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층분석】 수면 위로 떠오른 삼성 이재용 부회장 ‘사면론'
【심층분석】 수면 위로 떠오른 삼성 이재용 부회장 ‘사면론'
  • 조수진 기자
  • 승인 2021.05.01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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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부회장, 국정농단 재판에서 2년 6개월 실형받고 오는 2022년 7월까지 복역해야
“투자와 결단 필요한 시점”이라는 사면론에 “박 전 대통령 사면 위한 포석이냐”지적
삼성물산 불법 합병 재판 중 유례없던 기부 행렬과 12조 상속세 납부가 뜻하는 의미

이재용 삼성 부회장이 국정농단 파기환송심에서 징역 2년 6개월을 선고받고 지난 1월 서울구치소에 수감됐다. 수감된 지 불과 3개월 만에 이 부회장의 사면론이 언급됐다. 경제5단체와 종교계는 이 부회장의 사면 건의서를 청와대에 제출했고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이 부회장의 사면을 촉구하는 글이 꾸준히 올라오고 있다. 한 여론조사가 벌인 조사에서는 응답자의 69%가 이 부회장의 사면을 요구하기도 했다. 이에 정부는 검토한 적도 없다면서 선을 그었다. 이 부회장의 사면을 반대하는 입장도 만만치 않다. 시민단체와 노동계는 이 부회장의 사면은 사회정의 원칙을 무너뜨리는 것이라고 우려했다. 특히 이 부회장이 사면될 경우 국정농단 재판에 함께 연루된 박근혜 전 대통령의 사면론에도 거세질 것이란 지적이다. 또 국정농단 외에도 삼성물산 불법합병과 관련해 재판을 받고 있는 이 부회장에게 이번 사면론은 시기상조라는 점에 힘이 실리고 있다.<편집자주>

국정농단 파기환송심에서 2년 6개월을 선고받고 수감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사면론이 제기됐다. 사진은 지난 1월 18일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리는 국정농단 관련 파기환송심 선고 공판에 출석한 이 부회장 모습.(사진/뉴시스)
국정농단 파기환송심에서 2년 6개월을 선고받고 수감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사면론이 제기됐다. 사진은 지난 1월 18일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리는 국정농단 관련 파기환송심 선고 공판에 출석한 이 부회장 모습.(사진/뉴시스)

[한국뉴스투데이] 경제계와 조계종, 성균관 등이 나서 이재용 부회장의 사면을 촉구하고 있는 가운데 이 부회장의 사면이 시기상조이자 사면으로 인한 후폭풍이 거셀 것이라는 우려다.

이 부회장 사면 후폭풍이 우려되는 이유

지난 1월 18일 서울고등법원은 국정농단 파기환송심 선고 공판에서 이 부회장이 박근혜 전 대통령과 최서원(이하 최순실)씨에게 삼성그룹 경영권 승계 등을 도와달라는 청탁의 대가로 뇌물 86억8000만원을 건넨 혐의를 유죄로 인정했다. 재판부는 "이 부회장은 박 전 대통령 뇌물 요구에 편승해 적극적으로 뇌물을 제공했고, 묵시적이기는 하나 승계작업을 돕기 위해 대통령 권한을 사용해달라는 취지의 부정 청탁을 했다"며 "이 과정에서 무려 86억8000여만원에 이르는 삼성전자 자금을 횡령해 뇌물로 제공했고, 허위 용역계약 체결 등 방법으로 범행을 은폐했을 뿐 아니라 국회에서 위증까지 했다"고 판단했다. 이날 법정 구속된 이 부회장은 형이 확정되면서 오는 2022년 7월까지 복역해야 한다.

이 부회장이 수감된지 불과 3개월 만에 사면론이 터져 나왔다. 지난 20일 대한불교 조계종 25개 교구본사와 군종특별교구장은 문재인 대통령과 국무총리, 헌법재판소장 등에 이 부회장의 사면을 촉구하는 탄원서를 제출했다. 이들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박근혜 전 대통령 측의 요구에 응해 뇌물을 제공하고, 그 대가로 묵시적이나마 그룹의 승계 작업을 위해 청탁을 한 점이 인정되어 징역 2년 6개월의 실형을 선고받았다”며 “정치권력과 재벌의 위법적인 공모를 바라보는 우리 불자들의 심정은 참담하기 그지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우리 정치가 어두운 시절을 지나오며 불가피하게 성장통을 겪어 왔듯이 삼성 또한 이 성장통을 함께 겪을 수밖에 없었던 불가피한 어려움이 있었다”면서 “사람은 누구나 허물 많은 중생이며, 이재용 부회장도 다르지 않을 것이다. 그가 대국민사과를 통해 과거의 잘못을 참회하고 자녀들에게 회사의 경영권을 물려주지 않겠다고 하는 등 자신의 맹세를 말이 아닌 실천으로 옮길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게 도와주길 바란다”고 적었다.

