을 이어나갔다.

배우 윤여정은 지난 2017년 서울 중구 국립극장해오름극장에서 열린 '2017 대한민국 대중문화 예술상'행사에서 문화훈장 은관을 수상하기도 했다.(사진/뉴시스)
배우 윤여정은 지난 2017년 서울 중구 국립극장해오름극장에서 열린 '2017 대한민국 대중문화 예술상'행사에서 문화훈장 은관을 수상하기도 했다.(사진/뉴시스)

일흔의 사치

여러 영화에 출연하고 드라마도 찍다 보니 어느덧 세월이 흘러 일흔다섯의 나이가 됐다. 일흔이란 나이는 사람을 무력하게 만들기도 하지만 배우 윤여정에게는 비로소 찾아온 신선한 시간이다. 그간은 생계형 배우로서 이 작품, 저 작품 바쁘게 돌아가며 일했지만, 이제는 그만의 행복한 사치를 부릴 수 있게 됐다. 내가 좋아하는 작가와 일할 수 있고 좋아하는 감독과 일하며 쉬고 싶을 땐 그저 쉬는 삶. 그게 바로 사치가 아니냐고 윤여정은 말한다.

육십 전에는 나름 계산을 했어요. 이걸 하면 성과가 좋겠다, 이런 생각을 하면서 작품을 했는데 환갑이 넘으면서부터 약속한 게 있어요. 사람을 보고 그 사람이 좋으면 작품을 믿고 하기로 했어요. 난 그때부터 사치스럽게 살기로 결정했어요

그때부터는 사람을 보고 작품을 결정했다. 지나온 세월 동안 쌓인 연륜은 무시할 수 없어, 사람 보는 눈이 예리해졌다. 돈을 보고 작품을 하는 게 아니다 보니 더러는 돈을 거의 받지 못하는 경우도 있었다. 심지어는 출연료를 받아야 할 윤여정의 돈이 빠져나갈 때도 있었다. 하지만 이것이 바로 그의 사치였기 때문에, 작품 속에서 그는 기분이 좋았다.

<미나리>의 탄생

영화 <미나리>도 그의 사치에서 시작된 작품이었다. 본 영화는 정이삭 감독의 자전적인 이야기로, 어릴 적 부모님과 미국 이민을 가서 정착을 하는 과정에 대한 기억이 <미나리> 스크립트의 근간이 됐다. 그간 수많은 대본을 읽어 온 덕에 딱 보면 좋은 대본과 그렇지 못한 대본을 구분할 수 있는 능력이 생겼다. 그런 그에게 내밀어진 <미나리>의 대본은 너무나 순수하고 진실된 이야기를 담고 있었다

영화 '미나리' 스틸컷
영화 '미나리' 스틸컷

"대본을 처음 봤는데, 뭔가 대단한 기교로 쓴 작품이 아니고 정말로 진심으로 얘기를 쓴 거예요. 바로 이 점이 늙은 나를 건드렸어요" 정이삭 감독의 됨됨이 또한 윤여정의 마음을 움직였다. 자신을 부풀리는 것 하나 없이 진실된 사람. 윤여정은 그의 진심을 믿었다. 감독을 믿었고, 그의 대본을 전해주러 온 아이를 믿었다.

정이삭 감독은 아무에게도 모욕주지 않고, 업신여기지 않고 다 존중하면서 컨트롤을 해요. 내가 그 모습에서 희망을 봤어요. 화가 나지만 그것을 참고 컨트롤하는 것. 그 세련됨을 보는 게 좋았어요. 마흔세 살 먹은 감독인데도 제가 존경한다고 했어요감독은 배우의 캐릭터 표현 또한 자유롭게 할 수 있도록 허용해 줬다.

윤여정이 맡은 할머니 역은 정이삭 감독이 기억하고 있는 할머니였지만, 윤여정의 해석으로 <미나리>만의 새로운 캐릭터가 탄생할 수 있었다. 배우에게 주어진 표현의 자유로 상식적인 할머니에서 벗어나 <미나리>순자가 될 수 있었던 것이다.

이렇게 순수하고 진실된 사람들이 만나 자극적인 장면 하나 없는, 그저 담담하고 가슴 먹먹한 작품이 탄생하게 됐다. 이들은 하나의 작품에서 만나 가족이 이뤘다. 아무런 기대 없이 그저 열정 하나로 모여 만든 작품은 이들에게 커다란 수상의 영예까지 안겨 줬다. 배우 윤여정은 그저 다른 사람보다 조금 더 운이 좋아서 이 자리에 있을 수 있었던 것 같다고 말할 뿐이다. 오스카상을 탔다고 해서 배우 윤여정이 달라지는 일은 없을 거라고. 그저 지금처럼, 좋아하는 사람들과 일하며 주어진 길을 꾸준히 나아가는 것. 그것만이 앞으로의 계획일 뿐이다.

본 글의 모든 큰따옴표 안에 들어가는 말은 배우 윤여정이 LA 총영사관에서 열린 한국 특파원단 기자간담회에서 했던 말을 인용한 것임을 밝힙니다.

김현지 기자 suricatta@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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