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탐구】 시인 나태주…세상 모든 풀꽃에 건네는 위로와 사랑
【인물탐구】 시인 나태주…세상 모든 풀꽃에 건네는 위로와 사랑
  • 김현지 기자
  • 승인 2021.07.29 13:4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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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세히 보고 오래 보아야 보이는 사랑스러움
풀꽃 문학관은 세상의 모든 풀꽃을 위한 공간
▲나태주 시인의 시는 세상의 모든 풀꽃에게 용기를 심어주고 있다. (나태주 시인이 지난 2019년 13월 12일 서울 세종문화회관 한 식당에서 '너와 함께라면 인생도 여행이다' 출간 기념 기자 간담회를 열고 소감을 말하고 있는 장면. /뉴시스)
▲나태주 시인의 시는 세상의 모든 풀꽃에게 용기를 심어주고 있다. (나태주 시인이 지난 2019년 13월 12일 서울 세종문화회관 한 식당에서 '너와 함께라면 인생도 여행이다' 출간 기념 기자 간담회를 열고 소감을 말하고 있는 장면. /뉴시스)

[한국뉴스투데이] 열여섯, 푸르렀던 소년 시절 애끓는 마음을 전할 길이 없어 쓰기 시작한 시는 그를 시인의 길로 이끌었다. 그때 그 소년은 알고 있었을까. 평생동안 종이 위에 사랑 이야기를 끝도 없이 늘어놓게 되리라고 과연 상상이나 할 수 있었을까. 처음 시는 한 소녀와 본인을 위해 썼지만, 이제는 세상의 모든 이를 위해 시를 쓴다. 요즘도 그는 이따금 핸드폰을 꺼내 얼마 전에 쓴 시를 주섬주섬 읽어주곤 한다. 언제나 그렇듯 짧고 소박한 글이다. 듣고 있으면 풀 내음이 코끝을 간질이고 입꼬리를 올려 미소짓게 되는. 산뜻하고 행복한, 사랑스러운 글이다.

자세히 보고 오래 보아라

공주 사는 사람이고요, 늙은 사람이고 시인이에요.

안녕하세요? 하고 건네는 첫인사가 풀꽃처럼 소박하다. 시인이라는 소개는 유달리 큰 비중을 차지하지 않고 인사말 끝에 소담하게 들어앉았다. 내가 쓴 시 중에 한 편을 사람들이 많이 좋아해 주어서... 참으로 많은 시를 내고 많은 사랑을 받았을 텐데도 불구하고 조금의 익숙함도 없이. 그저 고맙고 약간은 부끄러운 듯 어느 동네 맘씨 좋은 할아버지처럼 허허, 짧은 웃음을 내었다.

상서초등학교에서 두 번째로 교장을 맡았을 때 일이었어요. 아이들이 풀꽃을 그리는데 너무 아무렇게나 대충 그리는 거예요. 그래서 잔소리 삼아 그렇게 그리지 말고 자세히 보고 오래 보고, 예쁘게 사랑스럽게 그려 보아라. 하고 말한 적이 있었어요. , 하고 아이들이 대답하는 소리에 그래, 자세히 안 봐주어서, 오래 안 봐줘서 그렇지, 예쁘고 사랑스러워. 했던 말을 그대로 거둬서 썼는데 그게 시가 되었어요.”(인터뷰 출처: SBS 주영진의 뉴스 브리핑)

아이들에게 풀꽃 그리는 법을 알려주는 교장 선생님. 선생님은 제자들에게 작은 것도 예쁘게 오래 보는 법을 알려주었다. 자세히 보고 오래 보면 무엇이든 사랑스러운 구석이 보이기 마련이라. 가꾸는 사람 하나 없고 지천에 널리고 널린, 생김새만큼이나 소박한 향기를 지닌 작은 꽃 한 송이. 그마저도 푸른 잎에 가려 꽃송이는 잘 보이지도 않을 때도 있지만, 그 자체로 예쁘다. 여리고도 싱그러운 그 꽃잎. 푸르른 줄기와 이파리가 만들어내는 짙은 빛 녹음. 시인은 말했다. 아이들도 풀꽃과 같이 예쁘게 보기 때문에 예쁜 것이라고. 이제는 살면서 나도 그렇게 예쁘다, 하고 돌아봐 줄 때가 되지 않았는가.