그러나 이 부회장의 사면은 단순한 문제가 아니다. 이 부회장은 박근혜 전 대통령과 비선실세 최순실씨에게 뇌물을 제공하고 대가를 청탁한 국정농단의 핵심 인물이다. 지난 2014년 최씨는 승마선수인 딸 정유라가 속한 대한승마협회의 지원에 불만을 품었다. 당시 대한승마협회의 회장사인 한화그룹의 지원이 성에 차지 않자 최씨는 박 전 대통령을 부추겨 대한승마협회의 회장사를 삼성그룹으로 바꾸고 지원을 요청했다. 마침 경영권 승계 작업을 앞두고 있던 삼성그룹은 박 전 대통령과 최씨의 요청을 받아들였다. 삼성은 최씨가 독일에 만든 페이퍼컴퍼니 코어스포츠와의 200억원대 컨설팅 계약 체결을 시작으로 정유라의 말 등 승마 지원, 최씨의 조카 장시호씨의 한국동계스포츠영재센터에 후원, 미르‧케이스포츠재단 출연 등 수백억대의 지원을 이어갔다. 지원의 대가로 삼성은 금융지주사를 전환하고 경영권 승계 작업의 핵심이 되는 삼성물산의 합병에서 박 대통령이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의 열쇠를 쥔 국민연금공단이 찬성표를 던지도록 압박해 순조로운 합병 작업을 마쳤다.

즉, 이 부회장의 국정농단 재판 결과에는 박 전 대통령이 깊숙하게 연루돼있다. 박 전 대통령은 지난 1월 14일 국정농단 사건으로 징역 20년의 실형이 확정돼 수감 중이다. 박 전 대통령이 삼성으로부터 받은 86억8000만원이 뇌물로 인정된 것. 나라를 뒤흔들고 대통령 탄핵이라는 후폭풍을 불러온 국정농단 사태를 통해 정치권과 기업의 공모가 세상으로 드러나고 법의 심판을 받은 셈이다. 이 부회장의 사면이 단순하지 않은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 부회장이 사면될 경우 바로 박 전 대통령의 사면론으로 확대될 가능성이 높다. 최근 서울시장에 당선된 오세훈 시장과 박형준 부산시장을 비롯해 국민의힘 일부에서 다시 박 전 대통령의 사면론이 터져나오는 가운데 이 부회장의 사면은 박 전 대통령 사면을 위한 빌미가 될 뿐이라는 지적이다. 지난 26일 여영국 정의당 대표는 “이명박·박근혜 두 전직 대통령과 이재용 부회장에 대한 사면은 대한민국이 기득권세력의 특권 공화국임을 선언하는 것”이라며 “만약 문재인 정부가 이들을 사면한다면 촛불 정신을 배신하는 공식 선언이 될 것”이라 경고했다.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확진자와 밀접 접촉해 병원 격리됐던 박근혜 전 대통령이 지난 2월 9일 서울 서초구 서울성모병원에서 나와 서울구치소로 향하는 차량으로 이동하고 있다.(사진/뉴시스)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확진자와 밀접 접촉해 병원 격리됐던 박근혜 전 대통령이 지난 2월 9일 서울 서초구 서울성모병원에서 나와 서울구치소로 향하는 차량으로 이동하고 있다.(사진/뉴시스)

