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6회 부산국제영화제... 여전히 매혹적이다
제26회 부산국제영화제... 여전히 매혹적이다
  • 곽은주 기자
  • 승인 2021.10.10 11:1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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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국제영화제 일기

부산국제영화제는 여전하다. 여전히 매혹적이다. 계속 진화 중이며 성장 중이다. 자충우돌 돌진하는 젊음처럼 무모한 것 같으면서 정체성을 찾아가는 20대처럼 생기발랄하다. 관객에게 부산영화제란 무엇일까?

영화의 전당 전경
영화의 전당 전경

26회 부산국제영화제 현장은 무척 차분하다. 행사 중심의 과장된 몸짓이 걷어진 느낌이다. 반면 아쉬운 점도 있다. 현장 티켓 부스는 운영되지만, 발권이 쉽지 않다. 모바일 예매가 선호되다보니 영화제 기간에 현장에서 구매 할 수 있는 티켓은 그야말로 하늘에 별 따기다.

준비 없이 영화나 한편 볼까? 하는 가벼운 마음으로 영화제를 왔다가는 큰 낭패를 본다. 코로나19 거리두기로 극장 좌석수가 50% 줄었다. 티켓 부스에서 안내된 줄 안에 서서 차례를 기다렸던 예비 관객들은 허탕치고 뒤돌아 서기 일쑤다. 그래도 이정도 일 줄은 몰랐다.

영화의 전당에 설치된 26회 부산국제영화제 초청작 포스터들
영화의 전당에 설치된 26회 부산국제영화제 초청작 포스터들

"어떤 영화 발권하시겠습니까? 코드번호가 몇 번인가요?" 부스 안에서 코드 번호를 묻는 말에 티켓 카탈로그에 적혀있는 번호를 알려 준다. "157. 아네트요" "매진됐습니다!"

그러면 "티탄은요?"
"매진 됐습니다".

제2의 <미나리>라고 홍보되는 저스틴 전의 <푸른 호수>도 매진, 개막작 <행복의 나라로>, <승리호> 등 입소문 난 영화들은 이미 매진됐다. 내가 너무 느슨했나? 먼 길까지 내려 온 수고가 조금 허탈했다. 보고 싶은 영화를 기대하며 달려왔던 여행의 피곤이 순간 확 몰려왔다. 뭐지? 관객이 영화 볼 권리를 무시당한 느낌이다.

기자회견 때는 상영관을 충분히 확보 했다고 했는데 정작 현장에서는 매진 안 된 영화 찾기가 쉽지 않다. 올해는 70개국 223편의 작품이 초청됐다. 티켓 카탈로그에 표시된 극장과 상영관을 세어보니 영화의 전당을 포함한 5개 극장 24개 스크린에서 6일부터 15일까지 하루 평균 3~4차 상영된다. 스크린 수는 종전과 다름없는데 결국 50% 줄은 좌석수가 주범인 듯하다.

다행히 레오스 카락스의 <아네트>를 기자시사로 볼 수 있어서 위로가 됐다. 사실 이번 영화제에서 가장 기대했던 영화가 <아네트>다. 올해 칸영화제 개막작이자 감독상을 수상한 <아네트>는 부산국제영화제 갈라 프레젠테이션 부문 공식 초청작이다. 영화는 기대보다 훨씬 더 좋았다. 나이 먹어서 일까? 생기발랄 발칙한 젊은 감독들 작품보다는 인생의 쓴맛을 본 늙어가는 감독의 작품이 더 미덥고 신뢰가 간다. 감독이 나이가 많다고 다 좋은 영화를 만드는 것은 결코 아니지만, 멀리 두고 바라보던 '죽음'에 대한 태도가 달라지고 '인생'의 소멸을 제대로 감지한 감독의 작품은 헛된 과장과 거짓이 없어서 좋다. 홍상수의 근래 작품들이 그렇다.

레오스 카락스 감독의 '아네트' 스틸 컷. 부산국제영화제 제공.
레오스 카락스 감독의 '아네트' 스틸 컷. 부산국제영화제 제공.

예정대로라면 레오스 카락스 감독의 기자간담회와 <아네트>상영후의 관객과의 대화가 9일 진행됐어야 했다. 유감스럽게도 항공편 운항 차질로 하루 늦게 입국하게 되어 9일 일정이 10일로 연기됐다. 입국 취소가 아니라 천만다행. 26회 부산영화제는 레오스 카락스와 <아네트>로 각인될 것 같다. <아네트>는 10월 국내 개봉한다.

레오스 카락스 감독. 부산국제영화제 제공.
레오스 카락스 감독. 부산국제영화제 제공.

내게 부산국제영화제란 무엇일까? <화양연화>의 왕가위 감독과 장만옥을 바로 코앞에서 보며 그들과 환호하던, 돌아갈 수 없는 시절에 대한 찐한 향수일지도 모른다. 향수라도 좋고 유희라도 좋다. 영화를 만든 사람들과 영화를 같이 보고 같이 공유하는 공간과 시간의 향유는 늘 신나고 설렌다. 이보다 더 좋은 놀이가 있을까. 부산은 여전히 매혹적이다.

곽은주 기자 cineeun60@nat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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