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제의 엄지손가락
황제의 엄지손가락
  • 송은섭 작가
  • 승인 2021.10.20 14:5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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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민심의 손가락은 어디를 가리키고 있는가? 참여의 군중 리더십
리더 한 명의 생각에 절대권력이 부여되는 조직문화에 필요한 것은? 참여하는 조직문화

1. 참여의 군중 리더십, 황제의 엄지손가락

폐하, 결정하셔야 합니다. 관중들이 동요하고 있습니다.”

황제는 오른손을 주먹을 쥔 채 높이 들었다. 이제 패배한 검투사의 생사(生死) 여부는 황제의 엄지손가락에 달렸다. 콜로세움은 관중들의 생(), () 의견에 대한 함성으로 가득 찼다. 황제는 관중을 둘러보며 민심을 확인한다. 그런 후 엄지손가락 아래로 향했다. 관중은 자신들의 뜻을 황제가 받아 준 것에 대해 열광했다. 승리한 검투사는 패배한 검투사의 심장을 망설임 없이 찔렀다.

영화 글레디에이트를 보면 로마 시대 검투사들은 황제의 엄지손가락 방향에 따라 패배한 검투사의 생사를 결정짓는 규칙이 있었다. 영화 속 주인공인 막시무스장군은 황제의 계략으로 가족을 모두 잃고 노예로 전락한다. 오직 복수만 생각하며 검투사 생활을 하는데 그는 경기마다 승리하며 대중의 인기를 한몸에 받는 스타 검투사가 된다. 황제는 그의 실체를 알게 되지만 대중의 인기를 생각해서 함부로 죽이지 못한다. 결국, 비겁한 방법으로 1:1 결투를 하지만 주인공 막시무스가 황제를 죽이고 승리한다. 이 영화에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점은 황제는 민심에 따라 검투사의 생사를 결정한다.’라는 것이다.

절정기의 로마제국은 남으로 아프리카 사막에서 북으로 잉글랜드까지 영토를 확장했다. 당시 세계 총인구의 1/4이 로마 황제의 지배 아래에 있었다. 이러한 절대권력의 상징인 로마 황제가 콜로세움경기장에서 검투사의 생사를 결정지을 때 관중의 뜻을 살폈다는 건 무엇을 의미하는가? 바로 참여의 군중 리더십, ‘민심이었다. 로마제국은 민심에 따라 황제도 바꿀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추고 있었다. 그래서 황제는 주기적으로 민심의 향배를 확인하는 것이 중요했다. ‘콜로세움이라는 경기장도 결국 검투사라는 대중 오락거리를 만들어 민심의 향배를 살피는 정치적 도구였다.

4차 산업혁명 시대, 메타버스(Metaverse) 시대를 사는 현재도 민심(民心)은 천심(天心)이다. 로마제국보다 훨씬 더 빠르고 광범위하게 군중 동원이 가능한 시대다. 우리는 이미 미투 운동이나 촛불혁명에서 인터넷과 SNS를 통한 군중 동원을 경험했다. 부패한 권력자나 정치인이 설 수 있는 자리는 없다. 시대가 변한 것이다. 세상 사람들은 모두 시대변화를 느끼고 있는데 오직 부패한 세력과 정치인들은 아직도 그들만의 리그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구태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로마제국 검투사의 경기에서 패배한 검투사에게 엄지손가락을 위로 향하게 하는 결정은 어떤 순간에 나올까? 정답은 검투사가 최선을 다해서 멋진 경기를 펼쳤을 때이다. 비록 이번 경기에서는 패했지만, 다음 경기에서 더 멋진 경기를 보여주리라고 기대하기 때문에 살려주는 것이다. 엄지손가락은 곧 민심이다. 민심을 살피지 않고 오직 자신의 안위와 당만 생각하면서 군림하려는 정치인들에게 국민의 엄지손가락은 아래를 향할 것이다.

삽화/ 박상미
삽화/ 박상미

2. 기업의 엄지손가락, 참여하는 조직문화

회장님, 만나 봬서 반갑습니다. 회장님의 열정을 높이 삽니다. 하지만 이건 아닙니다.”

