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더가 빠질 수 있는 나르시시즘의 덫
리더가 빠질 수 있는 나르시시즘의 덫
  • 송은섭 작가
  • 승인 2021.05.31 14:1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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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친 나르시시즘 성향을 지닌 리더는 대체로 부하들의 정당한 요구를 무시하고 충성심만 강요한다. 당신은 리더로서 나르시시즘의 덫에 빠져 있지 않은가?

나르시시즘(Narcissism) : 자기 자신에게 애착하는 일, 자기애(自己愛)라고도 한다. 물에 비친 자신의 모습에 반하여 자기와 같은 이름의 꽃인 나르키소스, 즉 수선화(水仙花)가 된 그리스 신화의 미소년 나르키소스와 연관 지어, 독일 정신과 의사 네케가 1899년에 만든 말이다. 요즘 속어로 왕자병, 공주병 그리고 자뻑이 이에 해당한다.

1. 리더가 경계해야 할 나르시시즘의 덫 : “권력과 특권의식 그리고 아부의 유혹

“CEO가 되더니 갑자기 사람이 달라졌어요. 점점 독선적으로 변하고 다른 사람의 말을 들으려고 하지 않아요.”

퇴임하는 사장과 회사의 다른 이사들이 칭찬한 A . 그는 협업에 능하고 회사 경영에 필요한 전문 지식과 책임감이 강한 사람이었다. 그런 그가 CEO가 된 순간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변했다. 그는 주요 고객들을 접대할 목적이라며 고가의 차량과 주문제작 요트를 사들였다. 그러나 실제로는 개인적인 용도로 사용되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회사 이미지를 새롭게 바꿔나간다는 목표로 주요 조직을 개편했다. 장기간 근속했던 유능한 직원들이 떠났고, 조직의 사기는 저하됐다. 회사는 수년 만에 적자를 기록하기 시작했고, 주가는 하향곡선을 그렸다. 회사가 손실을 보기 시작했음에도 A 씨의 급여와 상당한 규모의 특혜는 그대로 유지됐다. 그는 회사의 상황에 전혀 개의치 않는 것처럼 보였다. A 씨의 독재적 스타일과 위험한 행동은 그나마 남아 있던 그의 회사 측근들마저 떠나가게 했다. 회사 내에서 솔직한 의견 교환의 기회는 사라졌고 좋은 아이디어는 무시됐다. 고위직들의 사임이 잇따랐고 A 씨의 곁에는 올바른 조언을 하는 참모보다 아부만 일삼는 추종자만 남았다. A 씨는 늘 그의 결정을 찬양하는 아부로 인해 여전히 자신의 문제점을 파악하지 못했고 회사는 파산 직전에 이르렀다. 결국, 이사회는 A 씨의 사임을 의결했다.”

위 사례는 리더가 나르시시즘의 덫에 빠져 개인과 조직에 심각한 피해를 준 이야기다. 리더가 빠질 수 있는 나르시시즘의 덫은 크게 두 가지 유혹의 덫으로 구분할 수 있다.

첫 번째 덫은 권력과 특권의식이다. A 씨는 권력과 특권의식의 덫에 빠져 현실을 균형적으로 바라보는 시각을 잃었다. 리더가 권력욕과 특권의식에 집착하는 순간 그들은 독재자가 되어버린다. 회사의 장기적 목표보다는 자신의 입지를 다질 수 있는 정치적 방편을 우선한다. 그들의 주 관심사는 자신의 조직 내 중요성과 지위의 보전이다. 이런 리더는 부하들의 정당한 요구를 무시하고 충성심만 강요한다. 결국, 유능한 인재는 조직을 떠나고 남은 사람들은 눈치 보기 게임만 반복하게 된다.

리더가 빠질 수 있는 나르시시즘의 두 번째 덫은 아부이다. A 씨는 그를 추종하는 자들의 아부를 즐기면서 판단력을 잃어버렸다. 많은 리더가 아부의 위험성에 대해 생각은 하지만 기꺼이 받아들이고 있다. 이 덫에 빠지는 순간 부하들의 아부는 당연하고 자신이 주목을 받고 있다는 착각에 빠지게 된다. 아부는 건강한 현실 인식과 통찰력 발휘를 방해한다.

▲당태종은 신하들의 간언을 경청하고 적극적으로 수용하며 자신이 독단에 치우치지 않도록 균형감각을 유지했다. (영화 ‘안시성’에서 장면/ 배우 박성웅이 당태종 역으로 열연했다.)
▲당태종은 신하들의 간언을 경청하고 적극적으로 수용하며 자신이 독단에 치우치지 않도록 균형감각을 유지했다. (영화 ‘안시성’에서 장면/ 배우 박성웅이 당태종 역으로 열연했다.)

2. 나르시시즘의 덫에 걸리지 않는 리더십 : “균형감각

폐하께서는 신이 양신(良臣)이 되기를 원하십니까?, 아니면 충신(忠臣)이 되기를 원하십니까?”

당 태종 이세민의 집권 시기를 정관(貞觀)의 치라고 한다. 중국 역사학자들은 이 시기를 중국 역사상 전무후무한 황금기를 구가했던 시대로 규정하고 있다. 당 태종이 성군이 될 수 있었던 이유는 균형감각의 리더십을 발휘했기 때문이다. 그는 신하들의 간언을 경청하고 적극적으로 수용하며 자신이 독단에 치우치지 않도록 균형감각을 유지했다.

