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탐구】 작품으로 ‘멋과 아름다움’ 배어 나오는 배우 ‘김서형’
【인물탐구】 작품으로 ‘멋과 아름다움’ 배어 나오는 배우 ‘김서형’
  • 김현지 기자
  • 승인 2021.06.28 16:1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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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중보다, 언제나 가장 중요한 역 맡은 것처럼 연기에 몰입
빈틈없고 우아한 이미지 너머, 당당한 아름다움으로 사랑받아
평탄치만은 않았던 오랜 연기자 생활, 어려운 과정 뚫고 ‘현재진행형’
▲배우 김서형은 자신을 믿으며 때로는 스스로 채찍질하면서 끊임없이 갈고 닦았다. 이십 대를 지나고 30대도 지나 40대가 되어서 조금은 여유가 생겼다만은 여전히 버텨서 다지는 것은 현재진행형이다. (사진/뉴시스)
▲배우 김서형은 자신을 믿으며 때로는 스스로 채찍질하면서 끊임없이 갈고 닦았다. 이십 대를 지나고 30대도 지나 40대가 되어서 조금은 여유가 생겼다만은 여전히 버텨서 다지는 것은 현재진행형이다. (사진/뉴시스)

[한국뉴스투데이] 그는 목련 같다고 생각했다. 꽃망울이 하얗게 올라오고 닫혔던 꽃잎이 커다랗게 흐드러지는 그 순간까지의 목련. 목련 나무는 어디에 있든 단단해 보인다. 하지만 그 꽃잎을 한 장이라도 집어 쓰담아 보면 잎의 결이 퍽 부드럽다. 단단하고도 부드러운 목련 나무. 새카만 줄기와 하얀 꽃잎이 대조적이지만 고아하게 어울린다. 강인해 보이는 모습 사이로 문득문득 비치는 여린 마음은, 작게 벌어진 틈새로 들어오는 햇살 같다. 그가 지나온 거칠고 굵직한, 배우로서의 파노라마. 그 위로, 아름답게 꽃이 피었다.

특별하지만 특별하지 않은 사람

배우 김서형. 멋진 대한민국의 배우로 수많은 작품에 출연해 작품 수만큼이나 많은 명장면을 만들어냈다. 김서형의 이름을 생각하면 떠오르는 배역과 대사가 너무나 많다. 멋지고 당당한 이미지로 대중에게 사랑받고 있는 김서형이지만, 빈틈없고 우아한 이미지 너머의 모습도 서슴없이 공개하곤 한다. 특유의 쾌청한 웃음과 흥겨운 춤과 노래 같은, 아주 유쾌하고 유머러스한 모습도, 그리고 애처로운 모습까지도. 우상과 같이 견고하게만 보였던 사람이 의외의 면을 살짝 보여주는 순간, 그 사람은 더욱 사랑스럽게 보이곤 한다. 그는 말한다. 나는 특별하지만, 동시에 특별하지 않다. 배우 김서형. 혹은 그냥 인간 김서형. 쉬는 날엔 외출도 삼간 채 집에서만 늘어지고, 나이 든 반려견과 함께하며 주부습진으로 고생하는, 술은 잘 하지 못하지만, 노래방이 가고 싶어 끝까지 자리를 지키는. 새하얀 눈을 좋아해 아무도 밟지 않은 눈 위로 발자국을 남기며 총총히 걸어가는, 교집합이라곤 전혀 없을 것만 같은 요소들이 신기하게도 한데 모여 김서형을 이루고 있다. 그래서 자꾸만 더 눈길이 간다.

시간과 발자국

연기를 한 지도 어느덧 28년이 되었다. 참 긴 시간을 배우로 살아왔다. 모든 인생이 그렇듯, 그의 삶도 마냥 평탄하지만은 않았다. 넘어진 적도 있었고 힘차게 내달렸던 날도 있었다. 하지만 그 모든 순간 중 단 한 순간도 연기를 포기하고 싶었던 적은 없었다. 오히려 더 도전하지 못해 힘들었던 순간이 존재했을 뿐. 그는 주어지는 모든 기회를 최고의 순간으로 받아들였다.