직원들 가운데 이렇게 말할 배짱이 있는 이는 별로 없다. 비교적 직급이 높은 직원들 가운데도 없다. 만약, 비공개로 온라인 포럼을 열었다면 잔인할 정도로 솔직한 의견을 수렴했을지 모른다.<뉴파워: 새로운 권력의 탄생> 중에서

2015317, 세계 최대 커피 체인점 스타벅스의 회장이자 최고경영자인 하워드 슐츠(Howard Schultz)는 인종차별 문제를 해결하는 캠페인인 레이스 투게더(Race Together)’를 스타벅스 매장 내에서 추진하겠다고 발표했다. 그는 자사 바리스타들에게 고객의 거피 잔에 ‘#레이스투게더라고 쓰고 미국의 인종 문제에 관해 고객과 대화를 나누라고 권했다. 그러자 즉각 혹독한 반응이 쏟아졌다. “바리스타 일만도 벅찬데 인종차별에 관한 대화를 나누라니 정말 잔인하다.”, “스타벅스가 도대체 제정신인지 모르겠다.” 미국 경제전문지들도 커피 주문을 기다리는 줄이 문밖으로 삐져나올 것이라며 비꼬았다. 결국, 이 캠페인은 5일 만에 중단되었다. 한 사람이 시작했고 원맨쇼로 끝난 것이다.

슐츠는 레이스 투게더를 공식적으로 발표하기 이전에 캠페인의 지지기반을 넓히는 활동으로 포럼과 소셜미디어로 홍보를 했다. 온라인으로 곧 군중을 동원하기 시작했고 사회운동으로 확산되는 분위기가 조성됐다. 슐츠는 이러한 현상들을 보며 엄지손가락을 위로 향하는 결정을 내린 것이다. 그러나 정작 현장에서 실천해야 할 매장 직원들의 솔직한 마음을 듣지 않았다. 솔직한 마음을 표현할 수 있는 시스템이 없었다. 문제의 핵심은 여기에 있다. ‘리더가 자신이 만든 환경에서 자신의 의도를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아전인수격의 어리석은 통찰인 것이다. 만약 비공개 온라인 포럼이나 사내 인터넷 비공개 의견수렴같은 절차를 거쳤다면 현장 민심을 제대로 읽을 수 있었을 것이다.

우리의 현실도 마찬가지다. 회의는 답정너(답은 정해져 있으니 너는 대답만 해)’로 진행되고, 위에서 정한 결정은 상명하복식으로 전달되는 의사전달체계가 일반적이다. 취업포털 잡코리아가 조사한 결과에 의하면 직장인 중 현재 회의 문화에 만족하지 않는다.’라는 대답이 70%에 달한다고 한다. 그 이유는 결론 없이 흐지부지 끝날 때가 많아서’, ‘회의 진행과 구성이 비효율적이어서’, ‘상급자 위주의 수직적인 회의가 많아서순으로 나타났다.

회의 주관자의 일방적인 주장은 직원들의 입을 닫게 만든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말하기를 포기하게 만든다. 이런 기업문화로는 직원들의 적극적인 참여를 끌어낼 수 없다. 리더가 제시하는 방향에 무조건 따라만 가는 조직은 한계에 부딪히게 된다. 문제가 생기면 그때 말하지 그랬냐?’, ‘애사심이 없으니까 그렇지!’, ‘능력이 없으니 문제를 인식하지 못한 거다.’ 등의 내부 총질 표현만 난무하게 된다.

리더는 시대의 흐름을 정확하게 파악해야 한다. 외부에서 얻는 정보도 중요하지만, 현장에서 직접 일을 추진해가는 내부 정보에도 관심을 가져야 한다. 자유로운 의사소통의 내부시스템이 갖춰있지 않다면 직원들의 엄지손가락은 아래를 향할 것이다.

송은섭 작가 seop2013@hanmail.net

송은섭의 리더십이야기

인문학과 자기계발 분야 전문 작가 겸 칼럼니스트로 활동하고 있다.
주요 저서로 <마흔, 인문고전에서 두 번째 인생을 열다>, <지적대화를 위한 인문학 고전 읽기> 등이 있다. 경기대 외교안보학 석사, 고려대 명강사 최고위과정을 수료했다. 유튜버(작가 조바르TV), 팟캐스트(책 읽는 시간)로도 활동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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