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사마 야요이: 무한의 세계' .... 야요이! 그녀가 전하는 사랑의 메시지
'쿠사마 야요이: 무한의 세계' .... 야요이! 그녀가 전하는 사랑의 메시지
  • 곽은주 기자
  • 승인 2021.05.31 10:3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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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사마 야요이: 무한의 세계> 경이롭다. 화가 야요이(1929년생)의 인생 여정을 솔직 담백하게 담은 가슴 찡한 다큐멘터리다. 참으로 드라마틱한 굴곡의 인생이다. 끈질긴 생명력으로 매일숙제를 하듯이 창작에 집중하는 그녀의 모습이 바로 살아있는  산 작품으로 빛나는 영화.

사진= 쿠사마 야요이: 무한의 세계. 오드 제공
사진= 쿠사마 야요이: 무한의 세계. 오드 제공

현존하는 여성 화가로 작품이 가장 비싸게 거래되는 회화작가이자 설치미술가인 쿠사마 야요이’. 본인 스스로 자신을 정신 나간(!) 천재라고 소개한다. 어린 시절부터 정신병을 앓고 있으니, ‘정신 나간이란 말로 자신을 표현한 것 같다. 48세부터 현재까지 정신과 병원에 입원 중이면서 활발하게 작업을 하는 세계적으로 핫한 주목을 받는 작가 야요이.

야요이는 1958년부터 1973년 전까지 뉴욕을 중심으로 활동했다. 당시 뉴욕 미술계는 백인 남성 중심의 사회였다. 동양 여성작가는 아웃사이더로 밀려날 수밖에 없던 척박한 환경에서 그녀는 예술가로 뉴욕을 정복하겠다는 일념으로 작품에 몰두한다. 찢어지게 가난했으나 작품을 할 때만은 행복했다고 그때를 회상한다. 당시 그녀의 작품들은 미국 팝아트의 모태가 된다. 앤디 워홀조차 그녀의 아이디어를 차용한 작품을 발표했다. 마크 로스코, 앤디 워홀, 도널드 저드, 클래스 올덴버그, 오노 요꼬(존 레논 부인) 등과 활발한 교류를 하며 당시 뉴욕 문화의 선봉에 있던 그녀지만, 그녀는 주목받지 못한다. 뉴욕을 벗어나 네덜란드, 로마 등에서 많은 해프닝과 패션쇼를 했다.

1966년 초대받지 못한 베니스 비엔날레 행사장 앞에서 나르시스 정원이란 제목으로 설치 작품을 선보이며 2달러로 작품을 판매한다. 이 퍼포먼스는 체제적복적인 해프닝으로 큰 반향을 일으켰다. 예술뿐만 아니라 베트남 반전 운동, 미국 대통령 선거 등의 사회운동을 포퍼먼스로 펼치며 유명세를 떨쳤다. 당시 게이 동성애자 결혼식을 퍼포먼스로 펼치기도 했다. 그러나 그녀가 기대했던 예술가로서의 정당한 평가는 받지 못했다.

사진= 쿠사마 야요이: 무한의 세계. 오드 제공
사진= 쿠사마 야요이: 무한의 세계. 오드 제공

그녀는 몸과 마음이 몹시 지친 상태로 1974년 일본으로 돌아간다. 그러나 그녀는 일본에서조차 제대로 평가를 받지 못한다. 그녀를 선정적으로만 부각 시켜서 가족조차 그녀를 창피해했다고 한다. 예술가로 세상의 주목을 받고 싶었으나, 세상은 그녀를 예술가로 기억하지 않았다. 중년의 나이를 훌쩍 넘기고 나서야 비로소 그녀의 작품이 제대로 평가받게 된다. 정신병원에 입원 중이면서도 그녀는 1993년 베니스 비엔날레 일본 대표로 참석하며 미술계로 화려하게 컴백했다.

그녀의 트레이드 마크인 빨간 머리 야요이. 물방울무늬 작품 속의 숨은그림처럼, 움직이는 작품처럼 그녀는 작품 일부로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낸다.

사진= 쿠사마 야요이: 무한의 세계. 오드 제공
사진= 쿠사마 야요이: 무한의 세계. 오드 제공

미술이 아니었다면, 난 오래전에 자살했을 것이다.”라고. “내가 정신병원에 사는 것은 내가 아프기 때문이다. 혼자 있기 힘들다. 병원에서 살지 않았다면 그림을 계속 그릴 수 없을 것이다.”고 말한다. 낮에는 병원 근처 개인 작업실에서 작품에 몰두하고 저녁이 되면 병원으로 귀가하는 환자이자 화가.

그녀는 강박과 집적의 화가로 불린다.

집적의 철학이 제가 강하게 끌리는 작품의 테마입니다. 집적이 의미하는 것은 우주의 별은 홀로 존재할 수 없고 지구도 홀로 동떨어져서는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이라고 한다.

자신의 트레이드 마크가 된 물방울무늬는 지구, , 태양을 상징한다고 한다. 인체나 말 등에 물방울무늬를 그려 넣는 것은 인간의 소멸을 표현한 것. “인간도 생명체도 모두 우주의 자연으로 돌아간다는 그녀의 철학을 담고 있는 물방울은 그녀의 영원한 테마인 듯 보인다.

똑같은 영상이 밀려오는 환영과 공포, 불안신경증과 강박증, 편집증이 뒤엉킨 곤혹스러운 병을 치유하고자 그 환영을 스케치북에 옮기기 시작한 그녀는 이제 현대미술의 거장으로 불린다. 아시아 현대미술에서 빼놓을 수 없는 여성작가다.

2014어 드림 아이 드림드’(A Dream I Dreamed)란 제목으로 서울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그녀의 60년을 반추하는 회고전이 열려 관객들의 사랑을 받으며 큰 반향을 일으켰다.

환각과 정신이상에 시달리면서도 부단히 새 작품으로 사랑과 평화의 메시지를 전하는 야요이의 창작 열정이 찬란한 슬픔처럼 처연하다. 부모의 학대로 비롯된 강박과 정신 질환의 수많은 눈물방울은 환희의 동그란 꽃으로 피어났다. 그녀의 물방울들은 이제 세계 곳곳에서 반짝반짝 빛난다. “부모는 혹시 너를 잊을지라도 나는 너를 잊지 아니할 것이라는 창조주의 음성을 그녀는 들은 것일까.

곽은주 기자 cineeun60@nat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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