“20대에 저도 제 나름대로 방황을 어마 무시하게 했죠. 그런데 분량이 적어도 저는 주인공이었어요. 제가 맡은 역할이 시놉시스에서 9번째 10번째여도 저는 첫 번째인 것처럼 해냈어요.”

얼마나 비중이 큰 역할을 맡았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언제나 가장 중요한 역을 맡은 것처럼 연기했다. 나로 인해 비로소 생명을 얻는 시놉시스 속의 인물은 얼마나 사랑스러운지, 수도 없이 넘겨 해지고 밑줄이 쳐진 대본 속에 흐려진 몇 줄의 대사에 의미가 생겼다.

내가 한 걸음 한 걸음을 걸어서 왔잖아요. 열 걸음이 아닌 한 걸음 한 걸음 왔는데도 불구하고 차별이라고, 평등하지 않다고 생각이 들 때가 분명히 있었고, 제 주위에도 있을 거예요. 어쨌든 눈을 똑바로 뜨고 가는 입장에서는 한 걸음 한 걸음 가는 게 정상이에요. 정상적으로 온 사람들이 제일 빨리 정상에 가야 하잖아요. 그런 방식으로 정상까지 도달한 사람들의 노력에 귀를 기울여야 된다고 생각해요.”

내가 정직한 한 걸음을 내딛을 때 벌써 다섯 걸음, 열 걸음을 뛰어 앞으로 가버리는 사람들이 있었다. 아무리 괜찮다고 스스로를 다독여도 눈에 보이는 차별이 있었다. 하지만 김서형은 계속해서 걸었다. 걷고 걷다 보면 언젠가는 도착하려니, 도전하지 못해 힘들었던, 기회가 오지 않아 허탈했던, 엎어져서 땅에 코를 박고 허덕였던, 아팠던 기억을 끄집어내며 그는 울었다. 눈가에 투명하게 고인 눈물, 하지만 눈물은 기어이 밑으로 떨어지지 않고 속으로 스며들었다. 그는 금방 다시 웃었다. 짧게 울리는 웃음소리에서 수없이 많은 시간, 스스로를 다독여 왔을 그의 모습이 보였다. 한 걸음씩 정직하게 걸어온 걸음은 결코 헛되지 않았음을, 굳건하게 쌓아온 시간이 있었기에 많은 사람이 지금의 김서형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울고 웃을 수 있게 되었다.

믿는 것은 오직 나 자신

배우 김서형이 믿는 단 한 가지는, 바로 자신이다. 그는 끊임없는 경쟁 가운데 있었고 살아남아야 했다. 그래서 더욱 당당하게 행동했다. 내가 나의 든든한 지원군이 되어서, 덕분에 그는 치열한 경쟁에서 버틸 수 있었다. 나를 믿고, 나를 채찍질하면서 끊임없이 갈고 닦았다. 이십 대를 지나고 30대도 지나 40대가 되어서 조금은 여유가 생겼다만은 여전히 버텨서 다지는 것은 현재진행형이다.

밑으로도 떨어졌다가 위로도 끌어올리는 것은 내 중심에 있어요. 바닥에 있는 나도 믿어주고 위에 올라가려고 하는 나도 믿어주면, 한참 떨어지든 위로 올라가든, 중간은 오게 되어있다는 거예요. 시소의 원리처럼 중간을 찾을 수 있는 나만의 무언가가 올 거예요. 그러니까 나 자신을 잘 붙잡고 나를 들여다보는 것이 가장 중요하죠.”