경영권 승계 핵심인 삼성물산 합병 재판 진행 중

그럼에도 지난 27일 한국경영자총협회와 대한상공회의소, 중소기업중앙회, 한국무역협회, 한국중견기업연합회 등 5개 경제단체는 청와대에 이 부회장의 사면 건의서를 제출했다. 각 단체장의 명의로 제출된 건의서에는 "지금은 그 어느 때보다 정부와 기업이 손을 잡고 글로벌 산업의 주도권을 갖기 위해 함께 나아가야 할 중요한 시기"라면서 "과감한 사업적 판단을 위해선 기업 총수 역할이 어느 때보다 필요하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치열해지는 반도체 산업 경쟁 속에서 경영을 진두지휘해야 할 총수 부재로 과감한 투자와 결단이 늦어진다면 그동안 쌓아 올린 세계 1위의 지위를 하루아침에 잃을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 요약컨대 앞으로의 사업을 위해 이 부회장이 꼭 필요하다는 것으로 읽힌다. 

하지만 이 부회장의 사면이 시기상조인 이유는 또 있다. 이 부회장은 이미 실형 선고를 받으며 재판이 끝난 국정농단 뇌물 청탁 혐의 외에도 경영권 승계 작업의 핵심이었던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 과정에서 주가조작과 분식회계 등을 벌인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다. 아직 재판 중인 상황에서 벌써부터 사면이 운운되는 이 상황은 아이러니하기까지 하다. 

지난 22일 서울중앙지법에서는 자본시장법상 부정거래 행위 및 시세조종, 업무상 배임 등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이 부회장과 삼성 관계자 10여 명에 대한 첫 재판이 열렸다. 이 부회장은 경영권을 승계하고 지배력을 강화하기 위해 2012년 ‘프로젝트G’라는 문건을 만들어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을 추진하게 된다. ‘프로젝트G’의 주요 내용은 중요 정보는 은폐하고 거짓 정포 유포, 주요 주주 매수, 자사주 집중 매입, 국민연금 의결권 확보 위한 로비 등이다. 이 중 박 전 대통령에게 뇌물을 주고 국민연금의 찬성표를 받아낸 이 부회장은 2015년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 작업을 마쳤다.

문제는 합병 과정에서 각종 불법이 이뤄졌다는 점이다. 이 부회장은 가장 먼저 제일모직 자회사인 삼성바이오로직스의 2014년도 재무제표 주석에서 부채를 은폐하는 등 회계를 조작했다. 이후 이 부회장은 자신이 대주주로 있던 제일모직에 일방적으로 유리한 시점에 산정된 합병비율을 담은 검토보고서를 작성한 뒤 삼성물산 이사회에서 최종 합병 승인을 받았다. 합병안이 통과되자 제일모직은 자사주를 사들이기 시작했다. 검찰은 이 부분을 시세조종으로 판단하고 있다. 그러면서 합병에 악재가 될 정보는 철저히 은폐했다. 양사의 합병에 성공한 이 부회장은 단 한주의 삼성물산 주식도 없던 상태에서 16.4% 지분을 확보하며 지배력을 확대했다. 하지만 삼성물산 주주들은 합병 과정에서 주가의 하락으로 손해를 봤고 캐스팅보트 역할을 한 국민연금의 경우 1300억 원대의 손해를 보는 피해가 발생했다. 

이 부회장은 지난 22일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과정에서 부정거래와 시세조종, 업무상 배임 등의 혐의로 첫 재판을 받았다.(사진/뉴시스)
이 부회장은 지난 22일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과정에서 부정거래와 시세조종, 업무상 배임 등의 혐의로 첫 재판을 받았다.(사진/뉴시스)

당연히 내야 할 상속세인데…사면 위한 큰그림?

이처럼 여러 재판에 연루된 이 부회장은 프로포폴 불법 투약 의혹과 관련해 수사를 받고 있기도 하다. 이 부회장이 프로포폴을 상습 투약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는 곳은 강남구 신사동의 한 성형외과다. 해당 병원에서 근무했던 간호조무사 신모씨의 남자친구 김모씨가 국민권익위원회에 이 부회장의 프로포폴 투약 혐의를 신고하면서 이를 검찰이 이첩받아 수사에 착수했다. 해당 병원은 그전에도 프로포폴 불법 투약으로 수사를 받고 2019년 폐업한 상태로 병원장 김모씨와 간호조무사 신씨는 검찰 수사 직후 구속돼 재판을 기다리고 있다.  