누구나 예쁜 꽃을 피울 수 있어

시인이 쓰는 짧고 쉬운 시 안에는 하루하루 삶을 살아가는 이들에 대한 애틋한 마음이 듬뿍 담겨있다. 사랑하는 마음, 걱정하는 마음, 나는 오늘도 네가 평안히 하루를 보냈으면 좋겠다는 가슴 뭉클한 메시지. 요즘 들어 특히나 하루하루가 버거워진 일상에 그의 시는 많은 위로가 된다. 나태주 시인이 쓴 <풀꽃 3>이라는 시 중엔 이런 구절이 있다. 기죽지 말고 살아봐.

요즘 사람들은 나도 그렇고 다른 사람도 그렇고, 자존심은 높은데 자존감은 많이 손상된 거 같아요. 겉모습은 그럴듯하고 멋있게 보일 수 있죠. 하지만 집에 들어와서는 완전히 찌그러진 깡통이 되는 게 문제예요. 집에 와서도 자신을 찌그러뜨리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나름대로 자기가 가진 좋은 꽃을 피웠으면 좋겠고, 끝에 가서는 참 좋다, 라는 말이 나오길 바랍니다.”(인터뷰 출처: TVN 유퀴즈온더블럭)

딘가에 밟힌 마음을 어루만져 피워주는 손길에 그만 눈물이 난다. 내가 가장자리에 있는 사람이든, 소수의 사람이든, 그것은 아무런 상관이 없다. 나의 삶은 나의 것, 다른 누군가에게 귀속될 수는 없다. 나의 삶에 집중하고 스스로 기를 살려주면 나는 내 세상에서 주인공이 된다. 너의 주류가 아닌 나의 주류이다. 나만의 우주에서 나는 끝없이 빛날 수 있다. 내가 피워낸 나만의 꽃, 그 꽃은 세상에서 가장 귀하고 어여쁜 꽃이다.

시는 사랑에서 시작되는 것

그가 쓰는 시에는 사랑스러운 구석이 있다. 그건 아마 시인의 사랑이 그 속에 담뿍 담겨있기 때문이 아닐까. 시의 기본 시작은 연애라고, 나태주 시인은 말한다. 사랑하고 아껴주고 싶은 마음을 글 속에 담아내면 그게 바로 시가 된다. 그가 자주 들려주는 일화 하나가 있다. 열여섯 풋풋했던 시절의 짝사랑 이야기. 그는 시골에서 가축들 풀을 뜯기던 열여섯 소년이었고 여학생 하나가 예쁘게 눈에 들어와 마음을 전하고 싶어 편지를 썼다. 당시의 계절은 알 수 없지만, 소년의 마음만은 한창 피어나는 봄, 눈이 녹고 봉우리가 터져 온갖 꽃이 만개할 무렵의 봄이었을 테다. 하지만 뛰는 가슴을 부여잡고 한 자 한 자 정성스레 눌러 쓴 편지는 연분홍빛 당신에게 전해지지 못했고. 돌아온 답신은 소녀의 아버지로부터 온 것이었다. 그 편지 잘 받았네. 근데 학생이 공부는 안 하고 이런 편지나 쓰면 되겠는가. 한 번 서천 읍내로 나오게. 내가 만나주겠네. 아주 굵은 만년필로 아주 점잖게 쓰셨어요. 시인은 허탈하게 웃으며 말했다. 답신에 쓰인 만년필이 아주 굵었다는 것, 그리고 아직까지도 편지의 내용을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다는 것. 몇십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또렷하게 읊을 수 있는 그때의 기억이, 얼마나 당시 소년을 놀라게 만들었을지 충분히 짐작할 수 있게 하였다.

