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뉴스투데이] 인간은 사회적 동물임과 동시에 매우 상대적인 존재다. 그 말은 곧 사회생활이란 저마다의 다름을 인정하고 서로 간의 상호작용으로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수많은 관계 속에 살아가면서 가끔은 힘든 순간들도 있다. 모두가 ‘나’ 같지 않으므로 혼란을 겪을 때도 있고, 다름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과정 역시 쉽지만은 않다.
우리나라처럼 인구밀도가 높고 IT 강국답게 소셜네트워크가 활발하게 활성화된 경우. 속된말로 몇 다리만 걸치면 모르는 사람이 없다고도 하는데, 대부분의 사람은 실소하며 고개를 끄덕일 듯하다.
이렇게 밀도 높은 관계 속에 살아야 한다면 각기 다른 성향에 상대적으로 대응해야 한다는 것은 꽤 피곤할 수도 있는 삶이 아닐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이들이 관계에서의 원활함을 위해 소통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물리적 거리가 마음의 깊이를 정할 수 없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그래서 현대사회에서는 ‘소통’이 대두될 수밖에 없다. 그것은 일방적으로 나의 의사를 전달하는 것이 아닌 각자의 의견을 공유하고 더 나아가 공감해야 하기 때문이다.
공감 능력이 뛰어난 사람은 상대적 대처능력 역시 높다. 얼굴을 마주하고 대화하는 게 아니어도 다른 누군가의 상황이나 감정을 공감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적어도 상대방에게 상처 주는 일은 쉽게 일어나지 않는다. 그리고 그런 사람이라면 자신의 이야기만을 고집하기보다, 다른 이에게 좀 더 귀 기울어지지 않을까 싶다.
누구나 자기 자신을 제대로 들여다보는 건 어렵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어쩌면 스스로는 알기 힘들지도 모른다. 나를 바라보는 상대방이 느끼는 나의 모습이 어떨지를 고민해 본다면 나를 아는 것에 조금은 가까워지지 않을까?
그릇이 되어 무언가를 담아내든, 물이 되어 어떤 모양의 그릇에 담길지는 각자 선택의 몫이다. 그릇이 되겠다면 큰 그릇이 되어 더 많은 것을 담기를, 물이 되겠다면 동그란 그릇이든 네모난 그릇이든 그 본연의 모양에 맞게 담기는 유연함을 갖기를 원할 것이다.
사람끼리 부딪치면서 많은 관계를 맺으며 살아간다는 건, 그 자체가 또 하나에 배움이며 그렇게 우리는 성장해 나아간다. 비록 만나지 못해 생기는 물리적 거리가 아쉽다 해도, 이미 마음속에 존재하는 수많은 관계는 여전히 나를 성장하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