인생은 청룡열차. 살다 보면 올라갈 때도 있고 내려갈 때도 있다. 김서형은 올라가고 내려가는 그 과정이 있어야 비로소 성장할 수 있는 것이라 말한다. 후배 배우들의 선망의 대상이자 많은 사람의 사랑을 받고 있는 배우지만 그도 일을 하며 겁이 나는 순간이 있다. 많은 세월 동안 연기를 하며 살아왔어도 여전히 불안감을 끌고 살아가는 것은 죄악이 아닌 당연한 일이 아닐까. 무서운 마음이 들면 그만큼 더 열심히 한다. 참 단순하게 대본을 한 번이라도 더 보고 캐릭터를 분석한다. 그러면 언젠가 또 올라가는 때가 온다.

저는 정말 단순하거든요. 단순하니까 잘 해내지 못할까 봐 열심히 할 때가 있어요. 난 내가 너무 단순하기 때문에 겁나요. 어려운 캐릭터를 주었을 때 못 해낼까 봐서요. 그래서 부단히 애를 쓰고 최선에 최선을 다하죠. 근데 그거 좋은 거 아닌가요.”

▲배우 김서형이 지난 9일 오전 서울 용산구 한강로동 CGV용산아이파크몰에서 열린 영화 '여고괴담 여섯 번째 이야기: 모교'의 언론시사회에 참석해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배우 김서형이 지난 9일 오전 서울 용산구 한강로동 CGV용산아이파크몰에서 열린 영화 '여고괴담 여섯 번째 이야기: 모교'의 언론시사회에 참석해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멋지고 아름다운

언젠가 한 인터뷰에서 말했듯 한 번 결심한 것은 끝까지 해내고야 마는 집념과 연기에 대한 열정, 현세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건네는 깊이 있는 조언들까지. 이 모든 것들이 김서형을 멋진 사람으로 보이게 만든다. 그에 더해 센스 있는 패션 감각과 시원한 헤어스타일도 빼놓을 수 없는 매력의 한 요소이다. 그에게 이런 이야기를 꺼내면 늘 이를 드러내고 웃는다.

저도 배우들 중에 그렇게 예쁜 축에 속하지 않아요. 저는 사실 늘 긴 머리였어요. 언젠간 비련의 여주인공이 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아니더라고요. 그걸 받아들이기까지 정말 시간이 오래 걸렸어요. 저도 어릴 때는 그걸 용납을 못하겠더라고요. 그런데 어느 날 스스로 머리를 커트해보고, 사진도 다시 찍어봤더니 이게 더 맞는구나 라는 걸 알게 된 거죠. 왜 우리는 태어난 생김새를 논해야 하는지. 나는 그 일을 하니까 어떤 마음이 드는지는 알지만, 내 개성을 찾는 게 정말 중요한 것 같아요.”

나 자신을 찾은 지금의 김서형이 훨씬 멋지다. 지금의 그는 멋지고 아름답다. 배우 김서형의 행보는 많은 여성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생각한다. 항상 내 중심을 잡는 것, 그것이 중요하다. 몸에는 척추가 있고 모든 기관은 그것에 기대어 작동한다. 나 자신이 두 발을 단단하게 붙이고 서 있을 수만 있다면, 언제 어디서나 올곧은 자세를 유지할 수 있다.

남의 말에 휘둘리지 마세요. 자신에게 만족하면 되는 거예요. 외부에서 많은 충고와 평가가 들어오곤 하겠지만, 그 안에서 항상 자기를 잘 붙들어 매는 게 제일 필요한 것 같아요.”

난 내가 멋지다는 말을 많이 듣고 있단 걸 알아요. 본인을 칭찬하는 말에 인색하게 굴지 않고 당당한 모습이 좋았다. 어디에 있든, 누구와 있든 그가 돋보이는 이유는 지금껏 겪어온 수많은 굴곡이 있고, 넘어졌던 순간에 몇 번이고 일어나서 다시 걸었기 때문이 아닐까. 꾸준히 내딛어온 발자국이 그의 뒤로 길게 펼쳐졌다. 지금까지 잘 걸어왔으니 앞으로의 길도 멋지게 걸어갈 것이다.

김현지 기자 suricatta@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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