그때 편지를 받고 너무 놀라 편지를 찢어서 논 옆에 버렸어요. 다시는 편지를 쓸 수 없는 답답함에 속으로 시를 썼습니다. 그때 시를 쓴 건 살기 위해서였어요. 인간은 행복을 좌우하는 80%의 감정이 있다 하는데, 이 감정을 표출하지 못하면 곤란해져요. 그래서 저는 속에서 끓어오르는 감정을 어떻게 표현할까, 생각하다가 시를 쓰는 것으로 방법을 찾은 것이죠. 그렇게 시인이 됐고 저는 거기에 대해 후회하는 바가 없습니다. 그래서 저는 연애편지를 쓰듯이 시를 썼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있어요. 좋은 마음, 사랑하는 마음, 그리워하는 마음, 받드는 마음을 예쁘고 사랑스럽게 잘 쓰는 게 연애편지가 아닌가요. 저는 그렇게 살았고 앞으로도 남은 생은 그렇게 계속 가려고 합니다.”(인터뷰 출처: SBS 주영진의 뉴스 브리핑, TVN 유퀴즈온더블럭)

무엇이든 괜찮다

나태주 시인의 시는 짧다. 어렵게 꼬아서 쓴 문장도 없다. 그래서인지 더욱 우리의 마음에 가까이 다가온다. 시계 초침이 한 바퀴를 채 돌기 전에 그의 시 한 편을 읽을 수 있다. 단 몇 초의 시간 안에 우리의 마음을 선량하고 다정하게 만들어버리는 그의 시는 참으로 풀꽃 위에 내리는 봄비 같은 존재가 아닐까 싶다.

시는 본디 짧은 게 원칙이에요. 한방에는 123약이라는 말이 있어요. 첫 번째는 침, 두 번째는 뜸, 세 번째는 약이란 뜻인데 시는 침입니다. 급소를 쳐서 아픈 상태나 나쁜 것을 빨리 돌려놓는 거예요. 오늘날 사람들이 많이들 힘들고 답답해하잖아요. 그럴 때 빨리 급소를 쳐서 괜찮습니다, 당신도 같이 가면 좋습니다. 저도 같이 있습니다. 이렇게 말해줘야 하지 않겠어요? 그래서 저는 이 시대의 시는 당연히 짧아야 한다, 침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요.”(인터뷰 출처: SBS 주영진의 뉴스 브리핑)

, 그는 이미 알고 있던 것이다. 우리의 삶에 정녕 필요한 게 무엇인지를. 괜찮다는 말 한마디와 함께 있겠다는 확신. 그 두 가지 위로로 우리는 버틸 수 있다. 그는 시인인 동시에 의사였다. 영혼을 치유해주는 의사였다. 그는 자그마한 약방도 하나 가지고 있다. 공주시 봉황산 아래 위치한 풀꽃 문학관이다. 그 주변에는 크고 작은 꽃들이 바람 따라 흔들리고, 바람이 사이사이를 훑고 지나며 싱그러운 향기를 온 곳으로 퍼뜨린다. 가끔은 풍금 소리도 들린다. 나태주 시인이 연주하는 소리다. 풀꽃 문학관은 결코 그를 위한 장소가 아니라고, 시인은 힘주어서 말했다. 풀꽃 문학관은 이 세상에 있는 많은 풀꽃들을 위해 존재하는 집이다.

사람들은 모든 걸 너무 잘 하려 합니다. 그리고 한 번 실수를 하면 그것이 자기에게 영원한 상처인 것처럼 다시는 일어날 수 없는 것처럼 힘들어하는데, 그러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풀꽃처럼 살기 힘들고 지치고 자기 자신이 작고 초라하다 생각하는 사람들이 이곳, 풀꽃 문학관에 와서 위로받고 갔으면 좋겠어요. 편하게 오세요. 늘 열려있는 곳이니까요. 미리 약속만 해주신다면, 저도 그 자리에 있습니다.”(인터뷰 출처: SBS 주영진의 뉴스 브리핑)

김현지 기자 suricatta@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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