당 태종은 늘 올바른 간언을 하는 위징을 총애했는데 그를 시기하던 자들이 위징을 모함했다. 당 태종이 위징을 불러 모함하는 자들의 이야기를 하며 훈계하자 위징이 말했다.

폐하께서는 신이 양신(良臣)이 되기를 원하십니까?, 아니면 충신(忠臣)이 되기를 원하십니까?”

양신(良臣)과 충신(忠臣)은 무슨 차이가 있소?”

양신(良臣)은 자신의 명예를 스스로 높이고, 임금도 숭고한 칭호를 누리게 합니다. 자손 대대로 전해져 부귀영화가 끝이 없지요. 반면에 충신(忠臣)은 자신의 몸은 주살되고 구족이 멸하게 되며 임금은 악명을 뒤집어쓰게 됩니다. 집안과 나라 모두 큰 피해를 보지만 홀로 충신(忠臣)의 명예를 누리게 됩니다. 따라서 양신(良臣)과 충신(忠臣)의 차이는 참으로 크다고 할 수 있습니다.”

당 태종은 위징의 말에 크게 공감하고 그에게 비단 5백 필을 하사했다. 이후 위징이 올린 시책 200여 개를 실행하며 늘 자신이 독단에 빠지지 않도록 균형감각을 유지했다.

신하들의 간언을 경청하던 당 태종도 사람인지라 가끔은 분노가 폭발한 적이 있었다. 그럴 때면 평정심을 유지하기 힘들었다. 그런데도 감정을 억누르고 이성적인 판단과 균형감각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중국 역사에서 가장 훌륭한 황후라는 평가를 받는 그의 아내 장손황후(長孫皇后)의 현명한 내조 덕분이었다.

하루는 당 태종이 후원에서 궁녀들과 함께 꿩 잡이 놀이를 하고 있었다. 마침 위징이 멀리서 그 모습을 보고 다가오고 있었다. 당 태종은 너무 놀란 나머지 황급히 꿩을 용포 안으로 감추었다. 지엄한 황제가 궁녀들의 치맛자락을 잡고 놀은 사실이 발각되면 또 위징에게 꾸지람을 들을 게 분명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위징은 별로 중요하지도 않은 일을 일부러 시간을 끌며 장황하게 아뢰었다. 당 태종은 용포 안에서 꿈틀거리는 꿩을 누르느라 진땀을 흘렸다. 한참 후 위징이 말을 마치고 떠나자 당 태종은 씩씩거리며 내전으로 돌아와 장손 황후(長孫皇后)에게 이 사실을 말하며 위징을 죽여버리겠다고 말했다. 그러자 장손황후(長孫皇后)는 위징을 변호하는 말을 하면 오히려 남편의 분노를 더 키울 수 있다고 생각했다. 잠시 후 그녀는 국가의 경축일에나 입는 대례복 차림으로 나타나 남편에게 큰절을 올렸다. 당 태종이 아내에게 무슨 축하할 일이 있냐고 물었다. 그러자 그녀의 대답은 이러했다.

군주가 영명하면 신하가 정직하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위징이 감히 직언을 할 수 있는 것은 폐하께서 영명하시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소첩이 어찌 폐하께 하례를 드리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아내의 현명하고 사려 깊은 행동에 당 태종의 분노는 눈이 녹듯 사라지고 평정심을 유지할 수 있었다. 당 태종은 늘 올바른 간언을 했던 위징과 현명한 아내 장손황후(長孫皇后)가 있어서 상황을 바라보는 균형감각을 유지할 수 있었다. 이것이 절대 권력을 가진 당 태종이 나르시시즘의 덫(권력과 특권의식, 아부)에 빠지지 않고 정관(貞觀)의 치를 이룬 이유다.

조직에서 리더로서 기능하기 위해서는 일정 정도의 나르시시즘이 필요하다. 그러나 조직이 효과적으로 기능하는 적절한 수준의 나르시시즘을 넘어섰을 때 권력과 특권의식, 아부라는 덫에 빠지게 된다. 권력과 특권의식, 아부의 덫은 강력한 마약과도 같다. 처음에는 생기를 불어넣는 것 같지만 중독되면 개인과 조직을 죽이는 독이 된다. 리더는 이런 나르시시즘의 덫에 걸려들지 않도록 경계해야 한다. 조직의 안녕과 성장은 리더가 얼마나 건강한 자기 인식과 통찰력, 균형감각을 가졌는지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리더라면 거울을 보며 자뻑대신 통찰력과 균형감각이 보이는지 들여다볼 일이다.

송은섭 작가 seop2013@hanmail.net

송은섭의 리더십이야기

인문학과 자기계발 분야 전문 작가 겸 칼럼니스트로 활동하고 있다.
주요 저서로 <마흔, 인문고전에서 두 번째 인생을 열다>, <지적대화를 위한 인문학 고전 읽기> 등이 있다. 경기대 외교안보학 석사, 고려대 명강사 최고위과정을 수료했다. 유튜버(작가 조바르TV), 팟캐스트(책 읽는 시간)로도 활동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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