반면 이 부회장에 대한 프로포폴 투약 혐의 조사는 잠시 중단된 상태다. 지난 3월 검찰수사심의위원회에 수사 계속 여부에 대해 표결에 참여한 위원 14명 가운데 8명이 수사 중단을, 6명이 수사 계속에 표를 던져 수사 중단이 권고됐기 때문이다. 이 부회장에 대한 기소 여부에는 찬반이 각각 7명씨 나와 결론을 내지 못했다. 심의위원회의 권고는 강제력은 없지만 국민적 의혹이 제기되거나 사회적 이목이 집중된 사건의 수사 과정을 심의하기 위한 위원회의 결정을 존중해야 한다는 규정이 있어 검찰은 수사 여부를 고심하고 있다. 

사법리스크에서 자유롭지 못한 이 부회장의 사면론에 불을 지핀 배경에는 상속세가 있다. 이건희 회장의 유산은 삼성전자(4.18%), 삼성생명(20.76%), 삼성물산(2.88%), 삼성SDS(0.01%) 등 계열사 지분 19조원, 미술품 약 3조원, 부동산·예금성 자산 약 4조원 안팎으로 알려졌다. 국내 전 국민의 모든 상속세가 1년에 3조원인 반면 이 부회장이 한번에 내야 할 상속세는 12조원이다. 이 부회장과 삼성은 12조원의 상속세를 전부 납부하기로 결정했다. 이를 두고 연일 언론과 사면 찬성론자들은 이 부회장과 삼성의 상속세 납부를 칭찬하며 떠받드는 모양새다. 상속세의 규모가 큰 건 사실이지만 당연히 납부해야 할 상속세를 낼 뿐인데 칭찬 형색이 도를 넘었다는 지적이다. 박진영 더불어민주당 대변인은 “법적으로 당연히 내야 할 상속세를 내겠다는 게 그렇게 훌륭한 일이냐”고 반문했다. 그러면서 삼성의 상속세가 세계 1위인 이유는 삼성보다 매출이 많은 글로벌 기업보다 삼성 일가의 지분이 많다는 뜻이라고 꼬집었다. 

이건희 회장의 유족은 상속세 납부 전 사재 1조원을 출연해 감염병 전문병원을 설립하고 소아암과 희귀질환 어린이 지원에 나섰다. 이어 이건희 회장이 평생 수집한 개인소장 미술품 2만3000여점은 국가 박물관에 기증됐다. 여기에는 겸재 정선의 '인왕제색도(국보 216호)', 단원 김홍도의 '추성부도'(보물 1393호)‘, 김환기 화가의 '여인들과 항아리', 이중섭의 '황소' 등 문화재와 고서, 미술품 등이 포함됐다. 미술계에서는 이번에 기부가 결정된 미술품들의 감정가를 약 3조원으로 보고 있다. 시가로는 10조원이 넘는 규모다. 또 유족은 해운대구 우동 산2번지 토지를 해운대구에 기부했다. 해당 토지는 장산산림욕장과 장산 계곡이 위치한 임야로 약 3만8000㎡에 달한다. 쉽게 말해 축구장 5개를 합쳐 놓은 규모다. 이 곳은 송림이 울창하게 자라는 등 자연환경이 잘 보존돼 있고, 산책로를 비롯해 벤치 등 주민 편의시설이 조성돼 공익적 활용도가 높은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12조원의 상속세 납부는 그 어느 때보다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유족들은 30일 상속세 1차 납부로 2조1000억원을 용산세무서에 납부했다. 5년간 6차례에 걸쳐 분납될 상속세의 첫 납부다. 전에 없던 삼성의 대규모 기부 행렬과 발빠른 상속세 납부에 언론은 그 가치 따지기에 여념이 없다. 하지만 앞서 2008년 특검에서 드러난 이건희 회장의 4조5000억원 규모의 차명계좌에 대해 이건희 회장이 사회환원을 약속한 바 있어 새로운 사실도 아니다. 환원 시기가 이 부회장의 수감 중에, 또 재판을 받고 있는 중에 이뤄졌다는 점에서 앞으로의 재판 결과와 급속도로 퍼지고 있는 사면론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큰 그림도 의심된다. 한편 관대한 기부 행렬을 이어가고 있는 삼성은 이건희 회장의 유족들이 받게 될 주식 분할 내역과 상속 재원 등에 대해서는 함구하고 있다. 

조수진 기자 hbssj@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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